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화 소백산 축제
https://youtu.be/BJw2VHOvnEs?si=Au8J0DL1abyg7y_2
♧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1. 교통난 때문에 불량 콘크리트 우려 상존
→ 레미콘은 생산부터 타설까지 모든 작업을 여름철엔 90분 내에 마쳐야 한다.
도중에 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콘크리트를 사용하면 건물의 강도에도 악영향을 준다.(국민)
2. ‘할머니 액셀 안 밟았다’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 재연시험 결과
→ 소송 대리인 측 재연 시험에서 속도·RPM·기어단수 다 국과수 분석과 차이,
‘브레이크 밟았’는 주장에 힘 실려.
국내 급발진 관련 소송에서 이 같은 재연시험은 처음.(한국)
3. ‘직지심체요절’(직지)
→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 정확한 명칭이다.
백운 스님이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의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엮은 책이라는 뜻.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고려 우왕 3년(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됐다.(문화)
4. 일본의 신개념 노인주택, ‘칸칸모리’
→ 다양한 연령, 가족들이 한 건물에서 살면서 주거 공간은 독립적으로 사용하지만, 부엌·세탁실·정원 등은 다른 거주민들과 공유, 공동 식사, 공동 육아 등이 이루어 진다.(아시아경제)
도쿄 아라카와구에 자리잡은 세대통합형 임대주택 '칸칸모리'의 입주자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모습. 사진출처=칸칸모리 홈페이지
■학생도, 아저씨도, 노인도 같이 사는 ‘칸칸모리’
◇갓난아기부터 81세 할머니까지 함께 살며 공동육아
◇진짜 가족 아니지만 서로 돌보며 주말 식사
◇중산층 입주 가능, 도쿄 중심으로 7군데
5. '민식이법' 도입 4년... 효과 '미미'
→ 지난해 어린이 교통사고 486건, 2020년 대비 0.6% 늘어.
사망도 해마다 2~3명으로 큰 차이 없어.
처벌과 단속보다는 의식 개선이 먼저라는 의견.(아시아경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만 4년
◇지난해 어린이 교통사고 486건
◇2020년 대비 0.6% 늘어나
6. ‘중진국 함정’
→ 개발도상국이 경제 발전 초기에는 순조롭게 성장하다가 중진국 수준에 와서는 성장이 정체되면서 선진국 진입이 지체되는 현상.
2006년 세계은행이 처음 사용했다.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 카자흐스탄, 멕시코, 말레이시아 등이 소득 1만달러에 머문 기간이 현재 10년이 넘는 나라들이다.(헤럴드경제)
▼중진국의 함정. 소득 1만불에서 멈춘 나라들...
7.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 한다
→ 서울 서초구 첫 허용.
관련 조례 7월 시행.
다른 시군으로 확산될 지 관심.(동아)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이어...7월부터 영업시간 자율전환
◇심야·아침 유연한 영업 가능
◇유통업계, 전국 확산에 촉각
◇유통발전법 개정은 국회 계류
◇월2회 의무휴업 규제 못풀어
8. 쌍둥이 형에게 금감원 대리 시험 부탁한 동생… 결국 둘 다 재판행
→ 한국은행, 금감원 시험 날짜 겹쳐, 형이 한 곳 대리 응시.
형 동생 다 합격.
한국은행 최종 선택, 금감원은 면접 포기.
직장인 익명게시판에서 의혹제기...
감사로 적발, 업무방해 등 혐의 불구속 기소.(한국)
9. 서울 유일의 ‘반려견 금지구역’ 청계천, 이번엔 열리나
→ 하천폭이 좁고 배설물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 금지.
민원 계속 되자 재검토...
2020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시에 접수된 민원 60건 중 동물 동반을 허용해 달라는 의견은 24건, 금지하자는 의견은 36건.(서울)
◇‘청원24’에 잇따라 공개 민원 제기
◇市, 29일까지 의견 수렴 뒤 결론
◇지난 4년간은 찬성 24·반대 36
10. 애매한 ‘~등’의 의미
→ ‘서울, 부산, 대전 등’이라고 하면 서울, 부산, 대전만 말하는 지 그 외 다른 도시도 말하는지 불분명.
