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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10(2021)년 2월 27일 토요일
[부흥번영의 리상과 념원을 안고 맞이한 정월대보름명절]
새로운 혁신, 대담한 창조, 부단한 전진을 지향하며 우리 식의 문명을 꽃피워가는 인민의 환희가 민속명절 정월대보름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빛나는 이 땅우에 자존과 번영의 새시대,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를 펼쳐준 위대한 당에 대한 다함없는 고마움과 신뢰의 정이 조국땅 방방곡곡에 차넘치였다.
온 나라 인민의 가슴마다에는 우리 당이 제일이며 우리 사상, 우리 제도가 제일이라는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세대를 이어 지켜온 소중한 사회주의 우리 집을 세상이 보란듯이 훌륭하게 꾸려갈 불같은 애국의 열정이 끓어번지였다.
정월대보름명절을 맞으며 수도의 급양봉사기지들에서 여러가지 민족음식봉사로 인민들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옥류관, 청류관, 창광봉사관리소의 전문식당 등은 명절을 즐기는 시민들로 흥성이였다.
이곳 봉사자들은 평양랭면, 오곡밥, 약밥, 록두지짐, 9가지 마른나물반찬을 비롯한 민족음식들을 더 잘 봉사하기 위해 온갖 성의를 다하였다.
해주시, 함흥시를 비롯한 각지에서도 민속풍습을 귀중히 여기는 우리 인민의 생활이 펼쳐졌다.
주부들이 준비한 갖가지 민족음식을 맛보며 좋아하는 가정세대들의 행복넘친 웃음소리는 명절의 분위기를 돋구었다.
하루해가 저물어 쟁반같은 보름달이 환히 떠오르자 모란봉을 비롯한 각지의 명승지들, 사회주의문명을 자랑하는 새 거리, 자연의 광란이 휩쓸었던 대지에 솟아난 선경마을 등 곳곳에 달맞이풍경이 펼쳐졌다.
부흥번영의 리상과 념원이 꽃필 새시대를 확신하며 내 조국의 밝은 달을 바라보는 인민들의 마음속에는 이민위천, 위민헌신의 려정을 끝없이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안녕을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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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에 의한 위협공갈로 불평등조약을 강요한 죄악]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전락시키고 우리 인민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제의 죄악에 찬 력사에는 무력에 의한 위협공갈로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강요한 범죄행위도 기록되여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한 력사를 잊지 않고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45년전인 1876년 일본은 무력으로 조선봉건정부를 강박하여 《강화도조약》을 조작하였다.
《강화도조약》은 《명치유신》후 호전적인 일본사무라이들이 들고나온 날강도적인 《정한외교》정책의 범죄적인 산물로서 그 직접적인 조작구실로 리용된것이 《운양》호사건이다.
1875년 8월(양력9월) 일본군함 《운양》호는 항행도중 먹는물을 얻는다는 명색밑에 아무런 통고도 없이 우리 나라의 령해인 강화도 초지진앞바다에 불법침입하여 파괴와 략탈을 일삼았다.이 사건은 일본이 무력침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도발한것이였다.
《운양》호의 강도적인 범죄행위는 조선군사들의 분노를 자아냈고 응당한 징벌을 받았다.
이를 구실로 일본은 우리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화하기 위한데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일본정부는 《정한외교》정책의 변종인 《평화협상외교》정책을 내놓고 조선봉건정부에 예속적인 《수호통상조약》을 강요하기 위한 방안이라는것을 꾸미였다.그것은 첫째로 《운양》호사건의 모든 책임을 조선측에 넘겨씌워 《사죄》와 《배상》을 인정시킨다는것이며 둘째로 힘에 의한 위협과 공갈의 방법으로 조선측을 강박하고 《굴복》시킨다는것이였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서라도 기어이 조선을 침략하고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심은 조선봉건정부와의 협상과정에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일본은 《운양》호가 청나라로 항행하던 도중 포격을 받은 실상을 알아보기 위하여 사신을 파견하겠다는 문서를 조선봉건정부에 전달하겠다고 하면서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쳐들어가겠다고 위협하였다.그리고 1876년에 포악무도하고 생트집을 거는데서 유명한 구로다를 우두머리로 한 대표단과 함대를 파견하였다.
