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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서소망전도사 (3/1학기)
성경묵상연구 요한계시록1:4-8
1) 워바묵상교재 댓글(하나의 성경연구묵상숙제마다 6개의 워바묵상교재 댓글을 달아야 합니다):
댓글 6개 요한계시록 1:1-3, 4-8, 9-11, 12-20, 2:1-7, 8-11 올렸습니다.
요한계시록1:4-8
본문
[계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아멘
2) 하나님(본문 말씀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4절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함께 계시는 분
5절
충성된 증인이신 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
은혜와 평강이 나에게 있기를 원하시는 분
나를 사랑하사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에서 나를 해방하신 분
6절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으신 분
7절
각 사람과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보게하시는 분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애곡하게 하시는 분
8절
알파와 오메가이신 분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분
전능하신 분
3) 만남(본문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적어보세요):
4-5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하나님 보좌 앞에 여호와의 영과 지혜와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총명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곱 영과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너를 사랑하사 내 피로 너의 죄에서 해방하였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나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있기를 원하며 요한계시록으로 편지한다.
6절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너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았다.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나에게 감사와 찬양을 하기를 원한다.
7절 각 사람들과 나를 찌른 자들도 구름을 타고 오는 나를 볼 것이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나로 인하여 슬피 울 것이다.
8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다.
이런 나를 온전히 믿으라 세상 지식은 배설물이다.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우라. 그리하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치 아니하고 영적 전쟁에서 백전백승이라. 이제는 너를 절대로 넘어지게 하지 않으리라. 모든 필요를 채우리라. 전지전능한 나를 온전히 찬양과 감사의 제사를 드려라.아멘아멘
4) 분별(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구분해 보세요):
4-8절 하나님 나라
하나님 아버지와 일곱 영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은혜와 평강이 있는 곳.
우리를 사랑하는 곳. 예수님 피로 죄에서 나를 해방해주시는 곳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는 곳
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는 곳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을 보는 곳
전능자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곳
7절 세상 나라
예수님을 찌른 자들을 보는 곳.
세상 모든 족속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하여 슬피우는 곳.
5) 인식(본문을 통해 드러난 나의 현재 모습은 어떠합니까?):
4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을 볼 수 있다.
5절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어둠의 세력인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방언 기도로 악한 영을 이기는 영적 전쟁을 함께 하시므로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있다.
나를 사랑하사 예수님의 피로 나의 죄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셨다.
6절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주셔서 찬양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기도합니다.
7절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지성소 영광체험을 통해 보게 하십니다.
각 사람과 예수님을 찌른 자들도 유튜브를 통해 지성소의 영광 체험하는 것을 보고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질병과 인생 문제로 많은 고통으로 슬피우는 것을 봅니다.
8절 내가 귀신을 쫓고 질병을 치유하시고 대언하고 방언 통변하고 환상과 계시로 각종 은사로 기적과 표적을 보이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이시며 전능한 자이시라는 것을 믿게하십니다.
6) 적용(본문을 통해 삶 가운데 적용할 것은 무엇입니까?)
4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동행하며 예언적인 은사로 힘든 영혼들에게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전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영과 지혜와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총명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곱 영의 능력을 받아 성경 말씀을 깊이 깨닫고 전하고 치유하는 선한 일에 사용하겠습니다
5절
목숨까지 버리며 순종하신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목숨까지 버리는 각오로 주의 일에 매진하겠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인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은혜와 평강을 끼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예수님의 피로 내 죄에서 나를 해방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죄사함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을 해방시키겠습니다.
6절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겠습니다.
7절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지성소 기도를 통해 어느 순간이나 환상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눈을 찔러서 예수님을 몰라보고 애곡하는 사람이 없도록 복음을 잘 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8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응답의 용사가 되겠습니다.
7) 기도(본문 말씀을 기도문으로 바꿔보세요):
간구하는 기도문
4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동행하며 예언적인 은사로 힘든 영혼에게 사랑과 믿음 소망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호와의 영과 지혜와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총명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곱 영의 능력을 받아 성경말씀을 깊이 깨닫고 전하고 치유하는 선한 일에 사용하여주시옵소서.
5절
목숨까지 버리며 순종하신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목숨까지 버리는 각오로 주의 일에 매진하게 해 주시옵소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인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은혜와 평강을 끼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사랑하사 예수님의 피로 내 죄에서 나를 해방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죄 사함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을 해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6절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감사와 찬양과 경배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7절
지성소 기도를 통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어느 순간이나 환상으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눈을 찔러서 예수님을 몰라보고 애곡하는 사람이 없도록 복음을 잘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8절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기도의 용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포하는 기도문
4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동행하며 예언적인 은사로 힘든 영혼에게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전하게 될지어다.
여호와의 영과 지혜와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총명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곱 영의 능력을 받아 성경말씀을 깊이 깨닫고 전하고 치유하는 선한 일에 쓰임 받을지어다.
5절
목숨까지 버리며 순종하신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목숨까지 버리는 각오로 주의 일에 매진할지어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인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은혜와 평강을 끼칠지어다.
나를 사랑하사 예수님의 피로 내 죄에서 나를 해방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죄사함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킬지어다.
6절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될지어다.
