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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은 초등생의 대치동 진입
언론에서 매년 서울대 및 명문대의 강남 합격률을 제대로 된 분석 없이 보도하면서, 비 강남 학부모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공부를 하면, 어떻게든지 강남으로 이주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경제적인 형편만 된다면 이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치동에서 15년 이상 아이들이 대학가고, 편입하고, 사회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본 바로는 대치동 입성은 가능하면 늦추면 늦추는 것이 아이와 부모의 정신 건강에도 좋고, 실제 대학 진학에서도 더 좋은 결과를 내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특히 가까운 지인이 초등학교 때 대치동에 오겠다고 한다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라도 말리고 싶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둘째 딸이 유치원생일 때 대치동에 들어온 대기업 부장님이 있다. 큰 아이는 대치동의 유명 초등전문 영어 학원에다 영재 수학 학원, 독서 논술 학원을 다닌다. 딸은 영어 유치원이라고 하는 영유아 대상 영어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아직 애들이 어린데 사교육비로만 한 달에 몇 백만 원씩 들어간다.
한번은 집에 돌아 오니 아이와 엄마가 싸우고 있었다. 아이가 영재 반 수학 시험에서 80점 밑을 받아와서 한 단계 낮은 반으로 내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원에 가기가 싫다고 한다. 엄마는 친한 친구들 다들 열심히 학원 다니고, 남들 다 80점 이상 받는데 넌 왜 이렇게 속을 썩이느냐고 난리다.
싸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아이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보, 애가 학원 다니기 싫다는데, 좀 쉬게 하면 안 돼? 지금도 학원 3-4개 다니면서 힘들어하고 매일 학원 숙제 하느라 12시 다 돼서 자는 것 같은데, 어려서부터 그렇게 무리하게 시킬 필요가 있겠어?
“아, 당신 모르는 소리 하지 말아요. 큰 애는 영어도 늦게 시작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미국 교과서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일반 영어 학원에 보내는데, 수학이라도 잘 하게 해야죠. 그리고 우리 집처럼 애들 방학 때 마다 해외 연수나 홈 스테이 보내지 못할 형편이면 더욱이 수학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애가 요즘 게임 하느라 정신이 빠져서 성적이 떨어진 거잖아요. 당신도 나한테만 맡겨 놓지 말고, 애가 숙제를 잘 하는지 좀 신경 좀 써요. 괜히 공부가 전부가 아닙네, 아빠는 어려서 그렇게 안 하고도 SKY 갔네 그런 헛소리 좀 하지 말고요. 그리고 저만 밤에 일찍 못 자나요? 대치동에서 12시 전에 자는 애들이 얼마가 되요?”
이 부장님과 커피숍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 선생님, 제가 요즘 교육 현실을 너무 모르는 건가요? 내가 보기에 우리 아들놈이 내 공부하던 때에 비하면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자기 또래에 비하면 크게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 정말 이렇게 하면 서울권 대학도 못 가는 건가요?”
“부장님, 제가 보기에는 아이가 부족한 게 아니라, 부장님이 너무 일찍 비교와 경쟁이라는 대치동프레임에 들어온 게 문제입니다. 만약에 큰애가 비 강남에 살았다면, 이 아이는 또래에 비해 나름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하는 아이였을 거에요. 하지만, 나름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대치동에서는 어느 정도 잘하면 중간이나 가는 거고 천재가 아닌 이상 항상 나보다 잘하는 아이들 밑에 있는 열등한 아이로 평가 받을 수 밖에 없는 거지요.”