두 가지 의미 모두 사용.
1970년대 후반 월간지 ‘뿌리깊은나무’는 그래서 ‘등’을 사용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기도 했다.
서울, 부산, 대전 3개 도시만 말 할 땐 ‘등’을 안 쓰는 것이 좋다.(중앙, 우리말 바루기)
●매경이 전하는 세상의 지식
1. 한국, 일본, 중국 정상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정상회의를 통해 3국 정상회의를 정례화하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도출해냈습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3국간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가속화하기 위한 논의도 지속하기로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오른쪽은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한·일·중 정상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3국 정상회의 정례화에 합의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번영이 공동 이익이자 공동 책임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사진=이승환 기자>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
◇고위급 협의체 정례화 성과
◇3국 문화 교류의 해 지정하고...황사·감염병·고령화 대응 협력
◇공동선언문에 '북한' 표현 빠져
◇한일정상만 '北비핵화' 강조
◇리창 "집단화 반대" 한미일 견제
2. 서울 서초구가 전국 최초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행정예고를 발표했습니다.
기존에는 오전 0시부터 8시까지 문을 닫아야 했었는데 7월부터는 오전 2시에서 3시를 제외한 시간에는 영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3.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준비할 선거관리위원장에 5선 서병수 의원이 임명됐습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오는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에 열릴 전망입니다.
4. 유럽연합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새 내각 개혁 의제를 논의하고 지원 방안을 고민하는 고위급 국제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최근 유럽은 일부 국가가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 중단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총리 초청해...자치정부 필요성 거듭 강조
◇팔 지도부, 독립국 인정 촉구
5. 교육부가 의대증원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을 강요하는 사례를 공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한 비수도권 대학 의대에서는 휴학원을 내지 않은 학생들을 집합시켜 휴학원 제출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용한 의과대학 강의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해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 중인 가운데 지난 22일 서울의 한 대학교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연합뉴스
6. “안 쓸 수는 없고”… 필수 생계비 비중 38% 사상 최대
☞필수 생계비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꼭 필요한 비용을 말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월평균 소비지출 항목 가운데 식음료(주류 제외)와 주거·수도·광열비(월세, 수도 요금, 전기·가스 요금 등), 교통비(대중교통 이용료·주유비 등), 외식 식사비 등을 합쳐 계산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분석해보니
◇”여행 확 줄였는데도 카드값 늘어”
◇2분기에도 물가 부담 이어질듯
7. 서민 없는 서민금융…부동산·건설대출 비중, 은행의 2배
◇서민대출 40兆 줄인 5대 상호금융조합
◇예탁금·출자금 비과세로 컸는데
◇서민 재산형성 돕기 위해 혜택...이자 100만원에 세금 1.4만원뿐
◇부유층 재테크 수단 활용 논란도
◇본업 망각…'부업'에 정신 팔려
◇가계 대출 줄이고 부동산 대출↑
◇새마을금고 토지대출 96배 급증
◇지역 구성원 상부상조 기능 상실
8. 햇살론 1년새 2.5조 감소 … 돈줄 막힌 중저신용자 카드론으로
◇'벼랑끝 급전' 카드론 40조
◇빚 못갚는 서민들 크게 늘어
◇정책금융 대위변제도 급증
◇올해 서민용 대출공급 계획
◇작년 80% 수준 5조7800억
◇"불법사금융에 내몰릴 수도"
9. 빈 곳 넘치고 연체율 급증… 아파트형 공장 투자 주의보
◇경기침체 속 입주 기업 크게 부족
◇지식산업센터 대출 연체율 2배 증가
◇경매 나온 물건은 1년 새 2배로 늘어
10. 고금리에 물가 급등…전세 사는 30대, 타격 컸다
◇한은 '고물가·소비 영향' 보고서
◇구매력 줄고, 대출상환 부담 커져
#한국사
ㅡ 1950, 한국전쟁 ㅡ
(트루먼과 맥아더)
**************************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배워왔던 역사 인물들도 조금 깊이 파고 들어 가면 우리가 알고있는 인물과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우리가 교과서에 보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도 시대나 상황, 그리고 가상으로 쓰여진 소설, 영화, 드라마등에 따라 왜곡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삼국시대가 지나고 천 년 뒤에 쓰여진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온 허상의 인물들이 지금 우리에게는 실제 역사 속 인물로 받아 들이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우리에게 고착되어 왔던 트루먼과 맥아더 이미지도 실제 상황은 아주 많이 다르다. 우리에게 잘못 인식되어온 두 사람 실제 모습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 번 살펴보려 한다.
