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1. 지방 교회
1>지방 교회Local Church는 특이하게도 중국에서 시작된 이단이다.
지방 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진 워치만 니Watchman Nee는 1903 년 11 월 4 일 중국 동남부 복건성에 있는 푸조우福州에서 9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워치만(파수군)니'라는 이름은 그가 기독교인이 된 뒤에 갖게 된 이름이고 그의 중국식 본 이름은 '니토쉥'인데 그 뜻은 '징 치는 자'라는 뜻이다.
지방 교회의 문서 운동의 중심이 되는'복음서원'도 이 때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특별 집회를 할 때마다 기성 교회의 신도들이 자신이 출석하던 교회를 버리고 그들에게로 이탈해 오는 현상이 나타났다.
워치만 니는 자신이 인도하는 특별 집회를 '이기자의 집회'라 불렀다. 그 명칭에서 보듯이 그들의 집회는 특이한 것이었고 배타적인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기성교회는 그를 싫어했지만 그의 주장을 따르는 지방 교회는 날로 확산되었다.
1928 년부터 1934 년 사이에 네 차례의 특별 집회를 통해 그는 유명해 졌으며 1935 년에는 산동 지방까지 그의 사역지가 확장되고 1937 년에는 서붕의 운남성에도 그의 사역의 열매로 지방 교회가 있게 되었다.
31 세 때인 1934 년 10 월에 워치만 니는 어렸을 적에 함께 자라던 채리티 장과 결혼하였다.
1950 년 위치만 니는 그의 유력한 동역자 위트니스 리Witness Lee와 함께 홍콩에서 대대적인 특별 집회를 인도했다. 중국에 장개석 국민당이 밀려나고 공산당이 집권하자 기독교에는 박해가 시작되었고, 그의 지방 교회도 예외가 될수 없었다.
많은 신자들이 공산당에 의해 희생되고 자신도 그가 50 세 되던 1952 년 4 월 만주에서 투옥 상하이로 이송되어 4 년 후인 1956 년 6 월 대법원에서 15 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15 년을 복역한 뒤에도 공산 정부는 그를 석방시키지 않고 질 나쁜 죄수로 분류 5 년을 더 감금하다가 죽음의 문 앞에서 석방, 석방된 지 50 일 만인 그 해 6 월 1 일 69 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동역자였던 위트니스 리는 홍콩을 떠나 대만으로 건너가 지방 교회 운동을 일으켰고, 스티븐 강과 함께 그는 위치만 니가 일으킨 지방 교회 운동의 핵심적 지도자가 되었다.
공산 정귄에 의해 지방 교회 운동은 지도자들에 의해 분열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위트니스 리는 그 중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이 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이 운동을 심기 위해 1962 년 미국 로스랜젤스 아나하임에 진출했다.
지금까지 중국인을 상대로 하던 그들의 사역이 타 민족을 상대로 확장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사건을 가리켜 '주님의 새로운 이동'이라고 이름하였다.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0 년 쯤 지나자 이 운동은 그 배타적인 성격 때문에 기성 교회와 마찰을 빚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비판도 뒤따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성경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경멸감을 표시하여 일반 기성 교회를 '바벨론 교회'라고 부르는 등 노골적인 경멸감을 표시하므로 점차 적대 관계가 되었다.
1974 년 기독교 문제 연구소와 버클리의 사이비 종교 단체연구소 등에서 이 운동을 비판하여 통일교와 같은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지방 교회는 거액의 돈을 들여 미국 내 주요 일간지에 그들의 비판을 반작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잭 스팍스(Jack Sparks)라는 사람이 이 운동을 비판하여 쓴 '마인드 밴더스(The Mind Benders)라는 책이 유명한 종교 서적 출판사인 토마스 넬슨사에 의해 출판되자 지방 교회는 이 책의 출판과 판매를 금지하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6 년 간의 투쟁 끝에 승소하기는 했지만 이 비판의 영향으로 미국에서의 이 운동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 타격으로 위트니스 리의 후계자로 지목을 받던 맥스 라포포트와 리의 신임을 받던 두 지도자가 신도들을 이끌고 지방 교회를 탈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위트니스 리의 계열의 지방 교회는 점점 그 세력을 형성해 나가는 추세이다.
한국의 지방 교회가 시작된 것은 1966 년에 '왕중생'이란 사람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기록된다.
그의 본명은 '권익원'인데 일제 때 중궁에서 중국 군대에 입대하여 연대장을 지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워치만 니'의 직계라 주장하며 매우 폐쇄적인 자세로 지방 교회를 이끌었다.
지방 교회는 외부의 간섭이나 교류가 없어 독자적으로 운영되었고 따라서 그 활동도 크게 들어나지 않았다.
1980 년대에 왕중생 씨가 세상을 떠나자 한국의 지방 교회는 미국을 비롯한 각 국의 지방 교회와 교류의 물꼬를 트는 한편 문서 활동을 등을 통한 교세 확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방 교회가 한국 교계에 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시기라 할 수 있다.
지방 교회는 그 확장 방법을 주로 기성 교회 교인들을 포섭한 뒤 그들의 독특한 교리를 가르쳐 마침내 기성 교회를 등지게 하므로 기성 교회와 끝없는 마찰을 빚어오고 있다.
그 결과 이 운동에 대한 연구와 비판도 활발해지고 마침내 예장 통합 측과 고신 측은 1991 년 총회에서 이 운동을 이단으로 규정하기에 이르었다.
현재 지방 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희득 씨는 1945 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학을 나와 R.D.T.C 장교로 복무하던 1968 년에 대전에서 지방 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그는 교직 생활을 하다가 왕중생 씨 사후 한국 지방 교회의 책임을 맡고 교직을 청산했다. 현재 지방 교회의 본부라 할 수 있는 '서울교회 집회소' 서초구에 잇으며 80 년 이후 각 지역에 지방 교회가 세워져 현재에는 60 여 교회가 있다.
한국 복음서원에서는 위치만 니의 저서는 물런 위트니스 리의 저서를 전담 출판하여 배포하고 있으며 세대주의 시조라 할 수 잇는 존 다비John Darby의 번역에 위트니스 리가 주제를 붙이고 수정한 성경 사본역을 '회복력'이란 이름으로 발간하고 있다.
2. 지방 교회의 주장과 성경적 비판
지방 교회는 위치만 니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지방 교회의 이당성은 대부분이 위치만 니의 주장이나 사상이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는 그 시작자인 교주의 사상과 가르침이 이단적인데 비하여 지방 교회는 후계자들에 의해 더 많은, 그리고 더 결정적인 이단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위치만 니의 사상에 신학적으로나 목회학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그렇다고 위치만 니의 사상이나 가르침만을 가지고는 이단성을 규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그 후계자를 자처하는 위트니스 리와 그 아류들의 주장에서 뚜렸한 이단성이 발견되는 것이다.
그것은 위치만 리는'하나님의 모든 진리가 성경 안에 묻혀 있고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다. 그 진리는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새롭게 발견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군들은 하나님께 "현재의 진리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자신이 주장한 '지방 교회의 진리'도 그처럼 새롭게 발견되는 진리를 실천할 때 그것을 '하나님의 회복'이라고 가르쳤다.
