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9일
큰돌개혁장로교회 주일예배 ▣주일경독시간 인도: 심진희 집사 ▶시편찬송 시편24편 다같이 ▶경 독 시편24편, 사도행전3장 다같이 ▶합심기도 다같이 ① 성령과 말씀의 예배 / 설교자와 회중을 위해 ② 성찬의 예배/ 은혜언약 안에서의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예배를 위해 ③ 믿음과 순종의 예배/ 배움(교리)과 실천(삶)이 있는 예배를 위해 ▶목사;“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 ▶회중과 함께;“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 예배부름과 송영 시편107편 * 니케아 콘스탄티노플신경 다함께 *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12주일 * 십계명낭독 다함께 * 참회기도 다함께 * 시편찬송 시편127편 헌 상 심진희 집사 목회기도 담임목사 말씀의 강설 요18:28-40② 요한복음 강해(113) 주의만찬 행7:54-60 다함께 * 찬 송 찬송가 524장 다함께 * 강복선언 설교자 * 교제의 인사 다함께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 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 헌금은 미리 준비해 미리 봉헌함에 넣어주세요. *주일오후 교리공부: “성경과 교리”(10) 야고보서 본문이해 |
제12주일 하나님 아들에 관하여 제31문: 왜 예수님을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의 ‘그리스도’라고 부릅니까? 답: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으로 우리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과 뜻을 완전하게 계시해 주는 위대한 선지자가 되셨고 자기 몸을 화목제로 드려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늘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이 되셨으며 우리를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시고 죄에서 승리하시는 삶을 살도록 늘 지켜 보호하시는 영원한 왕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제32문: 그러면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웁니까? 답: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한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부음에 동참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주의 이름을 시인하고 나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며 선한 양식을 가지고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만물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
▣성찬본문/ 행7:54-60
『(행7:54-60)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설교본문/ 요18:28-40
『 (요18:28-40)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상생애 마지막 하루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유다의 배신을 시작으로 대제사장의 집과 빌라도의 법정에 이르기까지 이 일련의 수난의 여정은 그리스도의 지상생애의 종지부이면서 동시에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서 3번의 시험을 받으셨던 것처럼 그분의 공생애의 마지막 여정에서도 동일한 시험이 반복되고 있음을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우리 십자가
이 세 가지 시험은 그리스도의 사명과 관련한 직분들(선지자, 제사장 왕)과 관련된 시험이었습니다.
공생애시작 | 공생애마지막 |
돌을 떡으로 “말씀으로 산다” 선지자 직분 |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선지자 직분 |
육신의 정욕(요일2:16) - 육신 | |
성전에서 뛰어라 “시험하지 말라” 대제사장 직분 | 대제사장의 집에서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대제사장 직분 |
안목의 정욕(요일2:16) - 마귀 | |
사단에게 절하라 “하나님만 경배하라” 왕적직분 | 빌라도의 법정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왕적직분 |
이생의 자랑(요일2:16) - 세상 |
예수의 생애동안 사단의 시험은 집요했고, 일관되었습니다. 사단은 그 백성의 중보자로서의 언약적 책임을 수임한 그리스도의 직무를 한 순간이라도 내려놓도록 충동하기를 십자가 죽음의 자리까지 집요하게 추적해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처음과 나중의 시험이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전 생애를 걸쳐 이 사단의 집요한 시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고단한 삶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순간까지 이 모든 시험들을 온 생애를 걸쳐 직면하셨고 언제나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그 자녀들을 위한 대속적 죽음의 순종을 위해 이루셔야 했던 온전한 지상적 순종의 생애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서 드러나는 지상교회의 시험의 보편성에 관하여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분의 자녀들에게도 이 시험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진지하게 이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개혁파 신학자들은 지상의 교회를 ‘전투하는 교회’라고 명명했던 이유입니다. 지상교회가 받는 시험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과 시험과는 전혀 다른 의미겠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와 연합한 지상교회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지상생애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요15:18;마10:25) 또한 사도들은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의 핵심이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행14:22;딤후1:8) 주님은 사단이 할 수만 있으면 그 택하신 자들에게까지도 미혹하려 할 것이라고(마24:24) 경고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도 이 같은 시험과 시련의 연속인 신자의 삶의 현실을 정확하게 통찰했고, 이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신앙의 여정으로 고백했습니다.1) 또한 시험들을 극복할 유일한 자원으로 기록된 말씀 곧 성경을 주셨음을 천명했습니다.2)
▶여러분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대한 이해와 각오와 결단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경험들이 만들어낸 거룩한 상흔들(stivgma;스티그마,갈6:17)이 여러분의 면류관이며 자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과 시험의 현실은 그리스도의 승리로부터 오는 결정적 승리의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의 지상교회를 향한 박해와 시험은 십자가의 승리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 왕권을 가지고 통치하시기 시작했다는 일종의 표적(sign)입니다.
