又二首幷後序
또 2 수를 차운함에 후서 ( 後序 ) 를 아울러 쓰다
柳後甲 贈承旨
유후갑은 승지에 증직되었다.
上之四十四年春 余避痘 龜城之王麻村 咸寧金君仲潤氏輝石 亦寓棲鳳棲庵 有時來訪
於寂寥中 頗慰籬索之懷矣 一日金君袖一 卷詩話來示余日 昔五六代祖處士公 隱居于興州之桃村 手植一 株垂柳於宅前 澗水邊築臺柳下 因以柳名亭 日夕携朋 觴詠其中 因先祖原韻 繼而和之 以迄于今 積成此帙子 亦足其韻續諸卷末 可乎 余於是平開卷 遍閱 則弁其韻者 主人處士公 首其序者 卽 我外先祖松隱金先生 或序或和者 愼齋周先生 鶴沙金先生 高翠 屏 郭丹谷 李鑑溪 而其餘和之者 無非古今聞人詞類 余嘗竊 惟木之易衰者柳也 閲數百星霜而手澤宛然 枝葉不衰云 則豈非處 士公種德於當日蔭庇乎 後昆用助 神明之所扶持 而子孫之世世寶護 勤勤培植之攸致歟 嗚呼 異矣 余雖不獲升處士之亭 而今 幸竊誦處士之遺編 有感乎 中不能無言略付數語 而歸之
豊山後人 柳後甲 謹書
금상이 즉위하신지 44 년 봄,나는 천연두를 피해서 구성의 왕마촌에 있었다. 함녕 김군인 휘석(輝石) 중윤(仲潤)씨 또한 봉서암에 우거하였다.이때 찾아오니 적막한 가운데쓸쓸하게 갇혀 지내는 데서 생기는 회포(懷抱)를 자못 위무( 慰撫)해 주었다.
하루는 군이 소매 속에 시화(詩話)한 권을넣고 와서 나 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 옛 5대조인 처사공께서 흥주의 도촌에 은거해 집 앞에 수양버들 한 그루를 손수 심으셨습니다.
계곡 의 시내 주변 버드나무 아래에 흙을 평평하게 대(臺)를만들었 는데 이로 인해 ' 버드나무 정자'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날마다 벗을 데리고 정자 속에서 잔 잡아 시를 읊으시니 이로 인해 선조(先祖)의 원운시(原韻詩)에 운자를 맞추어 화답하는 전통이 지속되어 지금에 이른 것으로 이 질자(帙子)114) 에 축적(蓄積)해 놓았습니다. 또한 족히 그 운자를 이어 권말에 써주심이 가하 신지요." 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책을 열고 두루 살펴보니 그 운자를 갖추어 시를 쓴 분은 주인이신 처사공이며, 질
자(帙子)의 맨 앞부분에서. 서 두를 여신 분은 곧 우리 외선조
이신 송은 김선생이셨다. 간혹 서문을 쓰시거나 간혹 화운을 하신 분도 계시니, 신재 주 선 생, 학사 김 선생, 고 취병 선생, 곽 단곡선생,이 감계 선생 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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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질자(㠸 子): 접책 (摺冊 ). 종이를 앞뒤로 여러 번 접어서 책처럼 만든 것. 170그분들 이외에도 화답을하시거
나 서문을 쓰신 나머지 분들은 고금의 명문장에 속하는부류에 속하셔서 널리 알려지지않으신 분이 없으셨다. 내가 일찍이 생각하니. 다만 나무 가운데 쇱게 쇠하는 것은 버드나무인데수백년의 세월을 겪어도 수택(手澤 ) 이 완연하여 가지와 잎사귀가 쇠하지 않았기에 말하기를, " 처사공께서 그날 덕을 심으셨기에 어찌 음덕이 감싸지 않았겠습니까.
후손이 이 나무를 위해 힘써 부조(扶助)하고 신명이 부지(扶特)하신 바 자손들 대대로 보물로 수호하여 부지런히 이나무를 잘 배식(培植)하는 일에 힘썼던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아!특이하구나.내가 비록 처사공의 정자에 오를 수 없었으나 지금 다행히 처사가 남긴 시편을 암송하니 감동이 있다.
그 중에서도 말로 다할 수 없어 몇 마디마디 말에 간략히 불이고 들리주었다.
풍산 후인 류후감이 삼가 쓴다.
頼得雲仍護柳亭 후손의 힘을 얻어 유정을 수호할 수 있는데
衰技猶帶昔年情쇠잔한 가지는 오히려 그해의 정을 띠내.
相傳比後應無筭선조의 유업을 전한 다음에는 응당 셈이 없어야하니
長使騷人115)任醉醒길이시인으로 하여금 취했다 깨어나게 하네.
愼老116)當年詠柳亭그 해 신재(愼齋) 노옹(老翁) 이 유정에 대해 읊으셨는데 이 주모의
鶴翁117)追序寓深情학사(鶴 沙)노옹(老翁)이 추모의서문을써서 깊은 뜻을 부쳤네.
羣賢芳躅留於比뭇 현인들의아름다운 자취는 이곳에 남아있으니
奉閱遺編俗慮醒남기신 시편을받들어 열람하니 세속의 생각에서 깨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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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소인(騷人):시인이나 문인. 시객(詩客).