지방 교회는 이와 같이 회복된 교회라는 것이다.
위치만 니의 이런 주장은 언뜻 보기에 정당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하나님의 진리가 시대에 따라 감추어져 있다면 구원에 필요한 진리가 어느 시대에는 없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엘리야는 바알 종교가 온 이스라엘을 뒤덮어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없다고 불평했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끊지 아니한 칠천을 남겨두었다고 하셨다. 시대적으로 볼 때 어떤 암흑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아무리 암흑기일지라도 진리를 알고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없던 때는 없었다.
지방 교회가 나타났음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여전히 감추어져 있다. 창세부터 종말까지 진리는 언제나 열려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위치만 니의 가르침은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성경을 영해(靈解)하게 만든 윈인이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지방 교회의 대부분의 이단적 주장의 요소가 된 것이다.[유다서 3-5]
믿음의 도는 성도에게 단 번에 주신 것이며, 이단의 공격에 직면해서도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잇는 진리를 다시 생각하는 것으로 족하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는 이단과의 투쟁이나 말씀을 사랑하는 학자들 의해서 더 풍성히 정리되고 체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진리가 나타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진리와 교회의 회복'을 주장하는 지방 교회의 이단적 주장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 주요 교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a>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임을 믿는다.
b> 하나님이 유일한 삼일 하나님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동등하게 존재하는 분임을 믿는다.
c>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이 되신 분임을 믿으며,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신 그가 우리의 참 구속자요, 참 구원자이심을 믿는다.
d> 참 사람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삼십 삼년 반 동안을 사심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람들에게 알리셨음을 믿는다.
e>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로 믿으며, 그 분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구속을 성취하셨음을 믿는다.
f>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영적으로 뿐 아니라 육신으로도 부활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생명 주는 영이 되셔서 자신을 우리 안에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으로 넣어 주심을 믿는다.
g>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를 만유의 주로 삼으셨음을 믿는다.
h>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영을 그의 택하신 지체들에게 부어 몸 안에 침례받게 하셨음을 믿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이 오늘날 이 당위에 운행하시며 죄인들을 회개케 하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거듭나게 하고, 그리스도의 지체들 안에 거하면서 그들의 생명을 자라게 하고, 그의 충만한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심을 믿는다.
i> 마즈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들을 맞기 위하여 재림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얻으시고 그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것을 믿는다.
j> 이기는 성도들이 천 년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을 할 것을 믿고 그리스도와 땅에 잇는 모든 믿는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복에 참예할 것을 믿는다.
-이상이다.-
아무리 눈여겨 보아도 정통 교회의 신조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이 교리대로 믿고 가르친다면 지방 교회는 결코 이단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 교회의 지도자들, 특히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은 결코 위에 고백과 같이 않은 데에 문제가 있다.
1>지방 교회의 신관
위에 소개한 대로 이희득씨가 쳐낸'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이란 책에 보면 "하나님이 유일한 삼일 하나님이시며 성부,성자,성령은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동등하게 존재하는 분이심을 믿는다"라는 지방교회의 신관이 나타나 있다.삼일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생소한 표현이지만 그 나머지 부분은 많은 책에서는 이런 고백과는 다른 주장들이 너무 많이 나타난다.겉다르고 속 다르다고나 할까?'하나님의 경륜'이란 책에서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그러므로 삼위일체의 삼위는 하나님의 경륜의 과정에서 세 가지 연속적인 단계three successive steos가 된다."하나님이 세 가지 연속적인 단계가 된다는 말은 무순 뜻일까?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설명한다."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가 소유하고 기뻐할 수 잇는 하나님의 세 하나님의 세 단계three stages one God인 것이다".'스테이지stage'라는 단어는 어떤 사물이 발달 등을 통하여 변화되는 과정을 의미할 때 쓰는 말이다.한 '하나님의 세 단계'라고 말하는 것은 한 하나님이 이런저런 모양으로 변화한다는 뜻이 된다."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천계[하늘]에서는 하나님이 아버지이다.그가 인간들 가운데 표현될 때 그는 아들이시다.그리고 그가 사람들 속에 들어오실 때 그는 성령이시다.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사람들 중에서 표현되었고,아들은 사람들 안에 오시기 위하여 성령이 되었다.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고 아들은 성령이 되었다.-"셋이 바로 한 하나님이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지방교회의 신관은 정통적인 삼위링체의 교리와 같지 않다.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교회가 고백해온 삼위일체의 교리는 지방교회와 판이하게 다르다.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은 '한 하나님의 세 신격'three persons 이다.다시 말해서 고유한 세 인격이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성부는 성자일 수가 없고,성자는 또 성령일 수가 없는 것이다.각각 고유하신 신적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교회의 주장인즉 한 하나님이 성부도 되시고 성자도 되시며 성령도 되신다는 것이다.일신삼위一神三位가 아니라 일신삼역一神三役이라는 것이다.이런 삼위일체론은 지방교회가 처음 주장한 것이 아니다.하나님의 삼위을 부정하고 '한 분이심'만을 강조하는 잘못된 주장이 2세기부터잇었는데 그들은 독재론자獨在論者;Monaachians들이라 불렀다.독재론은'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그러한 질문에 대해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독재론자들인 것이다.'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하나님의로 불려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두 가지 대답이 있었다.예수는 본래 사람일 뿐인데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히 받아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독재론자들은 동력적 독재론자라 불렀다.또 하나님이 잠시 예수 그리스도로 변하여 나타났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예수는 따로 존재한 분이 아니고 이미 계신 하나님이 그렇게 나타났을 분이라고 주장을 한다.예수는 하나님게 모양만 달리하여 나타났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들을 가리켜 얀태론적 독재론자Modalistic Monachans또는 양태론자라고 부른다.후에 사벨리우스라는 사람은 이 양태론을 보다 발전시켰다.그는 성자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게까지 이 양태론을 적용하여 성부께서 성자가 되셨다가 다시 성령이 되어 사람들 안으로 들어 오셨다고 가르쳤다.하나님 혼자서 자신의 경륜을 이루실 목적으로 세 가지 역할을 하셨다는 것이다.
성부,성자,성령은 각각 실질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는 '실질적 삼위일체론'에 맞서 그는 '경제적 삼위일체'를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은 결국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지금가지 교회사에 나타난 양태론을 소개한 것은 지방교회의 신관이 바로 이 양태론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양태론자들이 삼위일체를 말할지라고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삼위일체가 아니다.영원한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의 본질로 존재한다는 저 신비한 계시를 그들은 한 위격의 하나님이 단지 삼역을 해낸다는 삼중적 의미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지방교회가 삼위일체Trinity라는 말을 버리고 삼일 Triune하나님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전통적인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는 증거다.위트니스 리는 그의 책'그 영과 몸'에서 이렇게 주장한다."하나님은 어느날 육신이 되셨다.그는 하나님이셨을지라도 사람 안에 들어 오셨고 사람이 되셨다.그는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하여 하늘로 승천하신 분이다.성육신 되기 전에 그는 단지 하나님이셨다.그러나 이 긴 과정을 통과하신 후에 그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한 하나님이시다.사실상 그는 '하나님-사람'이시다.
