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슝노 소년들
이중부와 한준은 석태가 다시 가져온 도끼를 나귀 안장에 걸고는 강가로 나갔다.
그런데, 사흘 전에 보아 놓았던 아름드리 고목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그 나무에 붙어 있었다.
처음 보는 또래의 소년 5명이 그 고목에 붙어 두 자루 도끼로 열심히 도끼질하고 있었다.
큰 가지 두어 개는 벌써 자른 상태다.
이중부와 한준은 다리에 힘이 빠진다.
‘며칠 전부터 벼르고 왔었는데, 그 나무를 이미 다른 사람들이 작업하고 있다니….’
주인 없는 강변의 마른나무, 먼저 보는 놈이 임자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고목 가까이 다가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쉬움을 접어두고, 하는 수 없이 나귀의 머리를 돌려 강 하류 쪽으로 향하였다.
그때 머리 뒤쪽에서 파공음 破空音이 들리는 것이었다.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나귀의 머리와 중부의 머리가 맷돌처럼 포개진다. 순간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머리 위로 ‘획’ 날아가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머리에 맞을 뻔했다. 순간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니 소년 다섯 명은 도끼질하다가 이중부 쪽을 바라보고는 저들끼리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누가 돌을 던졌지?”
큰 소리로 물었지만 소년들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다섯 명은 저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었다.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누가 돌을 던졌는지 알 길이 없다.
범인이 특정 特定되지 않으니, 다섯 명 전체를 상대로 하여 추궁 追窮하거나 싸울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다시 가던 길로 되돌아가면서, 옆 눈길로 소년들의 동태 動態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녹피 鹿皮로 만든 적삼을 입고 있던, 한 녀석이 녹피의 커다란 곁 호주머니 속에서 조약돌 같은 것을 꺼내, 이중부를 향해 던지려 팔을 위로 치켜 들었다.
그 찰나에 ‘획’ 뒤돌아선 이중부의 날카로운 눈빛이 비수 匕首처럼 예리하다.
그러자 족제비를 닮은 마른 몸매의 녹피 옷 소년은 놀라서, 던지려던 돌을 손에서 놓치고 만다. 조약돌이 바닥에 ‘툭’하고 떨어진다.
“어~이, 족제비 너 왜 사람에게 돌을 던지냐?” 그러나 아이들은 또 들은 체도 않는다.
저희끼리 잡담하며 웃고 있다.
상대를 무시하는 짓거리다.
그 들이 하는 행동들을 보면, 낯선 이들에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상습범 常習犯이 분명하다.
분노한 이중부가 나귀를 몰아 녹피 옷 소년에게 돌진해간다.
녹피 옷의 소년은 달려오는 화난 이중부의 기세에 놀라, 쓰러져있는 고목을 뛰어넘어 뒤쪽의 큰 가지 쪽으로 몸을 숨긴다.
나귀에서 내린 중부가 고목 위로 올라가려는데, 흰 머리띠를 두른 자와 토끼가죽 모자를 쓴, 다른 소년 두 명이 이중부를 가로막는다.
두 소년을 피해 왼편으로 돌아 고목으로 뛰어가려는 이중부. 그러자 토끼 모자를 쓴 소년이 “잠깐” 하더니 기어코 이중부의 오른편 소매를 잡고 당겨버린다.
소매를 잡힌 이중부는 오른손으로 오히려 자기의 소매를 잡고 당기는 소년의 왼 손목을 잡고 비틀어 버린다.
“아~악” 소년이 비명을 지르며 이중부의 소매를 놓아 버린다.
그러자 옆의 흰 머리띠를 두른 다른 소년이 “이놈이” 하면서 이중부의 안면을 보고 주먹질을 한다.
이중부는 옆으로 피하면서, 상대가 내지른 주먹을 쥔 손목을 낚아채 비틀며 힘껏 잡아당기고, 왼발은 하늘색 머리띠의 발목을 걷어 차버린다.
