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주전 포수 양의지(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야구에선 그저 그런 재목이 종종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보석으로 탈바꿈한다. 두산 포수 양의지(25)가 좋은 예다.
2006년 신인지명회의에서 양의지는 두산에 2차 8순위(전체 59순위)로 지명됐다. 그보다 뒤에 지명된 선수는 단 7명뿐이었다. 어느 프로 스카우트의 말을 빌리자면 2차 8순위는 5천 원짜리 로또와 같다. 1등은 고사하고, 3등이나 4등만 당첨돼도 괜찮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꽝’이 나와도 아쉽지 않다는 의미다.
2007년 7월 21일 잠실 LG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을 때만 해도 양의지는 5천 원짜리 로또 신세였다.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는 다음날 열린 LG전에서 프로 첫 타석에 들어섰다. 결과는 1타수 무안타.
그로부터 2년 동안 양의지는 1군 무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2군을 맴돌다가 경찰청에 입대했고, 그는 관심과 기대 속에서 수없이 사라져간 ‘유망주들의 하나’로 전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혜성과 같이 나타나 두산 주전 포수를 꿰찼고, 신인왕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젠 야구계에서 20대 포수 가운데 강민호(롯데)에 이어 가장 주목받는 포수로 성장했다.
진화하는 양의지를 <스포츠춘추>가 만났다.
진화하는 양의지
해마다 진화하는 포수 양의지(사진=두산) |
경찰청 제대 후. 양의지는 해마다 진화했다. 2010년엔 20홈런을 치며 ‘거포 포수’로 우뚝 섰다. 2011년엔 타율 3할1리를 기록하며 ‘3할 포수’로 등극했다. 올 시즌엔 도루저지율 3할7푼5리를 기록하며 70경기 이상 출전한 포수 가운데 ‘가장 강한 어깨’를 자랑했다.
무엇보다 양의지는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안정감이 느껴지는 포수란 찬사를 받았다. 그의 공배합이나 투수를 안정시키는 능력에 이론을 제기하는 야구전문가도 상당수 줄었다. 그는 두산을 넘어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포수가 됐다.
올 시즌을 보면서 포수로서의 능력이 상당히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랄까, ‘이젠 자신감이 확실히 붙었구나’ 하는 생각이에요.
(수줍게 웃으며) 고맙습니다. 음, 그전엔 투수들 의견을 많이 따랐는데, 올 시즌은 제 의견을 많이 냈어요. 안타를 맞아도 투수들한테 “내가 사인 내서 맞았으니까 괜찮다”고 하고, 저보다 어린 투수들에겐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선배 투수들한테도 ‘이 타이밍에선 아니다’ 싶으면 바로 공배합에 변화를 주곤 했고요. 그래서 덜 (안타를) 맞은 것 같기도 해요.
많은 야구전문가가 ‘20대 포수 가운데 강민호에 이어 가장 뛰어난 포수’라는 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민호 형은 저보다 한참 위에 있죠. 늘 배우고 있어요. 제가 좀 사람 낯을 가리는 편이거든요. 처음 보면 잘 말도 안 하고. 그런데 민호 형은 절 처음 봤을 때도 “너 몇 살이야?” 할 정도로 성격이 좋아요(웃음). 많이 배우고, 노력해서 민호 형처럼 좋은 포수가 돼야죠.
올 시즌만 본다면 이미 좋은 포수가 된 듯싶은데요.
과찬이세요. 제 스스로 만족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이토 쓰토무 수석과의 만남
이토 쓰토무 전 두산 수석코치(사진=두산) |
일본 프로야구엔 두 가지 포수 스타일이 있다. ‘후루타형(型)’과 ‘이토형(型)’이다. 1990년대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대표한 두 포수는 확실히 스타일이 달랐다. 공배합부터 그랬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주전 포수였던 후루타 아쓰야는 몸쪽 공을 자주 요구하는 공격적 공배합으로 유명했다. 반면 세이부 라이온스 주전 포수 이토 쓰토무는 바깥쪽 낮은 공을 기본으로 하는 전통적 공배합을 지향했다.
두 포수의 공배합이 달랐던 이유는 팀 칼라 영향이 컸다. 후루타의 소속팀 야쿠르트는 다른 팀에 비해 리그를 압도하는 투수가 많지 않았다. 되레 당시 야쿠르트는 다른 팀에서 방출되거나 부상으로 오랫동안 쉬었던 투수가 많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속구 구속이 그리 빠르지 않고, 구위도 전성기만큼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후루타는 몸쪽 공 구사율을 높이는 것으로 투수들의 부족한 속구 구속을 만회했다. 그리고 역으로 찌르는 공배합으로 타자를 혼란에 빠트렸다. 후루타가 역대 일본 포수 가운데 ‘3구 삼진 비율’이 가장 높은 것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후루타는 투수들에게 몸쪽 ‘슈트(투심패스트볼)’를 자주 요구해 범타 비율을 높이며 경기를 쉽게 풀어갔다.
