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세. 건국대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제14기. 광주·청주·인천지검 부장검사 역임.
제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원내부대표 역임. 現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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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뉴스를 보는 순간 19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오버랩됐습니다. 침몰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러이러한 문제로 사고가 났을 것이라고 짐작됐습니다. 마치 데자뷰 같았죠.”
이상권(李商權)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표정은 심각했다. 공기업 수장과 마주앉아 세월호 얘기를 나눈 것은 이 사건이 사회적 이슈여서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와 종종 비교되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수사를 맡았던 이가 그여서다. 당시 서울지검 주임 검사였던 이 사장은 삼풍백화점 시공·건축 과정에서의 비리 문제를 수사했다. 그의 눈에 비친 세월호와 삼풍백화점은 닮아도 너무 닮아 있었다.
“삼풍백화점은 원래 4층짜리 유희 시설(운동 및 오락시설)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나중에 5층짜리 백화점으로 슬쩍 용도 변경이 됐습니다. 유희시설과 백화점은 아예 건축 구조가 다릅니다.
백화점 건물은 더 많은 하중(荷重)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합니다. 삼풍백화점 오너가 유희시설은 돈이 안 될 것 같아 백화점으로 용도 변경을 하니까, 시공을 맡았던 우성건설에서 절대 안 된다며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오너가 끝까지 버텼고, 결국 우성건설과 계약을 해지하고 자체적으로 삼풍건설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건물을 지었습니다. 무너질 수 없는 건물이었는데 건물 관리조차 안 했습니다. 증축하면 안 되는 배를 불법으로 개조하고, 과적 운항하고 제대로 선박 검사를 하지 않은 세월호와 똑 닮았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건물 균열음으로 쾅쾅 소리가 날 때까지 손님들에게 대피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경영진이 먼저 도망친 모습도 세월호와 똑같습니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한숨밖에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가라앉는 세월호를 보니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트라우마가 여전하더군요.”
“本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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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혁신도시에 입주한 한국전기공사 건물 전경. |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 문제가 최대의 화두가 된 요즘, 전기 안전을 책임지는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이상권 사장이 ‘제2의 창사’를 선언했다.
지난 1974년 한국전기보안협회로 설립된 회사는 이듬해에 한국전기안전공사로 명칭을 변경하고, 전기사업법에 의거해 전기 설비의 안전 관리를 위한 검사와 점검, 전기 안전에 관한 조사·연구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기 재해·재난에 대한 예방과 수습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전기를 우리 몸의 혈액으로 보자면 한국전력은 우리 몸 구석구석에 혈액을 보내는 ‘심장’, 한국전기안전공사는 그 혈액이 각 기관에 안전하게 흘러가게 하는 ‘혈관 내과 전문의’라는 것이 공사 측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16일, 40여 년의 서울 생활을 접고 전북혁신도시(전북 완주군)로 사옥을 이전했다. 이상권 사장은 회사를 이전하면서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공간적 이동을 떠나, 공사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계기로 삼자”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2월에 취임한 그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안전’이다. 전기 안전을 책임지는 이가 ‘안전’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안전은 전기 안전뿐 아니라, 전기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안전까지를 총망라한다.
“업무의 기본은 안전하게 근무하는 겁니다.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거나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직원에 대해 단순 경고가 아니라 징계를 하도록 했습니다. 다치더라도 본인이 잘못한 거면 중징계를 받게끔 사내 규정을 바꾸라고 지시했습니다. 자신의 안전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권 사장이 취임사에서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은 ‘기본 업무를 혁신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공사가 가야 할 길이 ‘기본’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해, 회사 경영의 방향을 ‘본(本) 경영’이라고 이름 붙였다. 실제 그는 취임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직원 한 명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그 직원이 업무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 주택의 전기 점검은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집이 워낙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차를 타고 한 시간씩 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주인이 문을 열어주면 다행인데, 전기 점검 왔다고 하면 잡상인 취급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달에 몇 가구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간을 허비해서 전기 점검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있죠. 직원 한 명이 시간이 없어서 못 한 곳을 마치 점검을 다 한 것처럼 보고했다가 적발됐습니다.
직원을 늘리든지, 업무를 여유있게 해줬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원칙은 원칙이라서 징계를 했습니다. 안 해놓고 한 것처럼, 엉성하게 해놓고 꼼꼼하게 점검한 것처럼 하는 것은 업무의 기본을 어긴 것입니다. 직원들 스스로 안전 의식이 결여돼 있었다고 보고 호되게 질책했습니다.”
쪽방촌 전기시설 교체 작업 中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에 비하자면 전기 사고가 자주 나는 편에 속한다. 전기 사고는 크게 전기로 인한 화재, 감전 등 두 가지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화재 사고 중 20~22%가 전기로 인한 것이다. 일본(14%), 미국(12%), 뉴질랜드(5%)보다 훨씬 높다. 전기 화재가 많은 이유는 아직 노후화된 주택과, 주택이 밀집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다.
전기 점검 기술력 자체는 선진국이나 우리나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 공사 측의 설명이다. 공사는 전기 화재 사고를 줄이고자, 쪽방촌 일대의 전기 시설을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는 2016년까지 총 45억원이 투입된다. 이상권 사장은 임기 내 중장기적인 목표로 ‘선진국 수준의 전기 화재율 실현’을 내세웠다.
