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발목을 잡던 코로나19가 팬데믹에서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며 경제적 훈풍이 불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지만, 고물가ㆍ고환율ㆍ고금리 등 `3고(高) 현상`이 덮치며 신흥국들이 줄줄이 디폴트 위기에 놓이게 된 것 이다.
코로나19 2년 6개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안 그래도 부패한 관료 시스템에 찌들었던 신흥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료비와 비료값 상승으로 식품 소비자가격이 올랐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계들이 줄줄이 줄도산하며 국가 재정 파탄이란 화살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자들의 시위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재의 임금으로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물가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는 외침이다. 물가 폭등과 금리인상으로 신흥국은 연쇄국가부도위기를 겪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는 코로나 사태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며 신흥국의 부채 상황 유예를 주요 20개국에 요청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 준비제도의 금리인상과 달러 강세로 갑자기 불어난 자금조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신흥국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에콰도르, 튀니지, 파키스탄, 페루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물가폭등과 성장 둔화로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에 미국과 유럽의 금리 인상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잠비아와 레바논은 국가부도 직전이고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파키스탄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인도양의 진주`로 불리던 스리랑카는 지난달 19일 국가부도 선언 이후 모든 경제활동이 마비됐다. 스리랑카 국가부도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도 비슷한 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에서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걸맞은 체질 개선을 이루지 못한 것이 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미국 연방 준비제도(Fedㆍ연준)가 연내 기준금리를 3%대 후반까지 인상할 경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고 원/달러 환율은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통계청이 지난 5일 내놓은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6% 올랐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였던 1998년 11월(6.8%)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문제는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달 전기ㆍ가스ㆍ수도요금이 올랐고 농축수산물가격도 오름세여서, 물가상승률 7%도 배제할 수 없다.
블룸버그 통신이 한국을 국가부도 위기 50위 국가에 포함시켜 주목을 끈다. 기사에는 50개 신흥국의 부채 취약성 순위를 정리한 표가 실렸다. 여기에 한국은 47위를 기록한 것. 1위는 엘살바도르, 뒤를 이어 가나, 이집트, 튀니지, 파키스탄 등이 디폴트 가능성이 큰 국가들로 꼽았다. 기사에 한국의 디폴트 가능성에 대해 따로 지적한 부분은 없다.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54bp로, 50개 신흥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자료대로라면 한국의 국가 파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경제가 안심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 정부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양호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특히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어섰고, 가계부채가 국내총생산보다 많아져 금리 인상 시 빚을 갚지 못하는 취약가구가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미국이 세계의 돈을 급격히 빨아들이면 기초체력이 약한 나라부터 줄줄이 충격을 받게 된다. 한국으로선 `스리랑카 발 도미노 부도` 우려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때가 아니다. 우리 경제의 하반기 전망이 캄캄하다. 물가는 급격히 치솟고, 경기는 살아나지 않는 데다, 경상ㆍ재정수지 적자 경고등도 켜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고유가, 달러 강세 등 요인들이 나라 밖에서 비롯돼 뾰족한 해법도 없는 실정이다.
고물가ㆍ고환율ㆍ고금리라는 삼중고 속에 4월 경상수지가 국제 유가ㆍ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2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당장 금융ㆍ환율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 정부와 한은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가능한 모든 재정ㆍ통화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더 기울어지면 무너진다.
우리는 과거에도 국가 차원의 위기를 맞은 적이 많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가 세계경제에 뒤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기술력과 인적자원 이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특히 위기 국면에서는 경제 심리가 악화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당장의 어려움들은 있을 것이지만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새로운 경제 도약의 계기로 모두가 다시 한 번 허리띠를 졸라 맬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