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듣는다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아름다움을 말할 수밖에 (抄)
이혜미 ⸳ 백은선
절망과 좌절 속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 슬픔의 긴 사다리를 오르며 중얼거리는 사람이 있다. 어두운 구름 속에서 더 어두운 빗방울이 떨어질 때 우산을 버리자고 속삭이는 사람이. 다 망해버리자고. 이번 생은 흔들리며 갈 뿐이라 슬프고 좋지 않으냐고. 끝없이 긴 문장을 쓰는 손. 시는 이어지고 이어지다 자신을 모르게 되고. 문장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 셰에라자드처럼. 시를 쓰는 순간에는 시간을 거스를 수 있을 것 같고 이미 여러 겹의 영원을 지어 얻은 것 같아서, 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더 작은 문을 열고, 더 작은 문을 열고. 그렇게 끝없이 작아지며 나아간다. “경멸과 비참 속에서 / 할 줄 아는 건 아름답게 있는 것뿐이라서”(「조롱」) 도래할 빛들을 받아 적으며 문장과 함께 걸어간다. 새삼 다정하게 안겨오는 환멸이라면 그 속에서 노닐고 춤출 수밖에 없으니까.
(이하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이혜미 시인과 백은선 시인의 대담이 자유롭게 진행됩니다. 그러다가 백은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속의 첫 작품 「조롱」(전문 31쪽의 장시, 2백자 원고지 53매)과 관련되는 부분의 대담만 새겨봅니다. _강인한)
조롱
백은선
죽어서도 죽고 싶은
나를
너희들은 천사라 부르지
죽은 천사는 벽에 갇혀 노래한다
천천히 부서지는 기억의 형상
잊히지 않는 푸른 손의 여인들
시간은 너무 많고 끝나지 않아
쇠구슬을 이 접시에서 다음 접시로
조심스럽게 옮겨 담는 손가락
좌표 값 꽃이 진저리치며 시드는 동안
두 귀가 커지는 기분
견딜 수 없는 통증
깃털을 씹으며 인사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가지고 다닌다지
이 숲은 휘청이고 자꾸만 실족하네
천상의 노래를 오늘 밤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이여
그렇지만 이 숲은 뒤집히고 우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
나는 태풍
태풍이 지나간 텅 빈 방
이미 죽은 천사
죽고 있는 천사
죽어서 다시 태어난 천사
죽음의 바깥에서 죽음을 관전하는 천사
천사가 아닌 천사
천사였던 천사
죽어도 천사인 천사
천사뿐인
죽음
속에서 //천사//
나는 관망하고 다시 활강하고
숫자를 세고 아프고 웃고
인과 없이 다 죽는 노래를 만들지
모두가 천사라서
제일 슬픈 오늘 밤
너는 기쁘고
뜨겁고
멀어
이제 다시 공포를 불러올 것
시시하고 시시해
헛소리나 지껄이겠지
영혼
빛을 으깨 만든 망치
청력이 분실된 사물함 속 입 천 개
동시다발 중얼거리는
잠든 태내의 아이들이 꾸는 꿈의 총합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어둠과 어둠
어둠에 가까운 색
(끝없이)
(계속 끝없이)
가까이 와볼래?
끌어안을 수 있게
눈을 만드는 하늘 위의 존재가
구름을 부리는 커다란 손이
아픔을 몰라서
아픔을 줄 수 있다고
그렇게 믿자
나와 너는
하얗고 빛나는 상자 속에서 나란히 앉아
마주 보지 않고
가만히 흔들리고 훌쩍이고
마음에 파랗게 멍이 들고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칼을 꽂지
긴 칼날에 줄줄이 꿰인
천사들
파드득//날개//흔들 때
가장 밝은 것과 가장 어두운 것의
총합은 같다고
눈물에 눈물을 더하고
절벽에 절벽을 더해
상자는 가득 차
다 너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매일 견디지 매번 죽지
죄를 고백하는 밤마다
존재를 혼동하는
존재 너머의 파닥거림
그것은
*
더 이상 사랑을 믿을 수 없다면, 천사는 무엇에 복무할 수 있을까. 가능한 것은 접시를 뒤집어 구슬을 쏟는 일. 얼음 위에 눈. 얼음 위에 눈. 얼음 위에 눈. 다시 얼고. 다시 얼고. 다시 언다. 겹겹 쌓여 가는 하얗고 빛나는 형상. 그것을 이해하려고 우리는 노래를 배웠지. 어떤 음률도 그곳에 가닿을 수 없네. 무수히 흩어지는 소리. 금속성의 소리. 거기서 내가 본 건 단지 슬픔 아니면 생. 탄생. 처음부터
세상에 슬픔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슬픔을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까. 우리는 세 명의 아이 낳아 돌보네. 커다란 손들. 커다란 손들. 예쁘고 아름답고 따듯한 것만 가르칠 거야.
