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준郭性準 어른 공덕비 비문
지리산 정기 받은 곽성준 어른은 마천이 낳은 훌륭한 함양군 행정가요
마천중학교 건립하신 인자한 교육자이시다 곽성준 어른은 1925년 8월 6일
고려 문하시중門下侍中 곽경郭鏡의 32세손으로 마천 매암에서 태어나셨다
일제시대 마천초등학교 제7회로 졸업,함양농업전수학교<현 함양중학교>에서
수학하고 일본 임업연수생으로 유학을 다녀 오셨다 성품이 온유 겸손하신
곽성준 어른은 광복 후 6.25 사변도 겪으시고 4.19 학생혁명후 새 정부에서
1960년 12월 26일 제4대 마천민선 면장으로 당선되어 탁월한 능력으로 면행정을 잘하셨다 1961년 10월 30일 면장직을 마친 곽성준 어른은 이어 6대면장
<1962.6.23.-1965.1.4.> 8대 면장<1966.6.23.-1973.5.24.>으로 당선 3회 면장 재직시 사람과 가축만 다니던 좁고 험한 농로 길을 확 트이는 신작로 길로 닦았다 면소재지 당흥길을 시작으로 백무동길,삼정길,내마매암길,군자도마길,벽소령 작전도로 개설 지원,추성리 구양리길 촉동길확장 포장,오도재길 초석을 놓는 일 등 곽성준 어른은 면행정을 통해 마천 교통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셨다 자연히 1970년대 나라의 새마을정신에도 부합되고 농로 확장으로 소득증대도 높았다 나라에 건의하여 가흥교를 1966년에 건설하고 이어 추성교도 건설하여 오도재길을 넘어온 등산객이 추성길 백무동길로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마천관광산업에도 큰 공적을 이루셨다 도마 앞 임천에 마천수력발전소를 건설하여 어두운 마천의 호롱불시대를 대낮같은 전기불시대로 변화시켜 곽성준 어른은 마천 면민생활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셨다 마천상권 회복을 위해 마천 5일장 전통시장을 다시 시작하여 마천경제 발전에도 면장으로서 큰 공로를 이루셨다 곽성준 어른의 3회에 걸친 면행정 업적은 교통 산업 경제 특산물 장려등의 활동으로 마천발전에 큰 변화를 보였으나 큰 고민 하나가 열악한 마천교육이었다 초등학교는 마천,의탄,등구,삼정분교까지 발전했으나 중학교가 없어 고민이 컸다 이 중학문제 해결을 위해 곽성준 어른이 먼저 마천중학교창립준비위원장이 되어 기성회를 조직하고 건립기금을 조성하여 면민들의 고마운 협조로 드디어 1964년 3월 20일 마천고등공민학교 중등과정의 중학교를 세웠다 곽성준 어른이 명예교장<1964.3.20.-1965.12.23.>으로 기초를 잘 닦아 함양중학교 마천분교<1965.12.24.>가 되고 1971년도 3월 1일에 마천중학교로 독립 운영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 마천중학 출신 나라의 큰 일꾼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곽성준 어른은 마천면장 3회 외에 대통령 선거인단<평화통일 자문회의 1981.2 12>,평화통일 상임위원<1983.5.24.> 초대 함양군의회 부의장<마천면선거구 1991.3.28.> 등의 직함으로 나라 발전에 이바지 하셨다 보람찬 상훈관계는 대통령표창장<1960.1.1.> 경남도지사 표창장<육군소장 양찬우 1962.12.31.> 내무부 장관표창장<1963.9.4.> 훈장증<국민훈장 석류장 1985.6.5.> 등의 표창장 훈장증이 곽성준 어른의 빛난 공적 가치를 말해 준다
마천이 낳은 큰 인물 곽성준 어른은 1993년 6월 16일 당흥 마을에서 68세로
돌아가셨다 곽성준 어른은 훌륭한 행정가 인자한 교육자로 남긴 공적이 해와같이 빛나므로 나라의 꿈나무 후세들에게 귀감이 되고자 여기 이 공덕비를 세운다
글지은이:오동춘 문학박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