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례와 송정에서
이월 끝자락 일요일이다. 자연학교는 주말과 방학이 없는 연중무휴라 일요일에도 길을 나섰다. 진례산성 너머 평지 들녘으로 나가 봄기운을 받으며 식탁에 올릴 찬거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용추계곡으로 들어 진례산성 동문 너머 임도를 따라가도 되나 무릎 관절이 시큰거려와 무리하면 안 될 듯했다. 그리하여 창원대학을 출발 장유로 가는 170번 버스를 타고 우회해 가기로 했다.
도심에서 창원터널을 벗어난 장유 신도시에 닿아 김해 시내 풍유동 차고지에서 진영으로 가는 44번 버스로 갈아탔다. 남해고속도로가 서부산으로 분기하는 냉정고개를 넘어가 진례면 소재지의 농협을 지난 클레이아크미술관에서 내렸다. 미술관에서는 건축 프로젝트와 세라믹 창작 센터 입주작가 결과에 관한 작품이 전시되어 호기심을 끌지 못해 그 곁의 분청도자박물관을 둘러봤다.
생활도자기는 경기도 이천과 여주에서도 활발하게 제작하지만 김해 진례 일대의 공방에서도 장인들의 손에 빚어져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다. 당국에서는 근년에 분청 도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럴듯한 박물관을 갖추 놓았더랬다. 인류는 역사시대 이전부터 흙과 불로 토기를 빚어와 거기에 문양을 새기고 열을 더 가해 분청도자기로 발전시켜 온 과정을 잘 살펴봤다.
도자박물관 곁에 도자기 전시관도 있었으나 들리지 않고 새로은 길이 시원스레 뚫린 현장으로 갔다. 진례 시례 일대 넓은 농지와 산자락은 신도시를 개발하듯 반듯하게 구획을 정리해 놓았다. 유수 건설업체에서 수년에 걸쳐 레포츠파크가 들어설 기반 조성 공사는 마무리 단계였다. 시례마을은 밀양 사포에서 분가한 광주 안씨 집성촌인데 하촌과 상촌에 이어 신기의 세 동네였다.
자연마을 시례의 집들만 섬처럼 남겨 놓고 그 주변을 에워싼 광활한 터는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설 듯했다. 신설도로에는 가로등이 작동되고 버스 정류소까지 설치해 놓았다. 시례마을과 인접한 남겨진 산자락에는 공원을 조성하고 어린이 놀이터나 화장실도 갖추어져 있었다. 개발 현장의 넓은 터를 지나면서 양지바른 곳에 움이 터 자라는 쑥을 몇 줌 캐 인접한 송정마을로 건너갔다.
송정에 딸린 작은 마을 앞으로 가면서 논둑에 자라는 쑥을 더 캐 모았다. 아침에 용추계곡으로 들었으면 진례산성 동문을 넘어 임도를 따라 한참 걸으면 나오는 첫마을이다. 나는 여러 차례 진례산성을 넘어 그곳을 지났기에 주변의 지형지물이나 식생에 대해 훤히 알고 있었다. 쑥을 캐기는 아직 철이 일러 양이 그리 많지 않아 냉이를 찾아 어린 감나무가 식재된 밭뙈기로 갔다.
거기는 본래 밭이었던 농지를 묵혀두었다가 작목이 감나무로 전환된 듯했다. 식재된 감나무들은 몇 해 더 커야 본격적으로 감을 달지 싶다. 감나무 그루터기 주변은 작년 가을에 싹이 튼 냉이가 겨울을 넘겨 봄을 맞았다. 냉이는 추위를 이겨내느라 방석처럼 지표면 납죽 잎사귀를 펼쳐 자랐다. 배낭에 넣어간 호미를 꺼내 땅속에 박힌 뿌리가 손상되지 않도록 냉이를 캐 모았다.
호미로 캔 냉이는 뿌리에 흙이 달라붙어 다 털어내질 못한 채 주섬주섬 봉지에 담아 들길을 걸었다. 인적이 없는 농로의 수로가 지나는 둑에 앉아 배낭을 풀었다. 아까 먼저 캔 쑥부터 검불을 가려내고 나중 캔 냉이에는 뿌리에 붙은 흙을 말끔하게 털어냈다. 창원에서 원정 간 사내는 진례의 시례와 송정 일대에서 현지인들도 모르는 쑥과 냉이를 캐서 일용할 찬거리로 확보했다.
송정마을 회관에서 앞들은 지나니 임대주택 택지를 개발하느라 어수선했는데 문화재 유적 조사를 시굴하는 현장도 보였다. 일요일이라 면 소재지 식당 중 추어탕이나 국밥집은 문이 닫혀 중국집으로 들었다.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맑은 술과 함께 늦은 점심을 때웠다. 식후에 진영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장유로 가서 창원터널을 통과하는 버스로 갈아타 반송시장을 거쳐 집으로 왔다. 2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