이것이 성자 하나님에 관한 주장이라면 크게 잘못될 것이 없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21문에도"하나님의 선택하신 자의 구속자는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뿐인데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사람이 되셨으니 그 후로 한 위에 특수한 두 가지 성품이 있어 영원토록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다"라고 되어 있듯이 그리스도는 참으로 그리되셨다.그러나 지방교회는 삼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이 그렇게 되셨다는 뜻이 된다.
*성경은 오직 한 분 뿐이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다.(신6:4,고전8:4-6,렘10:10)*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신격은 하나가 아니고 셋임을 밝혀 보여주고 있다(요일5:7,마3:16-17,고후13:4,요10:30).
*그 삼위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성들을 갖고 있어서 서로 혼합되거나 바뀌지 아니하신다.(히1:5-8,요1:14-18,15:26,갈4:6)
하나님에게만 돌려지는 고유한 성호와 속성,신적 사역과 예배 등이 그 삼위에게 돌려지는 것을 통해 세 위격이 모두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인간의 경험이나 이성으로는 이해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비한 진리이다.
어거스틴ㅁ은"이해할 수는 없으나 믿을 수는 있는 진리다"라고 말했다.삼위일체를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에 대한 모든 신앙행위와 고백이 빗나갈 수 밖에 없다.그러므로 이 진리를 부인하면 결국 이단에 덜어지고 마는 것이다.
2>지방교회의 기독관
신관에서 살펴보았듯이 지방교회의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한 변화,또는 그 과정으로만 설명한다.위트니스 리는 그의 책'신약성경 안에서 보는 놀라운 그리스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그분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하나님의 아들은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는 하나님이시다(요1:1,14,18)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그분 자신의 표현이시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르러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영이시다.이러한 분이 우리의 삼일 하나님이시다"성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한 분뿐이신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몸을 입은 그리스도로 표현된 뿐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은 (성자가 아님)이제 본래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다.'하나님의 경륜'에서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주장을 했다."아버지 안에 하나님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없었다.그러나 이제 하나님 자신을 아들 안에 나타나셨고 인성 안에서 자신의 신성을 인성과 연합하기를 기뻐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의 신성을 인간의 인성안에 들어와 신과 인간의 혼합체인'하나님-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따라서 영이신 본래의 하나님은 없어지고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신'하나님-사람'만 있게 된 것이다.그 하나님이 아버지도 되시고 아들도 되시는 것이다.
위트니스 리의 주장대로 아버지는 아들과 분리되어 잇지 않기 때문에 성육신 하신 아들 안에 아버지께서 계시고,따라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곧 아버지라는 것이다.
신관에서 살펴보았듯이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까닭에 지방교회의 기독론은 성경적인 기독론이 될 수 없다.즉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세상에 오시고 사람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그리고 아버지께 주기까지 순종하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지방교회는 생각도 할 수 없다.그는 요한복음14:10을 예로 들어 아버지와 그리스도는 서로의 안에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떠난 그리스도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그것은 지방교회가 삼위일체가 아닌 일위삼체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위트니스 리는 삼일하나님이 인간과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양식이라고 한다.만일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실 일이 없다면 굳이 삼일 하나님(성부,성자,성령)으로 되실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셔야 하는가?
우리가 구약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시기 위한 것이다"즉 하나님이 아들도 되고영도 되셔야 하는 것은 인간과 연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리는 그 증거로 창세기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와(창1"26)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언급하실 때(창3:22)
바벨탑을 쌓는 인간을 하감하실 때(창11:7)하나님이 자신을 복수대명사us로 표현하시는데 그것은 인간을 다루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한다.창세기1:1절에 주어진'하나님[엘로힘]'이 히브리어로 복수라는 사실도 하나님이 삼일하나님인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사람이 아닌 다른 피조물을 창조하거나 언급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복수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리의 이런 주장은 참으로 무지한 주장이다.창세기 1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름은 모두 창세기1:1절과 똑같은 '엘로힘'이요 따라서 모두 복수인 것이다.하나님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삼일 하나님이 된다는 것은 그의 무지에서 비롯된 추측이요,거짓말인 것이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을 다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삼위로 계신 것이 아니고 본래 하나님은 영원한 삼위로 존재하심을 가르친다.따라서 성자는 성부와의 곤계에서 고유하고 독특한 존재요,결코 성부나 성령과 혼합되거나 대체되는 분이 아니다.그는 성부나 성령이 하시지 않은 일을 하시고 따라서 그 고유한 지위와 영광을 얻으셨다(빌2:6-11,롬1:3-4)
3>지방교회의 인간관
지방교회의 인간관은 흔히 삼분설이라고 하는 이론으로 대표 된다.이것이 위트니스 리에게서보다 위치만 니에게서 주장되어진 것이다.위치만 니는 처음 창조된 인간에게 영과 육과 혼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들고 고기에 영을 주입하셨을 때 인간은 생혼Living Soul이 되었다고 가르쳤다.아담은 그 혼을 중심으로 행동하여 생명나무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그런데 혼은 선악을 알게하는 열매의 기능인 지식으로 인하여 지나치게 비대해졌고 그런 까닭에 인간은 혼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위치만 니는 그러한 상태를 가리켜 육에 속한 자라고 한다.즉 하나님을 거스리고 죄를 짓는 것은 혼이 자아와 그 의지를 지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위치만 니의 이런 입장의 바탕으로 하고 위트니스 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인간의 몸을 사단의 거처로 주장한 것이다."몸은 단순한 죄의 거처가 되었다.사단의 화신이 된 것이다.죄는 사단의 구체화이며 죽음은 사단의 배출이며 결과이다.이 썩고 변행된 몸을 '죄의 몸'또는 '사망의 몸'이라고 부른다.아담이 지식의 나무를 취한 것의 의미는 아담이 사단을 자신 속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아담이 지식의 열매를 취했을 때 그는 사단을 받아드린 것이다.사단은 아담 안에서 자라났으며 그의 한 부분이 되었다.
위는 위트니스 니의 '하나님의 경륜'이란 책에서 인용을 했다.여기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는 인간과 사단의 관계를 혼합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로 주장하는 인간관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인간들과 그들의 세계에 사단이 어떤 모양으로든 역사하는 것은 사실이다(엡2:1-3)그러나 인간이 사단의 거처라든지 사단이 아담 안에 들어와 거기서 자라나 그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것은 결코 성경적 인간관이 아니다.
성경이 때때로 인간들의 마음에 사단이 역사하는 것을 가리켜"사단이 마음에 가득하다"(행5:3)거나"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눅22:5)라고 표현하여 인간의 내면에 사단이 흡입되는 것처럼 표현한 곳이 없지 않다,그러나 누가복음22:5의 병행구인 요한복음 13:2절에"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에서 보는 것처럼 마귀의 유혹이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 뿐이다.
