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아무개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 점잖은 식장 복판까지 쳐들어와 비닐 봉다리를 쥐어주고는 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를 한 번 하자고 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대는 봄밤이다.
- 김사인의 ‘봄밤’ 부분>
글이 길어지는 것을 최대한으로 막으려 시의 행을 내 마음대로 바꾸어 버려 시 냄새보다는 산문냄새가 나게 하여 ‘김사인’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임에는 틀림없다.
허장강
“마담, 심심한데 우리 뽀뽀나 한번 할까?”하며 마담의 허리를 껴안고서 징그럽게도 입을 들이대며 덤비던 영화배우가 있었다. ‘허장강’이다.
“콩나물 팍팍 무쳤냐?”는 이주일을 연상시키지만 “마담, 심심한데 우리 뽀뽀나 한번 할까?”는 '허장강'이다. '허장강'만이 할 수 있고, '허장강'이 해야만 실감이 나는 대사다.
1925년에 태어나 1975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무려 255편에 출연해 우리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의 역은 대부분 ‘좋은 놈’보다는 ‘나쁜 놈’과 ‘치사한 놈’으로 뭉뚱거려지는 악역으로 많이 출연하였다. 그것도 '최무룡'이나 '신성일'이 ‘좋은 놈’의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에 남을 괴롭히며 못된 짓만을 하는 ‘저런, 쳐죽일 놈’하며 관객들의 주먹을 부르르 떨게 만드는 조연으로 끝에 가서는 꼭 죽고 마는 ‘나쁜 놈’의 역이 단골이었다.
‘나쁜 놈’이 단골이었던 '허장강'의 대부분의 영화는 그저 ‘나쁜 놈’ 단골이었다는 기억 외에는 별로 생각이 나는 영화가 없다. 그러나 1968년에 제작된 ‘춘향’에서 ‘방자’역을 맡은 그의 연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의 배꼽을 잡아 빼는 연기와 청승을 떠는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다. 지금도 가끔 추석특선프로로 영화 ‘춘향’이 리바이벌 되어 나오고는 있지만 이때까지 그 어느 누구도 '허장강'만한 ‘방자’의 역을 한 배우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김사인의 ‘봄밤’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허장강'의 액션을 이야기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프랑스의 배우 ‘장 가방’의 허스키한 독백을 소개하려 한다.
달력을 들여다보다 추석이 저만치 가까이 오고 있어 문득 강산이 두 번씩이나 바뀌도록 가보지 못한 고향생각이 났고, ‘망향’이란 글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영화 중에 ‘장 가방’이 주연한 ‘망향’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장 가방’을 '허장강'과 비교하는 것이 좀 어색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명배우 '아랑드롱'을 '최무룡'이나 '신성일'과 매치를 한다면 ‘장 가방’은 '독고성'이나 ‘박노식’과 매치를 하여야 할 것도 같으나 나는 ‘장 가방’을 ‘허장강’과 매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태어나기는 ‘장 가방’이 ‘허장강’보다 20년이나 먼저 태어났지만 세상을 뜨기는 거의 같이 떠났을 뿐만 아니라 둘의 캐릭터도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장 가방’의 ‘망향’을 이야기 하면서도 불행하게도 나는 ‘망향’을 본 기억이 없다. 젊은 날의 한국에서의 생활은 누구에게나 그랬었지만 나에도 그리 영화를 보게 할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은 이곳에서는 이 영화를 볼 DVD를 아직 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와 비슷할 것 같은 ‘잉글리드 버그만’과 주연한 ‘험프리 보가트’의 모로코의 항구도시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한 ‘카사블랑카’의 냄새가 나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하는 연인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과 하나는 알제리를, 하나는 모로코라는 프랑스령의 도시를 배경으로 다룬 어두운 배경의 쓸쓸함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추석이라는 명절을 앞둔 나의 마음처럼.
'장 가방'의 '망향'을 이야기 한다.
- 아래의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고 인터넷에서 소개된 것을 재편집하여 구성하였다.