7절
지성소 기도를 통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어느 순간이나 환상으로 보게 될지어다.
예수님의 눈을 찔러서 예수님을 몰라보고 애곡하는 사람이 없도록 복음을 잘 전하는 사람이 될지어다..
8절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하는 것 마다 응답받는 기도의 용사가 될지어다.
감사하는 기도문
4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동행하며 예언적인 은사로 힘든 영혼에게 사랑과 믿음 소망을 전하게 됨을 믿고 감사합니다.
여호와의 영과 지혜와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총명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곱 영의 능력을 받아 성경말씀을 깊이 깨닫고 전하고 치유하는 선한 일에 사용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5절
목숨까지 버리며 순종하신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목숨까지 버리는 각오로 주의 일에 매진하게 됨을 믿고 감사합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인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은혜와 평강을 끼칠 수 있게 됨을 믿고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예수님의 피로 내 죄에서 나를 해방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죄사함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을 해방시키게 됨을 믿고 감사합니다.
6절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게 됨을 믿고 감사합니다.
7절
지성소 기도를 통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어느 순간이나 환상으로 보게 됨을 믿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눈을 찔러서 예수님을 몰라보고 애곡하는 사람이 없도록 복음을 잘 전하는 사람이 됨을 믿고 감사합니다.
8절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기도의 용사가 됨을 믿고 감사합니다.
8) 나눔(본문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거나 이곳에 적어보세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서 이해가 쉬웠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나에게 있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각 사람과 예수님을 핍박한 자들도 볼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일로 인해 애곡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구약에서 말씀으로 주신 것을 다시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9) 배움(본문 말씀을 구체적으로 영적으로 연구해 보세요):
데이빗목사님 보물창고와 베들레헴 성경 만나주석 참고함.
데이빗목사님 요한계시록 보물창고
[계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요한은 예언된 말씀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띄웠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온 세상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예언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말씀은 바로 당신이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요한은 당신에게 편지를 띄웠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당신이 요한의 편지를 받지 못했다면 당신은 아직도 하나님의 예언된 말씀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사도 요한을 시켜서 당신에게 편지를 띄우도록 하셨으니 당신은 마땅히 요한의 편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언된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곧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메시지로 담겨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전하는 자체가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증거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신 하나님"(4절)이십니다. '이제도 계시다'라는 말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또한 예수님은 '전에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전에 계셨다'는 말은 세상의 창조 이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창조 이전에 계셨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사도요한은 그의 복음에서 예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또한 예수님은 '장차 오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장차 오신다는 것은 재림을 뜻하십니다. 이미 예수님은 초림을 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것을 '초림'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구름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은 '재림'입니다.
"[마 26: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하늘로 승천하신 주님은 하늘 보좌에 거하십니다. 스데반은 하늘 보좌에 계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늘 보좌 우편에 거하신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십니다.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예수님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루고 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아버지 외에 성령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령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아버지와 성자 예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도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십니다. 요한은 성령하나님께서 주님의 보좌 앞에 계심을 표현했습니다. "...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4절).
이처럼 성령하나님은 주님과 늘 함께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가리켜 '일곱 영'이라고 언급한 것은 온 세상 가득히 충만한 성령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한 표현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완전한 수를 가리키며 천국의 숫자를 가리키기 때문에 성령하나님을 '일곱 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중에서 첫번째 부활의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은 죽은 자의 첫 열매가 되셔서 하늘 보좌로 다시금 오르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계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은 '은혜'와 '평강'입니다. '은혜'와 '평강'이야말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복의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신 은혜입니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를 빛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를 빛 가운데로 거하게 하시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에게 깊은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주님의 주시는 평강은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아래 거하지 못하고 평강을 누리지 못하면 그는 연약한 자입니다. 아무리 부요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없다면 그는 가난한 자요 불쌍한 자입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육신이 병들었다 할지라도 날마다 주님의 은혜아래 거하고 주님 주신 평강을 누리며 산다면 그는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십니다. 주님의 피는 모든 죄를 깨끗케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주님의 피는 생명을 보장해 줍니다.
주님의 피는 안전을 보장해 줍니다. 주님의 피는 건강을 보장해 줍니다. 주님의 피는 악한 세력이 조금도 침범치 못하도록 막아 줍니다. 주님의 피를 의지하는 자는 모든 문제에서 해방될 것이며 지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께 거하는 자는 '나라'요 '제사장'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기 때문입니다.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
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한 '나라'는 <바실레이아>입니다. 이는 천국의 개념이 짙은 '나라'를 뜻합니다. 하지만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언급되고 있는 '나라'는 <에드노스>로서 이는 세상적인 개념의 '민족'을 뜻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거할 때는 민족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불리우며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미국 시민권을 획득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우리의 나라가 결정되어지는데 비록 우리가 세상의 나라에 의해 우리의 거하는 나라가 정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볼 때에는 '거룩한 나라'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나라는 왕이 있고 백성이 있지만 천국에서는 우리가 직접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한 백성이 아닌 '거룩한 나라'가 될 때에 우리는 또한 그 나라를 영적으로 다스리는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께 속한 자로 택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로 선택하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선택받은 자입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하라고 선택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도요한은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구름타고 재림하실 때 [계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도 주님을 보겠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도 그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도 주님의 재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아니한 자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며 주님의 재림을 거룩한 신부로 기다리는 자들은 오히려 주님과 기쁨의 날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알파요 오메가"임을 밝혔습니다. '알파'는 헬라어의 첫번째 글짜이고 '오메가'는 헬라어의 마지막 글짜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처음과 나중이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고 말씀하시면서 "...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요한은 이미 요한계시록 1장 4절에서 이 내용을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언급된 "이제도 있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보다 예수께서 직접 자신에 대해 증거하신 것은 더욱 강력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주님의 강력한 증거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베들레헴 성경 만나주석
“1. 기록자 : 요한계시록에는 요한계시록의 기록자가 “요한”이라는 것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1:1, 2, 4, 9, 22:8). 성경에는 여러 “요한”이 나온다. 그 중 몇 사람을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1) 침례 요한, (2)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 요한, (3) 대제사장 안나스의 측근이었던 요한(행 4:6). (4)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이고 예수의 12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요한.