아담 안에 사단이 있다면 모든 인간 안에도 사단이 있다는 뜻이 된다 아담의 경험은 '대표의 원리'에 의해서 보편성을 갖기 때문이다.그러나 성경은 인간 안에도 사단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베드로가"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지만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단으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위트니스 리는 로마서6:6절의 ;죄의 몸'이나7:24절의'사망의몸'이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는 죄나 사망을 사단과 동일시 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이 곧 죄는 아니며,도한 사망이 사단이 아니다.사단은 하나님의 인격적 존재지만 죄나 사망은 결코 인격적 존재가 아니므로 죄나 사망을 사단과 동일시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사망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격리되는 상태요,처소이다.사단도 그 디은 죄로 말미암아 종국에는 이 사망에 들어갈 것이다(마15:41,계20:10)
4>지방교회의 구원관
지방교회의 구원관은 위에 언급한 그들의 인간관과 밀버하게 연관되어 있다.즉 인간이 범죄하므로 사단과 영합되어 인간의 몸 안에 사단이 거처하게 되었다.그러자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신 인간 안에 들어 오시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인간과 그 안에 있던 사단을 죽음 가운데 끌어들였다고 한다.그런 다음에 하나님으 ㄴ부활하시므로 사단을 죽음 가운데 둔 채 인간만을 거기서 인도해 냈다고 한다."타락 후 사단은 인간을 정복하는데 성공했다.아직 인간 밖에 있었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았다.나도 또한 성육신 해야 겠다.사단이 스스로 인간에게 들어갔다면 나도 인ㄷ간에게 들어가 내 위에 인간을 덧입어야 되겠다""결국 주님은 오셔서 인간을 십자가로 인도하기 위해 인간을 덧입으셨다.....동시에 으러한 타락은 인간 안에 있던 사단도 죽인을 당한 것이다.그리스도께서는 사단과 함께 인간을 죽음과 무덤에 내어 주었다.그리고 사단과 무덤에서 사단을 떼어놓고 인간을 인도해 냈다.그리스도는 사단을 무덤에 장사지낸 채 버려두었다""이 부활을 통하여 인간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성육신에 의하여 하나님은 인간 속에 들어가셨다.그리고 부활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이제 하나님은 인간의 영 안에 계신다"
위트니스 리의 책'하나님의 경륜'에서 인용한 내용이다.지방교회의 구원관은 사단과 영합된 인간에게서 죽은을 통하여 사단을 제거하고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영합된 인간이 되는 것,그리하여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럴듯한 이론이지만 지방교회의 이런 구원관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아담을 타락하게 한 사단이 아담 안에 거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도 아담 안에 들어가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셨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다.영적 존재인 사단이 아담 안에 들어가기 위해 성육신하지 않았는데 왜 하나님은 성육신을 하셔야 하는가?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과 사단을 포함한 죽음이라는데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사단이 있었단 말인가?
죄가 곧 사단이라는 주장대로라면 그리스도는 그 안에 사단,즉 죄를 지니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에게 결코 죄가 없었고(히4:15)그러므로 그의 죽음이 우리를 죄에서 대속하실 수 있다고 가르친다(히9:14)
지방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속적인 죽음으로 보지 않고 계략적인 죽음으로 보고 잇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혈육에 속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의 죄성을 입으신 것은 결코 아니다.
지방교회의 주장인즉 하나님이 죄 있는 인간 안에 들어오셔서 그 인간의 몸,즉 죄 있는 인간의 몸으로 죽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죽으심은 죄로 말미암아 죽으신 것(롬5:12)이 아니고
죄에 대하여 죽으심이다(롬6:10)
그는 죄때문에 죽을 몸을 입으신 것이 아니라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몸을 입으셨다.따라서 그의 죽음은 죄의 결과로 죽은 것이 아니고 죄를 극복하려는 대속적인 죽음이었던 것이다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죄의 권능인 율법'(고전15:56)을 출족시킨 것이요,따라서 그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롬3:21)가 되신 것이다."하나님은 아담 안에 온 인류를 포함시킨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그를 믿는 자들을 포함시켰다.따라서그의 죽음은 그를 믿는 자들과 함께 죽으신 것이요,그의 부활은 그르 믿는 자들과 함께 살아 나신 것이다.(롬6:3-11).그리스도 안에 잇는 자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고후5:17).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하신 일이다.하나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이제 이 사실을 마음에 믿음으로 이 구원을 자신의 것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롬6:17-18).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구원이 개인에게 체험되고 누려지기 위해서 복음의 전파가 필요한 것이다(롬10:8-15)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다.이와 상충되거나 모순되는 주장은 결코 성경적인 구원관이 될 수 없다.
5>지방교회의 교회관
'지방교회'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이 단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그들의 교회관에 있다.
기성교회와 실제적인 마찰도 그들의 교회관 때문에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지방교회의 한국 책임자 이희득씨'지방교회의 신앙생활'에 나타난 지방교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a>어떤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지 않고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령 위에 선다.
b>산 반석이요 기초석이요 몸의 머리시요 교회의 생명과 실체가 되시는 그리스도 위에 선다.
c>그리스도의 참된 한 몸 위에 선다.어떤 종파나 교파에도 속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비교파나 초교파도 아니다.
d>각 지방에서 모든 믿는 이들을 포함한 합일의 입장 위에 선다.즉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기성교회 교인들까지)을 각 지방에 잇는 한 교회의 지체로 인정한다.
★같은 책에 잇는 '지방교회의 사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a>죄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은혜의 복음과 천국 복음을 전파한다.
b>믿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 자라 수 있도록 은혜의 복음과 천국 복음을 전파한다.
c>믿는 이들이 각 지역에서 실제적으로 그리스도를 단체로 나타낼 수 있도록 각 시에 교회를 세운다.
e>믿는 이들이 공급을 받아 생명이 자라고 장성할 수 있도록 성경에 있는 말씀을 공급한다.
f>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여 신부를 단장한다.
여기서 나아가 지방교회는 다른 교회들에 매우 배타적이다.그것은 위치만 니에게서부터 발견되는 사상이요 주장이다.1943년 상해에서 열린 제3차'이기는 자의 집회'에서 위치만 니는 지방교회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새로운 교파나 새로운 운동이나 새로운 조직이 아니다.여기에서 우리는 어느 교파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파벌을 창립하는 것도 아니다.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부르심이나 위임이 아니였다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부르심과 위임 때문에 지방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특별한 부르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여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른바'오늘의 진리'라는 것을 깨달아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한다.위치만 니는 '하나의 교회'와 '하나님의 중심' '십자와 부활'등 많은 진리를 깨달은 자요,따라서 그가 이끄는 지방교회만이 이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는 교회임을 암시하고 있다.위트니스 리는 그보다 더 과격한 교회론을 주장했다.
