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를수록 아내에 대한 감정이 뜨거워지는 저는 '와이프보이'인가봐요"
지난해 초 출간된 이후 지금껏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가시고기>의 작가 조창인씨가 1년6개월여의 침묵을 깨고 새 장편소설 <등대지기>를 내놓았다. 인터뷰를 하지 않는 작가로 유명한 그를 어렵사리 만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가족이야기, 아내와의 남다른 사랑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초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펴내 무려 1백50만부라는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 작가 조창인씨(42). 그가 <가시고기>를 펴낸 후 잠적하여 행방이 묘연하더니 근 1년6개월 만에 <등대지기>라는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다. 좀처럼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더구나 신문, 잡지 등의 인터뷰는 절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를 어렵사리 만나 숨어서 새로운 작품을 쓴 사연을 들어보았다.
조창인씨는 10여년전 모 잡지 기자로 있으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필화사건을 겪었다.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고, 그는 감옥생활까지 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다행히 공소가 기각되어 3개월 만에 출소했지만, 이 사건이 그에게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나오자마자 출판기획 사무실을 차렸다.
“아내가 직장생활을 반대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남의 글을 쓰지 말라고 하더군요. 아내의 그런 신뢰가 아니었으면 전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출판기획사무실을 하다가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진짜 내 글을 쓰자’는 결심이었다. 남의 글을 쓰다가 곤욕을 치렀고, 그게 두려워 남의 책을 내주는 일을 했지만 여전히 문학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학에 대한 열정이 거세어진 그는 마침내 출판기획사무실을 접었다. 물론 그건 어려운 결심이었다.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다.
“오히려 아내가 저를 부추겼어요. 그동안 생활은 아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이를 갈고 소설을 썼습니다. 저의 가능성을 무조건 믿어준 아내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조창인의 아내는 학원강사, 외부원고 정리, 책집필 등으로 간신히 살림을 꾸렸다. 조창인씨는 자기 부부를 마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처럼 말한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며, 아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한다.
조창인씨의 아내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일지 모른다. 조창인 스스로가 자신을 ‘와이프보이’라고 소개할 정도니까. 조창인은 자신이 얼마를 벌었는지, 또 현재 얼마의 돈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한다. 돈은 전부 아내의 통장으로 들어가고 자신은 용돈을 조금씩 타서 쓴다고.
“참 이상하죠? 아내에 대한 감정은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좋아져요. 아니, 점점 뜨거워져요.”
조창인씨의 아내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였다. 조창인씨는 그런 아내를 같은 직장에서 일년 동안 지켜봤다. 요모조모 관찰해보고 배우자감이라고 생각해 청혼을 했고, 교제한 지 1백일 만에 결혼했다. 사실 그때는 열렬하게 타오르는 그런 감정이 없었다고 한다.
“20대에 연애했던 여자들한테 느끼던 뜨거운 감정은 처음부터 없었고 결혼할 때도, 그후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에 대한 감정이 점점 뜨거워지고 깊어진다는 겁니다. 이러다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어요(웃음).”
“내 작가적 성공은 모두 아내의 공”
사실 그는 전업작가로 나선 후 <가시고기>를 펴내기 전 첫 작품으로 <그녀가 눈 뜰 때>(전3권)를 선보였다. 40만부 정도 팔렸고, 나중에 TV에서 16부작 미니시리즈로 방송되기도 했다. 바로 김희선과 류시원이 주인공으로 나온 <세상끝까지>라는 작품.