116) 신로(愼老):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117)학옹(鶴翁 ): 학사(鶴沙) 김응조 (金應祖).
又
차운하다 버
七世孫 始音
7 세손 시음
七代遺風一柳亭7 대에 걸쳐 전해진 유풍(遺風)이 한 그루의 버드나무 정자에 있으니
至今枝菜尙含情지금의 가지와 잎은 아직도 정을 머금있네.
綠陰深處鷪歌亂녹음이 깊은곳이라 꾀꼬리 노랫소리가요란한데
解辭兒孫俗慮醒말이 없는자식과 후손이 세속의 생각에서 깨어나내.
又幷跋
또 차운함에 발문(踐文)을 아울러 쓰다
金人政118)文 牧使 蘆葦
김 정은 문과에 급제하여 목사이며 호는 노봉이다
客袖一冊子來曰 此吾七世祖柳亭詩帖也 舊宅臨溪 溪上植柳 無爲乎 其側哦詩言志 和之多古今聞人 有若周愼齋金松隱 高翠屏 諸作在其中 鶴沙金先生 亦嘗和其詩序 其事發揚而張大之子 可無一語 余盥手敬讀作而曰 夫亭不過溪邊尋常一小築 而先生 長者往來 而酬唱諺 則其祖之賢 可知 柳是植物中先零 而世世 愛護閱數百 而不衰朽 歷七葉而如一日 則其孫追遠之誠 又可尚 已生年半百 恨不一登亭 而飫清風也 左顧客客 色飛 而悽良久 而日 末裔不克守青氈 漂寓而東西 亭廢而柳尚在 路人日 此某 處士手植 莫不式而過 余重喟而曰 异哉 柳也 前乎六世 而培之 壅之百年有菀宜矣 洎夫野亭無主 而排風霜 遠原燎得 非種德於 當日 而神物之呵衛也 去矣返 桑梓重扶植 使君家七世喬木百世千世 而長榮焉 客曰 唯懼不克謹承 敎余幸蠅附驥尾 敬次卷中韻 復敍問答以勗客 客咸寧人 金其姓 名始音 赤鷄日南至119) 蘆峯散人 金人政跋
빈객이 소매 속에 책 한 권을 넣고 와서 말하기를. " 이 책은 7세조의 < 유정시첩 > 입니다. 옛 집은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시내 위에 버드나무를 심으셨는데 억지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버드나무 곁에서 시를 읊고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고금(古今) 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현인들이 그 시에 많이 화답하 셨습니다. 그 일이 발양(發揚)되어 자손들의 일로 확대되니 한마디의 말로는설명이불가한 것입니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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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金 政 , 1670-1737): 자는 사달 (士達)이며, 호는 노봉(蘆峯)이다.본관은풍산(豊山)으로,1696년 사마시(可馬試)에 합격하고,1708년 문과에 급제하여 내섬시직정(內贍寺直長)이되었다. 차후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경성판관(京城判官 ), 함경도사도사 (咸慶都事), 병조직립 (兵曹佐郎), 병조좌랑(兵曹佐郞)옥천군수(玉川郡守). 강릉부사(江陵府使).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제주목사(濟州牧使 ).등을역임하였다. 1735년 제주목사겸 호남방어사(湖南防禦使) 재임 시에는 삼천서당(三泉書堂)을 세워 교화에 힘썼다. 청백리로 녹선(綠選 )되었으며,영풍(現 영주) 의 오천서원 (梧川書院)과 제주의 상현사(象賢祠) 에 제향되었다.
119) 일남지(日南至): 동지. 해가 남쪽으로 이른 때를 뜻한다.
내가 세숙대야에 손을씻고 경건하게 읽으며 말하기를, " 무릇 정자는 시냇가에서 항상 찾을 수 있는 작은 건축에 불과합 니다.
그런데 선생 같은 어른이 왕래하여 시에 수창하게 하니 그 선조의 이짊을 가히 알 수 있습니다.
버드니무는 식물 중에서 가장 먼저 영락(零落)하는 것이지만 대대로 수백 번을 보며 사랑하고 수호하니 쇠하거나 썩을 수 가 없으며 7대를 지난 것이 마치 하루를 지난 것과 같이 변함없습니다.
그 자손이 먼 선조를 추앙하는 정성이 또한 가히 숭상할 만합니다. "라고 하 였다. 이미 살아온 나이가 50임에도 한 번도 정
자에 오르지 못한 것을 한하여 맑은 바람을 실컷 쏘이고 원쪽으로 빈객들을 돌아 보니 풍채를 드날리는데 오랫동안처량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먼 후손들이 능히 푸른 용단 같이 귀한 버드니무를 수호할 수 없어 표표히 동쪽 서쪽으로 이사하니 정
자는 없어져도 버드나무는오히려 남아있구나." 라고 하였다. 길 가던 사람이 말하기를, "이 나무는 모 처사가 손수 심은 것
입니다.
예의를 갖추지 않은 채즈 지나치지는 말아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내가 거듭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 기이하구나! 버드나무
여! 6대 전에 심었으며 잘 기르고 토양을 북돋음이 백년이니 인륜의 뿌리 깊은 마음이 깃들 어있는 것입니다.