"유대교는 사단적이고 천주교는 마구적이고 개신교회는 그리스도가 없다.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르친다.그러나 그리스도는 거기 계시지 않는다.여러분은 참으로 오늘날 살아계신 주님 예수께서 개신교회들 안에 계신다고 믿는가?당신이 믿든 안 믿든 간에 주님은 문밖에 계신다고 말씀하신다"(Stream Magazine 1976.11월)
"어느 도시에서든 지방교회 아닌 다른 교회에 들어가면 당신은 분열로 들어간 것이다.""교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소경이었다.나는 크리스챤으로서 참빛을 얻고 크리스챤이 여전히 교파 가운데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그리스도냐 종교냐)
위트니스 리는 지방교회 외에는 참 교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위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주장하는 지방교회의 교회관은 그들의 신학지식의 빈곤과 과대망상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당시 중국교회가 전반적으로 그런 형편에 어쩔수 없는 형편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체계적인 신학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함이 그들의 주장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위치만 니가 열거한 인물중에 재세례파나 다비파,그리고 신오순절 운동(Neo Pentecost Movenment)등은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켜 오늘날에도 그 영향이 계속되고 있다.
위치만 니는 그들의 주장이나 사상을 신학적으로 비판하여 평가하지 않고 단지 그들을 통해 나타난 종교적 형상만을 보고 그들을 영적이라고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칼빈이나 웨슬리를 '오늘날의 진리'를 발견한 영적 인물로 소개하면서도 그들의 사역의 결과인 교직 제도는 성경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위치만 니는 그의 간증을 통해 1926년에 십자가의 의미를 1927년에는 교회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고,1934년에는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늘날 신학교의 초급 과정에서나 다루는 그야 말로 기초적인 내용을 그는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이 과대 평가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과대망상적 우월감은 대부분의 이단들이 그러하듯 자신들의 교회만이 참교회라고 주장하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회관을 낳았다.
'한 지방에 한 교회'라는 지방교회의 교회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인지는"서울에 교회가 하나남 있어야 한다"는 말로 대입해 보면 당장 드러난다.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는 오직 하나 뿐이다.그러나 그것은 영적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지 한 지방에 한 교회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지방이라는 것 자체가 행정상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인위적인 것인데 하나님의 교회가 그 분류에 얽메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3.결론
지방교회는 위치만 니의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된 것이 사실이나 처음부터 그 방향과 방법에 문제를 안고 있었다.교단이나 교파를 거부하는 행위 자체가 언뜻 보기에는 순수하고 성경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거기에 바로 실패의 함정이 잇는 것이다.아무의 지배나 간섭도 없이 성령의 인도 아래서 행한다믐 것은 언제라도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행동할 위험을 안고 있다.물런 교회가 조직이나 제도만을 앞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런 외적형식 없이 영적 공동체로써 존재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예수님이 가르치신 바"이것(형식)도 행하고 저것(내용)도 버리지 말아야"하는 것이다.
지방교회는 그들의 존재방법에 있어 정직하지 못한 윤리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본론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대외적으로 전통기독교와 차이가 없는 것처럼 그들의 교리를 내세우나 실제로는 그것과는 딴판인 것들을 가르치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단들은 그 점에서 오히려 정직하다.겉과 속이 다른 것은 곧 거짓이요,그것은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한 수단이다.
순진한 기성교회 신자들이 지방교회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들의 성경해석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성경을 지나치게 영해靈解하여 가르치는 경향이 잇는데 미혹된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성교회에서는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는 것이다그러나 그 영해 속에 바로 이단적 요소가 숨어 있는 것이다.
전통적이고 신학적인 입장을 무시하는 성경해석은 베드로가 경고한 것처럼 자신과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한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잇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
"먼저 할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
참조 글과 책:기독교의 이단들. 기독교 이단 연구. 이단종합 연구.월간 현대 종교
3. 지방교회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그동안 지방교회를 지켜보면서 우려했던 것은 바로 ‘신.인 합일의 신격화’ 였는데 우려하던 그것은 ‘계시의 최고봉’ 이라는 교리적 현실로 들어나 1984년 이미 한국 지방교회 <전국 제26회 특별집회>를 필두로 보급되기 시작하여, 이미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부터 한국어로 녹취돼 보급되어 왔다.
1) 사상변화의 여러 단계들
① 기초사상 -
그의 고향에 있던 형제회에서 7년 반동안 있었는데, 이것은 Lee 의 사상적 출발점이고 또한 웟치만 니의 사상적 기초이기도 하다. Nee 의 저서를 보면 그는 집회에서 구원파처럼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하며. “당신이 몇 년, 몇월, 몇일(어떤 사람은 월. 일을 잊어 버렸다.)에 구원받았듯이 당신이 이김을 얻은 날이 몇년, 몇월, 몇일 인가를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날짜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② 1950년 변화의 계기 -
위와 같이 시작된 윗트니스 리의 사상은 대만과 미국에서 다른 변화가 있었다.
그는 중국본토에서 나와서 1949년부터 1961년까지 대만에 머물렀던, 그는 “대만에 도착한 후 나는 또 다른 중대한 면 즉 「그 영」에 대하여 보기 시작했다. …
나의 저서들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지난 34년 동안 나의 저서들의 초점은 그 영 이었음을 보게 될 것이다.… 1961년 말에 나는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에서의 나의 말씀의 사역은 그 영에 초점을 맞춤으로 시작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사역초기 영적 체험을 강조하다가 1950년(45세)부터 ‘삼일 하나님의 완성’ 으로서의 ‘그 영’ 에 대한 확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이를 강조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윗트니스 리는 ‘복합적인 영과 최종 완성된 영을 말하지 않고, 만유를 포함한 영과 일곱 배로 강화된 영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신경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③ 변화된 사상 -
그는 1950년부터 연합(mingling) 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 수세기 동안 내적 생명에 대한 가르침에서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단어는 합일(union)이라는 단어였고. 註, 이것은 형제회 다비가 한 서신에서, “나는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었고(엡2:6) 결과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자리가 그 자신에 의해서 마련되었다.”는 체험적 결론과 함께(Letters, 3;298) “그리스도가 높아지심과 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깨닫게 되면서 강조된 내용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다만 합일의 관계일 뿐 아니라 연합의 관계임을 깨닫고, ‘그 영’ 에 초점을 맞춘 그의 20여년 사역의 결과는 ‘거룩한 분배’ 이었다.
1949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는 ‘영적 체험’을 강조하다 ‘그 영’을 깨닫고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가 ‘그 영’을 강조했으며, 1980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진리를 보기 시작해. 1984년 부터 ‘하나님의 경륜’을 1994년(89세)부터 1997년(92세)까지 ‘계시의 최고봉’ 을 설파했다.
2) 선교 정책 변화와 내용
① 교육 정책의 변화 -
윗트니스 리는 1970년 7월 특별 집회 등에서 평소 제도적 종교 교육을 부정하다가 1988년 4월 대만 대북 집회에서는 “나는 대학이나 대학원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졸업후 직장을 갖기 전에 적어도 일년이나 이년동안 주님을 추구하기 위해 시간을 갖기 바랐다.” 고 말했다.
㉠ 이런 바램은 한국에서 그대로 실천되어 미국의 아나하임, 중국의 대북, 러시아, 인도네시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전시간 사역자 훈련을 1996년8월5일부터 서울 강서구 화곡동 1005-2호 서울교회 제8집회소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신갈에 있던 모 증권회사 연수원을 인수해 ‘성경진리사역원’을 설립하고, 전시간 봉사자(전담 목회자)지망생 들을 훈련하고 있고,
㉡ 전시간 훈련의 5가지 목표와, 전시간 훈련의 4가지 목적하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 이곳에서의 훈련내용으로는 다섯 가지가 있다.
