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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백성호
관심
#궁궁통1
종교계를 취재하다 보면
여러 수도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마다
나름대로
진리를 찾아가는
수도(修道)의 여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교적 평탄한 편이고,
또 어떤 사람은
우여곡절이
무척 많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조계종 비구니인
일아 스님의
구도 여정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삶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묻는 이들이 있다. 구도자의 성향을 강하게 가진 이들이다. 그들의 그 물음을 풀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 수도의 여정이다. 백성호 기자
일아 스님의 삶,
거기에 깃든
구도 여정을 듣다 보면
뭐랄까요.
그 간절함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궁궁통2
처음에는
대상이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서울여대에 다닐 때
그가 미친 대상은
영화였고,
음악이었습니다.
한때는
모든 팝송을
줄줄이
다 외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해도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인간’에 대한
목마름 말입니다.
그는 고민했습니다.
시집을 갈 건가,
아니면
수도자가 될 건가.
결국
후자를 택했습니다.
수도자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올리브산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조각상. 백성호 기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 정치인이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운 딸이
독신 수도자로 살겠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던 거겠지요.
아버지는
왜 굳이
자연을 거스르며
살려고 하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오빠는
이게 지금껏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한 보답이냐며
그의 뺨을 때렸습니다.
그런 호통 앞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되물었습니다.
“아버지,
저를 붙들어 매시겠습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결국 아버지도
손을 들었습니다.
#궁궁통3
그는
서울 샬트르성바오로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학원을 졸업한 뒤
수녀가 됐습니다.
그렇게
7년가량
수녀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평생 수녀로 살겠다는
종신서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톨릭은
너무 매력적인 종교입니다.
엄숙하고
자아에 대한 절제도 강합니다.
그리고 점잖습니다.
2000년간 이어온
가톨릭의 전통은
분명히 힘이 있습니다.
다만 제 적성과
맞지 않았습니다.”
종교는 진리를 찾아가는 하나의 통로다. 그 통로의 끝에 놓인 것이 진리다. 종교 자체가 진리는 아니다. 백성호 기자
그는
스스로 되물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계속 살 수 있을까?”
답은 아니요,
였습니다.
그 길로 그는
수녀복을 벗었습니다.
처음 수녀복을 입을 때도
과감했고,
그렇게 수녀복을 벗을 때도
과감했습니다.
그 길로 그는
순천 송광사 불일암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법정 스님을 만났습니다.
#궁궁통4
법정 스님과
아는 사이였느냐고요?
아닙니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습니다.
다만,
수도회 도서관 소임을
맡으면서
법정 스님의 책을
많이 읽은 터였습니다.
법정 스님과
마주한 그는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부탁드렸습니다.
올바른 수행을
할 수 있는 곳과
그걸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은
장문의 편지를 한 장
써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계종 비구니 특별선원인
석남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일아 스님은 비구니 사찰인 석남사에서 행자 생활부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건 그의 내면에 있는 물음이었다. 백성호 기자
그는 석남사에서
행자 생활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군대로 치면
신병 훈련소에
다시 입소한 셈입니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더군요.
“수도 생활은 이미 겪었어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힘들 건 없었어요.”
그렇게 그는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일아(一雅)’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궁궁통5
그때부터
일아 스님의
구도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가 궁금한 건
붓다였습니다.
2600년 전
인도에서 살았던 인물,
출가해 수행하고
결국 깨달음을 얻었던 사람.
그는 과연
어떤 인간이었을까.
일아 스님은
미얀마로 갔습니다.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2년간 목숨을 걸고
수행했습니다.
그때 그는
절감했습니다.
불교는 정말
수행의 종교이구나.
그다음에는
태국의 위백아솜 위파사나
명상수도원에 가서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그 뒤에는
미국으로 갔습니다.
인사차 찾아간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달려라.”
일아 스님은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초기 불교 경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했다. 백성호 기자
일아 스님은
미국 뉴욕의 스토니브룩 주립대에서
종교학을 공부했습니다.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LA 로메리카불교대학의
교수가 됐습니다.
일아 스님의
구도기를 쭉 듣다가
물음이 올라왔습니다.
무엇이었을까.
과연 무엇이
그를
지금까지 이끌었을까.
저는 그게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한 물음,
내 삶에 대한 물음,
인간에 대한 물음
말입니다.
더 나아가면
삶에 대한 물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물음,
그리고
그 너머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 물음들이 풀릴 때
일아 스님은
‘완전한 인간’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물음이
그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허하지 않은 삶,
후회스럽지 않은 삶을
찾아가는
나침반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침반은
비단 일아 스님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도
쉬지 않고 올라오는
삶에 대한 물음이 있습니다.
저는 그 물음이
우리 각자에게도
나침반이라고 봅니다.
허하지 않은 삶,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게끔 하는
강력한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밤에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하늘의 북극성처럼
말입니다.
일아 스님의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북극성과 나침반을
다시 깨어나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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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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