일본침략자들은 강도적요구를 들이대는 한편 저들의 병력수를 과장하면서 조선봉건정부를 공공연히 위협공갈하였다.
일본침략함대는 《례포》의 명색밑에 대포를 쏘아대며 화약내를 마구 풍기였다.회담전야에도 일본침략자들은 함포를 쏘아대여 회담장을 공포분위기에 휩싸이게 하였다.
회담에서 일본침략자들은 《운양》호사건에 대한 책임을 모두 조선봉건정부에 넘겨씌우면서 《사죄문》을 요구해나섰다.이와 함께 주요의제와 관련한 조선봉건정부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해버리거나 문구의 약간한 수정이나 구두합의의 교묘한 방법으로 어물쩍해버리였다.
조약문토의가 일단 마무리된 후 일본침략자들은 천만부당하게도 조선봉건정부에 국왕의 서명이 있는 조약비준서를 또다시 강요하였다.일본은 이에 응하지 않는 경우 두 나라간의 《평화》를 유지하는것은 어려워질것이라는 위협적인 통고문까지 보내여왔으며 1876년 2월 3일(양력 2월 27일)에는 끝끝내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조작하였다.
이처럼 《강화도조약》은 일본의 횡포한 군사적위협공갈과 간교한 권모술수에 의하여 강압체결된 불평등한 조약이였다.또한 일본에는 온갖 유리한 조건과 특권을 부여하고 조선에는 의무만을 강요한 예속적인 조약이였으며 우리 나라의 자주적발전을 침해하고 조선에 대한 대대적인 침략의 길을 열어놓은 범죄적인 조약이였다.
그후 일제는 새로운 조약들을 련속 날조, 조작하여 조선봉건정부의 권한을 모두 빼앗고 우리 나라를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었다.
우리 인민은 장장 수십년간이나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였으며 숱한 문화재부들과 자연부원을 강탈당하였다.수많은 조선의 청장년들이 죽음의 전쟁터들과 고역장들에 끌려가 마소처럼 혹사당하고 목숨을 잃었다.20만명의 조선녀성들이 일본군성노예로 전락되여 치욕스러운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본의 조선침략과 강점력사는 세계를 경악케 하는 특대형반인륜범죄들로 얼룩진 력사이다.
오늘 일본정부는 과거범죄에 대하여 성근하게 반성하고 배상할 대신 그 죄악의 력사를 미화분식하면서 대조선적대시정책에 집요하게 매달리고있다.일본의 범죄력사는 절대로 가리울수도 지워버릴수도 없다.
일본이 저지른 과거죄악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고야말려는 우리 천만인민의 의지는 날이 갈수록 백배해지고있다.
본사기자 리학남
첫댓글 북한은 맇본의 식민지 불법 만행을 어떻게 결산 할까? 찌그러드는 미국 기대어 배상을 뒤로 미루어 지급 해야 할 배상 금액만 천문학적으로 커지는 것 같군요.....
북은 일본을 미군의 인적.물자보급의 전초기지로만 인식합니다.
즉, 국가로 안봅니다.
@김덕신 미국도 동맹 타령하면서 일본 뜯어 먹을려 하던데......
@김덕신 매우 당연한 처사죠.
일본이 개방을 할 때도 강제로 개방됐지 자율적으로 개방된게 아니죠.
계속해서 소련의 남하를 막아줄 용병으로 써먹었는데
그걸 모르고 아주 대일본제국을 선포하다가 단방에 엿먹었죠.
지금도 정신이 오락가락하죠.
까불면 죽는다고 암시를 받으니.........체면이 말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