이중 (4)번의 요한, 즉 야고보의 형제이며 예수의 12 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제4복음서(요한복음)과 세 편지서(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의 저자인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요한은 유대인이다. 그의 이름인 요한(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은 그의 히브리인 동포들 사이에 흔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구약 성경에도 자주 등장한다(요하난, 렘 40:16, 느 12:23, 대상 3:15 등).
에베소의 감독이었던 폴뤼크라테스(Polycrates, A.D. 130~196)는 요한이 분명히 에베소에 있었다고 증언하며, 이는 왜 저자가 에베소와 아시아의 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는지 설명해 준다.
“요한의 생애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연로한 교역자들을 쓰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뚜렷한 예증이 된다.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봉사가 끝났으며 언제 꺾일지 모르는 낡고 상한 갈대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여전히 그가 쓰시기에 적합함을 보셨다. 비록 이전의 활동의 현장에서 추방되었을지라도 그는 진리를 증거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밧모섬에서도 그는 친구를 사귀고 개심자들을 얻었다.” (사도행적, 572-573)
기록시기 : 요한계시록과 관련이 있는 시기의 로마 황제들은 다음과 같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31-A.D. 14)
티베리우스(Tiberius, 14-37)
가이우스(Gaius, 37-41)
클라우디우스(Claudius, 41-54)
네로(Nero, 54-68)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69-79)
티투스(Titus, 79-81)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81-96)
네르바(Nerva, 96-98).
에우세비오스(Eusebios, 263-339,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 및 역사가)에 의하면, 요한은 도미티아누스에 의하여 밧모섬에 유배되었으며, 그의 후계자인 네르바에 의하여 석방되어 에베소로 돌아갔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증언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의 기록 시기는 도미티아누스의 통치 기간 동안 즉 A.D. 95~96년 경이다.
기록장소 : 밧모섬에서 기록하였다. 밧모섬은 사모섬으로부터 남서쪽 45 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면적은 34 ㎢, 남북의 길이는 16 km, 동서의 폭은 가장 넓은 지점이 10 km, 해안선의 길이는 63 km이다. 현재 밧모섬의 인구는 약 2,500 명 정도라고 한다.
로마시대에 밧모섬은 정치, 종교범을 귀양 보내는 유배지였다. 히에로뉘무스(Jerome)에 의하면,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A.D. 94년 경 요한을 밧모섬으로 추방하였으며, 2년 후(9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사망하자 그를 석방하였다. 즉 요한은 밧모섬에 귀양 와서 약 18개월 동안 있다가 네르바 황제의 즉위 후에 유배에서 풀려나 96년경 에베소로 돌아갔다. 요한은 유배지였던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이 책은 원래 오늘날 터키의 남서 지방인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던 일곱 곳의 그리스도 교회 신도들에게 보내졌다(계 1:4, 11).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인들로부터 점점 증가하는 박해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허다한 증거들이 있다. 그러나 가장 혹심한 박해는 아직도 장래에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계시의 책이 기록된 것은 다가오고 있는 고난의 때를 맞이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히브리적인 책 : 요한계시록은 신약의 다른 어느 책보다 히브리적이다. 그 책에는 2,000번 이상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인유(引喩, allusions)가 들어 있는데, 그 중 400회는 분명히 드러나게 언급한 경우이고 90회는 오경이나 선지서들로부터 문자적으로 인용한 경우이다. 본문을 인용한 경우에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보다는 히브리어 원전에 더 충실하다. 어니스트 리넌(Ernest Renan)은 “계시록의 언어는 히브리어로부터 유래되었고, 히브리어로 생각한 것이며,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진술하였다(Ernest Renan, Antichrist: Including the Period From the Arrival of Paul in Rome to the End of the Jewish Revolution, p. 17).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히브리 성경의 빛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다니엘서와 연결되어 있음 : 이 책은 맨 처음부터 ‘다니엘서의 비밀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계시’라는 첫 낱말부터 이제 막 드러나려고 하는 비밀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계시’(revelation) 또는 ‘묵시’(apocalypse)라는 말은 ‘비밀을 드러내다’라는 뜻의 헬라어 ‘ἀποκαλύπτω 아포칼륍토’에서 왔다. 이 ‘드러내다’라는 동사는 다니엘서의 키워드 중 하나(גָּלָה 갈라: ‘덮개를 벗기다, 폭로하다’)이기도 하며, 다니엘서에 7번 나온다. 이것은 두 예언서가 특별히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요한의 계시들은 다니엘서의 비밀들로 되돌아가 보게 한다.