SK 박경완처럼 후루타의 카리스마도 대단해, 투수들은 포수가 요구한 코스로 공을 던졌다가 홈런을 맞아도 절대 후루타를 의심하지 않았다. ‘절대 신뢰’ 그것이 후루타의 최대 장점이었다.
반면 세이부는 투수진이 탄탄한 팀이었다. 리그 최고의 투수들과 수비진 그리고 불방망이 타선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원체 투수들의 구위가 좋다 보니 굳이 몸쪽 승부를 하지 않아도 상대 타자들은 세이부 투수들의 공을 제대로 받아치지 못했다. 이토는 한 경기에서 90%에 가까운 공을 바깥쪽 낮은 코스로만 요구한 적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토는 자신이 경기를 지배하기보다 투수가 경기를 풀어가도록 배려하는 포수였다. 조범현 전 KIA 감독의 말대로 이토는 삼성 진갑용과 비슷한 포수였다. 야쿠르트 노무라 가쓰야 감독이 “투수를 편안하게 하는 건 후루타보다 이토가 한 수 위”라고 평가한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었다.
올 시즌 이토가 두산 수석코치로 부임했을 때, 많은 야구인은 두산 포수진이 강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양의지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포수 전문가’ 이토였기에 양의지는 내심 많은 변화를 기대했다. 실제로 양의지는 “이토 수석으로부터 많은 노하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토 전 수석이 부임했을 때 ‘올 시즌 양의지가 어떻게 변할까’ 관심 깊게 지켜봤습니다. 이토 수석이 많은 조언을 했을 듯싶은데요.
이토 수석님은 많은 말씀을 하시는 분은 아니에요. 필요할 때 한 두마디 조언하는 스타일이시죠. 이토 수석님이 가장 강조하신 게 하나 있는데요. “타자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공이 있다면, 설령 그 공에 배트가 나왔다고 해도 다음 공도 같은 코스 같은 구종으로 던져라. 그래서 계속 물고 늘어지라”는 거였어요.
계속 물고 늘어져라?
그렇죠. 처음 우리 팀에 오셨을 때 저보고 “공배합이 조금 단조롭다”고 하셨어요. 전 나름대로 이 공도 요구하고, 저 공도 요구했거든요. 그런데 수석님은 “그게 바로 단조로운 공배합”이라고 하셨어요.
음.
그러니까 ‘지금은 속구, 다음은 변화구’ 이런 식으로 요구하지 말고, ‘같은 공을 연거푸 요구해도 괜찮으니까 타자 타이밍을 보고 사인을 내라’고 하셨어요. 안 맞는 공으로 계속 공략해서 타자를 혼란하게 만들라는 뜻이셨죠.
어떤 면에선 김진욱 감독과 이토 수석의 ‘타자 상대론’이 조금 다르지 않았나 싶어요. 김 감독은 2사 1루일 때 도루를 허용해도 타자와 승부하라는 경향이고, 이토 수석은 2사 1루라도 다음 이닝까지 고려해 최대한 어렵게 승부하라는 스타일이고.
올 시즌 우리 팀은 주자가 있어도 2아웃이면 타자에만 집중하자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전 포수니까 그다음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볼넷을 내주더라도 최대한 어렵게 승부해서 잡아냈던 것 같아요.
공배합은 감독님도 이토 코치님이랑 크게 다르지 않으세요. 감독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타자의 앞선 타석을 기억하고 있어라. 그전에 뭘 던지다 안타를 맞았는지, 초구는 어떤 공을 던졌는지 떠올려라. 타자가 못 치는 공이 있으면 계속 그 공을 던져라”에요.
언뜻 이토 수석을 보면 ‘곰’처럼 진중할 것 같은데, 선수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장난도 많이 걸고 하더군요.
전 귀찮게 안 하셨는데, (최)재훈이를 귀찮게 하셨죠(웃음).
한편에선 “이토 수석이 최재훈을 편애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글쎄요. 전 못 느꼈어요. 하지만, 주변에선 그렇게 볼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재훈이는 제가 굉장히 아끼는 후배라, 이토 수석님이 좀 더 신경 써서 지도해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선동열, 이종범이 롤모델이었던 야구소년
홈런을 치고 환호하는 양의지(사진=두산) |
야구는 언제 처음 시작한 거예요?