② 선교정책 변화 -
그는 “동양과 서양에서의 우리 가련한 상황을 깨달은 이래로 1984년 10월에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 하여, ‘1984년 지방교회의 회복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고, 우리들이 취해온 방법을 단지 계속해서 실행해 갈 길이 없었기 때문이라.’ 고 밝히고, 그는 1984년부터 1989년까지 5년의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정하신 길」즉, 낳고, 기르고, 온전케 하고, 건축하는 4단계(註: 生, 養, 敎, 建) 를 포함함을 보았고, 그는 “신약 안에 계시되어 있는 이방법에 따라” 선택했다는 복음전파의 방법으로서의 이 ‘새길’ 을 제창하기 시작했다.
그는 1989년 가을 전시간 사역자 훈련에서 몰몬교와 여호와증인의 ‘문 두드림’ 에 대해서 연구해 “우리는 우리의 길에서 너무 느슨했다.”고 자책하고. 그는 가정방문 전도의 실 예를 몰몬교와 일일이 비교하면서 “우리 가운데의 문제는 우리가 낡아졌고 진부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새 길을 취하지 않는데 있다.” 지적하고 전시간 사역자들에게 ‘필사적이라면 성공할 것’ 이라고 독려했다.
그는 ‘새길’ 즉 ‘하나님이 정하신 길’ 은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에 이 방법은 ‘주의 회복’ 의 전체 구조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자면 ‘적은 무리’를 자처하며 시작한 저들은 ‘ 큰 무리’ 로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누가복음 12장에서 주님이 제자들의 무리를 「적은 무리」(32) 라고 말씀 하셨다고 하면서 동의하지 않고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 는 무리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이들이 여호와의 중인들처럼 기성교인들을 찾아 다니며 “나는 몰몬교도나 여호와증인이 아닙니다.” 라며 얼마나 극성을 부릴 것 인가를 상상해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회복운동의 초기에는 기성교회와 같은 신학 혹은 조직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외면하다가 점점 교세가 확장되어 가면서 그 필요성을 강조했고, 교세가 위축되자 몰몬교를 본받아 가정방문전도 정책으로 전환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핵심 사상인 ‘그 영’은 오스틴 스팍스로 부터 받은 영향이고, ‘연합, 합일’ 사상은 존 넬슨 다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고,
‘계시의 최고봉’ 은 죠지 폭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새길’ 노선은 몰몬교와 여호와 증인에게서 본받은 것으로 분류해 볼 수도 있겠다.
3) 계시의 최고봉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윗트니스 리가 생애의 말년 4년 동안 설파한 최후 최고봉의 교리였고, 관련자료가 20년간 자체 각종 훈련 교재로 사용되었고, 한국복음 서원을 통해 많은 서적이 한국 교계에 보급되어 왔다. 이에 대한 주장을 요악해 보기로 하겠다.
1) 1987년(85세) 극동의 반대자들이 “이 형제 님의 사역이 1984년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1984년부터는 이 형제 님이 그의 사역을 바꾸었고 이것이 회복의 본성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더라는 말을 윗트니스 리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극동의 반대자들이 말하는 1984년은 그의 나이 79세가 되는 해이다. 그렇다면 79세 고령의 나이에서 윗트니스 리가 “바꾸어 놓았다는 회복의 본성” 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
그는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사역을 시작했다. 이 두 요점에 관하여 수많은 메시지들이 현재 다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중에 적지 않은 메시지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것이었다.
십여년 전인 1980년(75세)부터 주님은 나에게 그리스도의 몸이 있으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분배가 있어야 함을 보여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그리스도의 분배하심을 말하기 시작했다. …
그러므로 1984년부터 나의 많은 메시지는 다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것이었다. 금년(註:1994년) 봄 (사실은 작년부터임 - 필자 註; 작년은 1993년임-88세) 에 나는 계속하여 더높은 단계로 올라갔다.
내가 본 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심으로 사람이 하나님 될 때만이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상의 최고봉이다.” 라고 밝혀주고 있다.
2) 그는 1980년(75세)부터 ‘거룩한 분배론’을 가르치다가 1994년(89세)부터 ‘계시의 최고봉’ 이라는 사상을 설파했다. 그는 1994년(89세) 5월 17일부터 20일까지 미국 아나하임에서 대북의 장로들에게, “오늘 저녁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되심은 사람으로 하나님 되게 하려 하심」에 관하여 볼 것” 이라는 메시지를 시작으로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계시의 최고봉’을 설명하고 있어 이를 원문 그대로 옮겨 본다.
① 창조의 목적 -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창조하셔야 했다. 이것이 첫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로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려고 오셨다.
…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 바로 그분 자신이 사람이 되시고 또한 사람을 하나님 되게 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똑같이 되게 하는 것이다.”
② 사람이 하나님 되게 하심 -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되게 하시는가?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생명으로써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에,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그분의 생명의 영으로 우리를 거룩케 하고 새롭게 하며 변화시키는 역사를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육신이 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되는 것은 변화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거듭남과 거룩케 됨과 새롭게 됨과 변화와 형상을 본받음과 영화롭게 됨을 통해 하나님이 된다.” ③ 생명과 성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다. -“내가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이 있을 뿐 하나님의 신격은 없다는 것이다.”
④ 들떠 있는 신도들 - 그러나 그들은 「아기 하나님들」 「작은 하나님」「쌍둥이 하나님들」을 자처하면서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種이다,’ ‘하나님의 형체는 원본이고 사람의 형체는 하나님의 형체의 복체품 곧 복사품’ 이라고 주장하고, ‘사람이신 하나님은 이천살 밖에 되지 않는다,’ 고 주장하면서 <어떤 기적 어떤 비밀인가.?> 라는 찬송가까지 만들어 사용하면서 각종 훈련시에 “계시의 최고봉‘ 이라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이뿐 아니라 1997년 7월3일 미국 얼바인대학 이벤트 센터에서 있었던 지방교회 여름훈련집회시 성명 미상의 한 강사는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들이 될 것이다. 성도들이여 틀림없이 하나님이 될 것이다. 어느날 아침 나의 자매가 나에게 ‘하나님 안녕하세요?’ 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은 다 하실수 있다.” 고 기염을 토하기도 한바 있다.
기독교 이단.사이비연구대책 협회
지방교회의 성경 해석 [
(5) 구약에서의 성령의 내주
# 에노스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영이 그 안에 있었다. 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그에게 임하지 않았다면, 그의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에녹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했겠는가?
에녹은 땅에 있었고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셨다면 이 땅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
두 사람이 동행하는데 한 사람은 하늘에 있고 한 사람은 땅에 있다면 어떻게 동행할 수 있겠는가? 에녹이 하늘에 올라 갔는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 하나님이 오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임하여 아버지와 아들과 영인 그 영이 이 사람의 영을 접했다. 이러므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하나님도 에녹과 동행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창 5:24).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그 분 자신을 에녹 안으로 역사하신 것을 말한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28 쪽)
이러한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모순이 있다.