계시록은 히브리 성경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 다니엘서를 더 많이 언급한다. 두 책은 유사한 문체를 가지고 있고, 동일한 이상들, 동일한 주제들, 동일한 윤리적 함축 그리고 동일한 기간에 해당되는 동일한 예언적 전망을 가지고 있다.
다니엘서와 계시록 사이의 유사점들은 우리가 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첫 번째 단서를 제공한다. 다니엘서에 관한 언급들은 우리가 계시록을 해석하려고 할 때 안내자가 되어 준다.
예언을 주신 이유 : 하나님께서 예언을 주신 이유는 미래의 사건을 미리 보여주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함이다.
(암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요 13: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 계시록에서 차례로 주어진 엄숙한 기별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우리의 주의를 빼앗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 사탄은 영원한 사물과 관계가 있는 진리들을 연구하는데 바쳐져야 할 사람들의 마음이 다른 데로 돌려지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교회증언 8권, 302).
“계시록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되어온 일과 지금 있는 일, 그리고 장차 될 일을 세상에 공개하고 있다. 그것은 세상의 끝이 다가오는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기록된 책이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RH 1897. 8. 31).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세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특별히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대하여 우리 사업의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 다니엘서를 읽어보라. 그 곳에 제시된 왕국의 역사를 조목조목 회상해 보라. 정치가들과 의회들과 강력한 군대들을 쳐다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자만심을 깎아 내리셨으며, 인간의 영광을 흙 속으로 떨구어 버리셨는지를 바라보라. … 다니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은 특별히 이 말세를 위해 주어졌다. 시날의 큰 강인 을래 강변과 힛데겔 강변에서 그가 본 이상들은 현재 성취 중에 있으며, 예언된 모든 사건은 신속히 성취될 것이다”(목사와 복음교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112-113).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될 때, 신자들은 전적으로 다른 신앙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열려진 하늘 문을 엿보게 될 것이며, 따라서 마음과 정신은 심령이 청결한 자의 보상이 될 그 축복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계발해야만 할 품성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목사와 복음교역자들에게 보내는 증언, 114).
계시. 헬라어로 ‘아포칼륍시스(ἀποκάλυψις)’이다. 이 말은 ‘베일을 벗기다, 뚜껑을 열다(to reveal, uncovering, unveiling, disclosure)’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영어 ‘apocalypse’([ǝpάkǝlìps], 계시, 묵시)는 헬라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즉 ‘계시록’(Apocalypse)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즉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책’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함부로 연구하면 안 되는 감추어진 책이 아니다. 뚜껑을 열어 공개된 책이며 누구나 부지런히 연구해야 할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헬라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어구(語句)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①‘예수에게서 온 계시(from Jesus)’와 ②‘예수에 관한 계시(about Jesus)’이다. 이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를 통하여 왔고, 예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사도 요한에게 전달하였으며(1:1, 22:16), 이 책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책의 총주제임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는 이 책의 내용의 “알파와 오메가”이고, “시작과 끝”이요(21:6, 22:13), 또 “처음과 나중”(1:17, 22:13)이다. 이 책은 예수로부터 시작하고 예수로써 끝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이는 사람에게 보내는 모든 계시는 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며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창조와 구속으로 그분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에게 오신 것은 이 마지막 시대에 필요한 진리를 전하기 위함이었고,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에게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크신 관리자이시다.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가를 아는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은 그분을 통해서이다”(원고 129, 1905).
[사복음서와 요한계시록]
사복음서가 복음이듯이 요한계시록도 하나의 복음이다. 사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은 동일한 예수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예수의 존재와 역할의 각기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복음서는 예수를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신 분,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분으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분은 하늘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요한계시록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이 책은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하늘의 보좌에 앉으셨고, 지금은 온 우주를 다스리고 계심을 드러내 준다.
사복음서는 또한 예수가 승천하시기 전에 장차 그의 백성과 나눌 상호관계에 관하여 두 가지의 약속을 하셨다고 우리에게 말해 준다. 첫째는 그분이 세상 끝날까지 그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하실 것이라는 약속이고(마 28:20), 둘째는 그가 다시 오셔서 그의 백성을 그가 계신 곳으로 데려가시리라는 약속이다(요 14:1~3). 요한계시록은 이 두 가지 약속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책은 첫째로 예수가 전 역사를 통하여 세상 끝까지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성취하시는지를 기술하고(계 1~18장), 둘째로 그가 이 세상 역사의 끝에 어떻게 오셔서 그들과 연합하게 될지를 묘사한다(계 19~22장).
