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넷째 주 목요일은 추수감사절이다. 해마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에는 각기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연중 휴일 없이 장사하는 가게들도 이 두 날에는 대부분 문을 닫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사촌들이 가까이 살던 볼티모어와는 달리 플로리다에는 우리도 가족이 없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가까이에 외로운 가정 몇이 눈에 띄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가정은 모두 여행을 떠났지만, 그도저도 못 하고 한산한 동네에 남아 있는 가정이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첫해부터 그런 가정 몇 집을 초대해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내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의 전통 요리인 터키를 굽고 그것과 더불어 먹는 몇 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곁들여 불고기 잡채 등 한국 음식도 준비했다. 처음에는 몇 가정이었던 그 행사는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그 수가 늘어나 팬데믹 전에는 40명이 넘게 모였다. 주된 요리는 내가 준비하고, 다른 가정들은 각자 가지고 올 수 있는 음식을 하나씩 들고 왔다. 간단한 나물이나 각종 전, 혹은 과일이나 살라드는 그렇게 채워졌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웃고 떠들면서 우리는 고국을 떠나온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고,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가족이 되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일하던 그 시절에, 모처럼 쉬는 그날에 어떻게 그런 행사를 준비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터키를 요리하려면 추수감사절 이틀 전에 터키를 사서 소금과 허브를 섞은 물에 담가 두어야 한다. 추수감사절 당일에는 그 터키를 오븐에 넣고 5시간 동안 계속 지켜보면서 구워야 한다. 중간중간 버터를 발라 주며 뒤집어야 촉촉하고 부드러운 터키를 구워낼 수 있다. 그때는 힘든 줄 모르고 하던 일들이 올해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호점을 시작하면서 예상과 다르게 여기저기서 불거진 많은 사건,사고를 처리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탓도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지친 나를 위로하는 추수감사절로 지내기로 마음먹고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그동안 남을 위해 수고하고 애쓴 나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최근에 문을 연 호텔에서 추수감사절 스페셜 뷔페를 한다는 소식을 들어 그곳을 예약했다. 그동안 이 호점을 준비하는 과정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어른 부부를 함께 가자고 초대했다. 요리할 필요가 없어 느닷없이 남아도는 시간이 길고 지루했지만 누워 빈둥거리며 그 시간을 즐겼다. 가만히 앉아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니 참으로 고단했던 삶이었다. 그랬음에도 고단하고 힘들었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즐겁고 보람되었던 날들이었다. 열심히 살아온 날들이었다. 그런 삶을 살아낸 나 스스로가 새삼 대견했다. 예약한 시간이 다가오자 가장 예쁜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정성껏 했다. 함께 식사하기로 한 두 어른도 곱게 차려입고 나오셨다. 호텔 뷔페의 음식은 잘 준비되어 있었다. 추수감사절의 음식인 터키와 햄은 물론 살라드와 그 외의 다른 음식들도 꽤 고급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내가 요리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내며 즐기는 저녁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나를 위로하고 나를 기쁘게 해주는 자리, 지출이 많긴 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귀한 그래서 더욱 값진 시간이었다.
첫댓글 편안한 쉼이 있는 추수감사절이었네요 나 자신을 대접하며 사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을 자주가지시기를
감상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문세희님. 더 늦기전에 고단한 삶을 살아온 우리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대접해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