▶(계12:12-13)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그래서 사도들은 지상에서 그들이 받는 박해와 고난을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왕국의 시민이라는 강력한 증거로 이해했고, 그것은 오히려 지상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쁘고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천국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마05:10)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희생과 헌신을 드리는 신자가 받을 보상은 교회를 통한 지상적 위로를 약속하지만,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면 그것은 영생을 소유했음을 확신해도 좋은 지상적 증거가 됩니다.(막10:30;빌01:28;행05:41) 뿐만 아니라 신자가 경험하는 모든 종류의 시험들은 그 자체로 신자를 인내를 통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약1:4) 존재가 되게 한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약01:02)
그리스도의 어깨너머로 보는 신자의 삶
그러므로 신자는 지상적 삶을 낙관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확고부동한 전망을 갖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지상교회로 하여금 실패와 절망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주님이 이 마지막 죽으심을 앞두고 교회를 향하여 어떻게 격려하셨는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도는 지상교회에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살전5:16-18)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까? 신자의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원인은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초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연합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모든 노획물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오는 모든 특권을 묵상하고 그것을 내적인 확신의 원천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도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승리의 결과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싸움의 방식도 본받아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살전5:19-22)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항상 선을 따르라(15절) | |
개인적 신앙의 태도 | 공적예배의 수단 |
항상 기뻐하라(16) |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19) |
쉬지말고 기도하라(17)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20) |
범사에 감사하라(18)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21) |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22절) |
신자는 교회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말씀)을 선용함으로 예배를 통한 훈련과 공적 순종에 신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상생애를 깊이 묵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이 은혜의 수단들 앞에서 얼마나 신실하셨습니까? 모든 시험들 앞에서 그분은 말씀(약속)에 호소하셨고(마4:4), 항상 기도하는 삶을 일관하셨습니다.(히5:7) 그분은 마지막 성찬의 언약을 제정하시면서 자신이 마실 죽음의 잔을 들고 성부께 감사의 사례를 올리신 분이셨습니다.(눅22:19)
▶ 우리가 빌라도의 재판장면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재판의 부당성을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 배반과 반역의 현장에서 홀로 고독하게 내어던져진 그리스도의 가련한 모습을 동정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모든 일들을 미리 예견하시고, 기꺼이 직면하신 그리스도의 담대함을 엿보려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 두려움의 현장에 우연하게 던져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의 배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돋보이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죽음이 하루아침에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추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지상의 생애를 살아오셨는지, 그 치열하고 일관성 있는 삶의 여정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대속적 죽음의 성례를 온몸으로 감당하시기 위해 전 생애를 어떻게 시험과 싸우시며 인내와 순종으로 견지해 오셨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선이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관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셨고 교회를 향하여 보이신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롬0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고후0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주님이 모든 시험 중에서 견디고 참고, 바라고, 감사하셨음을 기억하십니다. 그분이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의 길을 따라 살아갑니다. 기도로 그 길을 더듬어가며 찾아갑니다. 거룩한 성례의 표지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표지가 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모든 시험 중에 어떻게 승리하셨는지를 교회는 생생하게 목격하며 배워야합니다. 이것이 빌라도의 법정에서 배우는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두렵고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자의 삶의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시험받는 지상교회의 현실을 애써 부정합니다. 번영의 신학, 기복신앙, 현세주의적 신앙등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간에 시험을 낯설어가는 모든 종류의 신앙은 복음적 신앙이 아닙니다.
▶지난 주에 지인 중 모태신앙이라고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분은 코로나를 지나며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 어머님이 교회에 권사님이셨고 교회에서도 유력한 분이셨습니다. 최근에 아버님이 치매에 걸리셨는데 남편 때문에 고생이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울면서 하소연하기를 평생을 하나님을 잘 섬기고 교회에 헌금도 적지 않게 해왔는데 왜 노년에 이렇게 힘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는 원망이었습니다. 어머님한테 뭐라고 말해드려야 할지 자기도 모르겠다는 것이죠. 저는 신자가 고통 중에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불평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함으로 그런 일들을 보는 것에 당혹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제가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견해입니다. 신자의 삶에 시험과 시련이 오는 것을 왜 이상한 일로 여기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사도는 분명히 말합니다.
▶(벧전0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사단은 창세 이래로 쉬지 않고 일합니다. 우리 주님의 생애에 그림자처럼 추적하며 그분을 시험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흩어진 나그네와 같은 교회(벧전1:1)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역설의 복음, 현실을 거꾸로 보기
▶그러므로 빌라도의 법정이야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큰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그것은 빌라도의 재판석이 보여주는 복음의 역전구조입니다. 빌라도의 재판 결과는 시종 예수에 관한 심문을 통해 그가 유대인의 왕임을 반복적으로 선언합니다.(요18:39;요19:14;19) (물론 빌라도의 의도는 유대인들을 조롱하려고 그리스도를 희화화하는 것이었지만.)