*
내가 죽고 난 다음 너는 내가 된다
내가 죽고 난 다음 너는 내가 되었다
내가 죽고 난 다음 너는 나였다
정적이 가득한 도시의 밤
거대한 빌딩들
얼어붙은 뼈들
뼈아프다
뼈아프다
20141122
이것은 대본입니다. 유명한 영화감독 빈 헤르스 허가 꿈속에서 쓴 대본입니다. 그가 미처 만들지 못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끝나지 않은 노래’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절대로 촬영할 수 없는 대본입니다.
천사들로 가득한 상자와
빛을 엮어 만든 빈 상자
서로를 혼동하는 두 사람
육면 가득 카메라
찍는 동시에 상영합니다.
조금씩 어긋난 680개의 프레임이
수많은 창
세포처럼 화면 위를 흐르고
폭력을 기다린다.
사랑의 산란의 깃
엎드린 청력의 깃
어떤 장에는 읽을 수 없는 문자들이 가득하고
그 챕터에 거장은
형상화할 수 없는 슬픔, 이라 써놓았다.
그는 미쳤어.
노래를 부르지 마.
어느 나라 말로 쓰여 있나요.
그가 아는 모든 언어로.
터질 것 같은 물주머니로.
영원한 불같은 혀끝으로.
‘화면조정’
+++⁂⁂+++
처음의 제목이었지.
*
아이들은 웁니다. 잘 울죠. 내 딸도 곧잘 울곤 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아가들이 하는 일이 우는 거니까요. 천성은 어떤 인간도 버릴 수 없습니다. 나도 울어요. 내 안에 아이가 숨어 있나 봐요.
울음은 피를 흔들어 깨우고
나는 태풍
요람 속 작은 이마
눈이 내려
눈이 내려
흔들리며
천사의 날개가
빨갛게 웃을 때
노래할까
네 입술의 작은 떨림에 맞춰 짜인 직물처럼
노래할까
얘기하고 싶었어 내 모든 기쁨과 슬픔을 내 못난 얼굴과 손과 굽은 어깨를
만져줘 용기를 줘 사랑해줘
이것은 누구의 유언?
누가 버린 휘어진 모서리?
돌고 있는 영사기. 탁, 탁, 끝나버린 필름이 돌아가며 부딪는 소리 (( (( (( (( (( (( (( (( (( (( (( (( (( (( (( 상영관을 나가기 전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모든 장면을 적어주세요. 이것이 유일한 질문이었고 질문을 토대로 만들어진 두 개의 필름.
모두가 기억한 장면들을 편집한: 어떤 그래프의 꼭대기를 오려낸 것과 같은 필름.
모두가 잊은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잊힌 장면들로 만들어진 그 영화를, 나라고 생각해요. 천사가 가만히 내려앉으며 말할 때. 그렇게 긴 날숨은 처음이었다고. 이제 남은 건 ( ⸺ )뿐이라고/
계속하세요.
그 모든 것을.