무릇 들의 정자는 주인이 없으니 바람서리를 막거나땔나무를멀리서 얻게 함은 그날에 덕을 심은 것이 아니라면 신물(神物) 이 꾸짖어 막아준 것입니다.
간 것은 들아오게 되어 있어서 고향의 땅에 거듭 북돈워 뿌리를 박제 하니 그대 가문으로 하여금 7 대로 이어진 교목(喬木)처
럼 백세 천세 길이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빈객이 말하기를, " 오직 능히 삼가 계승할 수 없을까 두렵습 니다."라고 하였다. 나로 하여금다행히 천리마 꼬리에 붙은 파리가 될 수 있게하여 책 속 시의 운자에 맞추어 경건히차운하고
빈객을 권면 하기 위해 문답 하였던 내용을 거듭쓴다. 빈객은 함녕인(함창인)으로 그 성은 김이며 이름은 시음 (始音 ) 이다. 정유년(丁酉年)동짓날에 노봉 산인 김 정이 쓰다.
老柳扶疎立廢亭늙은 버드나무는 성글게 떠받치며 무너진 정자에 서있는
式間行客憁傷情마을을 지나가려는 빈객은 모두 가슴이 저리네.
請君勿替栽培意그대에게 청하노니, 심고 가꾸던 그 마음을 저버리지 말아
長使千春綠眼醒길이 천춘(千春)120)으로하여금 초록빈 눈으로 깨우게 하려네.
又二首
또 2 수를 차운하다
琴聖心 生員
금성심은 생원이다.
空餘衰柳舊時亭쇠진한 버드나무는 옛 시절의 정자에 공허히 남았는데
三復遺篇今日情남기신 시편을 세번 읊으니오늘에야진심이내.
回首武陵明月冷무릉으로 머리들리니 밝은 달은 차고
比心如醉未能醒이 마음은취한듯 깨어나지 못하네.
先祖留題乃祖亭선조께서 조부의 정자에 제영시를남기셨으니
千秋偏重兩家情천추토록 두가문의 정의(情意)121)는 치우칠 정도로 소중히 여기네.
勒君更種門前柳문앞에버드나무를 다시심기를 그대에게권하노니
日與佳寶共醉醒날마다 아름다운 빈객과 함께 취했다 깨려네.
又四首并小序
또 4 수를 차운함에 짧은 서문을 아울러 쓰다
李義兼 伊溪이의겸은 호가 이계이다.
以痘患來寓愚川 未一月 柳亭主人持柳亭詩帖示之 仍求和於余 余忘拙敢續諸賢而步韻時 壬寅春三月 下澣也
昔日風流坐此亭예전에 풍류를 생각하며 이 정자에 좌정 하니
出塵氣像發詩情세속의 기상을 벗어나 시정(詩情)이 감발되네.
百年往事空餘柳백년토록 지난 일들은 공연히 버드나무에남았는데
啼烏斜陽喚客醒지는 해에우짖는 새가 술 취한 나그내를 깨우네.
繼繼承承護此亭대대로 이정자를 수호하는데
愛其所愛子孫情자손들을 사랑하는 선조(先祖)의 마음을 좋아하네.
昔人攀栢122)令人柳옛사람은잣나무를 불잡고. 을부짖어서지금 사람에게 버드나무를불잡게 하니
追慕當年醉又醒그 해의선조들을 기리어 사모하여 취했다 깨어나네.
比地經過見比情이 땅을지나가니 이곳에 서린 뜻을 보게 되는데
靑靑柳色百年情푸르고 푸른 버드나무 색이 백년의 뜻을 지녔네.
不衰不朽傳之久쇠하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오래도록전해지니
世世淸繼醉醒樽대대로 맑은술단지 앞에서 수 취하고 깨어남을 이어받네.
傳子傳孫七世亭자손에게 7 에 걸쳐 전해진 정자 있으니
淸陰不改尙舍情맑은 그늘은 변하지 않아 아직도 정을머금었네.
主人幽興良辰足주인의 그윽한 흥취가 좋은 날에 넉넉한데
能繼遺風醉復醒능히 유풍(遺風)을 이어서 술 취했다 다시 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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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천춘(千春): 천춘(天椿).천춘은 장수하는 나무이다. 8 천년을 한 봄으로하며, 8천년을한 가을로 한다.
121)정의(情意):따뜻한 마음과참된 의사 意思 ).
122 )반백(攀栢): 반백체호(攀栢涕號 ).왕부가 부친의 모소옆에서 여묘(廬墓)살이를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무릎 꿇고절하며
잣나무를 붙들고 슬피 호곡(號哭)하였는데. 왕부의 눈물이 나무에 묻어 나무가 말라 죽었다(「진서(1晉書)」권88<효우열전
(孝友列傳)왕부(王裒)).
又
또 차운하다
朴天球 樂天堂
박천구는 호가 낙천당이다.
未到亭中聞柳亭정자에 아직 가지 않은 도중에 유정에 대해 들었는데
客來今日最多情오늘 빈객으로 오니 가장 정이 많네.
主人且莫辭無酒주인은 또술이없다고 말하지 마오
但願長酲不願醒다만 원하는 것은 길이 취하는 것일 뿐이니 깨어나기를 원하지는 안네.