초교(광주 송정동초) 4학년 때요.
계기가 있었어요?
담임선생님이 야구부장을 겸하셨어요. 한 번은 제가 야구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야구부에 직접 소개를 해주셨어요.
담임선생님 눈에 ‘야구선수로 대성하겠다’ 이런 감(感)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건 아니고요. 알고 보니까 ‘살 빼라’고 (야구를) 시키신 거더라고요(웃음).
그때도 통통했어요?
지금이랑 똑같았죠(웃음).
그래 해보니까 야구가 재밌던가요?
야구야 항상 TV로 봤기 때문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어요. 재미도 있었고. 그 무렵에 선동열 감독님, 이종범 선배님이 굉장히 잘하셨을 때거든요. 두 분을 참 좋아했어요. 선동열, 이종범 같은 대선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선동열, 이종범을 좋아했다면 투수나 유격수를 지원했을 것 같은데.
저도 사실 투수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통통하다고 포수를 시키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포수만 보고 있습니다(웃음).
초교 때 야구실력은 어땠어요?
정말 못했어요. 중학교에서도 실력은 별로였어요. 그냥 다른 선수들한테 묻어가는 선수였어요. 그러다 광주 진흥고에 입학하고부터 좋은 지도자분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실력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즈음 기억에 남는 지도자가 있어요?
지금 인하대에 계시는 정원배 코치님이 기억에 남아요. 사실 고교 야구부에선 전문적으로 포수를 지도하는 분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정 코치님은 프로에서 포수를 하다가 진흥고 코치로 오신 분이었어요. 고1 때부터 그분한테 배웠는데요. 포수 훈련, 정말 많이 했어요. 포수 기본기를 하나하나 배운 시기였죠. 특히나 프로 선수들이 하는 훈련을 그대로 따라 한 덕분에 나중에 프로 갔을 때도 적응하는 시간이 다른 선수들보다 좀 빠를 수 있었어요.
당시 프로 스카우트들은 진흥고 포수 양의지를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전국대회를 자주 나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만날 지역예선에서 광주일고, 동성고한테 졌어요. 그때 (한)기주가 엄청나게 잘 던졌거든요. 이길 수가 없었죠.
‘포수’라는 희소성 때문에 고교 졸업반 때 대학과 프로 양쪽에서 ‘콜’이 왔을 듯싶은데요.
원래 대학 진학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프로에서 지명하면 프로로 가자고 마음 먹었죠.
그즈음 ‘KIA에서 양의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요.
뭐 관심만 있었죠. 액션은 없었어요(웃음).
2006년 신인지명회의에서 은근히 상위 순번을 기대했을 것도 같은데요.
그랬죠. 그런데 지명 순번이 낮아서 좀 자존심이 상했어요. KIA도 절 지명하지 않았고요. (낮은 목소리로) 부모님께선 제가 KIA에 입단할 줄 아셨거든요.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죠. 그래도 부모님께 ‘서울 올라가서 한 번 도전해보겠습니다’ 말씀드리니까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
2007년 두산에 입단했습니다. 본격적인 ‘서울살이’를 시작했는데요.
처음엔 서울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구로동에서 출퇴근했거든요. 어린 나이에 서울살이가 쉽지 않더라고요. 밥도 제가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하고. 나중에 경기도 이천 숙소(베어스 필드)에 들어가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죠.
확실히 숙소생활이 야구하기엔 편하지요?
그럼요. 숙소에선 야간훈련까지 할 수 있거든요. 갇혀 산다는 스트레스는 있지만, 그래도 야구만 생각하니까 실력이 금방 늘었던 것 같아요.
밖에서 보던 프로와 실제 피부로 느끼는 프로는 꽤 달랐을 듯싶어요.
처음엔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프로가 되니까 큰 벽이 느껴지더라고요. 밖에서 보던 프로는 나만의 착각, 환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때 홍성흔 선배가 계셨는데 ‘아, 주전 포수 되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코칭스태프가 주로 들려준 이야기가 뭐예요?
김태형(현 SK) 배터리 코치님께서 항상 “넌 아직 어리니까 기본부터 쌓아야 한다. 갈고 닦다 보면 때가 찾아온다”고 하셨어요. 그 말만 믿고 진짜 코치님들이 시키는 건 뭐든 다 한 것 같아요. 진짜 군대 다녀오니까 기회가 찾아오데요(웃음).
2010시즌을 앞두고 찍은 사진(사진=두산) |
2007시즌 마치고 프로 2년 차에 바로 입대했습니다. 대개 신인선수는 2년 차까지 1군 무대를 도전하기 마련인데요.