빛의 어깨가 부풀어 오를 때 눈물이 엎질러질 때 종소리 다음 적막이 영혼을 부러뜨릴 때
감응
디스토션
봄
엉키고 뒤섞인 한 덩이 육체 보는 것 만지는 것 소리 내는 것 들 사이 상상으로 가득한 얼어붙은 허공 이제 이동합니다 천천히 노래하세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수해지는 잎 무수해지는 피 술렁이는 술렁이는 ( ⸺ )
*
새끼손가락만큼 작아진 네가 내 배꼽 위에 앉아 있다. 버둥거리며 다리를 흔든다. 인사는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 네가 말하면 나는 위장으로 듣는다.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고래처럼.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듣기 싫은 말은 커다란 파이 속에 숨겨 삼켜버린다. 날갯짓. 우리의 대화체를 그렇게 불렀지. 우리는 천사가 아니니까. 괜찮아. 어두운 벽에 붙어 차가운 잠을 잔다. 아직이야. 아직. 돌아누우며 찡그린 얼굴로 네가 말한다.
신은 영원이 싫어
지루함이 싫어
이야기를 만들고 세계를 만들어
가령 겨울 다음 봄이라는 서사
하양 검정 파랑
하양 검정 파랑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봄이라는 죽음에 대해
말할 수는 있었다.
지나가던 파랑이 검정을 흉내 내며 웃었지.
커다란 입을 열어 불렀지.
*
거의 강간이야.
아이 셋을 앉혀두고 그녀와 나는 영어로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끔은 너무 오래 신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내 아버지 같다. 혹은 남동생. 그러나 알 수 없기 때문에 신과 친밀해질 수 있다. 진실보다 어려운 것은 변명이다. 그래서 웃었지. 내가 본 모든 미소를 따라.
거의 그렇지. 그녀는 대답한다. 다음번엔 그 사람 뺨을 갈겨. 어차피 기억도 못할 거야. 뒷좌석에 앉아 내 귀에 속삭이지.
그렇지만 아무도 때리고 싶지 않아. 나는 나를 때리기로 했어. 나의 귀. 나의 귀. 나의 귀. 처음 네가 태어났을 때 네 날개는 손바닥보다 작았는데. 매일 자라났어. 결국 네 몸보다 더 커졌고 너는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고 매일매일 울었잖아. 왜 나만 다르냐고. 다른 형제들처럼 매끈한 등을 갖고 싶다고 울었잖아.
나는 엄마인데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네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 배운 게 좌절이라는 게 너무 미안해서. 같이 울었지.
*
세상에서 가장 큰 가위를 달라고 기도하는 거 다 알아
네 두 눈에 보이는 게 피뿐이라는 것도
눈물을 달고 살아서 그렇게 눈이 나빠진 것도
안경을 쓴 천사
경멸과 비참 속에서
할 줄 아는 건 아름답게 있는 것뿐이라서
나는 사물이에요?
너는, 옥상에 서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저 차들을 이해해. 말했지.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트, 일랜드, 아우거, 리히버, 리히버, 리히버, 리히버……
네 입에서 새싹처럼 돋던 푸른 말들 갇혀서 돌고 있는 육신 안에 새겨진 말들 영원히 꺼낼 수 없는 말들 거짓보다 거짓인 말들 그래서 간신히 약간의 진실만 획득한 말들 전쟁이 나면 나는 말을 탈 거야 폭격 속으로 돌진할 거야 가장 아픈 건 빛이라는 걸 그걸 만들어 낸 손들을 증오할 거야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증오할 거야
왜 나는 날면 안돼요?
그날 너의 마지막 질문이 아주 오래 마음 속에 남았단다. 그 말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단다.
항상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다니. 그보다 웃긴 일은 없을 거라고. 나는 공룡처럼 생각했다.