얼마 전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가 화제였다. 그 영화에서 맥아더는 우리나라를 구한 구세주 처럼 묘사 되었다. 전쟁터에 버려진 어린 소년을 쓰다듬는 모습이 꼭 예수가 당시 버려진 민생들을 보살피는 모습으로 나왔다.
맥아더는 지금도 우리나라 대부분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구해준 구세주로 알고 있고 커다란 동상까지 세워놓고 숭앙하고 있다.
맥아더가 우리나라에 긍정적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맥아더는 우리가 생각한 것 처럼 정말 우리나라에 구세주 역할만 했을까?
최근에 들어 와서야 우리나라 역사전문가들 사이에서도 6.25 전쟁영웅 신화가 되었던 맥아더를 한 쪽에선 '민족의 구원자'로, 다른 쪽에선 우리나라에 '핵무기를 쓰려했던 전쟁광'으로 극과극으로 대비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는 장군에 불과했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은 트루먼이었다.
사실은 트루먼이 맥아더보다 한국전쟁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런데도 트루먼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전쟁 영웅인 맥아더를 해임 시킨 나쁜 대통령 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정말 그런지 먼저 트루먼에 대해 알아 보자.
트루먼은 1944년 말 루즈벨트 러닝메이트로 미국 부통령이 된다. 대통령에 4 번이나 뽑힌 루즈벨트는 임기 도중에 죽어 신화가 된다. 그의 죽음으로 트루먼은 부통령 82일 만에 2차세계대전 중에 대통령에 오른다. 그리고 트루먼은 인류 최초로 일본에 원폭투하를 결정하여 2차세계 대전을 끝 마치게 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사실, 한국전쟁 당시 트루먼이 미국 대통령 아니였더라면 오늘 번영된 대한민국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트루먼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인 1949년 3월 맥아더 미 극동군 사령관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미국 방어선 외곽에 있다”고 발표했다.
1950년 1월 '애치슨' 미 국무장관도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아시아 대륙에 위치한 한반도와 대만 등은 미국 방어선에서 모두 빠진다”고 했다.
트루먼도 당시는 군부 건의대로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 시킨다.
이 점은 소련과 중국이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는 데 승인을 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지금도 미국이 당시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 때 쓰고 남은 무기를 소진하고 냉전이 막 시작된 당시 공산주의 국가들에게 따끔하게 미국 힘을 경고하기위해 북한이 남침하게 유도했다는 '음모론'이 나돌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진행상황을 보면 이 음모론은 앞 뒤가 맞지 않는다.
어쨌든 북한이 1950년 6.25일 새벽 남침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앞 편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넘어 가자.
6.25 당일 국무장관 애치슨으로 부터 트루먼에게 급한 보고가 들어 왔다.
"대통령 각하, 나쁜 소식입니다. 한국 38선 전역에 북한의 기습 무력 침공입니다."
순간 트루먼은 발끈하며
"딘,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그 개자식들을 막아야 해."라고 소리쳤다.
물론 트루먼이 한국을 너무 사랑하고 애지중지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트루먼이 표현한 그 개자식들은 공산주의와 소련이었다.
