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게 제일 무서운 존재는,
아버지, 내 아버지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도깨비, 귀신, 상여집, 해골, 어떤 무서운 사물, 무서운 사람
그 어떤 모두를 망라한다 해도, 비교의 대상이 될 수없을 정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우리 옆집에 서울에서 전학왔다는 승완(가명)이는
큰 편에 속하는 내 키보다도 커서
대가리 하나 더 있는 듯 높았고,
무얼 얼마나 먹어댔는지는 몰라도
저팔개처럼 통통해서 옆으로도 많이 퍼져 있어
한덩치하고 있었다.
하필 저런 게 내 옆집으로 이사-ㄹ오다니
처음부터 싫었다.
사람이 첫 느낌이라니,
녀석은 내게 다짜고짜로 자기 가방을 들고 다닐 것을
내게 주문했고, 착하디 착한 난 아무 반항도 못하고
그렇게 해 주었다.
오른 어깨에는 내가방,
왼 어깨에는 그녀석 가방하는 식으로.
무거웠지만 늘 그렇게 다니기 달포쯤 지났을 무렵.
출근하시던 무서운 호랑이 아버지에게 그 몰골을 들키고 말았으니,
"넌 왜 가방이 두개이니?"
"그 그게,..." 말을 얼버무리는 나로부터
녀석은 얼른 자기 가방을 가져간다.
그 날 저녁,
아버지에게서 무지 혼났다.
"너 다음에 그놈 가방들고 다니면 죽는다. 알았어!"
"예에!" 힘없이 fade out!
그 다음날 아침
예의 녀석은 내게 또 자기 가방을 드리민다.
내게 어제 아버지로부터 혼나던 순간부터 고민해오던 일들은
일어나고 있는 거고, 이제 판단의 순간을 맞고있다.
이놈에게 죽던지, 아니면 아버지에게 죽던지?
양자 택일의 순간인 거였지.
"못해. 그렇게는 못한다."
"뭐라고 못한다구. 너 죽을래?"
녀석의 주먹이 먼저 날랐고, 나도 대항하고 나섰다.
언젠가 선생님이 "넌 체육에 소질이 있구나" 했었는데,
내게 언제 그런 힘이 잠재해 있었던 거며,
그렇게 날쌨는가?
나도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돼지같은 승완이는 내게 떡이 되가고 있었다.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그래 맞어!
그건 지금 기억으로도
떡이 되어있는 거다.
그동안의 보상심리라도 작용한 것일까?
엄청 두둘겨 패 주었다.
그의 똘만이 역을 하는 아이들은 내게로 모여들었다.
그 후 난 학교에서 싸움에서 제1인자 자리에 군림하고 있는 거다.
호랑이 아버지가 만들어 준 제 1의 자리.
그 때 아버지가 아니었더면 지금쯤 '국회위원 가방모찌'를 하고 있으려나?
그 후 승완이는 또 다시 전학을 떠났고,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모 시에서 조폭 두목이 되었다는 거다.
어떤 친구가 만났더랬는데
언제 너와 대포한잔하고 싶다더라며 전해 준다.
오늘 설금님의 '우정이란?'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불연듯 그 친구가 몹시 보고 싶어진다.
저승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고 계신
내 고마운 호랑이 아버지 생각과 함께.
몹시도 그리워지는 친구들이다.
혹여 60대방에 와서 함께 더불면 무지 좋을텐데,.....
첫댓글 ㅎ ㅎ ㅎ 재미있네요. 저는 지금도 아버지께서 놀리는 일이 있어요. 6.25 전이니까 저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외삼촌이 옆집에서 왕 눈사탕 공장을 했는데, 제가 그 사탕을 들고 나가서, 매일 얻어 맞는 남자 아이들을 세워놓고 혀바닥에다 한번씩 사탕을 쓱 발라 주더라나요. 그걸 먹겠다고 뒷짐지고 입을 벌리고 혀바닥을 내 놓고 서있는 아이들도 웃읍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고 지금도 놀리신다니까요. 가끔은 늘 맞기만 한 나에게도 그런 깡?이 생긴 것이 아닐까요? ㅎ ㅎ ㅎ 지금 쯤 그 친구들도 노 신사가 되어있겠지요? 재미있는 글로 이어 주셨군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설금님이랑 한동네 살지 않았던 걸 큰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한동네 살았더라면 거기서 혀 내민 채로 망부석 비슷하게 굳어져 지금도 서 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ㅎㅎㅎㅎㅎ
원참 님, 우린 만나더라도 주먹 같은 건 치우고 사귑시다. 그런데, 얻어터져야 설금님이 발라주는 사탕맛을 한 번이라도 볼 것 아닌가? 어느걸 선택한다?~?? 고민되네~!! 히히히히히
도란도란시골길 대 선배님! 별 말씀 다하십니다. ㅎㅎㅎㅎ 저도 한참 후배이지만 권투시합같은 건 이미 오래전에 접었는 걸요. ㅎㅎㅎ 건강하십시요.