그보다 구체적인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었지 노래를
네게 불러주려고
불과 나무의 노래를
모두 죽어버리는 이야기를
*
옛날옛날
나무를 사랑한 불이 있었단다
나무를 사랑한 불
불을 사랑한 나무가 있었단다
불을 사랑한 나무
나무는 두 발이 묶여
불에게 갈 수 없고
불은 나무가 뜨거울까 두려워
나무에게 갈 수 없었지
어느 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올 때
커다란 보름달이 떴을 때
불은 그만 나무에게 다가갔다
나무는 검게 그을린 채 웃었어
검게 그을린 채
나무는 타올라 재가 되었단다
그때 아침이 밝아오고
불은 보았지
바람 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잿더미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예쁜 검정을
너무 슬퍼 불은
활활 울었어
눈물이 불의 몸에 뚝뚝
떨어질 때마다
떨어질 때마다
불은 점점 작아졌어 점점
점점 작아지다가
불은 마침내 꺼져버렸지
잿더미 속에서
잿더미 속에서
잿더미 속에서
*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두자. 사랑이라면 휘어진 그림자를 끌고 온 다리를 건너고 물속을 떠다니며 소리 지르자. 세상 따윈 끝나버리라고. 빌면서. 너의 빨강을 나는 다 알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서서. 벌 받는 것처럼 서서. 어서 다가와 줘. 불살라줘. 그러나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두 발이 붕 뜰 때. 사방이 허방일 때. 공포를 다시 배우겠지. 그건 누구도 배울 수 없는 아름다움이란다. 너만의 천성이지. 눈 내리는 빛 속을 날아오를 때. 뒤집힌 거울 속에서 입이 벌어질 때.
예감하고 있었어 잊은 적 없어.
빨갛게 활짝 피어날 것을.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으리라는
예언을.
날아 가.
가.
*
수집가는 천 개의 필름을 갖고 있었다
죽음으로 가득 찬 것을
보면서 웃었다
솔방울이 벌어진다
빛
빛
눈이 내린다
세 아이의 어깨 위로
슬픔은 늘 채 말해지지 않은 상태로
각자의 심장 속에서
홀로 얼어붙고 있다
하늘, 봄, 사랑
세 개의 이름이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
그것이 이 시다
*
사랑을 기억해
빨갛게 활강하며 흔들리던 커다란 두 날개를
⸺2018년 《현대문학》 11월호, 계간 《시와표현》 202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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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 1987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가능세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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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 현대문학 핀 시리즈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이 출간되었지요. 핀 시리즈 중 가장 두꺼운 시집 아닌가요.(웃음) 첫 시집 『가능세계』도 꽤 볼륨이 있었는데요. 뭔가 ‘할 말이 많은 사람’, 다변 그리고 달변가라는 것이 잘 느껴집니다. (…) 아, 시집 제목은 어떻게 정하시게 된 건가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아주 멋진 제목이지만 좀 길고 줄임말로 부르기 어려울 듯한데. 다른 제목 후보들도 있었는지요?
백은선 : 다른 후보 제목은 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이라는 구절이 나오는 시의 제목인 「조롱」을 고민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저만의 제목을 갖고 싶었고 「조롱」은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좀 더 중심을 꿰뚫는 제목을 짓고 싶었어요. 근데 정말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제목이 되었지요.(웃음)
이혜미 : (…) 한문 98점 맞았다고 때리다니 이게 실화인가요. “당신의 손톱이 팔뚝을 파고들어요. 땅 밑으로 나를 끌어내려요. 아버지 아파요. 아파요” …정말 슬프고 화나는 일입니다. 실례되지 않는다면 이 부분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지요.
백은선 : 사실 조금 실례이긴 하지요. (웃음) 저는 제가 가정폭력의 희생자(?)라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습니다만 평론가들은 자꾸 제 시에서 가정폭력을 덧입혀 보려고 노력을 하더라고요. (…) 벌거벗겨 집밖으로 내쫓거나 한밤중에 오줌이 마려 깼다가 거실에서 포르노를 보는 아버지 때문에 방에 쉬를 한 적도 있어요. 어린아이는 가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지요. 그런 유년 시절을 통해 남성혐오에 눈을 뜬 것 같기도 합니다.
이혜미 : 끔찍하네요. 몇 장면만 이야기하신 것일 텐데도 제 숨이 같이 막혀오는 것 같습니다. 직접적인 폭력 행사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런 부모와 계속해서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도 무척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슬픔이 계속해서 재생산된다는 느낌. 어떻게 하면 그런 사슬들을 잘 끊어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 그런 환경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였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것으로 알아요. 책을 읽는 것은 백은선 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습니다. 독서 리스트도 궁금한데요.