하지만 뒤이어 내놓은 작품들이 실패하면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은행 빚을 내 집을 샀다가 IMF가 터지면서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가족과 함께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 그때도 그에게 힘을 주고 무조건 믿어준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조씨와 그의 아내는 주말부부다. 그는 안성에 집필실을 두고 있고 집은 안산에 있다.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전업작가로 글을 쓰고, 토요일에 안산으로 가 남편노릇, 아빠노릇을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금 마치 연애하는 것 같다고 한다. 이틀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화살같이 지나간다는 것. 이런 이유로 조창인씨는 부성애가 가득 담긴 눈물겨운 이야기 <가시고기>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간 조직이 파괴되어 죽음을 맞으면서도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아버지의 얘기를 다룬 <가시고기>는 부성애를 잃어가는 현대사회에 아버지의 힘과 사랑을 재발견하게 해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놓는 한 아빠는 네 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는 아버지의 말은 많은 독자를 울렸다. 또한 아버지의 경제력을 마치 아버지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가족들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왜 부성애만 사랑이냐고 묻는 분이 계시더군요. 모성애를 훼손시킨 것이 아니냐고요. 그래서 <등대지기>를 쓰게 됐습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등대지기>는 모성애에 관한 작품이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떨쳐버릴 수도 없는 끈끈한 핏줄인 가족의 사랑에 작가는 매달린다. 그러나 단지 가족사랑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골 깊은 오해와 증오, 어쩔 수 없는 핏줄의 끌림, 그리고 끝내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안는 화해의 과정을 통해 평범한 사람 사이의 따스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치매노인의 얘기를 살면서 많이 접하게 되죠. 실상은 굉장히 끔찍합니다. 집안에 치매에 걸린 노인이 있으면 가정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치매노인으로 고통받고 있다. 잔인하게도 치매환자의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치매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농담삼아 우습게 한다. 그리고 그들 가족이 겪는 아픔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조창인씨는 집에서 작품을 쓰지 않는다. 안산에 있는 그의 집에도 집필실이 있지만 단 한번도 집에서 글을 써본 적이 없다. 방랑벽이 있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작품구상을 하다가 집필은 반드시 자신의 안성 집필실에서 한다. 시골에서 벌레소리 들으며 작품을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첫 소설 <그녀가 눈 뜰 때>는 홍천에서 썼고, <가시고기>는 대부도에서 썼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 <등대지기>는 안성 고삼저수지 근처에 있는 집필실에서 완성했다.
“집필은 단순한 기계적인 작업에 불과해요. 작품구상은 일년 정도 걸리지만 그것을 쓰는 데는 두 달이면 됩니다. 구상을 정리하기까지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지 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단독주택을 전세로 얻어 쓰고 있는 그의 안성 집필실은 좀 특이하다. 방이 4개 있고, 각 방마다 전업작가가 살고 있다. 이정규, 김민기, 정덕성, 조창인. 네 명의 남자가 모여 살다보면 자연 술자리가 많아지고 게을러질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전업작가란 곧 직업입니다. 먹고사는 일만큼 숭고한 게 없고,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인데 자신의 직업에 어떻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먹고사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말한다면 그건 정신적인 사치겠죠.”
글쓰는 작가 네 명이 모여 있어도 술자리는 없다고 한다. 간혹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경우는 있어도 늦은 시간까지 술을 먹는다거나 하는 일은 아직까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격렬한 토론을 합니다. 자신의 작품이 잘 안 풀릴 때 서로 모여서 난상토론을 벌이죠. 결론이 날 때까지 토론을 합니다.”
금요일까지 집필실에서 일하다 주말에는 가족과 생활
그들은 각자 자신의 집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작업실에서 일하고 토요일이면 모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집필실이 그들에겐 그야말로 직장인 셈이다.
“너무 좋아요. 이런 환경이 제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서울 토박이다. 그런 그가 시골의 흙냄새가 진하게 나는 곳을 찾아 그곳에서만 글을 쓴다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한 평론가는 “자연을 마주하지 않은 작가는 위대해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의 알량한 욕심과 거리가 먼 곳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조씨가 독자들의 마음을 적실 수 있는지 모른다.
항간에 <가시고기>를 출판해줄 출판사가 없어서 원고가 떠돌아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옥고를 치른 후 조씨의 아내가 견디다 못해 이혼을 요구해서 혼자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는 이런 소문을 일축했다.
“이미 그 전에 세 작품 정도를 출판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제 아내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저를 지켜주는 버팀목입니다. 이혼이라뇨?”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우리나라 문학풍토에서는 논쟁의 대상이 되기 쉽다. 일전에 한 일간지에서 순수대중문학 논쟁이 있었다. 알만한 작가들이 논쟁에 참가했고 조창인도 거기에 글을 실었다.
“제 작품에 대해서도 많은 비난이 있었습니다. ‘순수문학권에서 보면 문학도 아니다’라는 극단적인 평가도 있었죠. 하지만 대중의 관심과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는 작품으로 상을 주고받는 일도 우습지 않습니까? 순수문학만이 문학은 아닙니다. 전 제 작품에 당당합니다.”
조씨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당당하다. 그가 문학청년이던 시절만 해도 김동인만이 작가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다양해졌다. 그래서 문학도 다양해져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독자의 취향이 나날이 다양해져 가는데 어떻게 문학만은 고답적인 자세로 일관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현대문학은 판타지, 추리, 엽기까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창인씨는 10명보다는 1백명을 위한 작품을 쓰겠다고 한다. 또 문학지망생만을 위한 글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작가, 대중을 이해하는 작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뚜렷했고 당당했다.
안경 너머로 눈알을 부라리듯 쳐다보며 힘을 주어 말하는 조창인씨. <등대지기>가 또 한번의 베스트셀러 기록을 갱신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