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종시 역사인물에서 만난 나의 멘토저자성배순출판심지 | 2023.10.28.페이지수340 | 사이즈 189*252mm판매가서적 27,000원
책소개
“역사가 재미있어요.”라는 반응은 역사 속에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성배순 시인은 조선시대 세종임금과 관련이 깊은 인물인 김종서, 성삼문, 덕천대군 이후생, 파란만장한 삶의 김처선과 근현대인물로 김제영 작가, 장욱진 화가, 아나키스트 박문자의 삶을 스토리텔링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북방영토확장의 주역 김종서에서는 6진을 개척이 아닌 회복이라고 명명했으며,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세종임금의‘만인혈석과 용각’에 대한 비밀명령 이야기도 담았다. 성삼문에서는 백이숙제 비문을 땀 뻘뻘 흘리게 했다는 시와 작품 속 한자 ‘미(薇)’의 새로운 해석, 그리고‘미(薇)’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을 담았다. 덕천대군 이후생에서는 우리가 덕천군으로 부르고 이후생을 왜 덕천대군으로 부르는지, 덕천대군의 아버지 정종이 왜 격구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연산군이 호랑이굴에 던졌으나 호랑이가 잡아먹기를 거부했다는 김처선의 이야기, 그리고 장욱진 화가의 그림 속 새는 온통 까매서 까마귀인가? 제비인가? 아니면 까치인가? 하는 질문을 풀어간 이야기도 흥미롭다. 문학계 대모로서의 김제영 작가의 삶도 재평가했으며, 아나키스트 박문자의 수많은 칼라 중 세종시와 얽힌 이야기도 조명했다.
이 책은 역사는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세종시의 역사인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지역의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안내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성배순
저자 : 성배순
세종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04년 ≪시로여는세상≫ 신인상과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어미의 붉은 꽃잎을 찢고」 「아무르호랑이를 찾아서」 「세상의 마루에서」 「한 알의 모래를 보탠다」와 그림책 「세종호수공원」 『250살 시장에서 100살 과일을 찾아라」가 있다. 그 외 시비집으로 「세종·충남 詩香을 찾아서」가 있다.
그림 : 이재연
세종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틈틈이 초상화와 벽화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림책 「세종호수공원」과 「250살 시장에서 100살 과일을 찾아라」에 그림을 그렸다. 현재 세종시 네이버 센터에서 근무.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긴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
마르지 않는 덕의 샘물, 덕천대군 이후생
낙락장송 돼야 독야청청하리라, 성삼문
환관, 김처선
조치원역을 노래하다-「역전소묘」의 김제영
‘나는 심플하다’ 비공 장욱진 화가
아나키스트 박문자, 가네코 후미코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1746년 영조 22년 12월 27일은, 계유정난 때 화를 당한 김종서와 황보인을 영조가 복권 시킨 날이에요. 293년의 긴 긴 세월 동안 김종서는 왜 복권이 되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뻔해요. 조선조는 세조에 의해 반정이 성공하고 후손들이 왕조를 이어 왔기 때문이에요. 반대편에 섰던 김종서를 복권시키면 세조 왕조의 정통성에 흠집을 가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에요. 세조가 만들어 놓은 김종서의 역적 이미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옅어져 갔어요. 중종과 명종, 선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역적으로 비난받기보다는 ‘육진을 회복한 인물’로 평가되었어요.
- 본문 「“긴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에서
덕천대군은 왕자라는 신분임에도 현재 세종시 도담동인 방축리에 있는 사패지에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지었어요. 일할 때면 모든 시름을 다 잊을 수 있었거든요. 어느 해 여름 금강이 범람해 강변의 시골집 수백 호가 떠내려갔어요. 덕천대군은 이 광경을 보고 가산을 털어 물을 잘 아는 일꾼을 샀어요. 그들에게 배를 만들게 하고 강변의 나무로는 뗏목을 만들어 수천의 이재민을 구했어요. 이 소문은 나라에 퍼졌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덕천대군을 덕을 쌓은 어른 즉, 적덕공(積德公)이라고 불렀어요.
- 본문 「마르지 않는 덕의 샘물, 덕천대군 이후생」에서
성삼문은 세조의 왕위찬탈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에요. 그러기에 지금까지도 만고의 충신으로 평가받는 것이지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한 조선에 있어서 충절은 당연한 윤리였고 성삼문은 그 정신을 따른 것이에요. 후세 사람들은 그런 그의 충절을 기리고자 출생한 집터에 서원을 세웠어요. 1692년 숙종 18년 조정에서는 이 사우를 녹운서원이라 명칭하고 사액서원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1712년 숙종 38년에는 노은서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대원군시절에는 서원이 철거되기도 했어요. 성삼문을 기리는 사람들은 사육신의 위패를 현재 노은단 자리에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15일 제사를 지내고 있답니다.
-본문 「낙락장송 돼야 독야청청하리라, 성삼문」에서
조선 제10대 왕이었던 연산군은 광해군과 함께 반정으로 폐위된 왕이에요. 둘은 ‘조(祖)’나 ‘종(宗)’으로 끝나는 묘호를 끝까지 받지 못하였어요. 광해군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연산군은 반론의 여지없이 폭군의 평가만을 받고 있어요. 이런 폭군 연산군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른 소리를 한 김처선의 충심은 현재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답니다.
- 본문 「환관, 김처선」에서
그의 작품에는 현실에 안주하는 작품은 없고 현실 비판 경향이 치열하리만큼 강했으며, 이러한 비판은 현실의 경지를 넘어 반공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경지에까지 도달하였다고 평가했어요. 이러한 작품의 성향 때문에 창작 의욕이 왕성한 등단 초기인 70년대에는 작품 활동을 하기 힘들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어요. 이러한 비판의 리얼리즘 특성이...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