백은선 : 인생 책 같은 건 딱히 없는 편이고 그때그때 읽고 싶은 것을 열심히 읽는 편입니다만 최근 읽은 것 중에는 주민현 시인의 첫 시집 『킬트, 그리고 퀼트』,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 좋았고 제일 좋아하는 시인은 김혜순 시인입니다. 시집 아닌 것 중에는 최근 시리 허스트베트의 『불타는 세계』,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미친 아담 3부작』을 재미있게 읽었고 데버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좋게 읽었습니다.
이혜미 : (…) 그렇다면 백은선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를 한 편만 골라 주실 수 있을까요? 시에 얽힌 사건이나 기억이 있다면 더 좋습니다.
백은선 : 현재 가장 좋아하는 시는 「조롱」이에요. 제 온 마음을 다해서 썼기 때문입니다. 시가 늘 그렇듯이 다 장악하지 못하고 반만 장악한 상태에서 대강의 얼개를 그려두고 시 쓰기에 돌입하게 되는데(다 알면 뭐하러 시를 쓰겠어요. 저는 쓰면서 제 언어를 확인하는 재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고 그저 다른 장르로 환원될 수 없는 시를 쓰고 싶었고, 거기에 쓰인 것처럼 한 명의 거장이 절대로 촬영할 수 없는 대본을 남기고 죽는다는 생각을 오래 했던 것 같아요. 그걸 어떤 방식으로 시로 구현해 영상처럼 보여줄 수 있을까, 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긴 시지만 처음 시작은 그렇게 되었어요.
이혜미 :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백은선 시인을 떠올렸을 때 어떤 단어가 함께 생겨났으면 하는지요.
백은선 : 미친년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해를 바라지 않아요. 물론 바라긴 하지만 그게 제 욕심이라는 걸 알고 제가 하는 짓들이 제가 봐도 이상하거든요. 그냥 미쳤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처럼 미친 시도 많이 쓰고 싶고요. 요즘 제가 너무 고루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아요. 이 인터뷰를 통해 저를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계간 《시와 표현》 2020년 가을호, [젊은 시인에게 듣는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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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 1987년 안양 출생. 건국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6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으로 시 등단. 시집 『보라의 바깥』 『뜻밖의 바닐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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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롱」을 읽고
미숙한 신비주의 혹은 자의식의 과잉
강 인 한
극히 일부의 젊은 시인들은 자기 시가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하는 기이한 풍조도 있나 봅니다. 대범하고 평이한 서정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죠. 게임에 어느 정도 곤란의 정도를 가미해야 맛을 느끼듯이 쉽게 풀어지는 수수께끼라면 이미 그 존재 가치가 떨어지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서 독자에게 시인이 문제(시)를 내고 겨루기를 한다고 할까요.
요즘 좋은 시는 독자에게 ‘열린’ 해석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게 보통입니다. 한 가지만의 정답이 아니라 두 가지 해석의 정답도 가능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애매모호한 이러한 특성을 일러 앰비규이티(ambiguity)라고 합니다. 예술 작품은 어느 정도 이러한 모호성을 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독특한 은유나 상징의 기법이 독자들의 머리를 혼란시키는 시를 만나면 이만저만 시가 까다롭고 이해하기 곤란한 게 아닙니다. 그게 난해시인 것이지요. 이상(李箱)의 「오감도(烏瞰圖)」는 그런 난해시입니다. 이해하는 길이 어렵기는 해도 몇 개의 키워드를 알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일부 젊은 시인들의 시 중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까다로운 상징의 기법이나 복잡하고 괴팍한 은유를 써서 독자에게 쉽게 접근함을 허락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저 혼자만의 입속말처럼 횡설수설 독백의 낙서를 시라고 발표한다거나 표현하고자 하는 의욕만 가지고 있을 뿐 육화된 표현으로 도저히 나타내지 못하고 지리멸렬(支離滅裂)을 벗어나지 못하는 글이 그런 시입니다. 시인들은 모호성의 시적 미학을 품은 시라고 착각하지만 단적으로 그건 시가 못 되는 글인 것이지요.