망향Pepe le Moko / Les Nuits blanches (1937)
감독:줄리앙 뒤비비에
출연: 장 가뱅(페페 르 모코), 미레이유 발랭(기비 굴드), 뤼카 그리두(슬리만 형사), 린노 노로(미네스), 페르낭 샤르팽(레지스)
제작사: Paris Film
영화 줄거리:
페페 르 모코(장 가방)는 파리 출신의 갱으로 은행강도를 하다가 도망쳐서 현재는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 머물고 있다. 그는 정부 이네스(리네 노로)와 함께 카스바라는 곳에 숨어 있다. 알제리 혼혈계 형사 슬리만(루카스 그리두스)은 그 동네를 기웃대며 페페와 어울린다. 그가 범죄자란 사실을 알고 체포할 기회를 엿보기도 하는데, 페페는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카스바는 주민들이 도와주는 은신처로서 완벽하게 안전하고, 제 발로 나와야만 체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페페 역시 경찰을 따돌릴 정도의 실력은 있다. 그런데 어느날 뜻밖에 대규모 병력의 경찰이 그 바를 덮쳤을 때, 그는 간신히 빠져나온다. 그리고 명소인 카스바를 방문한 아름다운 여인 가비(미레이유 발랭)을 만나고,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가비와 만나면서 페페는 더욱 프랑스와 파리에 깊은 그리움을 느낀다. 이윽고 페페는 자신의 자유를 과신하며 가비와 거리낌없이 어울리며, 사랑의 행복을 만끽한다.
이 즈음, 형사 슬리만은 페페의 정부 이네스를 이용해서 페페를 체포하겠다는 계략을 꾸민다. 즉 페페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질투심을 유발시키는 것. 슬리만이 매수한 페페의 부하 레지스에게서 페페의 근황을 들은 이네스는 격정적인 성격답게 질투에 휩싸이고, 페페의 은신처를 알려준다. 또한 슬리만은 가비에게 페페가 사살됐다는 거짓말로 파리행을 부추긴다. 실의에 빠진 가비는 파리행 여객선을 타는데, 정작 페페는 가비의 뒤를 밟는다. 이때 정부 이네스는 형사 슬리만에게 페페가 안전한 은신처인 카스바에서 외출한다고 알려준다. 완전히 가비 생각으로 가득찬 그를 보며 정부 이네스는 자신이 한 일을 자책하고 그 사실을 페페에게 알려주며 말리지만, 그는 듣지 않는다.
마침내 페페는 출항 직전의 어수선한 틈을 타 여객선에 올라 가비를 찾다가 결국 기다리던 경찰에게 체포된다. 부두로 끌어내려지는 와중에도 그는 열렬히 가비를 찾고, 그제야 가비도 그런 그를 알아본다. 이윽고 이 불행의 연인에게 이별의 기적소리가 울리고, 가비는 비탄에 젖어 자신의 귀를 막는다. 그리고 선실로 뛰어드는데, 이제 페페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뿐! 자살로서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다.
장 가방
박흥진(한국일보 2002.08.30)
종잇장처럼 얇은 입술에 과묵한 코주부 장 가방은 2차대전 전의 프랑스 시네마를 정의 내린 배우였다. 가방과 프랑스 영화는 동의어로 그는 30년대 프랑스 영화의 절대적 분위기였던 로맨틱한 염세주의를 상징했던 사람이었다.
30년대 프랑스 영화계는 시적 사실주의 영화인들이 주도했는데 이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숙명적이었다. 주인공은 운명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다가 자살하거나 살해당했다. 전쟁의 암운이 하늘을 가린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절망과 염세주의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헝겊 캡을 쓴 외디퍼스'라 불렸던 가방은 운명을 트렌치 코트처럼 걸치고 다니는 저주받은 영웅(또는 반영웅)으로 기억될 만큼 비극적이요 숙명적이며 또 어두운 영화에 많이 나왔다. 가방은 전전과 전후 통틀어 40여년에 걸친 배우생활을 했지만 가방 하면 세속적인 국외자요 고독자가 연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방은 많은 영화에서 자기를 파괴하려는 잔인한 운명과 투쟁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나왔다. 고독이라는 중병을 앓은 뒤 순수한 사랑을 찾아 잠시 위로를 받으나 또 다시 기만당하고 자신의 모든 꿈을 빼앗겨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하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는 이런 자의 모습을 강렬한 개성으로 표현해 '우리시대 영화의 비극적 영웅'(앙드레 바 장)이라 불렸었다. 행복하고는 참으로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가방의 이런 모습이 아름답도록 숙명적으로 나타난 영화 중 하나가 '안개 낀 항구'(Le Quai des brumes·1938·원제는 그림자의 항구-'항구의 마리'와 함께 13일 상영)다. 마르셀 카르네가 감독하고 시인이자 각본가인 자크 프레베르가 쓴 이 영화는 숙명과 비극성과 절망감이 안개처럼 자욱한 회색의 걸작이다.