요한계시록이 없었다면, 승천하신 후 하늘에서 그의 백성의 구속을 위하여 봉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중재 역할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충만한 의미에 있어서 복음이다. 이 책은 복음의 본질인 ‘복된 소식’을 전한다. 이 계시록의 복음은 자신의 죽음 덕분에 죽음과 무덤을 정복하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를 강하게 제시한다(계 1:17~18). 그분은 그의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고, 그가 재림하여 그의 백성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실 때까지 그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계실 것이다.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본 어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상당한 부분이 미래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1~11장)는 제1세기로부터 세상 끝 날까지의 시기 동안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묘사하는 반면, 후반부(12~22장)는 주로 세상의 끝과 예수의 재림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은 예언된 사건들이 왜 일어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설명해 준다. 이 예언들은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확신을 준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한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이 책은 정확하게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그 종말 사건들이 일어날 것인지는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최후에 일어날 사건들이 전개되는 때와 방법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이다(마 24:36, 행 1:7). 이러한 일들은 오직 그 일들이 이루어질 때에야 우리가 알게 될 것이며, 그 이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요 14:29, 16:4).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면, 이 안에 기록된 예언들은 실질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온 우주를 통치하시며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을 알려주고,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며,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 예언들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를 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고,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심각하게 다루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복음 기별을 가지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강권할 것이다.
예수께서 속히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3:11의 주석을 참조하라.
천사를 …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이 말은 천사가 속히 일어날 일들을 요한에게 알려줄 때 사용한 방법을 보여준다. 여기서 “알게 하신 것이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σημαίνω 세마이노’인데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기호(signs)나 상징들(symbols)을 통해 보여주다’이다. 이것은 다니엘서에서 미래에 일어날 세상의 역사를 상징들, 즉 금, 은, 놋, 철로 만들어진 우상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과 같은 의미이다.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실재(實在)들이나 미래의 사건들이 문자적으로 해석되도록 사진으로 찍은 것과 같은 묘사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요한에게 상징적 형태로 제시되었다. 요한은 성령의 감동 아래서 그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들을 충실하고 정확하게 기록하였다. 그래서 독자는 요한이 기록한 그 상징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깊이 연구해야 한다. 상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① 요한계시록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요한이 살던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기록된 책(冊)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 상징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② 이 책에서 나오는 상징들은 대부분 구약에서 가져온 것이다. 계시록 본문의 약 4분의 3 정도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구약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 기초해서 상징들을 해석해야 한다.
③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 계시록에 나오는 어떤 상징들은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 또는 계시록 자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엘렌 화잇은 “요한계시록에서 성경의 모든 책들이 만나고 또 끝난다.”(사도행적, 585)고 말했다. 요한계시록의 많은 구절이 많은 신약의 다른 본문들과 직접적인 평행을 이룬다. 그러므로 신약의 평행구절들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이 책에 주는 기별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을 얻는 일에 도움이 된다.
2. 계 1:1과 1:2는 전형적인 성경의 대구법(對句法)의 실례(實例)를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는 여러 대구법이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동의 대구법, 반의 대구법, 교차 대구법이다.
계 1:1과 1:2는 대구법 중에 교차대구법(Chiasm)을 사용하고 있다. 알기 쉬운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교차 대구법]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a)
. . .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b)
. . .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b’)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a’)
위의 말씀에서 어구의 순서대로 하면 개가 발로 밟고, 돼지가 찢어 상하게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위의 말씀은 교차 대구법을 사용하여 (a)가 (a’)와 호응(呼應)하고, (b)가 (b’)와 호응한다. 그래서 돼지는 발로 밟고, 개는 찢어 상하게 하는 것이다.
계 1:1-2의 말씀도 교차대구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1a)
. . .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1b)
. . . 하나님의 말씀과 (2b’)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2a’)
그러므로 위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같은 의미이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의 대구법]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시 49:1)
뭇 백성들아(a)
. . . 이를 들으라(b)
세상의 거민들아(a’)
. . . 모두 귀를 기울이라(b’)
위 성경절에서 “뭇 백성들”과 “세상의 거민들”은 같은 뜻으로 쓰였고, “이를 들으라”와 “귀를 기울리아라”도 같은 뜻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잠 1:18)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a)
. . .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b)
숨어 기다림은(a’)
. . .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b’)
[반의 대구법]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a)
. . . 화목하는 것이(b)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a’)
. . .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b’)
위 성경절에서는 “마른 떡 한 조각”과 “제육이 집에 가득”한 것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며, “화목”과 “다투는 것”도 반대 개념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대구법을 사용한 이유는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3. 읽는 자. 이 말(ὁ ἀναγινώσκων)은 단수로 기록되었다. 공중 예배에서 성경을 펴서 읽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고대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한 것이다. 보통 선택된 한 사람이 읽었다. 예수도 회당에서 읽으신 적이 있다(눅 4:16-17).
듣는 자. 이 말(οἱ ἀκούοντες)은 복수로 기록되었다. 공중 예배에서 선택된 대표자가 성경을 읽을 때, 그 읽는 것을 듣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지키는 자. 이 말(τηροῦντες)도 복수로 기록되었다. 읽고 듣고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읽고 듣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실천하는 삶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삶이다.