又二首
또 2 수를 차운하다
琴運心 進士
금운심은 진사이다.
春風香子倚高亭봄바람에 빈객은 높은 정자에 기대었는데
落日江頭感古情 강머리에 지는 해는 옛 정취를 감발하네.
人去千秋寒月白오랜 세월에 인걸은 가버리고 차가운 달만 밝으니
一聲啼鳥喚愁醒한 번우짓는새소리는 시름겨운 사람을 깨우네.
天地東南一大亭천지의 동남향에는 하나의 큰 정자가 있으니
桑田滄海百年情상전벽해(桑田碧海)123) 의 세상에서도 백년의 정이 있네.
風光月霽江禽語빼어난 풍경이라 강가에 새소리 들리는데
瀟洒様期祝若醒가슴이 맑고 시원하여 어슴푸레 술깨기를 기약하네.
又二首
또 차운하다
全壽山 生員 124)
전수산은 생일이다
古木扶踈徛小亭성글게 떠받친 고목은 작은 정자에의지하는데쇠잔한 가지와 늙은즐기가오히려
衰枝老幹尙舍情쇠잔한 가지와 늙은 즐기가오히려 정을 머금 었네.
當年朋酒相酬地그해 벗과 술 마시며 서로 수창하던 땅이니
幾箇詩豪125)此醉醒 뛰어난 시인들이 여기에서 취했다 깬 것이 몇 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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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상전부해(桑田碧海):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세상일의 변화가 매우아 심함을 비유한다.
124 )제현목록에는 진사(進士) 로 명시되어 있다.
七世相承一柳亭7대에 걸쳐 버드나무 한 그루 정자에 담긴 선조의 뜻을 이어갔으니
溪山風物百年情 산수의 풍물(風物)은 백년의 정취이네.
淸陰不改名愈久맑은그늘이 변하지 않아 그 이름 더욱 장구한데
何以平泉石126)醉醒무슨까닭에 평천(平泉)의 성주석(醒酒石)에서 취했다 깨어날까.
又并後序
또 차운함에 후서 ( 後序 ) 를 아울러 쓰다
李孝達
이효달
余往來于興府 亦有年 但見路傍 有一亭 柳老幹屈曲 密葉濃 絲 每於炎夏五六月之時 則其近地 章甫127)之類 相與聚會於斯矣 以為尋常柳木 而未甚奇也 隣家有一冊子 披閱見之 有司藝曾祖幷序詩三首 仍盥手上下讀之 其中有周愼齋 高翠屏 金鶴沙 所詠問之 則乃金氏之靑氈舊業 而始知亭之奇也 蓋先輩序中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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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시호(詩豪): 시를 아주 잘 짓는 뛰어난 시인.
126)평천석(平泉石): 당(唐)나라 정승 이덕유(李德裕)의 별장 (別莊)인 평천장 (平泉莊)에는 술 깨는 돌,즉'성주석 (醒酒石 )' 이
있다.
127)장보(章甫): 글공부하는 선비.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
此亭累百餘年 而自先輩至于今 已爲百年之久 則通計 爲三百餘矣 豈不奇且古矣哉 凡木之易朽 而易衰者 莫如柳 而此柳入 於古今文章巨筆 吟弄之中而已 經三百餘風霜 則豈非當年種之餘乎 亭之主人 移居于亭之南榮之郡者 亦累世于兹矣 猶且不忘 其舊集錄 未已若不有慕先之誠 焉能承其祖先之志 如是不怠也 吾見此柳已衰 三百年之其久 而其子孫相爲終始不怠 於詩乃能如此 若其子孫 又與其傍生新木 相爲終始集其詩話 則吾不知 後來之久幾百千年 而詩話之成 亦不知幾百千篇也 觀其詩中 無非名人詞伯瓊琚之句 則不佞之足於其下 極知僭猥 而既有先 筆迹與其主人 乃爲世交 128)則豈可以續貂爲病 而不爲榛穢之乎
白狗臘月初吉 眞城後人 李孝達 謹書
내가 흥부 ( 興府 ) 에 왕래하였는데 또한 나이가있었다. 다만 길가를 보니 정자가 하나 있었다. 버드나무가 늙어서 줄기꺾이고 구부러졌으며 잎은빽빽하고 짙푸른 실 같았다. 매번 무더운 여름인 오뉴월의 시기마다 그 근처의 땅에서 사는 장보의 부류들과 서로 이곳으로 모였다. 버드나무를 항상 찾으니 아무런 기이함이 없었다.
이웃집에 책이 한 권 있는데 열고 읽어보니 사예(司藝)였던 증조(曾祖)의 시 3 수가 서문과 아울러 있었다. 세숫대야에 손을 씻고 위아래를 읽었다. 그 책 가운데 주신재(周愼齋), 고취병 (高翠屏), 김학사(金鶴沙)가 시를 읊었으며 방문하였다.
즉 이것은 김씨 가문의 소중한 옛 일이며 버드나무 정자의기이함을비로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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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세교(世交):대대로 이어진 교분.
대개 선배들의 서문(序文)가운데 이르기를 이 정자는 이백 여 년이 되었으며 선배들로부터 지금에 이른 것이 이미 백년의 장구한 세월은 되었으니 통산하면 삼백여년이 될 것이다. 어찌 기 이하지 않으며 또한 오래된 것이 아니겠는가. 무릇 나무가 쉽게 썩으며 쉽게 쇠하는 것으로 버드나무보다 더한것은없다.