위에 보인 「조롱」이란 제목의 글은 두 시인의 대담을 통해서 시인이 처음 의도한 주제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 내지 남성혐오에 핀트를 맞추어 쓰기 시작한 모양 같습니다. 거기까지입니다. 시인의 머릿속에 풀어내야 할 주제는 그것인데, 그것이 충분히 시로 육화된 구체성을 잃어버리고 잡다한 곁가지만 늘어놓고 있는 형국입니다. 쓰다 보니 주제가 희미해져 버리고, 자기도 모르는 길로 시가 저 혼자 이리저리 흩어져 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독자가 읽고 나서 무얼 읽었는지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글이 되었고, 머리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55년 동안 시를 쓰고 있는 현역 시인이며 동시에 시 전문 독자이기도 합니다. 누가 손가락질하건 말건 한 편의 장시를 쓴 시인의 작업을 존중하여 이 작품을 나는 세 번 정독했습니다. 읽고 나서의 솔직한 느낌을 피력하면 실망이 컸습니다. 시인의 의욕에 비해 표현된 문장들은 답답했습니다. 처음엔 어떤 역작이기에 시집 첫머리에 내세웠을까 흥미와 호기심으로 한 번 통독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이 시 전문을 손으로 베껴 쓰면서 읽고, 세 번째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메모하면서 읽었습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나는 다음과 같이 적어 보았습니다.
죽고 싶은 천사. 나는 죽음의 천사.
스크린 위로 내리는 어둠.
죄를 고백하는 자아.
끝나지 않는 노래의 영화 대본.
폭력, 노래, 죽음.
우는 아이들.
필름이 돌아가며 부딪는 소리.
다시 죽음에 대한 생각.
경멸과 비참 속에 할 줄 아는 건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
거짓보다 거짓인 말들.
아이를 낳다니 웃기는 일.
나무를 사랑한 불 이야기.
세상 따윈 끝나버려라. 날아가. 가.
천 개의 필름 죽음으로 가득 찬
말해지지 않은 상태의 슬픔.
세 아이⸺ 하늘, 봄, 사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이라는 시.
시적인 사유를 끝없이 끝없이 계속하는 화자, 그러나 발화로 나타난 이미지와 내면의 이미지가 충돌하여 의미가 희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꺼내다가 다시 황급하게 부정하기도 하고 뒤죽박죽입니다. 어쩌면 시인은 복잡하고 모호한 상태를 굳이 추슬리기보다 독자들이 그것을 일종의 신비주의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절망적 상황에 대한 오랜 적의를 품고 자학하기도 하며 종잡을 수 없는 자아의 무의식을 고백합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 // 그것이 이 시다”
독자는 여기에 이르러 허탈한 실소를 터뜨릴 뿐입니다. 이 고백에서 차마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시인의 엉뚱한 나르시시즘을 본 듯 내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낍니다. 이 「조롱」이란 작품은 시인 스스로 온 마음을 다해 쓴 시며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한계를 본 듯합니다. 허술한 구성, 흐릿한 주제, 요령부득의 표현 등 문제점들이 「조롱」의 시인이 타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김혜순 시인의 장시 「피어라 돼지」 전체를 자기 손으로 한 번만이라도 또박또박 필사해 볼 것을 나는 치유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장시의 주제 선정, 장시의 치밀한 구성, 장시 표현의 방법 등 「피어라 돼지」 전체를 필사해 보는 과정 속에 문제의 해결 방법이 다 들어 있을 것입니다.
시의 중간중간에 취소선으로 글자를 지우고, +++⁂⁂+++ 혹은 (( (( (( (( 처럼 기이한 표시를 하며, 글자를 굵고 진하게 한다거나, 기울어진 글자체를 사용하는 등의 잡다하고 쓸데없는 기교는 아방가르드도 뭣도 아닐뿐더러 시의 진실성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기 만만한 장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득 번개같이 머릿속을 스치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 '조롱'. 이 긴 시 속에서 뭔가 그럴싸한 알맹이를 찾아내고 싶어하는 독자를 '조롱'하여 킥킥거리는 시인의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2020. 1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