탈영병으로 나온 가방은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서 남미로 도주하기 위한 여권을 얻으려고 애쓴다. 그는 부둣가의 한 싸구려 술집에서 운명의 폭풍에 시달리는 순수한 넬리(눈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미셸 모르강)를 만나 사랑하게 되나 결국 살인을 저지른 뒤 남미행 배가 정박한 항구로 가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안개와 음습한 기운과 불길한 분위기를 찍은 흑백촬영이 숨가쁘게끔 아름다운 이 영화를 보면 염세적인 운명은 어떤 색채와 모양이며 느낌을 가졌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게 된다. 프랑스의 괴뢰정권 비시 정부의 대변인이 "프랑스가 전쟁에 진 것은 '안개 낀 항구'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영화로 나치 점령 하 프랑스서 상영이 금지됐었다.
카르네와 프레베르와 가방이 다시 손잡고 만든 또 다른 절망적인 걸작이 '새벽'(Le Jour se leve·1939·흑백·사진-'사랑의 입'과 함께 6일 상영). 사랑과 희망을 잃고 살인을 한 뒤 자기 아파트에 갇힌 고독한 킬러의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공장 노동자인 프랑솨(가방)와 두 여인 그리고 이 두 여인을 소유한 사악한 남자와의 기구한 인연이 그려지는데 분위기가 어찌나 암담한지 이 영화도 국내 상영이 금지됐었다.
가방이 저주받은 영웅을 맹렬하게 표현한 또 하나의 작품이 '인간 짐승'(La Bete humaine·1938·흑백-가방의 할리웃 작품 '문파이드'와 함께 14일 상영). 에밀 졸라의 소설이 원작으로 장 르놔르(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의 아들)가 감독한 장렬한 필름 느와르이다.
가방은 유전적으로 억제할 수 없는 폭력성을 지닌 기관사로 나와 역장의 아내(시몬 시몽)와 사랑을 한다. 시몬은 가방에게 자기 남편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나 가방은 이 부탁을 수행치 못하고 광분, 시몬을 목 졸라 죽이고 자신은 달려오는 기차에 투신 자살한다.
가방은 영화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1937·흑백-'불행한 사건'과 함께 26일 상영)에서는 파리서 은행강도를 한 뒤 알지에의 달동네 카스바에 숨어살다가 여자 때문에 자살을 했으니 영화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한 배우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1904년 5월 17일 프랑스의 메리엘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국민배우 장 가방은 카바레 공연가의 아들로 시골에서 대부분의 어린시절을 보낸다.
