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금강 가에는 이른 봄을 재촉하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오후의 햇살을 가득 담은 길거리의 풍경은 아지랑이 꼬물거리며 완연한 봄빛이 신기루처럼 다가오고 있다. 석장리 박물관 옆 금강가의 벚꽃나무는 꽃 봉우리를 부풀리고 물오리 떼는 소란스런 날갯짓으로 봄의 소리를 알리고 있다. 금강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계룡산의 도예촌을 찾아간다.
계룡산 자락 상신리의 입구에는 다육식물의 정원이 펼쳐져있다. 온갖 모양의 도자기에 담겨있는 다육식물은 종류가 너무 많아 보는 이의 눈이 즐겁게 한다. 상신리에 들어서자 이정표에 ‘계룡산 도예촌 4㎞’라고 쓰여 있다. 굽이굽이 이어진 계곡 길 따라 계룡산의 웅장한 준봉들이 보이고, 산의 넓은 품에 안긴 연회색 나무빛깔이 그려낸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당간지주와 높은 솟대가 보인다. 솟대를 보는 순간 너무 반갑고 기대감으로 설렌다.
오늘 만나게 될 도자기는 어떤 모습일까?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의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독특한 문양이나 도안화된 물고기의 기원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안 내용이지만 금강 가에는 쏘가리라는 물고기가 많아 철화의 문양으로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이다. 동학사의 벚꽃축제 때 선보인 철화분청전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문화원장님과의 도예촌 방문은 도예가를 직접 만날 수 있고 도자기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주차장 옆 〈계룡산 도예 예술촌〉이라고 쓰여 있는 전시벽면의 철화의 문양을 보는 순간 “아! 아름답다.” 라고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물고기의 문양, 덩굴모양, 꽃잎모양 등 온갖 문양이 정사각형의 틀 안에 그려져 있다. 커다란 물고기 문양은 지느러미의 표현이 특이하다. 나지막한 산자락에 펼쳐진 도예촌의 모습은 평화롭다. 좁은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에 공방이 위치해 있다.
동양적이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낸 도예촌.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궁금해진다. 우선 광장의 한편에 있는 공방을 찾았다. 원장님은 서슴없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기자기한 소품에서부터 대호를 이루는 작품까지 오묘한 빛깔의 도자기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인생이여 고마워요〉란 주제를 가지고 대전시립미술관에 출품을 기다리고 있는 도자기 작품이다. 큰 도자기에 그려 넣은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 나무 한 그루, 집 한 채는 자신을 생각하며 표현해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도예가의 소박하고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도예가의 외로움과 깊은 고뇌가 묻어나 보였다. 도자기의 꼭두에 얹은 연꽃 모양의 작품은 <꽃이 지고 나면 잎이 피듯이>이다. 오늘 하루의 삶이 가장 소중하며 내일을 여는 촉매제가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공방을 나와 다른 골목에 이르니 눈에 띄는 글이 있다. 〈사람으로 피어나〉란 글이 널빤지에 쓰여 있다. 원목을 반으로 자르고 3~4㎝ 두께로 켜 놓은 곳에 시를 써 넣은 것이다. 두 개의 둥그런 기둥을 세우고 8개의 널빤지를 세로로 붙여 하나의 큰 간판이 되는 것이다. 솟대와 풍경이란 글 위에 쓰여 있는 이런 글이 마음에 새겨진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 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사람이 풍경이 된다는 역발상적인 생각이 흥미롭다.
두 번째 공방에 들어서니 당초문양과 물고기문양의 철화분청사기가 눈에 확 뜨인다. 어떤 도자기는 목단꽃송이 하나가 그릇 끝에 피어 여백의 미가 잘 살려진 느낌을 받는다. 학과 연꽃이 있는 풍경, 즐비하게 늘어선 도자기 속에 고유한 문양이 독특하다. 이 공방에서 느낀 소중한 것은 도자기를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그려 넣는 철화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붓이 종이를 지나가는 찰나의 속도감으로 도자기에 선을 그려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와 닿는 또 한 가지는 철화는 화공이 그린 그림이 아닌 도공이 직접 그려 넣은 투박하고 소박한 회화성 있는 도자기이다.
촌장님이 운영하는 공방은 도예촌의 초입에 위치해 있지만 원장님과 나는 맨 마지막에 방문했다. 촌장님과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는 문화원장님은 지난번에 왔을 때의 느낌을 글로 쓰셨다며 즉흥적으로 낭송해 주신다. 그 중에 나에게 의미가 되어준 말을 써본다.
“멀거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다, 나뭇잎 새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가는 바람을 보고 있다”
이 공방은 도자기에 가지런히 생명을 품고 있는 다육식물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며 도예가는 2006년에 가졌던 도예전의 출품작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설명을 덧붙인다. 아이의 순수성을 잘 표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말한다.
열한개의 공방을 다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도자기의 좋은 느낌을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랑의 손길이 보인다. 그리운 색깔을 만들어내려고 수백 번 공들여 흙을 빚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계룡산 도예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싶다. 오늘의 아름다운 동행을 그려보며 산길을 빠져나온다. 하천에 얇게 회색빛 살얼음이 낀다. 계곡의 암벽에 드러난 절리는 철화문양과 오버랩 되면서 시야에서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예촌에서 찾아보았던 15세기 자기의 흔적은 세월의 표현에 의해 이 시대에도 자유롭게 활용되리라 생각한다.
첫댓글 작년 초겨울에,,,,
상신리 도예공방을 다녀오던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햇님 쉼터 카페를 만나는 인연을 함께 가져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