어쨌든, 트루먼 발빠른 대응으로 북한 적화통일을 막아낼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있었다.
트루먼은 보고 받은 즉시 서울 지역 미국시민을 철수시킨다. 그리고 맥아더에게 지시하여 탄약과 무기를 포함한 보급품을 공중투하 하고 7함대를 필리핀으로부터 대만과 중국본토 사이 해협으로 이동 시키도록 하였다. 또한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을 급하게 한국으로 투입 시킨다.
이처럼 트루먼이 결정한 한국에 대한 즉각적인 군사원조는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 그리고 많은 서방 인사들마저 놀라게 하였다.
만약 트루먼이 애치슨 북한 남침 보고를 받으면서 애치슨 의견을 구했거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의회 의결을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대한민국은 1950년 8월 혹은 9월 쯤에 북한에 의해 적화통일되고 말았을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 한 사람 순간적인 판단에 대한민국과 당시 2,100만 대한민국 국민운명이 결정 되었던 것이다.
이승만 때문에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이 안 되것이 아니라 그 공은 미국대통령 트루먼에게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트루먼을 6.25 전쟁영웅 맥아더를 해임시킨 나쁜 대통령으로 만 알고 있다. 트루먼에게는 진심 미안한 일이다.
한국전쟁 때 맥아더 가장 큰 업적은 업적은 '인천상륙작전' 이다.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전쟁을 반전시킨 계기가 된 것은 맞다.
그러나 세계전쟁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 대성공으로 알려진 인천상륙 작전에 대해서도 여러 재평가도 나오고 있다.
일부학자들은 인천상륙작전이 적에게 알려져 있었으나 북한 대처 잘못으로 성공했다며 평가절하한다. 또한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따른 자신감으로 중공군 참전위협을 허풍으로만 생각하고 평가절하했다.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할 것이라는 정보가 들어오자 트루먼과 맥아더는 태평양 작은 섬에서 만나 이 문제를 협의한다.
이때 맥아더는 트루먼에게 중공군 참전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만만 해 한다. 맥아더는 중공군이 참전한다고 해도 2~3만명에 불과할 것이며 또 중공군에는 공군이 없기에 미국공군 이 금방 쓸어 버릴 수 있다며 호언 장담을 했다.
트루먼은 맥아더 말을 믿고 돌아 갔다.
그러나 중공군을 과소평가한 것은 맥아더 커다란 실책이었다.
당시 중공군 2, 3십만명이 미군 몰래 이미 한반도에 잠입해 있었다. 엄청난 은폐전술로 미군은 전혀 알아채리지 못 했다. 한 겨울에 눈이 쌓여있는 벌거숭이 산 이었는데도 미국이 몰랐을 정도로 중공군 은폐 전략은 뛰어났다.
또 곧 바로 중공군 100만 대군이 한국전쟁에 투입 된다. 중공군이 가지지 못한 공군력은 소련이 일부 대신 해주기도 했었다.
소련은 중국에 공군지원을 약속 해 중공군이 참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놓고 미국 눈치를 보느니라 공군 지원 약속을 못 하겠다고 해서 중공 지도부를 난감하게 했다. 그러나 중공지도부는 고민 끝에 소련 공중 지원이 없는 것을 무릅쓰고라도 '항미원조'라는 명분으로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다. 이에 소련은 알게 모르게 미군한테 안 들키는 선에서 조금씩 공군지원은 해 주었다. 그만큼 당시 소련은 미국을 두려워 했다. 당시는 소련 미그기가 미군 공군기 보다 더 우수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트루먼과 맥아더 두 사람 간 갈등은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한 이 시점 부터 불거지기 시작한다.