논설수필방 어렵고 주눅 들었었는데 재미있고 실컷웃고 유익하고... 좋은 하루 되십시요
세상을 사노라면 어디를 막론하고 날씨처럼 개였다 흐렸다 하더라구요. 좋은 하루되십시요.
흐흐흐, 저는 초등학교 때, 덩치가 커서 동네 아이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였지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어떤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는지는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요. 그런데 그만 그 키가 중학교 2학년으로 자라는 것을 멈추고 말았답니다. 세살 쩍 버릇 여든 간다고, 지금도 약간은 그 기질이 남아 있지 싶습니다. ㅎㅎㅎ
아무래도 유사점이라거니, 공통분모거니 닮은 점이 희안하게 많다 느껴집니다. 다른 점은 제게는 지금은 씨도 없이 그 기질이 남아있지 않은데, 송천.님은 아직 남아있군요. 항상 염두에 두겠습니다. ㅎㅎㅎㅎㅎ
재미있는 우정이야기 군요. 추억에 남을 계기가 지금 더욱 그리운 우정으로 될것 같지요.
그렇습니다. ㅎㅎㅎ 건강하십시요. 야국님!
그때는 이판사판 어느 쪽으로든 죽을 수 밖에 없으니 쫓기던 쥐가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식이지요 아버지의 보이지 않던 힘은 절대적이며 대단했습니다 곧 신앙이였지요 그런 추억이 참 많습니다 님의 얘기도 너무 재미 있구요 곰곰히 생각해 보셔요 또 얘기가 있는지요.....즐감했습니다.
곰곰히 생각지 않고도, 눈만 감아도 무진장 떠오릅니다. 얘기를 책으로 엮을만큼 많은데, 재주없음에,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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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문열의 그런 게 있군요. 법보다 우선 당장은 제대로 통하는 방편이지요. 그시절이 아니라도 요즈음도 그런 곳이 많이 있던데요. ㅎㅎㅎ
추억은 정말 아름답지요.이야기가 재미있어요. 항상 건강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별님abcd님 건강하세요.
기립박수라도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xxx를 '머리'라고 바꾸어 표현하셨더라면 금상첨화가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ㅎㅎㅎ
꽃비님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무얼 얼마나 먹어댔는지는 몰라도'라는 대목에서도 '쳐'자를 넣어서 '쳐먹어댔는지'로 쓰려던 건데, 그걸 빼놓은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거친 말을 많이 하다보니, '머리', '먹다' 그런 말은 왠지 맛이 없어요. 마치 소금끼있는 음식을 즐기던 이가 싱거운 음식 맛보듯이요. ㅎㅎㅎㅎ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통쾌한 마음으로... 초등학교적엔 공부를 잘 하면 우두머리가 되는일이 많았지 않았나요? ㅎㅎ
ㅎㅎㅎ 간만입니다. 손녀 예쁘지요. 공부까지 잘하면 오죽 좋았을까요. 담쌓고 살았더니, 망치만 들고 삽니다. ㅎㅎㅎ
아버지는 무서운 분이지만 큰 산이시고 우리의 힘이시지요. 오늘따라 님의 글 읽으니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짐니다.
아 그러시군요. 나도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큰 산이 아니고 바다이었는데요. ㅎㅎㅎㅎ
싸움을 잘하는 녀석이 공부까지 잘하면? 우두머리에 대장이요 세상천지 부러울 것이 없는 학생시절을 보내겠지요. 저는 아직도 그런 기질이 좀 남아서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사회정의 구현' 좋은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그 사회정의 구현하겠다던 전뭐시기는 호주머니 29만원이라더니, 그 자식이나 어케 치워주십시요. ㅎㅎㅎ
엄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난 세대는 제 앞가림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엄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마음을 밑바탕에 두시니까요. 자라면서, 철나며. 그 은공을 알게되죠. 지나가 버린 추억 하나에 평생동안 행복할 수도 있음을 새삼 알았습니다.
아니 따오기님은 지금 저를 지켜보고 계신 겁니까? 이야! 족집게, 맞어 족집게십니다. 어케 그리 내 마음을 읽고 계십니까? 놀랄 뿐입니다. ㅎㅎㅎ
으흠!! 내가 자식 교육은 확실히 했지....
비올라님이시라! 아 역시 닉다웁게 그윽한 그 소리 널리 퍼지는듯 '자식교육'까지 미치는 거로군요. 외마디같은 글에 그게 담겨있습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