요즘 초등학교는 성적표에 등수가 기록되지 않는다. 200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제7차 초ㆍ중등교육과정’에는 학생들의 개인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개인의 반 등수나 전체 등수를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거나 성적표에 적어 학부모나 학생에게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원에서는 언제나 시험을 보고 이 성적을 바탕으로 반을 나누고 학부모 상담을 한다. 잘 하는 아이들의 성적과 등수를 공개하고, 문화 상품권으로 상도 준다. 엄마들은 학원 선생님께 연락 하면 언제가 이번에 본 시험 평균 점수와 아이 등수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초반부터 달리기 시작하니, 엄마들 마음속에 멀리 보는 교육 기다려 주는 교육은 바로 물 건너 가게 된다. 어떻게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 아이를 넣으려고 하고, 이 학원 입학 고사와 배치 고사를 잘 보게 해 주는 학원에 다니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서부터 경쟁과 비교의 틀 안에 아이를 몰아 놓고 빡 세게 돌리면 아이들이 다 좋은 결과를 낼까? 물론, 이렇게 교육 받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성과를 내고 국제중-특목고-명문대의 교육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이름은 학원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고, 매번 학원의 학부모 설명회에서 성공 사례로 소개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조기 경쟁의 틀안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결국 대치동에서 12년을 쏟아 부었음에도 인서울권 대학에도 가지 못하는 다수의 대치동 키즈들과 이들의 부모들은 조용한 무대에서 내려 올 수 밖에 없다.
최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너의 이름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Where nobody knows your name)은 미국의 마이너리거들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인 존 파인스타인은 수 많은 마이너 리거들이 모두 어렸을 때부터는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던 유망주였다고 한다. 이들은 마이너리그가 최종 목표였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도 200개가 넘는 마이너리그 팀에 7,000명 이상의 선수들이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야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불과 3%만이 메이저 리그 입성이라는 꿈을 이룬다.
대치동도 비슷하다 결국 상위 10%만이 특목고-명문대의 길을 가고, 나머지는 대치동에 있으나 대치동 밖에 있으나 별반 차이 없는 입시 성적을 낸다. 오히려 대치동 밖에 있었더라면 나름 자존감을 갖고 공부하고 더 성과를 잘 냈을 아이들이 많다.
멀리 본다면 어려서의 혹사를 피해야 한다.
고교 야구에서 이른바 투수 혹사 논란이라는 게 있다. 좋은 성적을 내야 좋은 대학에 진학 할 수 있기 때문에, 각종 고고 야구 대회에서 에이스 투수에게 무리하게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것이다. 사실 한 야구 선수에게 중요한 무대는 고등학교 의 몇 개 대회가 아니라, 프로무대이거나 기회가 된다면 박찬호, 류현진 선수와 같이 메이저 리그 무대에 서서 공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고등학교 때 단기 성과를 내기 위해 많은 공을 던져서 어깨를 혹사 시키는 것 보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면 멀리 보면서 선수의 어깨를 보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의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에서 본 게임은 고등학교, 특히 고 3이다. 경험상 초등학교 때는 많은 독서와 깊이 생각하는 공부의 기초 체력을 길러두는 게 현명하다. 한 문제라도 더 많이 푸는 비법과 빨리 푸는 스킬을 가르치는데 중요한 게 아니다. 어느 정도 이런 공부의 기초 체력이 된 아이들은 선행이 덜 되었다고 하더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때 충분히 따라 잡을 수 있다.
이는 선행과 경쟁이 치열한 강남 8학군 일반고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서울대나 명문대 최상위 학과를 가는 학생들 가운데 중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찍던 아이들이 아닌, 중학교 때는 반에서 중간 정도 하다가 서서히 피치를 올리면 고등학교 때 반에서 1-2등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교 등수 안에 들고, 고 3때 피치를 찢는 아이들이 재수 하지 않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치동류의 시험을 보고 문제를 풀고 매달 성적의 오르고 내림에 일희일비해야 하는 재미없는 공부를 시키면 정말 중요한 고2,3 때는 이런 재미 없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방전되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초등학교 때는 가능한 경쟁이 덜 치열한 지역에서 마음껏 자연 속에서 뛰어 놀고 체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 공부와 더불어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를 깊이 있게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능하다면 부모나 친구와 독서를 하고 토론하는 습관을 길러 두면 좋다.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체력과 마음의 평안함, 그리고 독서 토론 능력의 기본 공부 그릇을 갖추는 것이 대치동의 경쟁 시스템에 빨리 적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미 위의 부장님 가정은 개선의 여지가 적어 보였다. 엄마는 주변에서 어려서부터 스파르타식으로 돌려서 좋은 대학에 보냈다는 ‘간증’과 ‘사례’에 너무 많이 노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매번 여러 학원 설명회를 참석하면서 그 확신을 다시금 돼 새기며, 내가 아이에게 너무 심하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더욱 굳히고 있었다. 이미 헤어 나올 수 없는 대치동의 덫에 빠진 것이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유일한 탈출구는 해외 지사 발령을 받던가 해서 대치동을 벗어나는 방법 밖에 없어 보이네요. 형수님께서 제 강연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고 해도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 같고요. 외국 나가서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영어라도 제대로 하고, 특례 자격을 받아서 대학가는 폭을 넓히자고 하면 동의 하시지 않을까요?”