2007시즌이 끝나고 우리 팀에 최승환 선배가 트레이드돼서 오셨어요. 홍성흔, 채상병 선배 계시고, (용)덕한이 형도 상무 제대하고 올 시점이었죠. 속으로 ‘군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구단에서 ‘군대 먼저 다녀오는 게 어떠냐’고 하셔서 두말 않고 입대했어요.
당시는 경찰청보다 상무 지명도가 더 높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경찰청에 들어갔어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전 경찰청이 더 좋아 보였어요.
경찰청에 ‘T/O’가 난 게 아니라?
(무안한 듯 활짝 웃으며) 에이, 아시면서(웃음).
이른 입대가 호재가 된 양의지
경찰청 유승안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경찰청 유승안 감독이 그러더군요. “양의지를 처음 봤을 때 아기곰 한 마리가 들어온 줄 알았다”고. 그런데 막상 포수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왜요?
속으로 ‘이때는 이런 사인을 내야 하는데’하고 생각하면 양의지가 진짜 그 사인을 내더라는 거예요. ‘내 생각과 이렇게 일치할 수도 있나’ 싶어서 깜짝 놀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감독님은 좋은 말은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으세요. 아, ‘성격 좋다’는 말씀은 하신 적이 있으세요. 그거 빼곤 대부분 욕먹은 기억밖엔 없어요(웃음). 조언도 많이 해주셨지만.
기억에 남는 조언이 있어요?
“네가 어리다고 너무 소극적으로 행동하지 마라. 경기 나가면 다 친구지, 선·후배는 없다. 네가 내고 싶은 사인내고, 투수도 네가 이끌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어요. 그리고 이기는 걸 정말 많이 강조하셨어요.
이기는 걸 강조?
“너희가 2군에서도 지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면 소속팀과 사회에 돌아가서도 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지금서부터 이기는 걸 배우고, 그게 어떤 맛인지 느껴보라”고 하셨어요. 돌아보면 그런 정신력을 자주 강조하셨던 것 같아요. 큰 도움이 됐죠.
경찰청 주전 포수는 언제부터 맡기 시작한 거예요?
유 감독님 부임 전까진 다른 선수들과 돌아가면서 맡았고요. 유 감독님 오신 다음부턴 선발포수로 자주 나갔어요.
경찰청에서 느낀 게 있다면 뭘까요?
책임감? 사실 이전까진 야구도 그냥 했고, 포수도 그냥 봤어요. 경찰청 들어가서 유 감독님 뵙고부터 생각하는 야구를 하기 시작했죠. 그게 가장 큰 변화였던 것 같아요. 경찰청에서 1군 투수들을 만난 것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프로 1년 차때 1군 투수들 하고 손발을 맞출 기회가 없었거든요. 경찰청에서 1군 투수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이것저것도 시도해보면서 실력이 ‘확’ 늘었어요.
경찰청 때 만난 ‘1군 투수’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그게 누굽니까.
(손)승락이 형이요. 완전 독불장군이에요(웃음). 고집이 정말 세요. 가끔 외국인 선수처럼 흥분하거든요. 그럴 때 포수가 다가가서 편안하게 해줘야지 잘 던지는 스타일이에요. 실제로 마운드 올라가서 ‘저 타자가 형 공은 절대 못 치니까 마음 놓고 던지세요“라고 하면 진짜 공이 더 좋아져요. 뭐 원래 좋은 투수니까(웃음).
고교 시절엔 ‘좋은 포수’란 칭찬은 있었어도 ‘좋은 타자’란 평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청에선 2군 북부리그 타율, 홈런, 타점 부문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어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궁금합니다.
주위 분위기 같아요. 그때 상무 형들 타격이 정말 좋았거든요. 죄다 3할 타자였어요. 입대 전까지 방망이에 별 소질이 없다고 느꼈는데, 형들이 잘 치니까 저도 이상하게 잘 맞기 시작하더라고요. 돌아보면 그때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타석에 서면 ‘저 투수 공은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2009년 경찰청에서 제대할 즈음, 두산 관계자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 팀에 좋은 포수 한 명이 돌아온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2010년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평가가 썩 좋았던 건 아니었어요.
다시 두산에 돌아와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캠프 때 어깨가 아프더라고요. 제대로 훈련을 못했어요. 그 바람에 연습경기 때 대형 사고를 쳤죠.
대형 사고?
1루 주자가 도루할 때 ‘냅다’ 송구했는데 그 공이 2루가 아니라 센터까지 날아가는 거예요. 속으로 ‘아, 짐 싸야겠구나’ 생각했죠(웃음). 그런데 김경문 감독님이 계속 기회를 주시더라고요.
