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이는 딸들을 줄줄이 셋을 낳았고
늦둥이 아들도 얻어 금쪽같은 아들을 귀애 하였지만
스스로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장녀임에도 호주제 사회관습으로
아들을 우선 선호하여 오빠와 남동생만
대학 공부시키는 바람에
대학 못간 것이 두고 두고 통한스러워서
자신의 딸들은 본인이 희망하면
어디든지 진학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딸들은 친가 할머니.고모들이
계집아이 그렇게 공부 많이 시켜봐야
소용없다고 비난해도 옥이의 완강한 의지로
차례대로 사범대.의과대.법대 등
다니고 싶은대로 다녔다.
옥이의 자녀들은 어릴 적에는 몰랐지만
성인이 되면서 엄마가 베란다서
실수로 떨어진 것이 아니란 걸
저절로 이모나 고모 등의 대화를 우연히
들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막내아들만 빼고 세 딸들은
아빠의 이중성에 혼란스러웠고
함께 밥상자리에 앉지 않았으며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옥이가
"네 아빠가 잘못한 건 맞아! 하지만 아빠때문에
엄마가 그랬던 건 아니야~
그때 좀 더 현명하지 못했고 감정자제가 안되어
엄마가 충동적으로 했던것도 잘한 건 아니야~~
그러니 이제 지난 일이니 받아들이고
네 아빠가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은 변함없으니
마음들 풀어주기를 바래~"
옥이 자신은 남편에게 마음 문을 닫았지만
용서한 척 하였다.
딸들이 아빠를 외면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매일 옥이의 팔다리를 찜질하고 맛사지하고
두 팔로 옥이의 가슴을 안아 일으켜
걸음연습도 시키고 가끔 드라이브도 하였다
그렇게 조금씩 제 자리 잡아가는 듯 싶었는데
옥이아버지의 부고가 들려왔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엄마로 인해
아버지도 요한이라는 영세명으로 종부성사도
받았다고 동생들 통해서 서울의 상황을
손바닥들여다 보듯 알고 있었다.
남편과 여동생과 서울의 오빠집으로 갔다.
오빠는 사회적으로 성공해서인지
정.재계에서 조문들이 끊이지 않고
근조 화환들은 대문앞에 줄이어 길게 늘어섰다.
검은 양복을 입은 많은 조문객들이
장남이 되어 너무 고생이 많았다고 위로를 하고
슬픔의 안색도 없이 손님들을 맞고 보내는
상주인 오빠의 모습이었다.
67세에 몸과 마음이 함께
아파서 슬프게 돌아가신 아버지인데
마치 호상인 것 처럼 하는
오빠와 올케를 보니 속이 뒤집혀 졌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가톨릭에 귀의하여 종부성사를 받은
아버지였고 엄마가 성당서 열심히 활동하기에
가톨릭장례식을 치르고 싶다고 했는데
유명한 절 스님들을 불러 불교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남편의 장례도 마음대로 안 되니
체념하여 넋이 나간듯 보였다.
옥이는 구석에서 주지스님에게 편지를 썼다.
사실 아버지는 장남의 불효로 운명하기 하루전에 업혀와서 돌아가셨다고 아버지의 마음과 영혼이 상처받았으니 각별히 잘 모셔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발인이나 삼우제에
불효를 깨우치는데 도움이 되는 설법을 부탁하고
돈도 봉투에 두둑히 넣었다.
"엄마! 기왕지사 이리 된거 불교식으로 오빠 하고싶은 대로 장례식 치르고 나중에 성당에 연미사 자주
봉헌하는 것으로 해~
그러니 뭐 좀 먹고 기운 차려~~그래야 아버지도
편히 먼 길 가시지~~"
스님은 부탁받은 대로 설법을 의미있게 하였다
"생명이 부모로 해서 나온 것이니 마땅히
효도해야 하는데 부모를 이쑤시개처럼 필요할때만 쓰고 버리는 어리석은 중생은~~"
길게 계속 설법을 스님이 이어가고
옥이는 마음속으로 옳거니! 스님이 설법을 이렇게 하니
오빠내외는 뜨금해하고 반성할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오빠를 쳐다보니꾸벅 꾸벅 졸고 있고
올케는 자신의 막내딸과 소곤거리느라
설법을 전혀 못 듣는 눈치였다.
옥이는 기가 막히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무언가 반응과 변화를 기대하는데
기대한 만큼 드러나지 않으면
실망은 분노로 바뀌게 마련이다.
장례치른 그날 밤
남편이 부산가자 하는데 오빠에게
할 말이 있고 혼자 남은 엄마일 상의 해야 한다고
여동생.남동샘 모두 가자하여 오빠집으로 갔다.