이 버 드나무는 고금의 명문장가와 거필(巨筆)들 시문 (詩文)의 소재로 입록(入錄) 되었다. 그들이 시문을 즐겨 읊는 가운데 이미 삼백여 년의 세월을 거쳐 이어졌으니 어찌 그해에 덕을 심은 결과가 아 니겠는가. 정자의 주인은 정자의 남쪽 영주의 군이란 곳에 이거 하였는데, 역시 이곳에서도 누대에 걸처 살았다. 여전히 또한 영 세불망의 심정으로 그 옛 시문을 모아 편찬하는 일에 다함이 없으니 선조를 존모하는 정성이 있지않았다면어찌 능히 선조의 뜻을 계승할 수 있었겠는가. 이와 같이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보니,이 버드나무는 이미 쇠하여도 삼백 년 동안 장수 하였는데, 그 자손들이 서로 시종일관하게 게을리 하지 않고
수호한 것이다.
그때의 시문도 능히 이와같이 영원히 계승될 것이다. 자손들 또한 그 버드나무 곁에 새로운 나무가 자라나듯이서로시종일관 그 시화를 집록하는 일을 계승할 것이다.내가 뒤에 올 자손의 영원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도 몇 백년, 몇 천년 동안 영원할 것이며, 시화(詩話)의 완성 역시 몇 백 편 몇 천 편이 완성될 것이다.
옛 시첩의 시들을 보니 훌륭한 현인들과 명문장가들의 귀한 시구(詩句)가 아닌것이 없었다. 그분들 아래에 재주 없는 나의 발끝치는 것은 참람 스럽고 두렵다는 것을 극히 잘 안다. 그러나 내 선조의 필적이 남아 있으며 유정 주인과 마침내 대를 이은 교유가 있었으니 어찌 가히 현인들의 글 뒤에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을 이어붙임 을 병페로만 알고 진예(榛穢)129)의의지처로 삼을 수는 없단 말인가
경술년(庚戌年)11월 초 하루에 진성 후인 이효달이 삼가쓰다.
人去百年餘古亭백년세월에 인걸은 가벼리고 옛 정자만 남았는데
依然物色尚舍情물색(物色)은 의연하여 여전히 정을 머금었네.
吟鞭到此懷無托여기에 이르러 채찍질하며 읊조려도 의지할데없어 시름하니
惟憶當時醇復醒오로지 시절을떠올리다 술 취하곤 다시 깨어나네.
又
또한 차운하다
全必銶 生員 130)
전필구는 생원이다.
二百年前此柳亭이백년 전에이 유정을 만들었으니
烟絲露基尚含情안개 서린가느다란 줄기와이슬 젖은 잎은 여전히 정을 머금었네.
當時豁若開襟地그시절에는 가슴이 얼리는 땅처럼통하였는데어 을 아침에는 누가 다시 주인과 빈개월 깨우겠는가.
誰復今朝主客醒오늘 아침에 누가 다시 주인과 빈객을 깨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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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진에(榛穢):잡초와 잡목이 우거진 곳. 겸손한 표현.
130)제현목록에는 진사(進士) 로 명시되어 있다.
原韻有豁若開襟主客醒等語 故末句及之 원운에는 " 가슴이 열릴 듯 통해야 주인과 빈객을 깨운다." 등의 말이 있다.
그러므로 끝 구절에 그 말을 함께 넣는다.
又三首幷後序
또 3 수를 차운함에 후서(後序) 를 아울러 쓰다
全必錡 生員 131)
전필기는 생원이다.
此亭余固登之矣 亭之柳中洞 而皮癭葉疎 而枝秃 雖當盛夏不甚 敷腴以其古也 旁一枝獨蜿蜒屈曲偃臥田問 而農氓亦不以害稺 敢剪傷之詢之 村老曰 此舊聞人 金處士手植也 處士亭其下 日攜朋觴詠 自處士去後 子孫世護之于今 閲二百餘禩矣 余聞言噴噴132)曰 遐哉 逖乎 斯柳之舊也 平泉之石 纔遺子范陽之栢 不蔭孫人家 凡物傳至二三世者 吾或聞之傳 至五六世者什百難靚 一二矣 今斯柳也 乃祖樹之 乃孫守之綿綿延延世 且八九 吁亦奇哉 既而亭之主 金君尚湜 袖一小帖來眎余 帖則厥祖所以詠歌斯亭 而前後鴻人碩流 因其子孫之求和相屬 而酬唱者也 余覽既 遂喟而曰 噫 信矣 金氏之物 宜其久也 其子孫以先人遺跡 不可 泯也 世世勤護之餘 又終當世文章鉅筆 要步先韻 以永其聲 則其追遠不忘之誠如此哉 惟其然也 彼黛色而長條者 安得不保柯 於百千之後而永為金氏物也 故余既歎斯柳之久而不衰也 又感其 子孫之誠之 足以保有其樹也 於是乎序 且賡諸賢詩韻
이 정자는 내가 원래 등림(登臨 ) 하였었다. 정자의 버드나무는속이 비였고 나무껍질은 혹 같이 튀어 나왔으며 잎은 성글고 가지는 벗겨졌다. 비록 성하(盛夏)133)의 때이어도 매우 번성하거나 풍성하지 않은 것은 이 나무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곁에 나뭇가지 하나는 유독 구불 구불하고 휘어져 굽고 쓰러져 밭사이에 뻗어 있었다. 농사짓는 백성이 또한 농사에 해가 되지 않으려 감히 자르거나 훼손할 수 있어는지를 물었다.