1차 대전이 끝나고 한동안 건설회사에서 일하던 장 가방은 1926년 아버지에게 배운 솜씨로 몇 편의 뮤지컬과 오페레타에 출연하게 된다. 장 가방은 미국과 독일로 여행을 다니며 인생공부를 한 뒤 1930년 < Chacun sa Chance>로 극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장 가방은 담배를 씹어문 어둡고 시니컬한 반 영웅적인 자신의 캐릭터를 빠르게 형성해나갔고 전쟁 드라마 < La Bandera>(1936), 장 르느와르 연출의 < Les Bas-Fonds>(1936), <위대한 환영: La Grande Illusion>(1937)등에 출연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특히 <위대한 환영: La Grande Illusion>은 세계 영화사에 남는 명작으로 뉴욕의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당시 프랑스 흥행 1위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장 가방은 일찍이 헐리우드로부터 출연섭외를 받았지만 프랑스 영화를 지켰고 42년 < Moontide>를 비롯한 몇 편의 미국 영화에 출연하게 되지만 다시금 프랑스로 돌아와 대부분의 영화활동을 고국에서 하게 된다. 장 가방은 독일 출신의 여배우 마를린느 디트리히와 사귀며 영화에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 장 가방은 49년 르네 끌레망 감독의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 Au-Dela Des Grilles>등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해 롱런하는 연기자로 돌입했고 연기의 물이 오른 50년대 베니스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 차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프랑스 국민들의 애환을 대변해 주던 장 가방은 1976년 < L Annee Sainte>를 끝으로 같은 해 11월 15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Quand j'?ais gosse, haut comme trois pommes, J'parlais bien fort pour ?re un homme J'disais, JE SAIS, JE SAIS, JE SAIS, JE SAIS
C'?ait l'd?ut, c'?ait l'printemps Mais quand j'ai eu mes 18 ans J'ai dit, JE SAIS, ? y est, cette fois JE SAIS
Et aujourd'hui, les jours o?je m'retourne J'regarde la terre o?j'ai quand m?e fait les 100 pas Et je n'sais toujours pas comment elle tourne !
Vers 25 ans, j'savais tout : l'amour, les roses, la vie, les sous Tiens oui l'amour ! J'en avais fait tout le tour !
Et heureusement, comme les copains, j'avais pas mang?tout mon pain : Au milieu de ma vie, j'ai encore appris. C'que j'ai appris, ? tient en trois, quatre mots :
"Le jour o?quelqu'un vous aime, il fait tr? beau, j'peux pas mieux dire, il fait tr? beau !"
C'est encore ce qui m'?onne dans la vie, Moi qui suis ?l'automne de ma vie On oublie tant de soirs de tristesse Mais jamais un matin de tendresse !
Toute ma jeunesse, j'ai voulu dire JE SAIS Seulement, plus je cherchais, et puis moins j' savais
Il y a 60 coups qui ont sonn??l'horloge Je suis encore ?ma fen?re, je regarde, et j'm'interroge ?
Maintenant JE SAIS, JE SAIS QU'ON NE SAIT JAMAIS !
La vie, l'amour, l'argent, les amis et les roses On ne sait jamais le bruit ni la couleur des choses C'est tout c'que j'sais ! Mais ?, j'le SAIS... !
내가 아이였을 때, 아주 작은 아이였을 때 남자답기 위해 아주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었고 이렇게 말을 했지. 난 알아, 난 알아, 난 알아, 난 알아.
그 때가 시작이었고, 청춘이었어. 하지만 내가 18살이었을 때 이렇게 말을 했어. 난 알아, 됐어, 이번엔 난 알아.
요즘, 내가 반성하는 나날들... 그래도 100걸음을 나아간 땅을 난 바라본다네. 하지만 난 그녀가 어째서 돌아갔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어.
25살 무렵, 난 모든 것을 알아버렸지. 사랑과 장미꽃, 그리고 인생과 돈이 뭔가를... 자! 그래, 사랑! 난 많은 사랑을 했었어.
다행히도 난 친구들처럼, 나의 양식을 낭비하진 않았지. 내 인생에서, 난 다시 깨달았어. 내가 알은 것, 그걸 서너 마디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아.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는 날, 날씨가 매우 화창해요. 난 더 좋은 말을 할 수 없어요. 날씨가 매우 화창해요!"
인생에서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있어. 인생의 황혼녘에 있는 나... 그토록 많은 슬픔의 밤들을 잊으려 하네. 하지만 달콤했던 어느 아침은 결코 아니야.
내가 청춘이었을 때,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난 알아. 그러나 내가 더 찾을수록, 내가 알게 된 것은 더욱 적었어.
괘종시계는 60번의 종이 울리고... 아직도 난 창가에 있고, 나는 생각해봐. 내 자신이 의문스러워서 일까?
이제 난 알아, 사람들이 결코 알지 못하는 것을 난 알아!
인생과 사랑, 그리고 돈과 친구들과 장미꽃들... 사물들의 소리나 색깔을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알아! 정말 그것을, 난 그걸 알고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