복이 있나니. 요한계시록은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에게 축복을 약속한다. 여기서 말하는 “복이 있다” 또는 “복되다”라는 말의 헬라어는 ‘μακάριος 마카리오스’인데, 이 단어는 ‘행복하다’(행복)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팔복(마 5:3~12) 가운데 사용하신 단어와 동일한 것으로서, 우리의 삶에서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물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깊은 내적 기쁨을 가리키며(요 16:22), 이러한 축복은 충성된 자들이 인생의 어려움들을 이기고 평안한 삶을 살게 한다. 요한계시록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에게는 이 예언의 말씀에 명시된 교훈들을 지킬 때 특별한 행복이 주어지리라고 약속되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책은 믿는 자들 모두가 연구해야 할 책이다. 믿는 자들이 이 계시록의 예언들을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고 이를 실천할 때에 그 결과로 큰 축복이 그들에게 내릴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성령의 감화가 없는 진리의 이론만으로는 사람의 심령을 깨우치고 마음을 심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비록 성경의 말씀과 약속들에 정통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실물교훈, 408).
요한계시록에는 7가지 복이 나오는데 이 복들이 교차 대구법을 사용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A. 1:3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
. . . B. 14:13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
. . . . . . C. 16:15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
. . . . . . C’. 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
. . . B’. 20: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
A’. 22:7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
D.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4. 일곱 교회. 2장에서 일곱 교회를 개별적으로 다룰 때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아버지 하나님을 가리킨다. 아버지 하나님은 장차 오실 분이시기도 하다.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의 재림시 함께 오시는 분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권능의 우편 즉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마 26:64). 계 6:16에도 예수 재림 시 멸망하는 사람들의 외침의 내용을 보면 아버지와 예수께서 함께 오시는 것 같다. 계 6:16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는 아버지 하나님이고, “그 어린 양”은 예수이시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실 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라고 하신 말씀을 연상시킨다. 그분은 단순히 여기 우리의 현재에 “존재하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경배하는 하나님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경배하던 분과 동일하다.
둘째 단어인 “(전에도) 계셨고”라는 말은 그분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분은 과거에 “계셨던” 것처럼 현재도 “계시고”, 미래에는 단순히 “존재”하시는 것 이상으로 오실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은 계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에 관하여 습득한 모든 지식들과 그분께서 역사에 개입하심으로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신데, 그것은 그분이 아직 오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오신다는 약속은 미래에 남아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보다 더 큰 것을 우리에게 약속한다. 기억 속의 하나님, 존재하는 하나님, 영성과 교통의 하나님 이상으로 그분은 “장차 오실” 하나님이시다.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이 이름은 성령을 가리키는데(계 4:5, 5:6), 신성의 삼위일체의 세 번째 분으로 흔히 묘사된다. 성령께서는 위로부터 세상의 구원과 심판의 비밀들을 밝히시므로 이 책은 다시 한번 그 자체를 계시, 즉 드러냄의 책으로 정의하게 된다.
스가랴서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일곱 등잔(슥 4:2)이 나오고,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슥 4:10)이라고 하며, 이것은 여호와의 영(슥 4:6)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일곱 영은 하늘에 계신 신성의 제3위이신 성령을 가리킨다. 일곱이라는 숫자를 사용한 이유는 완전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등불과 연관시킨 것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함을 가리킨다. 이사야서에는 여호와의 영의 특성을 6 개로 묘사하고 있는데 70인역(LXX)에는 7 개로 나온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70인역에는 ‘경건의 영’이 포함되어 있음)”(사 11:2)
5. 먼저 나시고. 헬라어로 ‘프로토토코스’이다. 장자, 우두머리, 특출한 자, 최고 또는 특별 계급의 사람을 가리킨다. 이 말씀과 골로새서의 말씀 때문에 예수를 피조물로 보는 이들이 있다(골 1:15, 18).
그러나 예수는 피조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프로토토코스’를 인간 가족의 장자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왕가의 장자가 갖는 위엄과 직임에서 이끌어낸 비유,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서열상 으뜸으로 묘사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스도의 지위는 유일무이하며, 권위가 있으며, 절대적이다. 그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대권과 권위가 주어졌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피조되었다고 단언하면서 그의 지상권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논증에 맞서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지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 구절은 예수의 세 가지 속성 즉 구원의 세 주요 단계를 보여준다. (1) 그분의 성육신. 그것은 인간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하여 증언한다. (2)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것은 우리를 구원한다. (3) 그분의 왕권. 그것은 우리의 천국 시민권을 보증한다.
또한 이 삼중의 칭호는 시편 89편에 기록된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거기에는 다윗 계통의 왕(그리스도)이 여호와의 장자(長子, 먼저 나신 자)가 되고, 세계의 임금들의 으뜸(머리)이 되며, 여호와를 위한 확실한(충성된) 증인이 되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시 89:27, 37).
한편, “먼저 나시고”라는 어구와 아래의 골로새서의 말씀 때문에 예수를 피조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먼저 나신 이”는 헬라어로 ‘프로토토코스(πρωτότοκος)’이다. 이 단어는 ‘장자, 우두머리, 특출한 자, 최고’ 또는 ‘특별 계급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프로토토코스’를 인간 가족의 장자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왕가의 장자가 갖는 위엄과 직임에서 이끌어낸 비유, 곧 예수 그리스도를 서열상 으뜸으로 묘사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스도의 지위는 유일무이하며, 권위가 있으며, 절대적이다. 그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대권과 권위가 주어졌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피조되었다고 단언하면서 그의 지상권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의 논증에 맞서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지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을 표현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뛰어나시며 모든 권세자들을 지배하시는 주권적 통치자이심을 시사한다(6:15, 17:14, 19:16, 시 89:27, 빌 2:9, 10).