촌로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예전 세상에서 훌륭하신 분으로 명성을 드말린 김처사가 손수 심었는데, 처사의 정자는 그 아래에
있다.
날마다 벗을 데리고 장 잡아 시를 읊었다. 처사가 별세 한 후에 자손들이 대대로 지금까지수호하고 있는데 보니 이백여 해가 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서 크게 외쳤다. 멸구나! 아득하여라!이 버드나무의 오래됨이여! 평천의 돌은 가까스로 자손에게 남아 있는 듯 하였으며, 범양의 잣나무는 자손의 집에 그늘을 드리워주지 않았다. 무릇 사물이2세3세까지 전해지는 것은 내가 간혹 그렇게 전해진다는 것을 들었으나, 5세 6세까지 이른다는 것은 열 개,백 개라도 하나 둘남아 전해지가 어렵다.
지금 이 버드나무는 곧 선조가심은 나무여서 곧 자손이 대대로 수호해온 것이다. 또한 8세 9세까지 전해질 것이니 아!역시 기이하구나. 이미 정자의 주인김상식 군이 소매 안에 작은 책 한 권을 넣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책은 그 선조께서 이 버드나무 정자를 읊고 노래하셨기 때문에 전후(前後)시기의 큰 현인과 석학들이 그치럼 시를 읊던 일을 따랐으니 자손의 요청으로 화답시의 전통을 이어 수창한 것이다.나는 그 책을 보고 마침내 탄식해 말하였다. 아! 진실하구나! 김씨 가문의 사물이 응당 영구할 것이다.
자손들이 선인의 유적에 대해 가히 민멸하지 않을 것이다. 대대로 부지런히 수 호함의 넉넉함으로 또한 마침내 당세의 명문장가들과 위대한필적을 남긴 분들에게 선조의 시에 운자를 맞추어 시 짓기를 부탁하니 그 명성으로 인해 영원할 것이다.
그 자손들이 먼 선 조의 뜻을 추앙하여 계승하는것이 이와같이다함이 없는 정성인것이다.오직 그러하다. 저 좋은 경치 속에 긴가지가 있으니 어찌 백 천년 뒤 도끼 자루를 막을 수 있겠는가마는 영원히 김씨 가문의 보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이 버드나무의 장구함. 쇠하지 않음에 감탄하였다.
또한 그 자손의 정성에 감동반아 총분히 그 버드나무는 보전될 것이다. 이에 서문을 쓴 것이며. 또한 여러 현인들시의 운자(韻字)로 쓴 화운시를 있는다.
柳老仁村處士亭어진 마을에 늙은 버드나무는 처사의정자에있는데
疎枝宛帶舊風情성긴 나뭇가지는 옛 풍류의 정을 완연히 갖고 있네.
遊人真學五陵134)子유람하는사람은 오릉(五陵)마을의 자식을 따라 배우지 마오.
謾青條筭醉折腥거만히 푸른 가지를 꺾어 취하고 깨는 것을 세이본다네.
師道嘗題甄氏亭스승의 도는 일찍이 질그릇 굽던 분의정자를 제영하였는데
為言覽物追思亭 사물을바라보며 말하자니 정자를 생각하던마음이 기리네.
煩君常念爾先祖그대에게 청하노니, 늘 그대의 선조를 생각해주오
此樹之間恆醉醒이 나무사이에서 항상 취했다 깨어나려네.
吾先子亦序斯亭돌아가신 우리아버지께서 또한 이 정자에 대
해 서문 쓰셨는데
遠引陶翁135)聊寓情도옹(陶翁)의 마음을 멀리서 끌어와 애오라지 시정(詩情)에 부치네.
寔感數千餘載後참으로 수천여년 뒤에 느끼는 감정이니
宅邊136)復見醉而醒집 주변에서 다시 취했다가 깨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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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제현목록에는 진사(進士 ) 로 명시되어 있다
132)책책(噴噴): 크게 외치다
133)성하(盛夏): 한여름.
134) 오릉(五陵): 한(漢)무제( 武帝)이하 오군 (五君)의능이며, 이 오릉은 장안에 있다. 그곳은 귀족의 마을이었으며,
장안 귀족들의 자식은 무절제한 생활로 오만한 태도를 지닌사람이 많았다.
又
또 차운하다
權調元
권조원
南國江村一柳亭나라의 남쪽 강마을에는 버드나무 한 그루 정자가 있으니
百年封植見風情137)백년을 봉식(封植)해서 풍류의 정취를 보네.
樛枝蔭拂千人坐휘어진 나뭇가지가 그늘을 덮어줘 여러사람이 앉는데
醉夢今詩幾箇醒금시에 취해 꿈꾸면 몇 번이나 깨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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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도옹(陶翁): 도연명(陶淵明).