“전기 점검 기술력은 국가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꼼꼼하게 점검하는 것이죠. 직원들 본인의 안전 문제부터 지적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차분하고 꼼꼼해야 하는 업무의 기본을 잘 지키자는 겁니다. 하지만 점검을 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사고의 위험성이 보여 사전에 막을 수 있는데 못 막는 경우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입니까.
“신규 건축물에 대해서는 우리 기준에 맞지 않으면 허가 불가 통보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후 설비에 대해서는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 일반 가정집인데 전기 설비가 노후할 경우에 저희가 교체할 것을 권고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공공기관이 왜 교체를 하라 마라 하느냐. 돈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하면 저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저희의 의견이 권고 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습니다. 국민에게 그런 의무를 부과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데, 이럴 경우 규제 강화가 될 것이고 참 어려운 문제가 생깁니다. 설비 교체가 필요한데 이런 벽에 부딪히면 참 난감합니다.”
이 사장은 전기 화재 예방뿐 아니라 ‘20%대’라는 통계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따져볼 계획이다.
“화재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누전 사고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런 추정치가 전부 합산돼서 우리나라가 10여 년째 전기로 인한 화재가 전체 화재의 20%대가 된 겁니다. 이건 국가적 위신의 문제입니다. 또 실질적으로는 전기안전기술을 수출하는 데 장애가 됩니다. 외국에서 우리의 전기안전기술을 평가할 때 ‘전기 재해율’을 따지기 마련인데 지금 같으면 곤란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따지겠다는 겁니까.
“저희 60개 사업소장이 일일이 소방서를 찾아가서 사고 조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또 불이 난 원인이 불명확할 경우에 ‘원인불명=전기로 인한 화재’라는 식(式)의 시각은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소방서에서 많이 협조를 해주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까지 전기 화재가 전체의 17%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저희 직원을 사고 조사에 포함시키는 부분 등 법제화는 중장기적으로 이뤄내야 할 목표입니다.”
세계 최초로 전기 켜놓고 전기 검사하는 기술력 보유
한국전기안전공사에는 큰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 무려 10여 년에 걸쳐 연구·개발한 ‘무정전 검사’라는 것이 그것이다. 전기 검사는 전기를 차단한 채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공사는 전기를 켜놓은 상태에서도 검사를 할 수 있는 ‘무정전 검사’를 지난 2011년에 성공시켰다.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등 0.1초의 순간 정전도 허용되지 않는 국가 산업시설들이 반길 일이다.
“검사를 위해 정전시키는 것은 의도적 정전입니다. 기업은 이 잠깐의 정전으로 수백억원의 손해를 봅니다. 우리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자외선·적외선, 원격 주파수 감지 등으로 전기의 이상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었습니다. 또 그 장비로 찍은 사진을 판독해 문제의 원인을 꼬집는 판독 기술력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이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까.
“꽤 많습니다. 의도적 정전으로 기업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한 금액이 연간 5000억원 정도입니다. 향후 수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의 판독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이 공사 측의 설명이다. 얼마 전, 폴란드에서 전기 사고가 일어났다. 원인을 찾지 못한 이 회사는 공사 측에 출장을 의뢰했다. 공사 측 직원은 사진을 보자마자 사고의 원인과 어떤 것을 교체해야 하는지를 단박에 알아냈다. 이상권 사장은 “사진을 판독하는 기술, 또 그만큼의 전기 지식이 체계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는 안전기관 간의 기능 조정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손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권 사장이 임기 중에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한국전력의 업무 중 안전에 관련된 것을 공사로 가져오는 것이다.
“한전에 안전사각지대가 있습니다. 송전소, 배전소, 변전소 등은 처음 설치할 때는 검사를 받지만, 향후 관리는 한전이 책임을 집니다. 가끔 송전탑이 무너지고, 변전소에서 이상이 생겨 전기가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자주, 한 해에 몇 건이나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왜 그렇죠.
“한전에서 오픈을 안 하니까요. 한전이 소유하는 시설물에 대해서 자체적으로 안전 관리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건 선주협회가 선박 안전 검사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선수와 심판을 분리시키고 한전이 아닌 다른 기관이 검사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업무를 가져오려고 그동안 무던히 애썼는데 쉽지 않습니다.”
―전기안전공사에서 할 수 있습니까.
“한전이 기술력이 있고, 인적자원이 있으니까 자기가 자기 것을 관리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전기 안전을 점검하는 기관입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셀프 검사’의 관행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이상권 사장에게 여름은 ‘휴가철’이 아니라 긴장을 바짝 조이는 계절이다. 매년 6~8월 사이에 찾아오는 장마철과 태풍 때 전기로 인한 감전 사고가 많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장마철에 가로등, 신호등, 맨홀 등이 침수되면 근처에 가지 말고, 집안이 침수될 경우 누전차단기부터 내리는 것이 최선책이다. 한여름 전력이 피크일 때 선풍기를 너무 많이 쓰면 과부하가 걸려 화재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권 사장과의 인터뷰는 직설적이고 담백했다. 딱딱하리만치 꼿꼿한 말투가 검사 시절에 밴 습관 같다고 말하자,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께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을 때 바로 밑의 동생은 몇 대 맞다가 얼른 도망을 갔지만, 저는 종아리에 피가 흐를 때까지 맞고 서 있어서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다. 원체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다”며 웃었다.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일말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 융통성 없는 사람이 내비친 ‘전기 화재율 낮추기’가 얼마나 성공적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