사탄은 예수를 시험할 때, 높은 산에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을 보이고, 자기에게 절하여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하였다(마 4:8-9).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탄에게 경배함으로가 아니라 죽으심으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
우리도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관을 쓰게 될 것이며(계 2:10), 왕노릇 하게 될 것이다(딤후 2:12, 계 5:10, 계 20:4, 6, 계 22:5).
요한 계시록에서 사용된 예수의 이 세 가지 칭호들은 예수의 선지자, 제사장, 왕이라는 세 가지 칭호들과 상응한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충성된 증인으로 사신 덕분에 장자가 되는 영예를 얻었고, 하늘과 땅과 모든 정사와 권세 위로 최고의 지위에 오르는 영광을 받으셨다.
은혜와 평강.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Χάρις)’이다. ‘호의, 친절, 기쁨, 즐거움, 만족, 희열, 인정, 이익, 감사’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축복이 집합된 말이다. 신약에 150 번 정도 나온다.
‘평강’은 헬라어로 ‘에이레네(εἰρήνη)’이다. ‘평화, 평온, 조화’의 뜻이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신약에서 인사말로 많이 사용되었다(고전 1:3, 골 1:2, 살전 1:1).
은혜는 인간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은총이고, 평강은 은혜의 결과로써 뒤따르는 영적 복리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그것을 뜻하는 말씀은 여러 군데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 3:22)
“ …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사 48:16)
위의 사 48:16에서 주 여호와는 아버지, 나는 아들, 그의 영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마 28:1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영원 지존하신 삼위일체,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The eternal heavenly dignitaries―God, and Christ, and the Holy Spirit)께서는 제자들을 인간을 초월한 힘으로 무장시켜 저들과 함께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전진하시며 세상 사람들로 죄를 깨닫게 하실 것이다.― 원고 145, 1901년”(복음전도, 616).
“우리는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세 분,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the three highest powers in heaven,―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Ghost)과 협력해야 하며, 이들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들로 만드실 것이다.― 특별증언 B, No. 7. 51 (1905)”(복음전도, 617).
[성령의 신격(神格)]
“죄는 신성의 제삼위(the Third Person of the Godhead)의 강력한 작용을 통하여만 물리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그분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가운데 오실 것이었다. 세상의 구주께서 이루신 일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시다”(시대의 소망, 671).
“하나님께서 하나의 개성을 가지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개성을 가지고 계신 성령(the Holy Spirit, who is as much a person as God is a person)께서는 이러한 근거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원고 66, 1899년”(복음전도, 616).
“성령께서는 개성을 가지고 계신다(The Holy Spirit is a person). 그렇지 않으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심령에, 그리고 우리의 심령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하지 못할 것이다. 그분은 또한 신성에 속한 개성을 갖고 계셔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 원고 20, 1906년”(복음전도, 616).
“악은 세기들을 거쳐가며 축적되어 왔고, 성령, 신성의 제 삼위 되신 분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저지되고 물리칠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전혀 감소되지 않은 힘으로,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신 중에 오실 것이었다”(목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392).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연합과 협력의 하나님, 행복과 영원의 하나님이시다. 한 분 하나님으로는 이런 특성을 가질 수 없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사랑하사’의 원어 ‘아가폰티(ἀγαπῶντι)’는 현재분사로서 계속되는 사랑을 나타낸다. 그분이 우리를 계속하여 사랑하신다는 말이다. 이 사랑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함한다.
‘해방하시고’의 원어 ‘뤼산티(λύσαντι)는 부정과거 분사형으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죄에서 해방하신 사실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 동작이 과거에 완결된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이 피를 흘려 백성을 구원한 유일의 종교이다. 신이 죽기까지 백성을 사랑하여 섬긴 유일의 종교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으니, 우리도 그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요 15:13, 롬 5:8, 요일 3:16, 4:11).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이 어구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나타내며, 구원 사역이 삼위 하나님의 협동적 사역으로 수행되나 근원적으로는 성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 사실 우리의 존재와 사업의 이유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영광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그분이 영광을 받을 때 온 우주가 행복하기 때문이다(계 14:7, 요 6:38).
나라와 제사장. 출 19:6의 인유(引喩)이다. 나라(kingdom)는 교회를 가리키며 제사장은 교회를 구성하는 신자들을 가리킨다.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벧전 2:9). 신약시대의 모든 신자들은 제사장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사장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히 5:1). 제사장은 자기와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하는 사람이다. 즉 기도하고 중보하는 사람이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위한 봉사자를 뜻하기도 한다(사 61:6).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하기는커녕, 자신도 별도의 제사장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 나가려 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자(히 4:16). 중세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에 맞서서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만인제사장설(priesthood of all believers)을 주장하였다.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즉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는 것은 그분을 우주의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부활 후에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참조 마 28:18).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에서 승리하신 보답으로 인류의 무궁한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참조 골 2:15). 사탄은 “영광과 능력”에 대한 그리스도의 권리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합법적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다. 이 송영, 즉 찬양의 송영으로 요한은 그의 편지의 인사를 끝맺는다.