136) 택변(宅邊): 도연명은<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에서"집 주변에 버드나 무 다섯 그루가 자라고
있어 나의 호를 오류라고 지었다(宅邊有五柳樹 因以 爲號焉)"라고 하였다.
137) 풍정 (風情): 풍치(風致) 가 있는 정회(情懷).
孫以雄 文正郎 灘西
손이웅은 문과에급제하여 정랑이며, 호는 탄서이다.
先君當日賊斯亭그날 선군은 이 정자에서쓰신 작품이 있어
三復今朝倍愴情오늘 밤 아침 세번 거듭 읽으니 창망의 장이더 해지네.
宇宙百年餘古樹백 년 동안 온우주에는 고목만이 남아있는데
清風依舊喚人醒맑은 바람은 변함이 없어 술 취한 사람을 깨우네.
又二首
또 차운하다
權命采
권명채
聞道遺墟一柳亭도를 들으니유허(遺墟)에 버드나무 한 그루정자인데
幾傷前後子孫情전후 자손들의인정은 몇 번이나 애태웠을까.
依依枝幹猶依舊한들한들 가지와줄기는 여전히 변함없으니
宣繼當年任醉醒마땅히 그해의뜻을 잇느라 취했다 깨어나네.
先輩詩傳古柳亭 선배들 시는옛 버드나무 정자에서 전해졌으니
吟來想見好風情시 읊으며 그풍정(風情)을 떠올려 보네.
寒枝無恙人何處차가운 나뭇가지 무탈하건만 인걸은 어디에 있을까.
恨未當年共靜醒그 해에 있지 않았음을 한하며 함께 취했다 깨네.
又
또 차운하다
朴泰來 進士 138) 學圃
박태래는 진사이며 호는 학표이다.
杖屢何年到此亭지팡이 잡아 질신 신고 어느 해에 이 정자에 당도하겠는가.
遺篇偏感後孫情 남기신시편은후손에의 정을 매우 감발하네.
提壺早晚清陰下이르든 늦든 술병을 들고 맑은 그늘 아래에서
緬仰前遊一醉醒 아득히 먼 선조의 종유(從遊)를 추앙해 한번 취하고 깨려내.
又二首
또 2 수를 차운하다
金始錯 山南
김시개는 호가 산남이다.
柳亭今日作思情버드니무 정자는 오늘따라 선조를 사모하는 정을 일으키는데
老身長舍九世情늙은 줄기가 9 대로 이어진 정을 길이 머금었네.
逖矣風流何處覿저 먼 선조의 풍류를 어디에서 만나겠는가.
卷中諸詠喚人醒책 속의 여러 현인들 시 옮으니김용 술 취해 자는 사람을 깨우네.
寂寞遺墟但舊車적막한 유허(遺墟)라 다만 오래된 정자만이 있으니
百年衰柳不堪情백 년 동안 노쇠해진 버들은 차마 정을 못 견디네.
傍人莫道滄桑139)變곁에있는사람은 창상(滄桑)의 변화를 말하지 마오.
天道由來必有醒하늘의 도는예로부터 반드시 깨어남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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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제현목록에는 생원(生員) 으로 명시되어 있다.
又二首
또 2 수를 차운하다
朴天庭
박천정
一代文豪去後事일대의 뛰어난 문장가가 가버린뒤에 정자이니
枝頭雲物護多情가지 위 구름조차 수호하느라 정이 많아지네
遙遙140)二百餘年事멀고먼선조의 이백여년 유업(遺業) 이라
渾是一場春夢醒흐르는 물소리에도 곧 일장춘몽 (一場春夢)141)을 깨네.
鳶嘯槎枒142)古樹亭성긴가지에 솔개 우짖는 고목의 정자인데
何人到此頓無情 누가 무심히 이곳에 와 머리 조아릴까.
即看先子詩留卷 나아가 보니 옛 선현 군자의 시가 책에 남아있어
感酌杯醪不欲醒감격해 잔에 술을 따라 마시다가 깨기를 바라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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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창상(滄桑): 창해(滄海)가 창해법 상전(桑田)으로 바꿔는 것과 같이 세상이 크게 번하는 것을 뜻한다.
상전벽해(桑田碧海 ).
又二首并小序
또 2 수를 차운함에 짧은서문을아울러 쓰다
鄭玉 143) 文監司 牛川
정 옥은 문과에 급제해 감사이며 호는 우천이다.
柳於植物中 有風流韻致 古人愛之詠於風雅 雜出於史傳詩騷者 甚多 而柳之性易衰 未聞其能壽者也 紫纓金斯文尙湜之八世祖 舊居在桃村之東 種柳爲亭 古今顯達皆詠歌之 余亦於往來時 見 其亂枝蠹葉偃臥周道數年前 柳乃老而枯 焉物之有始終數也 而 其壽蓋已數百年餘 亦異矣哉 後孫懼其舊蹟之泯也 又就其古亭 而植新柳以寓桑梓之感焉 不知來者 此柳之壽 又經幾百歲而續 而歌詠之 又經幾許世耶 途感而爲之賦并新舊二柳詩 以賡之
버드나무는 식물 중에서도 풍류와 운치가 있어서 옛 사람이 애호하여 풍아를 읊은 시인들이 매우 많았다는 것이 역사와 전기에 혼효(混淆)144) 되어 등장한다. 버드나무의 성품은 쉽게 쇠하는 것이어서 능히 장수를 누린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자영 (紫纓) 김사문(金斯文)의 8대조가 옛날 도촌의 동쪽에 살면서 버드나무를 정자로 삼으시니, 고금의 현달한 분들이 모두 음영(吟詠)하였다. 나 또한 왕래할 때 때때로 그 어지러운 가지가 좀먹은 잎사귀와 큰 길에서 비스듬히 누운 것을 보았었다. 그런데 수년 전에 버드나무는 이에 늙어서 말라버렸다.