왜냐하면, 지방교회가 주장하는대로 생각하면, 구약의 하나님은 아직 살려주는 영이 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즉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의 안으로 들어 올 수가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의 창세기에서 에노스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영이 그 안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저 신인합일이라는 사상을 어느 성경구절에나 작용시키려고 하다보니 이러한 모순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자신이 뒤짚는 경우가 되고 말았다.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고 말하고 있다.(창5:24)
그러나 위트니스 리는 "에녹이 하늘에 올라가지 않았고 하나님이 내려 오셨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이 에녹 안으로 역사하였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기사와 개인의 주장이 다를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느 주장을 믿어야만 할까?
1. 하나님과 동행하다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에녹이 땅에 있기에 동행할 수가 없다는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그야말로 무식한 주장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충만하신 분이며 "하늘이 그의 보좌이고 땅이 그 분의 발등상"이라는 사실을 위트니스 리는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땅에 계시지 않았고 언제나 하늘에만 계셨단 말인가?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창 22:6)
아브라함과 이삭은 동행하였다. 지방 교회는 동행하다는 단어를 아브라함의 안에 이삭이 있었다고 해석하는가?
엠마오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동행한 주님은 제자들 안에 있었는가?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눅 24:15)
2.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에녹이 데려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위트니스 리는 에녹이 하늘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성경과 위트니스 리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옳다고 지방교회는 생각하는가?
신약 성경에서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 11:5)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직접 옮겨진 것이다.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않았다. 천국으로 갔기 때문이다.
3. "동행하다"는 히브리어 "하라크"는 "걷다. 행진하다. 행동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그의 일을 함께 역사하여 주신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이 함께 걸어주신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인도와 보호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리브가를 구하러 갈때에도 이 용어가 사용되었는데(창 24:42, 나의 행하는 길), 위트니스 리의 주장대로라면, 아브라함의 늙은 종도 하나님이 직접 내려오셔서 그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연합되어 하나님이 되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4. 지방 교회는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역사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에녹은 영이 그 안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만일 구약에서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와 직접 역사한 것을 밝힌다면, 지방교회가 여태까지 주장하던 양태론적인 주장, 즉 하나님 자신이 직접 십자가에 달려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여 살려주는 영이 될 필요성이 없어지고 만다. 성경을 보자....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겔2:2)
NIV: As he spoke, "the Spirit came into me" and raised me to my feet,
KJV: And "the spirit entered into me" when he spake unto me, and set me upon my feet,
히브리어 "보"는 "안으로 오다, 거하다"는 뜻이다.
분명히 “Came into” 이며 그것이 외적 사역인지 내적 사역인지 확인하기 바란다.
또 겔3:24, 단4:8, 단4:18, 5:11등도 모두 외적 사역이 아니라, 내적으로 거함을 의미한다.
NIV 영어성경, KJV 영어성경,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을 참조하기 바란다.
또 눅 1:41에서는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되어있으며 이것은 "was filled with the Holy Spirit" 로 번역되어 충만히 채워지는 가득한 내부적인 상태를 말하며, 눅 1:61에서 그 부친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을 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또 모세에게 임하였던 성령을 동시에 70 인의 장로에게 임하시게 하시던 일도 있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로와 유사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칠십 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민 11:16-17)
실제로 민 11:25에서 칠십 장로에게 하나님이 신이 임하여 오순절과 같이 그들이 예언을 하게 된다.
특히 회막에 나가지 못한 두 명의 장로(엘닷, 메닷)에게도 진 중에서 하나님이 신이 임하여, 그들도 에언을 하게 된다.
(6) 천국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2-6)
지방 교회는 죽어서 가는 장소적인 개념의 천국을 부정한다.
# 죽으면 천당(국)간다는 말은 이교도의 가르침입니다. 사탄이 한 최대의 거짓말 중 하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하늘 어디엔가 있는 집)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교도적인 거짓 사상이 버젓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믿음 생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을 변질시킴으로 참된 성도들 생각 속에서 말끔히 씻겨져야 할 누룩인 것입니다.(지방교회 게시판의 글)
#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죽으면 주 예수를 믿는 한,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들이 일단 죽으면 그들은 천당에 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여러분이 왕국의 비밀을 안다면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의 왕국, 315 쪽)
정통 신학에서의 천국개념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되어지는데, 이는 성경이 그와 같이 언급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실제적인 신정 정치의 왕국.
둘째는 미래적이고 궁극적이며 종말적 의미의 장소적 개념
세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순종하는 개인적인 성도로 구성되는 내면적인 의미
지방 교회는 다른 성경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세 번째 개념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에 맞는 성경만 부분적으로 인정하며, 다른 구절에 대해서는 엉뚱한 짜맞추기로 일관하고 있다.
변화산 사건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준 것은 그들이 "죽기 전에" 보여준 하나님 나라와 그 왕권이다.
마태: 죽기 전에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마 16:28)
마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가 있다(막 9:1)
누가: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가 있다.(눅 9:27)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 나라"에 있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죽어야만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왕국을 "죽기 전에" 보여주었으며 "죽기 전에" 미리 주님이 왕권을 갖고 오는 것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또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천국과 하나님 나라에 있었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에 의하면, 죽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다. 다시 말하여 나사로는 죽어서 천국, 하나님나라에 있었다.
마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 8:11)
누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눅 13:28)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 16:22)
십자가의 강도는 예수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자신을 생각하여 달라고 하였으며, 주님의 대답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답변이었다.(눅 23:42-43)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강도는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었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곁으로 간다는 것은 성경적인 기록이다.
-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3)
-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는 들으라(마 13:43)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여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받으실지니이다."(욥 1:20-21)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23-24)
-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2-24)
-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8-10)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10-11)
-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 116:15)
-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전 15:19)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0-21)
-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30)
-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0:30)
-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계 6:9)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 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 20:4)
죽어서 가는 천국이 없다는 지방 교회.....
하나님은 천국에 계시지 않는다는 지방 교회....
주님은 사람의 안에서 재림한다는 지방 교회....
교회가 천국이라는 지방 교회.....
(7) 열 처녀
열 처녀에 대한 비유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비하라”는 것으로,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을 미리 예비하라는 교훈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위트니스 리는 이 비유를 또 그들의 교리인 신일합일로 짜맞추기를 시도한다.
# 믿는 이들이 휴거될 때, 모든 세대에 걸쳐서 죽은 자들중 대다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 것이 다. 이 대다수는 마태복음 25 장 1 절부터 12 절까지에 나오는 열 처녀로 상징되어 있다.
마태복음 25 장 1 절 은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간 열 처녀와 같다하리니"라고 말한다. 여기 숫자 열은 대다수의 믿는 이들을 대표한다.
