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 산책 4> 강준만 / 인물과사상사 (2010)
[My Review MDCCLXVIII / 인물과사상사 11번째 리뷰] 19세기 미국의 '프런티어(frontier)'는 '변경'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서점운동'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광활한 서부지역을 차지한 미국 사회에서 '프런티어'는 비문명화가 되어 있는 빈땅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비칠 정도로 미국 백인들에겐 '정체성, 그 잡채'였다. 그런데 1890년 연방정부 국세조사국이 '프런티어의 소멸'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왜냐면 '1평방 마일당 인구 2인 이상의 지역'과 '그 이하의 지역'을 경계하여 잇는 선을 '프런티어'라고 했는데, 미국이 차지한 동부연안부터 태평양 연안까지 더 이상의 '빈땅'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내에 더는 개척할 빈땅이 없다는 얘기란 말이다. 미국처럼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나라가 더는 개척할 빈땅이 없어 '프런티어의 소멸'을 공식선언까지 했으니 미국인들 사이에 어떤 생각이 널리 퍼졌겠느냔 말이다. 지난 리뷰에 언급했던, 미국인은 영토야욕이 없어 칭송받아 마땅하다는 '고종의 칭찬'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 광활한 땅을 그토록 빠르게 '개척'해 나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개척정신'은 미국인들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그런데 '프런티어 소멸'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바로 흑인노예의 비참한 삶, 인디언 학살, 그리고 중국노동자 '쿨리'의 끔찍한 노동현실 등이다. 미국 백인들의 만행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데도, 그런 만행을 '자긍심'으로 탈바꿈시켜 미국의 위대함으로 포장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과연 이런 나라가 '다른 나라의 인권'을 운운하며 간섭을 할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19세기는 서구열강의 '제국주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찌르던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19세기 미국은 아직 본격적인 '제국주의 반열'에 오르지도 못한 때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미 준비된 제국주의 열강이었던 셈이다. 다른 나라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도 전에 자국으로 편입한 땅, 그것도 하늘의 은혜라고 할 정도로 광활하고 풍부하고 비옥한 땅을 독립한 지 불과 100여 년 만에 모조리 '개척'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프런티어 소멸'을 공식선언한 미국연방은 '서부개척'을 끝으로 개척을 멈추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다 피해를 본 흑인, 인디언, 중국노동자 등을 위해 보상을 마련하는 정책을 추진하며 내실을 다졌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일 것이다. 미국인들의 '개척정신'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바로 '스페인과의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미국은 드디어 '제국주의'라는 본색을 드러내려 했다. 자국내(?)에 개척지가 마땅하지 않다면 답은 아주 쉽다. 국외로 눈길을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바로 대서양의 진출 관문인 '카리브 해, 쿠바'였다. 마침맞게 쿠바인들이 스페인 본국에 반란을 일으키자 미국은 '독립전쟁'을 일으킨 쿠바 아바나 항에 전함 '메인호'를 정박시키고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그 '메인호'가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했고, 266명의 해군의 사망(메인호사건)하니 이를 스페인의 공격이라고 주장하며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두달 뒤, 미군과 스페인군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격전을 벌였고, 스페인군 380여명, 미군 10여명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에는 미군의 무력시위가 계속 이어졌고, 괌을 무혈입성하는 등 미군의 우세적 행보가 이어지다가 이듬해인 1899년 2월에 미국과 스페인은 '평화조약 비준'을 하고,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 쿠바 등 스페인 식민지 대부분에서 '미군정'이 실시 되었고, 한 달 뒤에 쿠바에서 미군정을 종료하고 독립정부를 설립하며 '카리브해'를 미국이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미국은 '해외식민지'를 건설하며 제국주의국가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진정한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하는데도 '프런티어 정신'은 굳건하게 활약하게 된다.
이와 같은 미국인들의 자긍심인 '프런티어 정신'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만 할까? 끝없는 영토야욕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내고야 만다'는 멈추지 않는 에너지로 봐야 할까? 어느 쪽이든 '피해당사국'이 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며, 피해를 당하는 쪽은 무조건 '악당'이 되어야 하는 억울함까지 옴팡 뒤집어 써야만 한다. 과연 이런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우방으로서 응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느냔 말이다. 아무리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로 결정 지어진다손 치더라도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간 미국의 행보에 대한민국이 딴죽을 걸었던 적은 없었다. 베트남전도 함께 했고, 걸프전도 지지를 표명했다. 그리고선 콩고물을 받으며 감지덕지 했던 것이 대한민국의 서글픈 처지였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vs 러시아,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 형국에서 우리는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하는가? 미국도 선뜻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비록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표방하지만, 내심 러시아와 맞짱을 뜨는 상황이 되는 걸 미국도 애써 피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을 외면하고 이스라엘 편만 들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판국에 대한민국이 미국과는 별개로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을 내세우며 미국도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미국이 지지하는 쪽으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맹목적 지지를 해야만 하겠는가?
분명한 것은 미국은 '불리한 상황'에 빠지는 일을 자처할 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프런티어 정신'을 자긍심으로 여기고 있는 미국이 '전세계 패권국'이란 자존심을 내버리고 '자국의 이익'만 쫓는 결정을 내릴리도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대한민국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내세우면서 '미국의 결정'에 적절한 선을 긋고 냉철하게 대처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그랬을 경우 '미국의 보복'까지 만반의 대비를 해둬야 한다. 적당한 떡고물을 미국에게 던져주면서 '우리의 이익'을 확실히 챙기는 방향으로 말이다. 우리가 하릴없이 '러시아'와 척을 지을 필요가 없다. 푸틴이라는 꼴통이 불편할 따름이지 '러시아'는 확실히 '우리편'으로 활용할 가치가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라는 균형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이팔 갈등'의 결말은 전세계가 이스라엘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행보는 과거 나치의 홀로코스트(민족대학살)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저들이 피해자일 때 전세계는 이스라엘 편을 들어주었지만, 저들이 가해자가 된 지금 상황에까지 편을 들어줄 멍청국은 없기 때문이다. 분명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마스에 의해 납치를 당한 것은 끔찍한 테러이지만, 그 테러를 빌미로 삼아 '학살'을 저지른다면 정도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이스라엘은 '공공의 적'이 될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미국도 전세계와 함께 인식을 하고 있겠지만, 정작 곤혹스러운 것은 '패권국의 지위'를 상실 당한 것일 테다. 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러시아'도, '이스라엘'도, 미국의 눈치를 보며 미국의 말한마디에 '무력침공'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이제 더는 미국의 입김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을 전세계가 지켜보았다. 이런 판국에 '프런티어 정신'으로 똘똘 뭉칭 미국인이 함부러 나댔다가는 큰일을 치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중하며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하게 내뱉어야 할 때다. 이런 와중에 '또라이 트럼프'와 '치매할배 바이든'이 다시 맞붙어 대선을 치루게 된다. 살얼음판을 걷는 미국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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