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히 4:16절
제 목 : 은혜의 보좌 앞에서 받아야 할 것
일 시 : 2023. 7. 7.
히4: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란 창조주의 공급하심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것들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일반은총이 그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빛과 공기와 바람과 강과 바다와 나무와 숲과 동물과 식물 등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도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것들은 간절히 기도하고 구해야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날마다 구해야 할 것들이 무엇임을 말씀합니다.
1. 첫 번째는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긍휼이란 엘레오스라고 하는데 (사람이나 하나님, 특히 적극적인)긍휼, (부드러운)자비라고 합니다. 긍휼이란 다른 말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마17:14-18/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며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집니다.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라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시고 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았습니다. 아무도 고칠 수 없는 아들이었지만 예수님께 나와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탁했을 때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또한 눅18:35-43/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맹인 한 사람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지만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머물러 서서 맹인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왔을 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대답하자.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시자 즉시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을 통해서 병을 고침받거나 치유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본인이나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했기 때문에 불쌍히 여김을 받고 고침받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아무리 문제가 크고 심각해도 자기 집에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은 못하실 것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 때는 항상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 마음속에서 솟아 올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속에 불쌍히 여기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이 샘솟듯 올라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찾아가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2. 두 번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란 유카이론이라고 하는데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즉 좋은 혹은 옳게라는 뜻의 (유)와 시기를 뜻하는 (카이로스)가 합쳐져서 적절한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가장 필요한 때에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즉 이스라엘 땅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두 종류의 비가 필요했습니다. 먼저 이른 비인데 씨를 뿌렸을 때 싹이 나도록 도와주는 비를 의미하며, 두 번째는 늦은 비인데 수확을 앞두고 곡식들이 영글어 가도록 내리는 비가 필요한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는 날마다 적절한 시기에 주어지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만약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삶이 메마르고 고통과 슬픔과 문제가 발생합니다. 날마다 그 날 받아야 할 은혜가 있고, 그 달에 받아야 할 은혜가 있고, 그 해에 받아야 할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세 번째는 이 두 가지를 받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1) 먼저 은혜의 보좌 앞에 라고 했습니다.
보좌란 드로노라고 하는데 왕의 보좌를 뜻하는 말로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나 그리스도의 보좌(히1:3,8)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이 머물러 계시는 장소로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상징적 장소인 성막 안의 지성소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속죄소 위가 은혜의 보좌에 해당됩니다.
대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안에 있는 속죄소에 나아갈 수 있었으며,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모든 백성들을 대표해서 드리는 속죄의 행위가 받아들여졌을 때 지성소 안에 있는 그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소(施恩所)가 되었습니다(히9:5,레16:2-34).
그러나 본절에서 말하는 은혜의 보좌는 더 이상 모세가 전해준 율법적인 속죄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는 주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중보해 주시기 위해서 대제사장으로 좌정해 계십니다.
2) 두 번째는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담대함이란 팔흐레시아 라고 하는데 숨김없이 말함, 즉 솔직함, 널리 알려짐, 함축적으로 확신이라는 뜻입니다. 담대함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솔직하게 숨김없이 라는 뜻과 두 번째 확신을 가지고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죄를 짓고 실수를 했을 찌라도 죄책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지 말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망설임 없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중보자로서 나를 대신해서 아버지께 기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후6: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이고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이라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지금 그리고 오늘 내가 받아야 할 은혜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은혜라고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일생)은 영생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천국에서 영생(영원한 생명)을 살기 위해서 이 땅에서 80-90년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받아야 할 은혜는 천국에 가서 영원히 누려야 상급과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부족함이 없고 기도가 필요없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속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순간과 찰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과 끝이 없는 무한대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영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때를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예배드리면서 오늘을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은혜가 있고, 내일 필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받을 은혜를 놓치면 모든 일들이 꼬이고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받을 은혜는 오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내일에 가서 은혜를 받기 위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오늘 받아야 할 은혜를 귀찮고 힘들고 피곤하다고 해서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뜻입니다. 날마다 그 날 받아야 할 은혜를 위해서 날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시1:1-3/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당연히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고, 그들의 악한 삶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면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말씀)을 날마다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아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싸칼/신중하다, 이지적이다, 능숙하다, 성공하다)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