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75차 서산 가야산 정기 산행
1. 등반 개요
가. 등반 구분: 제 175차 정기 산행
나. 등반 일시: 2008년 7월13일 (일요일)
다. 산 행 지: 충남 예산군 및 서산시
라. 참가 인원: 28명(존칭 생략)
늘푸른, 산수유, 금산아지매, 주목나무, 앙코르, 원더풀, 샘물, 이영주, 가촌, 임계근
솔뫼, 소금강, 옥경이, 겨울연가, 이봉영, 상원, 써니, 염승호, 초등학생, 이금식
보라매, 요산, 요산+1, 아이거 북벽, 김선욱, 중원대사, 솜다리, 탱크
2. 산행 개요
06:05 태백가든 앞 출발
06:15 춘천 IC 진입
06:25 춘천 톨게이트 통과
06:50 만종 JC(영동고속도로)
07:25 여주 휴게소
08:00 양지 IC 진입(42번 국도)
08:15 마평 IC (45번 국도)
08:25 서안성 IC(평택 - 안성 고속도로)
08:42 평택-안성 고속도로 종점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
08:50 서해대교 통과
08:52 행담도 휴게소
09:48 해미 톨게이트(45번 국도, 609번 지방도)
10:05 상가리 주차장
10:25 준비 운동 및 신입회원 소개후 산행 시작
10:40 상가리 저수지
11:42 주능선 삼거리(가야봉-석문봉 중간)
11:55 가야봉
12:12 삼거리
12:15 중식
12:55 중식 후 출발
13:18 석문봉 도착
13:50 옥양봉 도착
14:20 철탑 도착
15:35 용현계곡 휴양림 도착
16:00 용현 2리 버스 정류장 밑 개울 도착
16:40 버스 주차장 도착
16:55 하산주 장소로 이동
17:23 하산주 후 출발
17:25 서산 IC 진입(서해안 고속도로)
17:50 행담도 휴게소
18:28 평택-안성고속도로
18:48 서안성 톨게이트 도착(45번 국도)
19:05 마평 교차로(42번 국도)
19:15 양지 IC(영동고속도로) 진입
19:32 여주 휴게소
20:33 석식 후 출발
21:03 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
21:35 홍천강 휴게소
21:51 춘천 톨게이트
22:01 춘천 IC 통과
22:10 태백 가든 앞 도착, 산행 종료
하늘의 일을 하찮은 인간이 어찌 알까만은 요즘의 기상청을 보면 공갈청(구라청), 뒷북청 또는 일기 중계청이 되어 버렸다. 비가 온다는 지난 주 금요일은 비도 안오고 멀쩡하더니만 비 예보가 없던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꽤 많은 비가 왔으니 말이다. 일요일 새벽 5시에 잠을 깨니 우수관으로 비 흘러가는 소리가 꽤나 요란하더니, 밥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고 밖을 내다보니 대룡산 쪽이 환한 것이 해가 뜰 조짐이 보인다.
좀 적은 인원이 참석하는 산행인지라 6시 7분쯤 굿모닝 마트 앞에서 탈 때만해도 차안이 썰렁하더니, 우리 소아과 앞에 이르러 회원들이 대거 승차를 하자 금방 활기가 넘친다. 차 밖으로 느릅나무님이 보인다. 지난 번 산행 때 가지고 갔던 설거지 그릇을 실어 주러 나온 모양이다. 부인인 산수유님 전언에 의하면 이팔 산악회 때문에 이번 산행에는 빠진단다. 내 생각으로는 산악회 이름이 이팔이라서, 이팔은 십육이니 16세의 청춘처럼 활기있게 살자는 의미냐고 물었더니, 이어지는 설명에 배를 잡고 웃었다. 동기들끼리 2시간 산행하고, 8시간 동안 술을 먹는 산행 모임이란다. 중원대사님은 노란 들통을 들고 올라오는데 구수한 감자 냄새가 차안을 진동한다. 아침 일찍 출출한 회원들을 위해 감자를 쪄 왔단다. 대단한 정성이다. 오이 냉국에 아침밥을 한 그릇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냄새를 맡고 보니 회가 동한다. 하나를 까서 소금을 찍어 입에 넣으니 정말 맛있다.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예전 시골에서 여름 주식은 보리밥과 감자였는데, 쌀이 흔치 않은 여름에는 감자떡이 별미였다. 감자 껍질을 벗겨 푹 찐 후에 절구에 찧으면, 찰떡 못지 않게 차지게 변한다. 삶은 강낭콩에 당원(옛날에 쓰던 인공 감미료)을 넣고 찧어서 콩고물을 만든 후에 주먹만하게 뭉친 감자떡에 이 고물을 묻혀서 먹으면 정말 꿀맛이었다.