당시 김 감독은 “뭐든 군말 없이 열심히 하는 게 참 보기 좋았다. 그래서 계속 기회를 주면 그 기회를 잡을 선수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선배 포수로서, 김 감독이 여러 조언을 해준 것으로 압니다. 그 가운데 생각나는 게 있어요?
‘메모를 남겨라. 자기만의 야구일지를 쓰라’고 하셨던 말이 기억나요. 그때 처음으로 포수는 기억과 기록으로 승부하는 포지션이란 걸 깨달았어요.
2010시즌 개막전 엔트리에 ‘양의지’의 이름이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시즌 두 번째 경기인 잠실 KIA전에 선발 포수로 출전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선발 출전하리라고 기대했을까 싶어요.
솔직히 기대했다기보다 굉장히 절실했던 것 같아요. 1경기라도 나가고 싶단 생각이 정말 강했거든요. 그래야 뭔가 보여줘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요.
그해 3월 30일 목동 넥센전에서 ‘양의지’가 누구인지를 야구팬의 뇌리에 각인시켰습니다. 그날 선발포수로 출전해 4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습니다. 2안타 모두 홈런이라, 많은 이가 깜짝 놀란 게 사실입니다. 그때 상황 기억납니까.
지금도 생생하죠. 목동구장 왔을 때 김태형 코치님이 “오늘 선발 포수로 나갈 수도 있으니까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설마’ 했죠. 그런데 선발 오더를 보니까 진짜 제 이름이 적혀있는 거예요(웃음). 그날 (김)선우형이 선발이었는데, 그 당시엔 선우 형한테 말도 못 걸었어요. 팀 동료인데도 선우 형 보면 ‘와, 김선우 선수네’ 했다니까요(웃음). 출전 준비하고 있을 때 윤석환 투수코치님이 “의지야, 나가서 홈런 두 방 쳐버려”했는데 그게 진짜 현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웃음).
홈런 칠 때 ‘손맛’이 어땠을까 궁금해요.
(스윙하는 흉내를 내며) 방망이에 공이 맞는 순간 진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보였어요. 처음엔 실감이 안 나다가 베이스 돌면서 ‘내가 친 홈런이 진짜구나’ 싶으니까 진짜 날아갈 것 같았어요(웃음). 돌아보면 홈런도 홈런이지만, 선우 형의 시속 150km 강속구를 받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그때 김선우 공을 처음 받았던 겁니까.
처음이었어요. 선우 형 불펜투구 때도 (공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날 선우형 공은 제구도 좋고, 공끝도 장난이 아니었어요. 속으로 ‘이래서 김선우구나’ 감탄했죠(웃음).
그날 공배합은 누가 한 겁니까.
그땐 선우 형이 (사인을) 다 내줬어요. 다행이었죠. 전 정신이 없어서 무슨 사인을 내는지도 모르고 막 손가락을 펴기만 했거든요(웃음).
2010년 3월 30일 목동 넥센전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한 양의지가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사진=두산) |
계속 경기에 출전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쌓였을 듯싶어요.
자신감도 생겼지만, 걱정도 많아졌죠. 저 때문에 팀이 지면 안 되니까.
2010년 풀타임 첫 시즌임에도 20홈런을 기록했습니다. 그것도 잠실구장이 홈인데도 말이지요. 당시 ‘거포 포수’가 나왔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올 시즌 기록 보면 창피하네요(웃음).
그해 20홈런 이상 기록한 두산 타자가 무려 5명이나 됐습니다. 경찰청 때처럼 동료 타자들이 잘 치니까 덩달아 장타가 늘어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영향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땐 정말 막 (배트를) 돌렸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아직 어리니까 패기 넘치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막 휘둘렀죠. 그런데 사람들이 제 스윙하는 걸 보고 다 그랬어요. “젊은 놈이 능글능글하다”고(웃음).
타격폼 보면 정말 힘 안 들이고 ‘툭툭’ 치는 것 같아요. 어느 분은 ‘애늙은이 같다’고 하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살살 친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커서 보니까 그게 장점이 되더라고요. ‘부드럽게 친다’는 말씀들을 자주 해주시니까. 올 시즌 홈런 의식해서 배트를 세게 돌려봤는데…. 오히려 좋은 타구가 더 안나오더라고요.
당시 타격에선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만, 수비에선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블로킹이 좋지 않다는 평이 많았어요.
그런 지적 많이 받았어요. 사실 경찰청에서 두산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 호흡을 맞추는 투수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투수들의 공 궤도를 알 리 없었죠. 지금이야 ‘공이 어딜 맞으면 어디로 튀겠구나’ 알지만, 그땐 전혀 몰랐어요.