그러자 “어이쿠” 하면서 소년 둘이 서로 뒤엉켜 함께 고목 쪽으로 넘어진다.
그 틈에 이 중부는 고목에 뛰어올라 녹피 소년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또 다른 소년 두 명이 녹피 소년의 좌우에서 나타나 이중부를 합공하자, 이중부는 세 명을 상대로 치고 빠지며 발길질과 주먹을 내지른다.
이중부를 제지하려다 쓰러진 두 명도 바닥에서 일어나, 중부를 뒤따라 고목 위로 오르려는 순간, 한준이 뛰어와 둘을 상대한다.
고목을 가운데 두고 7명의 소년이 치열 熾烈하게 정신없이 싸운다.
그러나 싸움이 오래가진 않았다.
이중부의 발길질에 두 소년이 나가떨어지고, 녹피 옷의 족제비 소년도 멱살을 이중부에게 잡혀 버렸다.
이중부는 손바닥으로 녹피 소년의 볼을 두어 번 가격하고, 호미걸이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며, 오른손으론 멱살을 잡은 체, 왼손은 소년의 어깨를 눌러, 강제로 무릎을 꿇게 만든다. 기술과 완력을 적절히 활용한 능숙한 수법이다.
그러자 쓰러졌던 두 소년이 그사이 막대기를 들고 “요~놈” 하면서 한 명은 위에서 이중부의 머리를 겨냥하고 내리치고, 한 명은 이중부의 허리를 노리고 횡으로 막대기를 휘둘려온다.
이 공격 상황만 본다면 체계적인 합동 공격을 할 줄 아는 실력이다.
보아하니 제법 봉 술을 단련한 솜씨다.
종횡으로 막대기가 날아온다. 좌우상하가 모두 공격권에 들어간다.
이중부는 얼른 유일한 퇴로 退路인 뒤쪽으로 몸을 날려 피한다.
그러자 위에서 내려치는 막대기는 땅바닥을 치며, 막대기의 중간이 부러져 버렸고, 이중부의 허리를 겨냥하고 휘두른 막대기는 꿇어앉은 녹피 옷 소년의 어깨를 사정없이 힘껏 때려버린다.
“으악” 족제비 소년의 비명에 모두 동작을 멈춘다.
녹피 소년은 땅바닥에 쓰러져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있다.
족제비 소년을 본의 아니게, 있는 힘껏 때려버린 소년은 막대기를 손에서 놓아버리고 멍하니 어이없이 서 있다.
이중부는 두 소년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두어 번씩 가격한다.
주먹이 아닌 손바닥으로 상대를 가볍게 때린다는 것은 그것도, 신체 중에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이마를 친다는 것은 이미 싸움이 끝났다는 뜻이다. 상대의 신체 중 제일 높고 소중한 부분이 나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무언 無言의 표현이다. 너희들은 나의 상대가 안 된다는 의미다.
두 소년은 이미 이중부의 발길질에 당한 복부와 허벅지에 상당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이중부의 뛰어난 몸놀림과 범접할 수 없는 위세 威勢에 주눅이 들어 감히 반항할 엄두도 못 낸다.
무리의 머릿수를 믿고 시비를 건 자신들이 부끄러워진다.
한준과 싸우던 두 소년도 무사하진 않았다.
하늘색 머리띠를 한 녀석은 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앞 적삼을 붉게 물들이고 있고, 또 다른 토끼 모자를 쓴 놈은 왼눈이 부풀어 올라 제대로 된 애꾸눈 형상이다.
한준은 멀쩡한데, 둘 다 한준의 발길질과 주먹질에 큰 부상 負傷을 입었다.
이쪽도 벌써 전의상실 戰意喪失이다.
이중부가 큰소리로 외친다.
“이놈들, 모두 이쪽으로 모인다.” 단호 斷乎한 명령조다
승리자로서의 위풍당당 威風堂堂한 어투 語套다.