서해안부터 차차 갤 것이라는 공갈청의 예보와는 달리 간간이 뿌리는 비를 맞으며, 양지 IC에서 42번 국도로 나와 45번 국도를 주행하는데, 신갈 근처가 이금식님의 집이라고 한다. 직장 때문에 두 달 전에 춘천에 왔는데 벌써 이번 산행이 네 번째다. 첫 산행인 장산에서는 고전하는 듯하더니 회차를 거듭할수록 산행에 익숙해져서 지금은 선수가 다됐다.
생전 처음 가 보는 평택-안성간 고속도로 주변에는 옛날 공업화의 상징이었던 높은 굴뚝과 흰 연기의 공장들이 많이 보인다. 종점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말로만 듣던 서해대교를 지나는데 좌우의 풍경이 장관이다. 날씨가 흐려 멀리 보지는 못했지만 콘테이너가 잔뜩 쌓여 있는 평택항이 보이고, 인공섬도 있으며, 어선으로 보이는 배들도 많다. 가촌님은 구름과 안개 속에 떠 있는 서해대교의 모습이 은하철도 999 같다고 한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의 수만 어림잡아 100여개는 될 것 같은 행담도 휴게소 화장실의 규모가 놀랍다. 휴게소 앞 광장에서는 ‘안데스 인디언의 영혼을 깨우는 아파치 공연’이라는 남미 인디언의 악기 연주 소리가 흥겹다.
목적지로 가는 길 좌우로 나무가 없이 초지가 조성된 민둥산이 보이는데, 서산 목장이라는 중원대사님의 귀띔이다. 고 정주영 회장이 여기서 키우던 소를 501마리나 몰고 ‘소떼 방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강원도와는 달리 좌우의 산세가 부드럽다. 예전에 수학 여행 인솔을 할 때 어떤 녀석이 말하기를 이 쪽 산들은 강원도 산에 비하면 참 순하게 생겼다는 말이 맞는 표현이다.
해미 톨게이트를 나와 상가리 주차장에 도착한 후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산행 들머리 찾기도 어렵다. 이정표 하나만 있으면 될 일인데 조금 소홀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5분쯤 가면 남연군묘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에 이정목이 있다. 왼쪽으로 가면 남연군 묘를 거쳐 헬기장과 가야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석문봉과 옥양봉으로 향하는데 우리는 왼쪽 남연군묘 방향으로 길을 잡아 올랐다. 길 양쪽에는 호두나무가 많다. 밭에는 참깨꽃이 만발했다. 예전 참깨꽃을 따서 빨면 달짝지근한 꿀이 나와 자주 빨아 먹다가, 참깨 농사 망친다는 야단도 꽤 들었다.
최초 남연군묘에서 저수지를 거쳐 헬기장 방향으로 오르려 했으나 상가저수지 위에서 들머리를 찾지 못해 논두렁길을 몇 번이나 오락가락하다가 쉼터-암봉 삼거리로 올랐다. 정확한 안내 표지도 없는데다가 음식점 주인 아주머니도 엉뚱한 길을 가르쳐 주어 더욱 헛갈렸다.