믿는 이들의 전체는 숫자 열 둘로 상징되어 있다. 나머지 둘은 마태복음 24 절 40 에서 42 절에서 발견된다.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믿는 이들은 마태복음 24 장에 있는 숫자 둘과 25장에 있는 숫자 열에 의하여 상징되어 있는 두 부류 중에 있게 될 것이다. 두 남자와 두 여자는 일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살아있을 믿는 이들을 대표한다. 이에 반하여 열처녀는 모두 잠들어 있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대다수의 죽게되는 믿는 이들을 나타낸다 (위트니스 리, 믿는이들 2, 1015-1016쪽)
위트니스 리는 원래 열 두명인데 열 처녀의 열명 외에 다른 성경 구절에 두 명이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 열 처녀가 모두 죽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 처녀들이 "졸다가 잠이 들었다". "조는" 것은 병 드는 것을 상징하고, 잠드는 것은 죽는 것을 상징한다.
주님이 그분의 다시 오심을 지체하시는 동안에 믿는 이들은 대다수 먼저 병들게 되고 나중에는 죽는다.(믿는 이들 2, 1016-1017쪽)
지방 교회는 조는 것은 모두 병들었다고 해석하고, 잠자는 것은 죽었다고 해석하는 모양이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열 처녀에 대한 말씀은, 워치만 니에게 이상하게 해석되더니만, 이젠 병들고 죽은 열처녀들로 바뀌어 위트니스 리에게 난도질을 당하여 주님의 말씀이 변질되어진다.
완전히 성경 말씀을 제 멋대로 해석하고 변질시켜서.... 자신들의 사상과 교리에 짜맞추기가 된다.
지방 교인들은 모두 졸고 있는지 궁금하다.
# 마태복음 25 장 2 절은 처녀들을 말하는데 그들 중 다섯 명은 어리석었고 다섯 명은 슬기로왔다. 다섯은 넷에 하나를 더해서 이루어지며, 하나님(하나로 상징)이 더해진 사람(넷으로 상징됨)이 책임을 맡는 것을 상징한다. (1017쪽)
다섯이 넷에다가 하나를 더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더해진 것이라고 한다..... 다섯은 일곱에서 둘을 뺀다는 해석은 통하지 않는지?
그저 아무 해석이나 붙이면 되는 것이다.
# 그러나 교회 시대에 생명 안에서 성숙하지 못한 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천년 왕국 안에 들어가서 그 시대의 신성한 복음을 함께 상으로 나누는 데 있어서 예비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 동안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천년 왕국 동안 그들은 주님에게 징계를 받고 성숙에 이르도록 생명 안에서 자란 다음, 영원의 단계 안에서 신성한 복들에 동참할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다시 기록될 것이다.(교회, 423-424쪽)
위트니스 리는 자신의 임의대로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다시 기록된다고 주장한다.
주님에게 징계를 받고 생명이 성숙하게 자란 다음 다시 구원을 받는다는 카톨릭과 같은 제 3의 기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 기름을 파는 자들은 구 감람나무와 기름의 두 아들들인 대환난 중의 두 증인임에 틀림없다(계 11:3-4. 슥4:11-14) 대환난 동안에 기름의 두 아들들인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의 백성을 도우러 올 것이다.(1019쪽)
기름을 파는 사람에 대해서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단지 다섯 처녀들이 기름 을 사러 간 사이에 혼인 잔치가 시작되어 슬기로운 처녀들이 들어가게 되고 문은 닫힌 것이다.
어느 누가 보아도 열 처녀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은 “재림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 기름을 파는 자가 누구인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열 처녀의 비유에 대한 핵심은 언제 올른지 알 수 없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경고이며, 누구이든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교훈이다.
모세이든, 엘리야이든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도와줄 수는 없다.
그 비유에서 등장하는 모든 단어와 용어가 다 어떠한 비유나 상징을 일일이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비유란 핵심적인 의미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모든 단어와 모든 용어까지를 비유와 상징으로 뜻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조는 것은 병드는 것을 말하고 자는 것은 죽는 것을 말한다는 해석은 코메디에 가깝다.
혼인 잔치를 앞두고 병들고 죽었는데도, 병든 자들은 기름을 사러가고 죽은 자들은 혼인 잔치에 참여 할 수가 있는지?
이러한 성경 해석을 "성경대로"라고 정의한다면, 과연 성경대로가 아닌 것이 무엇인가?
(8) 사내 아이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의 사내 아이,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도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이들에게 예수는 곧 하나님이 된 지방 교회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 사내 아이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는 사실은 사내 아이가 2 장 26-27 절에 언급된 이기는 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 12장5절에서의 "낳으니"는 사도행전13장33절, 34절에서처럼 부활을 상징한다. 사내아이는 죽었다가 부활한 이기는 성도들로 구성된다. 이것은 계시록 12장11절의 "죽기까지"라는 말로 증명된다. 죽은 모든 이기는 자들은 사내아이의 부분이 될 것이다. 사내아이는 부활에 의해서 완전히 출현될 것이다.(위트니스 리, 교회 404)
이미 지방 교회가 말하는 부활이 어떠한 개념인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내 아이는 누구를 말할까?
# 계시록 2 장 13 절에서 주 예수님은 버가모교회에게 "네가 어디 사는 곳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보좌가 있는 데라"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이 거하는 곳은 세상이다. 교회는 세상과의 연합 안으로 들어가서 세상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사탄이 거하는 곳, 즉 세상 안에 거하고 있다.
버가모교회는 또한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에 거한다. 또다시 이것은 세상을 언급한다. 세상은 사탄의 거처일 뿐 아니라 그가 다스리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제 교회는 세상과 하나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탄과 하나 되었다. 그런 세상적인 교회는 사탄의 사상과 관념과 이론과 형습들로 흠뻑 적셔졌다.(교회 385쪽)
# 교회는 사탄의 회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결국에는 세상적으로 되어서 사탄이 거하는 곳이요, 그의 보좌가 있는 곳에 거했다. 그러나 두아디라에는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이제 사탄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교회를 그 자신으로 흠뻑 적셨다. 변절한 교회 안에는 사탄의 깊은 것들, 즉 사탄의 비밀스런 교훈들이 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의 깊은 사상, 사탄의 관념이 변절한 교회를 흠뻑 적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이 교회는 사탄의 체현이 된다. 합당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변절한 교회는 사탄의 체현이다.(교회 388 쪽)
지방 교회는 사탄의 왕국을 기독교의 교회로 본다. 사탄과 하나가 된 곳, 사탄이 거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내 아이는 누구를 말하고, 그 사내 아이를 쫓던 용, 즉 사탄은 누구를 말하는가?
용은 기독교, 즉 사탄이고, 사내 아이는 지방 교회라는 것이다.
# 성경에서 여자는 보다 약한 자를 상징하고, 남자는 보다 강한 자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계시록 12 장 5 절에 있는 사내 아이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보다 강한 부분을 의미한다.
모든 세대에 걸쳐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는 일부 더 강한 자들이 있어 왔다. 성경에서 이들은 하나님을 위해 전쟁을 치루고 하나님의 왕국을 땅으로 이끌어 내라는 집합적인 한 단위로 여겨진다.(교회, 404 쪽)
위트니스 리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다음 구절에 내포되어 있다.....
# 만일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이긴다면, 진실로 우리는 이기는 자들, 즉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대적하는 상황을 이기는 자들이요, 세상과 사탄과 적그리스도들과 타락한 기독교계의 모든 타락들을 이기는 자들이다.(교회 401-402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