사물의 처음과 끝에는 타고난 운수가 있다. 그러나 그 버드나무의 장수함이 무릇수백 여년이 지났으니 또한 기이한 것이다.
후손들은 옛 자취가 없어질까 두려워하여 또한 옛 정자 에 나아가 새롭게 버드나무를심어서조상들이 살던 고향을 그리워
하는 감회에 붙이게 하였다. 앞으로 이 버드나무가 또한 몇 백년을 이어져 음영(吟詠)하는 전통이 몇 대까지 계승될지 알 수 없으리라. 마침내 감회가 일어 읊음에 아울러 옛 버드나무와 새 버드나무를 내용으로 한 두 편의 시를 이어서 쓴다.
何處溪山無好亭산수에 종은 정자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故地殘柳獨多情 옛 터의 노쇠한버들만이 내야 정이 많네.
枝間尙有餘風在나뭇가지 사이마다 여전하여 남은 풍취(風趣) 가 있는데
幾使行人拼面醒 얼굴 스치간 행인 행인들로 하여금 술 깨운적이 몇 번이었던가.
右舊柳 위는 옛 버드나무에 대한 것이다.
依舊溪邊一柳亭 시내 물가에 한 버드나무 정자는 변함이 없는데
新裁偏感子孫情 새로 북돋워 유업(遺業)을 이루니 자손의 정이로다.
柳亭亦有思亭意 유정 또한 정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
可喚遊人醉夢醒가히 유람하는사람을 불러들어 꿈결에취했다가 깨우네.
右新柳 위는 새 버드나무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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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요요(遙遙):멀고도 멀다는 뜻이다.
141)일장춘몽 (一場春夢 ): 한 바탕 꿈을 꾸는 것처럼 아무 자
취가 없는 봄날 밤의 꿈이다. 이 말은 인생의 덧없음을 뜻한다. 142)차아(槎枒):가지가 얽히고
설킨 모양으로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 않음 을 뜻한다. 143)정 옥(鄭 玉, 1694-1760 ): 자는 자성(子成)이며, 호는 우천(牛川)이다. 본 관은 청주 ( 清州 )로, 약포(藥圃)정탁(鄭琢 )의 5 대손이다. 1694년 영천 ( 榮川, 現 영주)소천에서 출생하였다.
17세 때 사마시(司馬試 ) 에. 34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를 지내고, 35세 이인좌의 난이 발발하자 영천(榮川, 現 영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41세에 황해도(黄海道 ) 도사(都事)가 됐다. 56세 소수서원의 동주(洞主)가 되어 주자서(朱子書),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을 강론했다. 1753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진하여 온성(穩城 ) . 울산(蔚山) · 이산(理山)의 부사(府使)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동부승지(同副承旨)에서 좌승지(左承旨)를거쳐영해부사(寧海府使)가 되었고 1759년 황해도(黃海道) 관찰사(觀察使) 가 되었다.
144) 혼효(混淆): 여러 내용들이 뒤섞임.
145)이기륭(李基隆).1667~1751):자(字)는 태래(泰來)이며. 호는 신촌(新村)이다. 본관은 우게(羽溪)로, 봉화 출신이다.
경사(經史), 예학(禮學)에통달했고 부호군(副護軍)을 역임 하였다. 그는 일찍이 경사(經史)에 통달(通達)하고 예학(禮學).
천문(天文),역학 (曆學)에 두루 능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그는 순흥부사 (順興府史)이명희(李命熙)와
함께 조정에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단종(端宗) 복위 운동으로 희생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여러 선비들의 넋이 서린
장소에 금성단(錦城壇)을 세울 것을 건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순홍에는 금성대군과 충장공(忠莊公)대전(大田) 이보흠(李甫欽).그리고 수많은 의사(義士)등을 모신 단소가세워지고 충절(忠節)의 역사를지닌 고을로 인정을 받았다.그는 후에 노인직(老人職)으로통정대부(通政大夫) 행용양위
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에 제수된다.
146)제현목록에는 부호군(副護軍)으로 명시되어 있다.
又
또 차운하다
李基隆145)護軍 146 ) 新村
이기륭은 호군이며 호가 신촌이다.
溪亭今日古思亭오늘날 시내정자는 옛 선조의 정신을 생각하는 정자인데
爲有仍孫感慕情후손이 있어서추모의 정을머금 느끼네.
種柳始聞陶老後도연명은 이후에 버드나무를 처음 심었다고들었으니
遺風淺載使人醒천년을 전해진유풍(遺風)이 사람으로 하여금술을 깨우게 하네.
柳亭詩帖 終
유정시첩. 끝
<감사합니다 끝을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