비록 들러 보지는 못했지만 남연군 묘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남연군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이니 고종 황제의 할아버지다. 남연군의 묘가 있는 이 자리에는 가야사라는 큰 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 절의 중심이자 금탑이 있던 자리가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 이대에 걸쳐 황제가 날 땅)의 명당 자리라는 풍수설을 믿고 흥선대원군이 절을 불태우고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을 했다. 나중에 고종이 왕이 되자 그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에서 보덕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1868년(고종 5) 독일인 오페르트가 이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들은 조선인이 시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미끼로 통상 조약을 체결하려 했던 것 같다. 이 사건은 대원군이 천주교 탄압령을 내리고 쇄국 정책 등 대외 강경책을 더욱 고수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차장을 출발한 것은 10시 25분이었으나, 산 바로 밑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 것은 11시 5분이었다. 쓰르라미 소리가 요란한,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숲이 우거지고 제법 널찍했으나 흙이 패여 나간 성긴 돌밭이라 걷기가 불편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는 온몸을 쥐어짜듯 땀을 뽑아낸다. 소요산 산행 때보다 더 땀이 난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메모지에 땀이 배어 글씨가 번져 낭패를 볼 정도였다. 더운 날씨에 경사가 가파른 길을 임계근씨는 잘도 올라간다. 백두대간 산행을 두 번씩이나 한 사람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11시 42분 가야봉과 석문봉 중간 삼거리에 도착했다. 가야봉 0.42km, 석문봉 1.23km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바로 석문봉으로 가려는 계획이었으나 가야봉까지의 거리가 420미터밖에 되지 않아 회장님에게 갔다 오겠다는 보고를 하고 솜다리님과 10여분 만에 가야봉 정상에 올랐다. 커다란 세 개의 송신탑과 빨간 벽돌집이 있는 정상 주변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고, 철망에는 ‘가야산 정상 677.6m’라는 조그만 팻말만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 출입금지구역이다. 사방이 암릉으로 되어 있다. 평야 지대에 우뚝 솟은 산이라 사방을 둘러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으나 짙게 낀 안개는 높은 송신탑 끝도 감추어 놓고 있다. “부잣집 고양이 쳐 먹을수록 양양댄다”라는 속담이 있다. 부잣집 고양이는 좋은 먹이를 주어도 갈수록 더 좋은 먹이를 달라고 보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비만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던 것이, 이제는 흐리고 안개가 끼어 좋은 경치를 구경할 수 없다고 불평하고 있으니 내가 부잣집 고양이 꼴이다. 잠시 머물며 사진 한 장을 찍고, 물을 먹으면서 쉬는데, 10여명의 회원들이 올라온다.
다시 삼거리 쪽으로 하산을 하니 석문봉 쪽 암봉에 후미 일행이 앉아서 쉬고 있다. 이 암봉에 올라서니 안개가 걷혀 방금 갔다온 가야봉의 송신탑이 손에 잡힐 듯이 선명하게 보인다. 자리도 제법 넓고, 길다란 의자도 놓여 있어서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이곳저곳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보라매님이 꺼내 놓은, 요상하고 망측하고 민망하게 생긴 술잔 때문에 요절복통을 했다. 이 잔에 주로 여자 회원들에게만 술을 돌리는데, 에로틱한 농담들이 오고 간다. 여기에 걸려든 산수유님은 웃음보가 터져 식사를 못해 허기진 배를, 나중에 하산주 안주인 오징어 무침으로 보충했단다.