한국전쟁을 어떤 방식으로 끌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두 사람 의견 차이는 둘 사이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트루먼은 전쟁을 한반도 38선에서 제한한다는 내용을 맥아더에게 몇 차례 하달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그 명령에 냉담 했다. 한국 이승만도 트루먼 명령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트루먼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영 인기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38선을 넘은 맥아더는 영웅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트루먼과 맥아더 이런 인기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당시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국민 이라면 그 누구라도 눈 앞에 닥친 통일에 대한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라도 당시에 3.8선을 넘는 북진을 찬성 했을 것이다. 그리고 38선을 못 넘게 하는 트루먼을 욕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제상황으로 재래식 무기로는 중국을 완벽하게 이길 수 없었다. 또 소련도 있었다. 북진통일은 중공이 참전 안 했을 때 재빨리 이룩했어야 했다.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대한민국에 의한 북진 통일은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랬다면 트루먼 주장처럼 38선 상에서 원상회복으로 빨리 휴전을 하는 게 남북양쪽에 더 낳았다. 그러나 미국 명문대 국제정치학박사 출신 이승만은 당시 국제상황을 도외시 한 채 북진통일만 주장했다.
게다가 맥아더는 앞서 말한대로 한반도를 핵전장으로 만들어서라도 전쟁을 지속시키려 했다.
맥아더는 중공군이 참전하자 대만 국부군 활용과 최후 수단으로 여러 회견에서 이미 밝혀왔던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기를 주장한다.
맥아더는 만주지역에 원자폭탄 50개를 투하하고 북한지역에도 30개 정도의 핵폭탄을 투하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코발트 방사선으로 막을 형성할 것이다. 그 지역 생명체는 60년, 혹은 120년 후에야 다시 소생할 것이다” 라며 한반도 북부를 생명이 없는 완충지대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맥아더 말대로 했다면 북한 전역은 현재도 생명이 살 수 없는 방사능 오염지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남한도 사람 살기 힘든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주장을 한 맥아더에게 한국은 없었다. 군인 맥아더에게는 그가 극심하게 증오하는 공산세력을 박멸하고 이번 전쟁에서 빈드시 승리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실 흥남부두 철수 때 피난민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이유 중 하나가 맥아더가 함경도와 만주에 수 십발 핵을 쏴서 초토화 시켜야 한다는 말이 주민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라 한다. 이미 북한주민들은 5년 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의 무서움을 알고있었다
또한 맥아더는 일본군을 한국전쟁에 투입하자는 주장까지하며 전쟁 확전을 제안했다.
이처럼 맥아더는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사용, 대만군과 일본군을 활용하여 중국과 전면전도 불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즉 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5년만에 3차세계대전을 하겠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 였다.
당시는 소련도 핵무기 개발을 마치고 핵실험에도 성공해 핵 보유국이었다.
맥아더 주장대로 했더라면 소련도 한반도에 핵을 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련이 핵을 썼다면 북한에 썼을까? 남한에 썼을까?
당연히 남한에 썼을 것이다.
미소는 한반도를 핵실험장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지금 한반도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마 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여러분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맥아더 당시 주장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로 듣기만 해도 끔찍하다 못해 머리가 쭈빚서며 소름이 돋는다.
맥아더 이런 주장에 2차대전이 끝난 지 5년만에 한국전이 3차세계대전 전조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 트루먼은 아연실색한다.
트루먼은 1951년 3월 맥아더 장군 ‘확전의지’에 제동을 걸기위해 대통령 성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성명이 발표되기 직전에 맥아더가 먼저 선수를 친다.
당시 전황은 중공군 남진을 막아낸 국군과 UN군이 공세로 전환하던 시기였다. UN군이 38선에 다시 도달할 무렵 맥아더 장군이 트루먼보다 먼저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확전을 주장한 것이었다.
“UN이 현재의 군사적 제한조치를 풀고 군사행동 범위를 중국 해안선과 내륙지방까지 확대한다면 중국은 곧 군사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맥아더는 주장했다.
맥아더의 이런 주장은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었다.
이 기자회견 이후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1년 4월 11일, 트루먼은 유엔군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원수를 해임한다.