"오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버지 안 모신 것은 그렇다 치고 왜 장례까지
엄마의견을 존중하지 않았지? 정말 실망이야!""
" 내가 장남이고 우리집서 돌아가셨으니깐~
넌 출가외인인데 왜 나서서 그러니 조용히 하고
부산 내려가!"
"아버지는 그렇다치고 이제 엄마가 혼자이니
엄마는 모실꺼지?"
잠자코 있던 올케가 나선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그냥 부산에 계시게 하지
왜 아가씨가 나서서 부모님 서울이사 하게 해서 여러 사람 더 힘들게 해요? 난 어머니 못 모셔요.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가 아니시잖아요!"
"뭐라고?
우리 엄마가 뭐 어때서?
올케는 우리 부모님 모시는 거 조건으로
우리집으로 시집와 놓고 이제 와서 뭐 어째?"
옥이는 머리에 열이 나고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벌떡 일어나 성치 않은 몸으로
거실의 장식 항아리 꽃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마치 미친사람같았다
남편과 동생들이 황급히 제지했다
"넌 오빠도 아니고 이제 우린 남매아니야
다시는 서울 오나봐라!"
옥이는 분기탱천 화를 안고 부산으로 돌아갔다.
이웃사람들은 초상집서 장례 후 큰 소리가 나니
유산인 재산 다툼을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내려오는 밤 기차 안에서
옥이는 무척 착잡했다
과연 돌아가신 아버지나 혼자 남은 엄마가
빈털터리가 아니고
물려줄 재산이
수억.수십 억 있었다면 오빠내외가 좀 다르게
처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당연히 수억있으면 장남 내외가 그렇게 부모를 모른척 하지 않지요
주변에 보니 다 그러던데요 ~
돈이 있어도 일찌감치 자식들 다 주면
나중에 푸대집 받는 경우도 생기더라구요 ㅎ
평온한 휴일 되세요
그 시대에는 이런 애환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의 딸에다 이화여대까지
나온 올케언니가 버거워서
,말 한마디 건네기도 어려웠지만
제 친정엄마에게는 용돈을 다달이
챙겨 드리는 게 너무 고마웠지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다릴게요
맞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지나면
화해하고 화목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이베리아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온한 하루 되세요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평온한 휴일되세요
그렇지요 참 부모 자식간 그 걸 넘어서 며느리 사위 까지 가면
늘 복잡한 것이 가정사지요
복잡한 것이 인생이지만
그것을 단순하게 풀어가는 것이
삶의 지혜일 것 같아요
평온한 휴일 되세요
아이고, 세상사 참 힘이 듭니다.
남의 일에
열이 나고, 마음 아프고...
나이들면
남의 허물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소설인데 하면서도,
맞아요
남의 아프고 힘든일을 듣는 것도 쉽지 않아요
듣는 것 뿐만 아니라 도우고 풀어주려고
폭력상담소 설립하고 한참 운영하다가
내가 속병이 날 지경이라
조용히 물러났지요 ㅎ
늘 댓글 고맙습니다
평온한 휴일 되세요
아... 우리들 세대는 너무 격변하는 시대를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격변하다보니 세대간 의식 차이도 많이 생기고, 올바르게 길 이끌어줄 스승들이 부족하다 보니 가치관도 유행따라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드디어는 돈이 도리를 이기고 돈이 명예를 이기고 돈이 효를 이겨도 속 앓이만 하지 누구 하나 그르다 혼낼 수 없는 세상을 살게 됩니다. 그 격랑 속에 치이고 쓸려나가는 사람들이 마음 여린 사람들, 마음 고운 사람들, 마음 바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것이 참 마음 아픈 일입니다. 부디 좋은 스승들이 있어, 그 길은 틀렸으니 올바른 길로 가라 호통쳐주시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우리들 세대의 주입식 교육 사지선다형 교육으로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도록 한 그 영향도 큰 것 같아요 ㅎ
댓글 고맙습니다
평온한 휴일 되세요
아버지 장례치룬후 장남과의 갈등촉발
우리네 모든 가정집의..행태 같습니다
겨우 1일 모시고도 남들께 대접은
큰오빠가 받는다는건 정말 얄밉긴 하군요
다음 후속편 기댜합니다
옛날에는 이 보다 심한 경우도 비일비재 했지요
읽어주시고 좋은 댓글로 격려주심에
수술받은 손가락을 빼고 독수리타법으로
느릿하게나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추친력 도움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평온한 휴일 되세요
잘 읽었습니다.
화나는 대목에선
같이 화도나고
슬퍼하기도 하고~
참 소중간 공간
소중한 만남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민들의 희노애락은
가까운 사람들로
해서 생겨나지요
평온한 저녁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