7. 계시록이 보여주는 첫 번째 예언은 그리스도의 강림에 관한 것이다. 요한은 이 편지의 요지인 위엄과 영광 중에 오시는 예수의 재림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이 표현은 다니엘서에서 가져온 것이다.
(단 7: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또한 이 말씀은 감람 산 위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또한 이 말씀은 행 1:8-11에 나오는 약속의 성취를 언급한 것이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은 요한계시록의 결론부에서 예수께서 세 번이나 반복하셨다(계 22:7, 12, 20). 재림은 요한계시록의 요지이며, 이 요지가 이 책의 시작과 끝을 구성한다. 예수의 재림은 예언의 절정이며, 역사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예수의 영광 중의 재림은 이 세상 역사의 종결과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의 시작을 장식할 것이다.
“구주께서 친히 오시리라는 약속을 주신 이래로 천팔백 년 이상이 지났다. 여러 세기들을 통하여 그분의 말씀은 그분의 충실한 사람들의 마음을 용기로 채워주었다. 그 약속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고, 생명의 시여자의 음성이 아직 무덤 속에서 자는 성도들을 부르지 않았지만 말하여진 그 말씀은 여전히 확실하다. 그분의 시간에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실 것이다. 지금 지쳐 있는 사람이 있는가? 영원한 세계가 너무도 가까이 있는데 우리가 믿음을 놓칠 것인가? 도성이 너무 멀리 있다고 말할 것인가? 아니다. 아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우리는 아름다운 모습의 왕을 뵈올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분은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그분은 우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유 24) 것이다”(Ellen G. White, The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913년 11월 13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라는 본문은 스가랴가 예언한 말씀을 가리키고 있다(슥 12:10-11).
예수의 재림은 비밀리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떠나갈 듯한 나팔 소리와 함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오실 것이다(살전 4:16-17, 고전 15:51-52).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는 나팔 소리와 함께 임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출 19:16, 계 1:10, 4:1).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예수의 재림 직전에 미리 부활해서 그 광경을 볼 사람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9:37)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 26:63-64)
이 어구는 단 12:1-2에 나오는 특별부활을 언급한 것이다. 특별 부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단 12:2의 주석을 참고하라.
“무덤은 열리고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단 12:2)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영화롭게 된 몸으로 무덤에서 나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을 듣는다. ‘그를 찌른 자’(계 1:7)들,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통을 조소하고 조롱한 자들,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분의 백성들을 몹시 핍박한 자들도 또한 일어나서 영광 중에 계신 그분을 쳐다보고 충성되고 온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보게 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637).
“구주를 찌른 사람들과 그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도 일으킴을 받아 그들이 조롱하고 멸시하던 그분께서 천군들을 대동하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보게 된다. 제사장들과 정치 지도자들 앞에는 예수께서 재판 받으시던 법정의 장면들이 떠오를 것이다. 당시의 모든 상황들이 마치 불꽃 글자로 기록된 것처럼 생생하게 나타날 것이다”(RH 1913. 11. 13).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예수의 재림은 어떤 민족이나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사건이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하리라 아멘. 원어로는 ‘나이 아멘(ναί ἀμήν)’인데 ‘나이(ναί)’는 헬라어로 ‘예(yes)’를 뜻하고, ‘아멘(ἀμήν)’은 히브리어로 ‘긍정, 확인’을 의미한다. 이 두 단어가 함께 나오면 강조된 확증을 나타낸다. 이 확증은 요한계시록을 끝맺는 구절에도 나온다. “내가 진실로(나이)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예배 시에 부르는 이 화답의 말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을 확증한다. 이 말은 찔린 분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성경절은 위엄과 영광중에 있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이 문자적으로, 즉 실제로 오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이 성경의 다른 부분이 가르치는 것과 조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눈에 보이지 않게 비밀스럽게 오신다는 가르침이 없다. 그와는 반대로 각 사람의 눈이 그가 오시는 것을 볼 터인데, 여기에는 “그를 찌른 자들”도 포함된다. 예수의 재림이 그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가져다줄 것이나, 그의 자비와 사랑을 거절한 자들에게는 심판을 가져다 줄 것이다.
8. 알파와 오메가. 헬라어의 첫 글자 알파(Αα)와 마지막 글자 오메가(Ωω)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영원성,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주장(主掌)하는 속성을 말하고 있다. 우주, 지구, 역사, 개인 등등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고, 그분의 힘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미래 또한 그분께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전능한 분이시므로 가능한 일이다.
예수의 재림의 확실성은, 그것이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이시며 위대한 “자존자”(I AM)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장차 올 자. 계 1:4 주석을 참조하라.
전능한 자. 헬라어로 ‘판토크라토르(παντοκράτωρ)’이다. ‘모든 것의 통치자(ruler of all)’를 뜻한다(계 19:6). 이 이름은 히브리 전통에서 하나님의 가장 오래된 이름 중 하나이다. 이스라엘은 부조(父祖)들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약속과 축복의 하나님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었다(창 28:3, 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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