올 시즌도 포일(패스트볼)은 9개로 리그 1위였습니다. 한편으론 두산 투수들의 포크볼(스플리터 포함)비율이 높다보니 포일도 그만큼 많아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올 시즌도 포일이 많긴 한데, 그래도 2010년보단 좋아진 것 같아요. 투수들 때문이라기보다 더 집중하지 못한 제 탓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리그 최강의 도루 저격수, 양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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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도루저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2011년부터 지금 NC 계신 강인권 배터리 코치님하고 정말 훈련을 많이 했어요. 지난 시즌엔 오후 1시부터 경기 전까지 계속 송구훈련만 했으니까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사실 전 주자가 뛰는 걸 보고나서 송구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여유가 있을 땐 송구가 부정확하고, 오히려 급할 때 송구가 좋아지더라고요. 강 코치님께서 그걸 지적해주신 덕분에 많이 개선할 수 있었어요.
올 시즌 투수 공을 포구하고, 2루까지 송구하는 연결동작이 빨라졌다고 분석하는 야구전문가도 있습니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어요(웃음). 조금씩 더 정확해진 건 같아요.
올 시즌도 두산 주전 포수는 양의지 차지였습니다. 경기 출전 부담은 상당히 줄었을 듯싶어요.
솔직히 ‘안심이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주변에서 ‘최소 3년은 풀타임으로 뛰어야 주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아요.
가뜩이나 올 시즌 용덕한이 롯데로 옮기면서 주전 포수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용)덕한이 형 수비가 저보다 좋아요. 항상 덕한이 형 보면서 배웠죠. 그런 덕한이 형이 롯데 가실 때 죄송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롯데에서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 투수들 이야기를 한 번 해보지요. 올 시즌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는 11승10패 평균자책 3.20을 기록했습니다. 전해에 비해 개인 성적은 다소 떨어졌지만, 상대 타자들은 “지난해와 다른 투구 패턴이라,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는 말을 하더군요.
지난해와 비교하면 자기가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지난 시즌엔 몸쪽을 많이 안 던졌어요. 그런데 올 시즌엔 몸쪽 투심도 자주 던지고, 삼진에 집착하기보다 맞혀 잡으면서 경기를 쉽게 풀어가려고 노력했어요.
두산 투수들이 니퍼트를 가리켜 ‘무척 섬세하고, 까다로운 투수’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런 니퍼트를 어떻게 리드했을까 궁금합니다.
니퍼트한테는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아요. 항상 “네가 최고다. 공 좋다”는 식으로 자신감만 심어줍니다. 왜냐? 우리 팀 에이스니까요.
올 시즌 이용찬은 어땠습니까.
(이)용찬이는 스스로 투구를 깨달은 것 같아요.
스스로 투구를 깨달았다라, 구종 완성도와 타자 상대법이 성숙해졌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타자와 어떻게 승부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투수가 됐어요. 포크볼도 지난해 배우고서 올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요.
같은 생각입니다. 올 시즌 이용찬의 포크볼은 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찬이는 포크볼로 카운트를 유리하게 이끌 줄 아는 투수예요. 일부러 포크볼을 가운데로 던져 범타를 유도하곤 해요. 그래야 투구수를 줄일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죠. 참 영리한 투수예요.
하지만, 이용찬의 포크볼 구사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후반기 때 속구 사인을 많이 냈어요. 그런데 용찬이가 자꾸 포크볼을 던지려고 해서(웃음). 사실 용찬이는 포크볼도 좋지만, 원래 커브와 슬라이더가 더 좋아요. 경기 하다 보면 커브, 슬라이더 둘 중 하나만 잘 들어가도 그날 투구가 살거든요. 용찬이는 속구 구속도 빠르니까 팔꿈치에 무리가 가지 않는 변화구를 더 자주 던졌으면 좋겠어요.
팔꿈치에 무리가 가지 않는 구종이라면?
커브요.
올 시즌 두산 마운드에서 가장 돋보인 투수라면 단연 노경은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난해 (노)경은이 형이랑 방을 같이 썼어요. 성격을 잘 알죠. 경은이 형은 정말 생각이 많은 사람이에요. 지난해까진 안 되니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했는데, 올 시즌 감독님이 기회를 많이 주시니까 그 기횔 놓치지 않고 잘 잡은 것 같아요. 심적으로 안정된 것도 도움이 된 것 같고. 내년엔 더 잘할 겁니다. 연구하는 투수니까요.