점심을 먹고 석문봉으로 가는 길에는 제법 암릉이 있다. 군데군데 밧줄이 있었으나 밧줄을 잡지 않고도 산행이 충분하다. 능선 곳곳에 돌출해 있는 바위는 능선 산행의 묘미를 더해준다. 가을도 아니고 높은 산인데도 불구하고 잠자리 떼가 여유있게 비행하는 것도 이채롭다. 석문봉은 가야산 봉우리 가운데서 가장 바위가 많은 봉우리다. 산행로 중간에 앉아 점심을 먹던 등산객이 나누어 주는 거봉 포도를 고맙게 받아 먹으면서 20여분만에 도착한 석문봉에는 커다란 돌탑과 함께 태극기가 펄럭인다. 돌탑은 백두대간 종주를 기념하기 위해 해미산악회에서 세운 탑이라는 비석이 있다. 태극기 옆에, 예산 산악회에서 세운 ‘가야산 석문봉’이라는 표지석 뒤에는 “내포의 정기 이곳에서 발원하다”라는 문구가 있다. 내포는 충남 아산에서 태안까지의 평야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이 일대에서는 조선 중기의 서경덕, 이지함 등의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석문봉의 서쪽은 단애를 이루고 있어서 계곡이 발아래 아슬아슬한 고도감을 주며 펼쳐진다. 높이 600미터급의 산으로는 놀라운 고도감이다. 그것은 내륙의 산과는 달리 바다가 가까운 곳이라 해발 높이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을 돌려 우리가 올라온 곳을 보니 안개가 걷힌 사이로 상가 저수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저수지 뚝을 지나 올라가는 길이 우리가 처음 가려고 했던, 헬기장, 원효봉, 가야봉 쪽 들머리지만 이미 지나고 말았으니 체념을 한다.
물 한 모금을 먹고, 사진을 찍은 후에 옥양봉으로 향한다. 석문봉에서 옥양봉은 상당히 먼 것 같은 거리감을 주지만 실제로는 30여분 거리다. 석문봉에서 옥양봉으로 가는 길은 조금 내리막길을 이루다가 곧 평탄한 송림속 산길로 변한다. 그러다가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바로 옥양봉이다. 옥양봉에는 표지석이 없고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만 있다. 우측으로 가면 하산길이고 계속 직진을 하면 수정봉이다. 옥양봉을 지나 수정봉으로 향하는데, 지나가던 분이 우리 깃발을 보고 반색을 한다. 영월이 고향이고, 이 고장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딸이 춘천 교대에 다닌다는데, 점쟁이가 따로 없다. 나보고 교사가 아니냐고 묻는 말에 나와 솜다리님이 깜짝 놀랬다.
605 고지에서 잠시 아래를 조망하고 서 있는데, 발밑이 커다란 개미집이다. 흙에 굴을 판 것이 아니고, 잘게 부서진 솔잎이 수북하게 쌓인 개미집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개미가 드나드는데, 그 중 몇 마리가 내 종아리를 타고 올라오더니 사정없이 깨무는데 꽤 따갑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내가 무단 침입자일테니 저들 나름대로의 응징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5분쯤 내려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하산길 같기에 솜다리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지도를 펴서 보고는 잘못 내려온 것 같단다. 급경사 길을 허우적대며 다시 올라가는데, 중원대사님한테서 개미 많은 곳에서 왼쪽으로 갔냐고 무전이 온다. 다시 올라가 보니 눈에 뭐가 씌었었나 보다. 능선 왼쪽으로 분명히 길이 나 있는데 전혀 보지를 못하고 다른 길로 간 것이다. 두 명의 선두가 예닐곱 명으로 불었다. 위험 지역이라고 줄을 매놓은 곳에서 잠시 머물다가 방향 표지가 있는 아랫길로 내려가는데 커다란 묘 2기가 있다. 파평 윤씨의 묘라는 비석이 있는데, 묘 규모가 굉장히 크다. 아무리 아름답고 명당이라고 해도 이 높은 곳에 묘를 쓴 것은 인간의 욕망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손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신선으로 만들려고 그 높은 곳에다 묘를 쓸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묘에서 밑으로 잠시 내려오니 커다란 송전탑이 보이는데 여기서 등산로 표지가 전혀 없다. 밑으로 가는 길이 있으나 공사를 하기 위해 가설한 도로 같다. 탱크님과 솜다리님 등과 같이 모여서 의논을 하다가 솜다리님이 혼자서 위로 나있는 임시 도로로 올라가더니 길이 있다고 한다. 커다란 송전탑 밑으로 조그만 길이 있는데, 나무로 가로 막아 놓은 것이 가지 말라는 것 같아서 찜찜했지만, 무시하고 진행을 하기로 했다. 여기서 나는 배터리가 방전되어 무전이 불통된 원더풀님을 기다리며 후미로 처졌다. 신입 여자 회원의 다리가 많이 풀렸나 보다. 조그만 오르막길을 스틱으로 양쪽에서 견인을 하며 내려간 길은 수정봉이 아니라 용현계곡 자연 휴양림이다. 봉우리 하나를 덜 탄 것이다. 처음 시작도 하나를 빼 먹더니, 끝도 하나를 빼 먹는다. 도립공원이라고 하면서 이정표, 표지판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탓을 할 수밖에.