다섯 명의 소년들은 이중부의 말에 순순히 따른다.
자신들은 아예 상대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순한 양처럼 행동한다.
옆으로 횡으로 한 줄로 앉혀 놓고는, 한 놈 한 놈 검지와 중지를 모아 녀석들의 이마를 꾹꾹 누르며 질문을 한다. 아니 아예 취조 取調한다.
“너희들 집이 어디야?” 서로 눈치만 보고 누구도 입을 띄지 않는다.
“야! 이놈들아, 어르신이 질문하는데 대답이 없어?”
그래도 소년들은 우물쭈물한다.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왜냐하면,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이중부가 스스로 ‘어르신’이라고 존칭 尊稱하고 있으니, 말을 놓아 평어 評語로 대답하자니 주먹이 무섭고, 말을 높여 존칭어로 대하자니 서로가 비슷한 나이 같은데, 마지막 자존심이 용납 容納하지 않는다.
자기들도 동네에서는 꽤 힘쓴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 다들 골목대장 급 완력의 소지자들이다.
제 동네에서는 나름 완력을 뽐내는 자신들로서는 오늘 일진 日辰이 너무 사납다.
“이 녀석들, 너희들 벙어리냐?”
“말이 없어 자식들, 너희들 오늘 각오해라”
옆의 한준이 두 팔의 소매자락을 팔꿈치의 곡지혈 曲池穴까지 걷어붙이며, 분위기를 험악스럽게 몰아 가고 있다.
그러자 마지 못한 듯, 녹피 옷의 족제비 녀석이 왼쪽 강 언덕을 가르치며
“저기 저쪽 동네에 살고 있는데...”한다.
“살고 있는데~.” 한준이 먼 산을 보면서, 금방 대답한 족제비 녀석의 마지막 단어의 어투를 그대로 흉내를 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별다른 생각 없이, 쉽게 대답했던 족제비는 속으로 ‘아차’ 한다.
눈치 빠른 족제비 녀석은 말투를 얼른 수정 修正한다.
“저쪽 계성 아래쪽 동네, 옥전 玉田에 살고 있습니다”
“야! 인마, 옥전이 다 네 집이야.” 정수리에 큰 꿀밤을 한대 먹인다.
완전히 갈굼조다.
이제부터는 언행에 티끌만 한, 허점만 보여도 갈굼 당할 처지다.
아니, 허점이 없더라도 허점이 없다는 것이 갈굼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못났으면 못났다고, 잘 났으면 잘 났다고 추궁당해야 하는, 개판 같은 경우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너와 내가 같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갈굼의 대상이자 사유 事由가 되어버린 것이다.
도피할 곳이 없다. 이 비지떡 같은 현 상황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갈굼 수렁에 빠진 것이다.
늪이다.
자신들 힘으로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져 버린 느낌이다.
‘아 오늘 정말 잘 못 걸렸다.’ 후회막급이다.
꿀밤 맞은 족제비,
좀 전에 동료에게 막대기로 맞은 어깨와 꿀밤 먹은 머리가 얼얼하여, 눈가엔 눈물이 ‘핑’ 돈다. 무척 아프다.
그런데,
이때까지의 신체적인 아픔은 차제고, 지금부터가 더 염려되고, 걱정된다.
갈굼하는 두 녀석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떠한 수모와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그러나 머릿수를 믿고 먼저, 돌을 던져 시비를 일으킨 입장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
일행 중에서는 나름 상황 파악이 빠른 족제비 소년, 하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린 자세로 머리를 조아린다.
“잘 못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정식으로 사죄 謝罪한다.
다른 소년 네 명도 그제야 족제비가 사과하는 행동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다.
이제는 조그마한 마지막 자존심마저 포기하고 팽개질 쳐버린 것이다.
반항이나 이의 제기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조건 항복 無條件 降伏이다.