이 복음의 역전구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상 그리스도께서 재판을 받고 계시지만, 내용상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그들을 재판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이른바 코람데오(Coram Deo)의 상황입니다. 그리스도는 빌라도 앞에 서 있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 앞에 모든 죄인들이 서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은 요8장에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 관한 재판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범죄 한 여인을 빌미로 그리스도를 심판하려고 돌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요8:7)고 하심으로 그들 모두를 기소하셨고, 예외 없이 모두를(여인을 포함한) 죄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지금 빌라도의 재판장은 형식상 예수가 피고인이지만 내용상 그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있었습니다. 빌라도는 그 사실을 선언하는 까메오 같은 증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앞에서 살핀 것처럼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집에서 있었던 심문은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대제사장이심을 입증합니다.(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치신 분 요18:20) 그리고 마침내 로마 황제의 대리통치자인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이심이 빌라도의 입을 통해서 입증됩니다.
그분이 왕이시라면 이 불법적인 대제사장의 재판석은 순식간에 역전됩니다. 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그들의 반역과 불순종, 악행의 전모가 폭로되고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요한의 역설구조는 박해받는 교회가 경험하는 역전상황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심판을 받아 투석형에 처해졌을 때 스데반은 열린 하늘에서 펼쳐지는 엄위한 하나님의 재판석을 보았습니다.(행7:56)
지상에서는 스데반이 피고의 자리에 있고 유대인들이 재판석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비명같이 폭로한 하늘의 진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셔서 스데반을 변호하고 계실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죄를 고발하고 계시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통쾌한 역전이야기는 잠시 열린 하늘의 틈으로 엿보았던 진실이었고 이것이 교회가 먹구름 가득한 현실 속에서 고난과 시험 중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눈은 이 질척거리는 현실의 땅이 아니라 열린 하늘 저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격려합니다.
▶(히12:0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같은 역설구조는 신자로 하여금 세상을 거꾸로 보는 시선을 갖게 합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거룩한 법인 산상수훈(마5-7장)을 베풀어 주실 때 이 믿음의 시선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의 교훈들을 주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방식으로 주님은 세상을 이기고 또 이기십니다.(계6:2)
▶바울이 스데반의 사형에 가편투표를 하고 흩어진 교회를 박해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양심을 박차를 가하듯이 가시채로 찌르셨습니다.(행26:14)
▶동일하게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박해 받을 수록 오히려 저 세상을 향하여 생명과 사망의 냄새를 더욱 풍기게 될 것입니다.(고전2:14-16)
▶신자는 원수를 향한 인내와 용서는 그들의 머리위에 숯불을 놓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롬12:20)
▶시험을 받을 수록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고 이것이 신자의 온전함을 이루게 되게 할 것입니다.(약1:3-4)
▶고난과 시련과 박해를 받는 지상교회는 이 장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그리스도께서는 재판받는 죄인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하시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정죄하고, 심판합니다.
▶바울은 지상의 교회의 비참한 현실을 뒤집어 역전시키는 복음의 실체를 이렇게 통렬하게 선언합니다.
▶(고후6:7-10)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우리는 왕이요 제사장으로 그리스도처럼 세상을 이깁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립니다. 그리고 항상 이기는 자가 됩니다.(벧전02:09) (고후02:14;살후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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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127문 : 여섯번째 간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는 너무 미약하여서 잠시라도 스스로 우리를 지킬 수 없으며, 또한 철천지 원수인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체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므로,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영적투쟁에 패배하지 않고 최후의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강력하게 원수를 대적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조 성경
1항. 본성의 빛, 그리고 창조와 섭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을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사람에게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지만, 이것들이 구원 얻기에 필요한 지식, 곧 하나님과 그분의 뜻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베풀지는 않는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꺼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고 교회를 향한 자기의 뜻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 후에는 진리를 보다 더 잘 보존하고 보급하며,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의를 대항하여 교회를 보다 확실하게 세우고 위로하실 목적으로 그 동일한 내용을 전부 기록하게 하셨다. 이는 성경을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기 뜻을 계시하시는 이전 방식은 이제 중단되었다.
▣말씀의 반추를 위한 생각들
▣ 시편으로 기도하기!(피터 버미글리)
시편24편
1. 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실 뿐 아니라, 또한 친히 인간을 그 만물의 경작자로 창조하셨고, 황송하게도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을 통하여 죽을 인생들에게 다시 당신과 연합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들이 이 빛으로 나아간 것, 다시 말하자면, 당신이 거하시는 교회라는 거룩한 산에 서게 된 것은 당신에게서 나온 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들이 지나가버릴 헛된 것에 마음을 주거나 허위나 거짓에 빠지지 않고, 그 행위에 아무런 흠이 없고 그 마음에 정결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당신의 긍휼과 친절하심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당신께서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가 당신을 찾고 구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참하게도 이 진리와 정의의 좁은 길을 버리고, 당신한테서 멀리 떨어져 악덕과 쾌락의 험한 골짜기를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처럼 어려운 시절과 혼란스러운 상황에 떨어진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닙니다. 이제 당신의 교회가 어떤 형편인지, 곧 거의 버림받고 파괴되어 있는 처지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악한 행위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될 형벌을 생각하지 마시고, 오히려 당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왜냐하면 당신은 그 힘으로 유명한 강력한 왕이시며 모든 군대들과 능력들을 수중에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당신의 교회를 보호하사 당신의 강한 능력과 믿는 자들을 향한 당신의 지고한 선의를 나타내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