노경은이 두산 선발진의 스타였다면, 홍상삼은 불펜진의 스타였습니다.
(홍)상삼이는 제가 강하게 이끕니다. “형이 사인 냈는데 고개 흔들면 죽어”하죠(웃음). (뭔가 생각난 듯) 시즌 중반 상삼이가 좋지 않았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 상삼이가 생전 그런 적이 없는데 “형, 내가 셋업맨이니까 지금은 피해 가는 것보단 붙어서 빠르게 잡는 게 좋을 것 같아. 속구로 파울 만들어 내고 변화구로 삼진이나 범타 잡을게”하더라고요. 그때 ‘아, 상삼이도 이제 야구를 아는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상삼이 의견을 많이 들어주는 편이에요.
마무리 스콧 프록터는 어떻게 리드했습니까.
니퍼트랑 똑같아요. “네가 최고다”하죠(웃음). 프록터는 자기한테 너무 화를 많이 내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계속 “괜찮다”고 말해주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지난 7월 프록터와 KIA 나지완의 ‘빈볼 시비’가 있었어요.
타자한테 욕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요. 전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프록터는 예전 일을 기억하고 있었더라고요(웃음).
올 시즌 두산 투수 중 가장 달라진 선수가 있다면 누구로 봅니까?
(김)승회 형이요. 올 시즌 승회 형이 등판하면 ‘2점으로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원하는 코스로 정확히 던지고, 포수 말도 잘 따라주고. 승회 형은 제가 막 우기면서 “형, 여기다 그냥 던져”하면 군말 없이 던지는 스타일이에요(웃음). 이제 다른 팀 투수지만.
양의지와 니퍼트가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서 다정한 포즈를 취한 채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있다(사진=두산) |
말이 나온 김에 ‘내 사인을 가장 잘 들어주는 투수’가 있다면 그게 누굽니까.
당연히 상삼이죠(웃음).
반대로 ‘가장 고집 센 투수’가 있다면.
우리 팀엔 니퍼트밖에 없어요(웃음).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투수가 있다면.
변진수요. 정말 당찬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 더 잘 던질 거예요.
이번엔 상대 타자들을 물어보겠습니다.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를 꼽는다면.
(김)태균이 형, (이)용규 형이요.
어떤 점이 상대하기 어렵습니까.
그 형들은 절대 나쁜 공은 안 쳐요. 자기 공만 쳐요. 역으로 승부해도 맞아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들답죠. 특히나 용규 형은 포수 입장에선 정말 짜증 나는 선수에요. 계속 파울 치다가 안타 치고 나가서 도루하고. 아주 사람 속을 뒤집어 놓죠(웃음).
그럼 상대적으로 승부하기 편한 타자는 누구예요?
거의 없죠. 승부하기 편하다기보다 우리 투수 공을 잘 못 치는 타자를 꼽으라면 의외로 (이)승엽이 형 같아요.
기록을 보니까 그렇군요. 올 시즌 이승엽의 두산전 타율이 2할6리밖에 되지 않군요. 다른 팀을 상대로는 죄다 2할8푼8리 이상인데요.
이승엽 선배와 상대할 땐 ‘볼넷 준다’는 생각으로 공을 버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원체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시니까 그 공을 쳐서 범타로 물러난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이승엽 선배한테 홈런 하나 맞긴 했는데. 솔직히 위대한 선배님이시잖아요. 포수 자리에 앉아서 타격하시는 걸 보면 정말 많은 공부가 돼요.
양의지의 전성기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두산 포수진의 중심. 최재훈(사진 왼쪽부터)과 양의지(사진=두산) |
경기할 때 데이터와 감(感) 가운데 어느 걸 중시하는 편이에요?
전 데이터보단 현장의 감이 중요하다고 봐요. 타자는 오늘 컨디션에 따라 기존 데이터가 맞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데이터를 맹신했다가 혼난 적도 많아요.
대표적으로 ‘혼난 경기’가 있다면 언제였습니까.
올 시즌 LG전이었죠. 데이터와 분석지를 읽어보니까 LG 타자들의 약점이 보이더라고요. 우리 팀 전력분석이 상당히 뛰어나거든요. 그래 분석대로 경기를 풀어갔는데 (눈을 크게 뜨며) 완전 박살 났죠(웃음). LG한테 7연패나 당했으니까요. 그걸 통해서 교훈을 많이 얻었어요. 데이터를 더 훌륭하게 활용하려면 경기 준비를 더 철저히 하고, 상대 타자들도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걸 배웠죠.
전체적으로 경기 준비는 어떻게 하는 편이에요?