힘겨루기에서, 그것도 다섯 명이 두 명에게 완벽하게 졌으니, 아무런 조건도 달수 없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구동성 異口同聲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그제서야 이중부와 한준의 험악하던 면상 面像이 어느 정도 펴진다.
그제야 소년들의 억양이 드세다는 걸 깨닫고 지레짐작으로 묻는다.
“너희들 세외 歲外 출신이지?”
여기서 말하는 세외 歲外란 당시에 만리장성 萬里長城 이북 以北의 북쪽 지역을 통칭 通稱하는 단어다.
세상의 바깥이라는 의미다.
“맞아요, 할아버지가 알타이산이 고향이라 했어요”
“흠, 슝노 출신 녀석들이군”
흉노 匈奴란 한자 漢字어는 북방의 이민족 異民族에게 늘 당하는 한인족 (漢人族:지나족)들이 만든 단어다.
만리장성 이북의 북방지역 유목민들은 자신을 스스로 칭할 때 ‘슝노’라 말한다.
슝노란 ‘사람’이란 뜻이다.
구릉의 초원과 돌밖에 없는 허허벌판에 사람이 귀하여 붙여진 단어다.
단군의 홍익인간 弘益人間 이념 理念에서 시발 始發된 인본주의 人本主義에 따른 칭호 稱號다
이렇게 슝노라 부르는 유목민을 보고 한인 漢人들은 ‘슝노’란 발음과 비슷한 ‘흉노匈奴’란 단어를 차음 借音하여 ‘흉악스러운 노예’란 의미로 격하 格下시켜 불렸다.
그리고 소년들 한놈 한놈씩 보고는 한준이 생김새에 따라 별명을 붙인다.
녹피 옷 소년을 보고는 족제비라고 부른다. 그러자 다른 소년들이 “제 별명이 본래 족제비로 불러요” 한다.
“그래, 그럼 넌 얼굴이 붉고 배가 불룩하니 불곰이라 하고, 네 녀석은 오동통한 게 너구리로 하면 되겠군, 넌 눈깔이 크니 이제부턴 개구리다. 그리고 마지막 넌 귀가 짝짝이니, 짝귀다.”
싸움터가 어느새 동물원이 된 분위기다.
“이 어르신께서 붙여준 별명에 이의 있는 분은 말씀해 보세요?”
어떤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흠~ 모두 어르신이 지어준 별호에 대해 아주 만족스러워하는군”
본인이 일방적으로 지어준 별명이 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마음에 드는지, 한준은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별칭을 불러본다.
“족제비”
“....”
천천히 한 번 더 불러본다.
“족 제 비~”
그제야 눈치챈 족제비, 큰 소리로 대답한다.
“넷! 족제비 여기 있습니다”
“흠~ 됐고, 불곰”
“넵~ 불곰”
“너구리, 개구리, 짝귀”
“넵, 옛, 네”
일사불란 一絲不亂하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대화를 해 봅시다” 잠시 뜸을 들인 한준,
“그래, 형씨들 뭘 잘못했지요?” 사뭇, 건달 끼가 있는 동네 형 들이 사용하는 말투다.
“형님들을 몰라보고 돌을 던지며 먼저 시비를 건 우리가 잘못입니다.”
“흠, 그래 알긴 아는 모양이군,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나쁜짓 많이 했지?”
“아닙니다”
“아니다라고, 이 놈들이 거짓말까지...”
“아니오, 며칠 전에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럼,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또 그럴 거지”
“아닙니다,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정말?”
“네, 어김없습니다”
“믿어도 되겠냐?”
“네, 믿어주세요”
“분명히 약속한 거 맞지?”
“넵, 확실합니다”
“알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그땐 사지 四肢가 성치 않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됐어. 그럼, 가봐”
이렇게 돌멩이 투척 投擲 사건은 일단락 一段落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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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농사지으며 소설까지 연재하시는 정성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