휴양림 계곡 속에서는 수영도 하고 음식도 나누어 먹으면서 더위를 피하는 가족들이 많았다. 여기서 잠시 옆길로 새자. 초등학교 선생님이 국어 시간에 짧은 글짓기 과제를 냈다. 시제는 ‘엄마 아빠’였다. 잠시 후 받은 학생의 글 중에 단연 압권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엄 - 엄마는
마 - 마덜
아 - 아빠는
빠 - 빠덜‘
휴양림 관리 사무소를 지나 약 10분 정도 내려가니, 용현 2리 버스 정류장 밑으로 개울이 보인다. 전날 온 비때문인지, 위쪽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물이 흐리다. 그래도 모두들 그리로 가서 손발을 닦고, 세수를 하고, 몸을 닦는다. 총무님이 박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올라오라고 했더니 길이 좁아 교행이 되지 못해 밑에서 기다린단다.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보니, 보원사지가 나오고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보원사지 5층 석탑과 부도비, 부도, 석조등, 당간 지주 등이 보인다. 계속 내려가니 중간 중간 보이는 계곡 밑으로는 음식점이 있고, 평상이 놓여 있는데, 물이 흐려 밑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도, 아이들은 태연히 물놀이를 하고 있다. 어떤 나무에서는 조그만 여자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데,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그네를 미는 대신 그네 뒤에 줄을 매달고 당겼다 놓았다 한다. 큰소리로 “특허를 내십시오” 했더니 모두 웃는다.
서해안 고속도로 다리 밑에서 오징어 무침을 안주로 하산주를 하고는 행담도 휴게소에 들러 경비하는 사람과 저녁 식사 장소를 빌리기 위해 교섭을 했으나 안된단다. 올라가는 길 낙조에 물든 서해대교 밑으로는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고, 바다 가운데에는 크고 작은 배가 한가로이 떠 있다. 평택-안성 고속도로를 주행하는데, 왼쪽에서는 KTX가 말 그대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여주 휴게소에서 저녁 먹을 자리를 찾다가 휴게소 건물 뒤편으로 갔더니 철망 사이로 조그만 문이 나 있다. 모든 도구 및 식재료를 들고 문으로 나가서 번개같이 저녁 식사를 해결한 후 버스에 타고는 뒤편으로 나가려고 버스가 진행을 하는데 앞이 막혀 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버스에 재활용품 선별 작업을 하던 인부들의 놀란 표정이 우스웠다. 겨우 후진으로 빠져 나온 우리는 홍천 휴게소를 거쳐 춘천 톨게이트를 지나 원창 고개를 넘었는데, 보라매님의 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나 깨나 당신 생각에, 당신이 없으면 맛있는 밥도 모래를 씹는 것 같다는 보라매님의 너스레 때문에 차안은 웃음바다가 된다. 이 소리를 들은 가촌님이 “지금까지 들은 코미디 중에 가장 웃기는 코미디였다”라는 한마디에 모두들 자지러지게 웃는다. 몇 군데서 회원들을 내린 버스는 10시 20분에 태백 가든 앞에 도착하는 것으로 산행을 마감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들머리를 찾지 못해서, 중간에는 높은 온도와 짙은 습기 때문에, 나중에는 날머리를 찾기 어려워 진땀을 뺀 하루였다.
