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예찬
이태호
조선시대의 실학자 신경준(申景濬)은 <산경표(山經表)>란 저서에서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산줄기의 개념을 정립하고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해석했다. 그는 여기서 갈라지는 여러 지맥을 정맥(正脈)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산의 실제 흐름과는 달리 지질학적 관점에서 ‘산맥(山脈)’이란 개념으로 찢어 놓았다. 이 같은 산맥 중심의 지형 구분은 실제로는 산줄기가 강물에 의해 끊겨져 있어도 토질이 같다는 이유로 같은 산맥으로 칠뿐 아니라 백두산과의 연관성을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외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북한 과학원 지리연구소는 1996년 가을 백두산에서 남해안 구재봉(鳩在峰)까지의 1천 4백 70km를 ‘등마루 산줄기’라고 부르고, 여기서 갈라져 나간 지맥을 여러 개의 ‘산줄기’로 표현했다 한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이 한반도의 산맥 체계를 백두산을 정점으로 전면 개편했음을 의미한다.
이번에 북한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백두산을 시발점으로 하여 ‘등마루 산줄기’ 중심으로 산의 계보를 뜯어 고침으로써 강한 민족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백두대간의 끝을 지리산에서 더 나아가 구재봉이라고 명기함으로써 나름의 연구 성과를 올리고 있다.
철조망으로 가로 막힌 백두대간의 남쪽 줄기나마 기회 있는 대로 등반하고 있는 나는 이 보도를 접한 즉시 호기심이 생겨 구재봉을 찾아가 보았다. 이 산은 노고단, 반야봉, 명선봉, 칠성봉을 지나서 세석평전을 끼고 서있는 영신봉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경상남고 하동군 적량면 섬진강 하류 부근에 해발 7백 57m로 솟아 있다.
북한이 지리산 본줄기에서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등 3도의 각 시군으로 뻗어나간 15개가량의 작은 줄기 가운데 유독 구재봉 줄기를 백두대간의 끝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하지만 구재봉이 백두대간의 정기를 응축한 대단원이라고 보기엔 기가 약하고 힘도 없어 보였다.
그 동안 백두대간의 끝이 어디냐는 문제에 관해서는 이론(異論)이 분분했다. 백두대간의 끝을 지리산으로 보는 신경준의 견해 외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백두대간이 동해안 능선을 타고 경상남북도를 종단한 후 부산 다대포(多大浦) 앞산에서 끝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백두대간이 험산준령으로 이루어진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영마루를 형성하고 있다는 이른바 한반도 척추론(脊椎論)을 근거로 하고 있다.
또 백두대간은 노령산맥을 거쳐 전라남북도를 지나 해남 땅끝에서 다도해를 건너 한라산에서 그친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백두대간이 수많은 산줄기를 이끌고 동남진하여 육지의 끝을 거쳐 바다 밑을 통해 국토의 끝인 한라산에서 끝난다는 한반도 영토론(領土論)을 근거로 하고 있다. 산이 계곡물이나 강물은 건너지 못하지만 바닷물은 건넌다는 설을 이 견해는 보충 논거로 삼고 있다.
이밖에 백두대간은 속리산을 휘돌아 차령산맥을 타고 충청남북도 지방을 누비다가 태안반도의 끝 안면도(安眠島)에서 대장정을 마치고 편안히 쉰다는 견해도 있다. 이것은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지형과 강의 흐름을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와 속리산 허리 안쪽을 끼고 떨어져(腰裏落), 굴곡이 가장 심한 금강을 싸고돈다는 산수배합론(山水配合論)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백두대간의 정통성(正統性)과 적자론(嫡子論)을 확인하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의 산물들은 어느 것 하나 백두대간의 출발점을 백두산으로 꼽는 데는 다툼을 허용치 않지만 그 끝이 어디냐에 따른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다만 백두대간이 지리산에서 맺는다는 신경준의 견해는 통설(通說)로서 의연한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시발점인 백두산이 없이 우리 민족은 없고, 우리 민족 없이 백두산은 없다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을 ‘백두산족’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백두대간의 발원지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하지만 지금은 휴전선 철조망에 가로 막혀 산줄기를 따라 북으로 거슬러 오를 수는 없는 산. 그리하여 우리는 중국 방문 길에 남의 땅에서 그 산 자락을 밟고 눈이 시리도록 검푸른 천지(天池)를 뭉클한 가슴으로 알아보는 것으로 갈라진 민족의 비애를 억누르곤 한다.
백두산을 찬탄한 글이 얼마나 많더냐.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 등 당대의 석학을 비롯하여 수많은 애국지사와 문인들이 이 산에 올라 그 장엄한 기상과 영롱한 자태 앞에서 넋을 잃고, 이 산의 경관을 찬탄했다. 이 가운데 최남선은 ‘백두산 근참기’란 글에서 백두산의 장군봉에 오른 감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장군봉 위에 올라서면 가깝게는 밀림에 싸이고 멀리는 구름에 잠긴 남북 만리 백민(白民)의 옛 국토가 한 눈 아래 깔렸으니, 광경의 웅대함, 감상의 신비함이 과연 뼈가 없어 흐늘거리는 자라도 피가 끓은 인간을 만들고, 신이 없다는 자로 하여금 신의 찬가를 목청껏 부르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백두산의 본질을 속속들이 꿰뚫어 본 외국인들도 있다. 중국 당나라 풍수지리학의 태두(泰斗) 양균송(楊筠松)은 “모든 산의 근원인 곤륜산에서 뻗어나온 4개의 대간맥(大幹脈) 중 동쪽 맥이 고비사막을 질러 조선으로 들어갔다”고 <감룡경>이란 명저에서 분명하게 지적한 바 있다. <감룡경> 해설서들은 “조선으로 들어간 대간맥의 가지가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덧붙이고 있다.