경기에 앞서 투수하고 오늘의 그림을 그려요. ‘몇 점으로 막자, 이 팀의 성향은 이러니까 이렇게 하자’ 그런 식의 대화를 많이 나눠요. 그리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오늘은 몇 점으로 막을 수 있겠다’ 이런 자기 암시를 하죠.
자신의 성향을 다른 포수와 비교한다면 누구와 닮았다고 봅니까.
진갑용 선배인 것 같아요. 진 선배 투수리드를 보면 정말 교과서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투수 능력도 잘 이끌어내시고, 배려도 잘하시고.
투수 능력을 잘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어쨌거나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야구선수든 아니든 사람은 그날 기분에 따라 컨디션까지 바뀌기 마련이잖아요. 저도 누가 ‘잘한다, 잘한다’하면 더 신나고, ‘못한다, 못한다’하면 슬럼프에 빠지거든요. 투수는 감정 기복이 더 심하기 때문에 포수는 어떻게 해서든 투수를 칭찬하고, 격려해서 투수의 평상심을 유지시켜줘야 합니다.
투수의 투쟁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때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할 때도 필요할 듯싶은데요.
감독님께선 “선배든 후배든 못하면 강하게 이야기하라”고 하세요. 저보다 어린 투수들 보면 저도 그러죠. “그 좋은 공을 갖고도 왜 못 던지냐. 타자가 없다고 생각하고 던져라. 이름값에 연연하지 말고 던져라.” 그래도 대부분은 투수를 칭찬하면서 긴장감을 풀어주려고 노력해요. 어차피 투수가 주연, 포수가 조연이니까요.
올 시즌 포수 수비는 개선됐지만, 타격은 최근 3년 가운데 가장 좋지 않았습니다. 타율 2할7푼9리, 5홈런, 27타점으로 전체적인 타격지표가 내림세였습니다. 특히나 2010, 2011년에 비해 득점권 타율이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3할1푼5리에 비해 올 시즌 득점권 타율은 2할1푼2리에 불과했습니다. 찬스에 강했던 전 시즌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습니다.
음, 잘 쳐야 하는데, 저도 이유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야구인들이 흔히 ‘포수가 수비에 집중하면 타율이 떨어진다’는 말을 하는데요. 역시 그런 측면에서 올 시즌 타격 부진을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것도 없지 않은 것 같아요. 수비할 때 힘도 들고, 더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니까 타격할 때 힘을 쓰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경찰청 때부터 보면 팀 타선이 터질 때 자신의 타격도 좋아지곤 했어요. 하지만, 올 시즌 두산 팀 타율은 2할6푼으로 2006년 2할5푼8리 이후 가장 좋지 않았습니다. 팀 홈런(59), 팀 득점(524)도 2006년 이후 최악이었어요. 어쩌면 그런 점이 본인 타격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한 가지 덧붙인다면 예년보다 타격이 급해졌다는 인상을 받곤 했어요. 기록을 찾아보니 타석당 투구수가 2010년 3.7개, 2011년 3.8개였는데 올 시즌엔 3.5개로 줄었더군요.
팀 타선 부진이 개인 타격에 영향을 줬다면 그건 제가 반성할 문제 같아요. 팀 분위기에 끌려가기보다 분위기가 그럴수록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걸 잘하지 못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좀 급할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올 시즌 초구만 4번을 쳤다가 감독님한테 “너 초구만 칠 거면 집에 가라”는 꾸중을 들은 적도 있어요.
4타석 모두 초구 공략?
그땐 느낌이 왔어요. 결과가 안 좋았던 거죠.
그때 상대 투수가 누구였어요?
한화 (데니) 바티스타였어요. 선발로 전향해서 그렇게 잘 던질 줄 몰랐죠(웃음).
6년 전 양의지에게 홍성흔은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두산의 주전포수는 양의지다(사진=두산) |
내년 3월에 열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요. 아쉽게 예비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가슴에 태극마크 단다는 게 큰 영광이잖아요. 처음 야구할 때도 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열심히 하면 다시 좋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여자친구 있어요?
네, 결혼해야죠.
내년 시즌 목표를 숫자나 기록으로 밝힐 수 있을까요.
아직까진 기록이나 숫자보단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늘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웃음).
장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다가 느낀 게 있어요.
네?
강호동 씨 닮았다는 이야기 많이 듣지요?
강호동 씨요?(웃음) 강호동 씨와 제가 닮았다고요(웃음). 정말이요?(웃음). (얼굴이 굳어지며) 왜 이러세요. 기자님.
첫댓글 아... 기아로 오면 좋겠는데 두산이 미친짓을 안하겠죠??
두산 백업 포수도 괜찮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