처음부터 선두에서 지도를 펼쳐 가며 길찾기에 고심을 한 솜다리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산행기를 접는다.
|
첫댓글 너무 애쓰셨어요 글을 읽다보니 소요산 힘든산행이 생각나네요 그런데 길까지 헤메셨쓰니 정말 고생하셨어요 글을 보면서 머리속에 산행하시는 모습들이 그려지네요 글 잘보고 갑니다 야유회 때 뵙지요
소요산만큼이나 땀이 나는 산행이었습니다. 다음 야유회때 뵙겠습니다.
이번 산행은 불가마에 들어갔다온거처럼 개운했슴다. 힘들지만 회장님과 운영위원님들의 수고로 재미있게 안산하고 이렇게 후기글까지 웃으면서 볼수있게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원님들 모두 수고하셨어용 ^*^
역시 앙코르님의 환한 미소는 일품이십니다.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산행하시느라고 고생하셨죠?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가야산엔 꼭 가봐야 한다는 알콜의 말에 갈려구 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취소를 했지만 소금강님의 산행후기 잃으면서 구지 힘들게 갈필요 없다는생각을 했읍니다..ㅎㅎ실제로가서도 어딜다녀왔는지 기억못하는데 소금강님의 산행후기을 읽으면 다녀온 것보다 기억에 더 남거든요? 감사히 잘잃었읍니다....이젠 소금강님의 산행후기로만 접수해야 할까봅니다....행복한 하루되세요.
요새 푸른 산악회 각 코너에 민들레님의 활약이 대단하십니다. 신청을 하셨다가 산행 당일 아침에 보이지 않아서 섭섭했습니다.
가야산행 오붓하게 잼나게 잘 다녀오신거 같네요..푸른의 산행은 늘 즐거운 얘기꺼리가 있는거 같아요..높은 기온과 습도로 인해 고생은 하셨지만 그래도 푸른님들로 인해 그 힘듬을 이겨낼수 있는게 아닌가 싶네요..^^후기글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후기의 열혈 독자님이신 가끔님, 1주 동안 잘 지내셨죠? 밝고 환한 모습 야유회때 뵙겠습니다.
무더위와 습기때문에 산행하면서 그렇게 많은 땀을 흘려보긴 첨인거 같습니다. 선두에서 솜다리님. 탱크님과 함께 이정표도 제대로 없는 길 찿으시느라 고생 많이 하신 산행이었습니다..덕분에 저희들은 편안한 산행 했구요~~행복하고 건강한 한주 보내시구 야유회산행에서 뵙겠습니다...
야유회 준비 하시려면 또 바쁘시겠네요. 항상 수고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산행후기 감상 잘 했습니다. 힘든 산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억이 많이 남겠네요. 산행에 나타난 글을 보니 누구님께서 농을 하시고 웃으시고 하신 모습니 선합니다. 후기쓰시느라 수고 많으셨고요. 찌근한 날씨에 건강조심하시고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
항상 푸른 산악회를 사랑하시고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악회 많은 코너에 님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내외분 ,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언제나 선두에서 수고하시는데 가야산행은 더 많은 고생이 있으신거 같네요... 힘든 산행에 준간중간 메모하시고 ..이렇게 변함없이 후기까지... 세세하게 표현하신게 산세가 눈에 그려지는거 같습니다. 정말 잘읽고 갑니다. ... ^ * ^ ~~~
지난번 소요산 산행에서 사과나무님의 환한 얼굴과 상큼한 후기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후기 댓글의 '오라버님'이라는 말에는 두둥실 떠다녔습니다. 야유회 신청을 하셨으니 그 때 뵙겠습니다.
역시 생생한 후기를 남기셨네요. 기록의 힘이 느껴집니다.