고대에서 중.근세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조선을 속국 또는 변방국가로 취급했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유교를 숭앙하던 조선시대에 중국의 황제에게 사절단을 보내 일일이 왕위 계승을 윤허 받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중국의 석학이 곤륜산맥의 정통성을 백두산을 정점으로 한 한반도에 부여한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일본 메이지 유신시대의 대학자 구니도모 지이껭(國友隋軒)은 일제 강경파들이 우리나라를 병탐하려 할 때 홀로 백두산에 올라 그 웅장한 기세를 관찰한 후 한 편의 시를 지어 일제의 한일합방 기도를 비판하여 일본사회에 충격을 준 일이 있다. ‘등백두산음(登白頭山吟)’이란 제목의 그의 한시(漢詩) 전문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백두산은 하늘을 찌르며 치솟아있고, 그 영롱하고 맑은 자태는 구름 밖에 서있구나.
신령한 기운이 가득 차 가로질러 뻗어가고, 구불구불한 반석은 수천 리를 둘렀다.
이마에는 깊은 호수가 있어 용이 머물고, 기이한 영기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사를 빌게 하는구나.
연기 같은 안개가 그 속에서 피어오르고, 우레와 벼락이 그 바닥으로 달리는구나. 피부에 와 닿는 구름은 자색을 띠고, 콸콸 쏟아지는 물은 흑룡강으로 흘러드는구나.
만주와 몽고의 드넓은 뜰을 서북으로 가리키고, 한반도와 요동반도를 동방으로 보여주도다.
이 경관을 누를 자 천하에 없으리니, 천고의 영웅들이 예서 줄지어 나올 만도 하다.
요금원청(遼金元淸)도 예서 일어났고, 동방에서 일어나 조선의 역사도 여기서 빛나도다.
영불독미(英佛獨米)는 어린이들 장난일 뿐이요, 흥하고 피폐함은 어찌 한(漢)과 당(唐)에 물을소냐.
조선의 풍운의 역사를 바라보건대, 국가를 경영한다는 (일본의) 선비들이 어찌 이리 악착스러운가.
영웅.호걸들이 각축을 벌였으나 고요하고 평안토다. 오호라. 신성한 제왕(帝王)의 위엄이 예서 비롯하였구나.”
한민족이 일시적인 고난을 겪더라도 흥왕할 수밖에 없는 이치를 신령하고 장엄한 백두산의 정기(正氣)에서 찾은 구니도모 지이껭은 일본이 조선을 병탐한다 하더라도 조선은 백두산 정기를 타고 머지않아 일어설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 시를 통해 자기 나라 지배층의 한일합방 기도를 비판한 것이다.
백두산에서 발원한 백두대간은 부전령, 북대봉, 마식령,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등 갖가지 봉우리들을 포용하면서 수많은 가지를 치고 또 다시 잔가지를 치면서 동서남북으로 뻗어간다. 그것은 때로는 해발 수천m의 험준한 산들을 비호(飛虎)처럼 치달리고, 가느다란 협(峽)을 뱀처럼 구불구불 기며, 큰 강과 실개울을 끼고 돌기도 한다.
이처럼 백두대간은 이 땅의 중심을 뚫고 정기를 뻗친다. 그것은 양음, 강유, 완급, 고저, 장단을 아우르며 뭇 산을 엮고, 구비치는 강물로 삼천리금수강산을 적신다. 변화를 추구하되 조화를 이루는 산과 물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계곡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은 대자연의 노래처럼 들린다. 그것은 하늘이 빚어낸 예술품이 아니고 무엇이랴.
또한 백두대간은 크고 작은 신경망과 혈관으로 가득한 인체(人體)를 연상케 한다. 백두대간은 골격이요 중추신경이다. 신경준이 정맥(正脈)이라 부른 큰 산줄기와 작은 가지들은 신경망이다. 큰 강은 대동맥이다. 작은 강은 대정맥이다. 실개천은 실핏줄이다. 백두대간은 이처럼 우리 자신의 몸이다.
수려한 산과 깨끗한 물은 맑은 공기와 더불어 쾌적한 환경의 지표요, 인간의 건강을 위한 필수 요건이라 한다. 22만 평방킬로미터 밖에 안 되는 우리 국토가 아름다운 산과 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요, 땅이 베풀어준 은혜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은 백두대간을 축(軸)으로 하여 장엄한 민족사를 형성해왔다. 백두대간 영마루에서 굽이굽이 뻗어 내린 산줄기마다 민족의 애환을 품고 있다. 우리 민족이 있으므로 백두대간이 있고, 백두대간이 있으므로 우리 민족이 있다. 백두대간은 민족의 몸이요, 혼이다.
(출처 : 야후 블로그 '작은영혼' 2011. 2. 7)
첫댓글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고 우리민족이 살고 있군요 화려한 우리 강산 잘 보존 하며 느껴야 되겠지요,,,
다시금 대간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