맥아더 해임은 한국전쟁 전체에 큰 전환점이 된 대사건이었다.
한국이나 미국여론은 맥아더 편이었다.
트루먼 인기는 급속하게 떨어졌다.
맥아더는 해임된 뒤 미국민 엄청난 환영 속에 전쟁영웅으로 귀국한다.
귀국 몇일 뒤 열린 미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는 유명한 노래가사를 인용해 남기고 역사 전면에서 맥아더는 퇴장한다.
트루먼과 맥아더 갈등은 한국전쟁 현상유지를 바라던 미국 행정부와 확전을 주장한 현지 사령관의 대립이었다.
이 두 사람 의견 중 우리나라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옳았을 것인가는 여러분들 판단에 맡긴다.
하지만 여기서 맥아더가 정말 우리나라 민족 구세주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 해 봐야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맥아더는 공산주의를 기독교와 세계평화를 해치는 전염병이라고 여겼다. 대응책으로 그는 기독교 보급과 무력응징을 생각 했다. 중세 십자군 전쟁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맥아더는 제2차대전 전후 자신이 관할하던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등을 기독교 국가로 변모 시키고자 노력했다.
해방 이후 일본 점령군사령관으로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은 호의적이기보다는 부정적 이었다.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전후 보상 문제에서 맥아더는 한결같이 일본 입장을 지지했다.
일본 전후배상은 일제에 의해 고통 받은 식민지국가들에게는 자립 경제를 이룰 수 있는 기본 재원 이었지만 맥아더는 일본 경제부흥이 더 먼저이고 중요하다며 전후 배상 문제를 거부했다.
한국전쟁을 통해 보여준 맥아더 전쟁수행 전략에서 나타난 한국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과연 진정성이 있었던 것인지도 회의하게 하는 부분이다.
요즈음 일부 전쟁전문 연구가들은 맥아더의 한국전쟁에서 역할은 "숭배의 대상도, 비판의 대상도 아니며 단지 군인입장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한 전형적인 군인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 한다.
나도 이 주장이 맞다고 본다.
맥아더 입장에서도 당연하다고 본다. 맥아더는 한국을 몰랐고 한국에 빗도 없다. 그저 벌어진 전쟁에서 승리하고 싶은 군인이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혼란이 가중되던 개전 초기에 트루먼의 한국전쟁 참여에 대한 빠른 결단은 한국전쟁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구했다.
트루먼이 조기에 한국에 대한 군사 원조를 결정하고, 군사투입까지 실시함으로써 제해권과 제공권을 확보하고 잠시나마 북한군 남하를 저지하며 낙동강 전선을 형성할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남의 나라 전쟁에 이렇게까지 급속히 개입한 것은 유래없는 일이었다. 미국이 참전하지 않으리라 믿고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과 스탈린, 모택동이 가장 놀랬을 것이다.
미국이 참전하기도 전에 한반도 전역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믿었던 김일성에게 트루먼 신속한 결단은 전혀 예상밖의 일이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때 트루먼이 조금이라도 주저하면서 시간을 끌었다면 한국은 북한에 의해 적화통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트루먼에 대해 너무 모른다. 우리나라에 맥아더 커다란 동상은 있지만 트루먼은 변변한 동상도 없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역사 속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공개한 비밀 문서에서 보면 가장 최근 오바마 정부에서도 북한 핵 문제로 폭격직전까지 갈 뻘한 일이 있었다고 나온다. 미국 전직 대통령 카터가 북한을 방문해 그 위기를 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다시 된다면 남북 문제는 극과극으로 진행되리라 본다.
트럼프 재임시절 때처럼 획기적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화해가 조성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는 국가정책도 하나의 사업으로 보는 사람이다. 미국 사업 이익에 반하고 수 틀리면 북한을 폭격 그 이상으로도 제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우리나에게 좋을 것인지 나쁠 것인지....
지금도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가 우리 운명도 결정할 수 있는 참으로 안따까운 한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