군대에서 독도법을 배울 때 땡땡이 치느라고 제대로 못한 결과를 요즘에 톡톡히 느낍니다. 시종일관 선두에서 고생하신 솜다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안내표지가 없어 아쉬움이 큰 가야산행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속에서 꼼꼼하게 메모까지 하시고 항상 감사드려요... 역사공부까지하고 후기글 잘보고 갑니다^^
원더풀님과 샘물님을 뵈면 정말로 즐겁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다정하게 보이는지요. 저희 부부도 두 분을 닮기 위해 애쓰도록 하겠습니다. 야유회 때 뵙겠습니다.
비가 안 내린것으로 위안 삼기엔 여러모로 어려웠던 산행이었습니다.선두에서의 수고로 여러 회원님들이 편이 산행 할수 있었습니다.함께 땀흘려 산행한 여러 회원님들과 매 산행 수고와 재미있고 소중한 기록 남겨주시는 님께 감사드림니다
처음 계획에서 뿐만 아니라, 직접 산행에서도 그때그때 상황 판단을 하고 결심을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이 산악회장님의 고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야 몸만 조금 움직이면 되는 일이니까 별로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산행후기 기막힌 글 입니다. 한참 걸렸네요. 수고 많으셨읍니다. 그래서 산행에서는 사전/산행간 지도판독이 가장 중요 하답니다. 특히 야간산행과 악천후 산행에서는 더더욱!
등산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아 가는 산마다 처음 가는 산입니다. 더불어 산행에 대한 지식도 없어서, 요번과 같이 이정표나 안내판이 없는 곳을 가면 고전을 합니다. 많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행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소금강님의후기글 역실히읽으면서 저도 대한민국의 명산에 대한 지식이 훨 늘어난것같네요 .재미있게 잘읽고 갑니다.
이곳은 더위가 한창인데, 독일의 날씨는 어떤지요? 항상 관심을 갖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일의 여름은 한국에비해 아주시원한편입니다 .첫째는 장마비 라는게없고 여름 이라도 비가오면 항창 춥지요 .그래서 저도 한국갈일있으면 꼭가을에 가도록 노력하구요 . 독일에대해 알고싶으신일있으면 항상 연락주세요 .
금년 여름내내 흘릴 땀을 가야산에서 모두 흘린것 같군요. 무더위속에서도 소금강님을 비롯해 함께했던 푸른님들 덕분에 더없이 즐겁고 보람찬 산행이었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했던 운무, 시기적으로 보아 가을의 전령인 고추잠자리는 아닌것 같은데, 능선길에서 우리를 반겨 주었던 잠자리떼,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더해 주었던 돼지껍데기 등 산행길에서 즐거웠던 일들이 후기를 통해 더욱 새록새록 떠오르는군요. 좋은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식은 돼지 껍데기의 맛은 그렇게 뻣뻣하더니, 여주 휴게소에서 저녁 먹을 때 닭갈비 옆에다 데웠더니,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길 찾느라고 헤매고, 이래저래 기억에 남는 산행을 같이 하신 주목나무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복중에 집필 하시느라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점심 식사 제대로 못해서 시장하셨죠? 이팔 산악회에 다녀오신 느릅나무 형님은 무사하신지요? 컴퓨터 다 고치셨으니까 나오신 모양이네요. 일요일 야유회에서 뵙겠습니다.
네 컴푸터는 고칠 수준을 지나 폐기 처분하고 새로운 컴 22인치 lcd 모니터로 구입했습니다. 회장님이 더운 날씨에 인터넷에서 구입해서 설치까지 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인연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느릅나무님은 18~20일 까지 출장을 경남 고성으로 떠났습니다.소금강님 께서도 선두에서 고생 많으셨지요?푸른에서 인연이 무엇보다 중요한 연으로 이어지길 바라겠습니다. 회원님들과는 늘 산행만 하다가 야유회까지 하는 가까운 사이로 발전 했으니 얼마나 좋고 설레는지 모릅니다.늘 뒤에서 소금강님 같으신 분이 많은 덕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더운 날씨 건강 조심 하시고 즐거운 일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