“근데 지사 발령 받기가 쉽나?”
“그래서 제가 수년 전에 대치동으로 이사 올지 고민하실 때 말씀 드렸잖아요. 초등학교 때는 절대 대치동으로 들어 오지 말라고……”
[본 칼럼은 돈 쓰고 애 망치는 교육 과열 현상과 높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교육 과잉과 같은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대안을 마련하고자 쓰는 내용으로, 서울대나 명문대를 미화하거나, 강남을 미화 혹은 비난 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혀 둡니다. 최소한 여기서 이 칼럼을 읽으시는 분은 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칼럼니스트 소개>
글쓴이 심정섭은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영어교육학과 학사 편입 한 후, 한양대학교에서 영어 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IMF 1세대로 중소 무역회사, 컨설팅 회사, 현대 자동차 해외 영업 본부를 거치며, 바닥부터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이시기에 잠깐 했던 영어강사 생활을 통해 본인이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학사 편입 한 후 강남에서 대학생과 고등학생에게 15년 동안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이제는 영어라는 물고기 보다, 인생 경영이라는 물고기 잡는 법을 전하기 위해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로 고3과 대학생, 임용 고시 준비생을 지도했지만, 지금의 사교육과 가정의 해체로는 나라의 비전이 없다고 보고, 사교육비 경감과 가정의 회복, 자연출산 및 부모 교육, 유대인식 독서, 토론 교육의 확산을 위한 이론을 정비하고 실천에 이르게 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자연교육법의 실천적 모델인 안철수 가정의 교육을 분석한 <<안철수 공부법>>(황금부엉이, 2012) 와 유대인식 누적 암송을 통해 영어를 정복하는 방법을 제시한 <<20살 넘어 다시 하는 영어>>(명진출판, 2011)가 있습니다. 진정한 부모 교육은 태교와 출산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연출산 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자연스러운 탄생이야기(T-store ebook)를 쓰고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샨티, 2012)를 번역하였습니다.
현재 더나음연구소를 설립하여 예비 부모 교육을 하고 있고, 자연출산한 가족들과 함께 양재 시민의 숲에서 매헌 자연육아 모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헌 기념관 내 윤봉길도서관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3-5시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유대인식 독서 토론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 누구나 참석하실 수 있으므로, 참석을 원하시면 쪽지나 메일 주세요) 유대인식 자녀 교육의 한국적 적용과, 입시교육과 대안교육의 한계를 넘어 가정 중심의 더나은 교육을 실천하는데 관심이 있고, 유대인 자녀교육의 한국적 적용을 다룬 저서와 탈무드 관련 저서를 집필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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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멋진글이네요. 큰일,시험은 마라톤레이스죠. 초반 오버페이스 조심해야죠. 글타고 방치는 더 낭패죠. 자율성 키워주는 look after 즉 뒤에서 보기.
잘읽었습니다.
처음으로 글남깁니다. 저도 초등생 아들 둘을 키우며 맹모삼천지교가 되어야 하는게아닌지 늘 고민했었습니다. 여긴 관악구라서 초등 고학년이 되면 많이들 전학가거든요. 그릇을 키우는것도 맞는 것 같고 또 능력되는 친구들을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한 것 같은데 아직은 불안하네요..
말콤 글래드웰 '다윗과 골리앗'에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걸 학부모님들이 정말 아셔야 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