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택 병장 해병대1사단 포병여단
우리 부대는 6·25전쟁 때 기계·안강 방어전투가 벌어졌던 경북 포항시 북구 기계면에 있는 어래산 일대에서 약 두 달간
유해발굴작전을 했다. 작전이 시작되고 산을 오를 때마다 당시의 치열한 전투 현장을 상상하며 ‘선배 전우들은
생사를 넘나들며 이곳을 지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전투에 임했다고 상상하니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동시에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에 감사했다.
그래서 나는 임무수행간 최선을 다하자고 굳게 다짐했다. 낮잠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자본 적이 없었는데,
점심시간과 버스로 이동할 때면 정말 쓰러지듯 눈이 감겼다. 부대로 복귀해서 일기를 쓸 때면 펜을 잡은 손이 떨렸다.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했던 이유는 꼭 유해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릴 정도의 더위와 땅을 파면 팔수록 크고 작은 돌, 굵은 나무뿌리만 보여 힘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나는 산 밑을 내려다봤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모습의 논밭은 호국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호국 영웅들이 느꼈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히
상상하며 다시 작전에 매진했다.
어느 날 M1 탄피 한 발을 발굴했다. 전투의 흔적을 직접 발견하니 과거의 상상이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발굴작업을 하던 곳은 꽤 경사진 곳이었다. 험난한 이곳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와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버텼을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유를 누리고 사는 우리들의 삶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호국 영웅들의 피와 땀으로 얻은 산물이다.
어래산 어딘가에 묻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선배 전우들은 가장 더운 여름날에 자유·평화 수호를 위해 청춘을 희생했다.
이번 유해발굴작전은 소중한 정신전력교육이자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을 마음속 깊이 새겨 넣는 계기가 됐다.
내가 입고 있는 군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하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리라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안강 학도의용군 전적비에 적힌 이종달 참전학도병의 비문으로 소감을 마친다.
“아, 위대하도다. 채 피어나지 못한 홍안의 소년들이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소년 학도병들의
고귀한 희생이 아니었던들 오늘날 우리가 자유를 만끽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단 말인가?
누구 하나 위로하는 이 없이 구천을 떠도는 무명의 영령들이시여. 유해는 수습하지 못하였어도 그 기개는 살아 있으라.
여기 격전지에 돌을 세워 영혼을 위로하고 후세에 전하노니 오늘에 사는 한국인이여.
내일을 살아갈 대한의 아들 딸들이여. 조국의 미래는 그대들의 몫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