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자살은 그리스도인에게 용납될 수 없는 죽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사울은 끝내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일생 가운데 여러차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고, 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사례도 한 두번이 아닙니다. 본문의 자살 사건은 이 모든 비극적인 사건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마무리짓는 회후의 비극적 사건이요, 최후의 불순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극도의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 우선 왜 하나님께 끝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가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사울이 택한 바,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법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자살을 결코 합당한 죽음의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자살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이유를 불문하고 냉정하게 자살 그 자체가 범죄 행위임을 못박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살이 왜 범죄 행위이며, 어떤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가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먼저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사람의 생명일 경우에 이같은 인식은 더욱 강화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물론 태초부터 있어 온 것이나, 노아 홍수 직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이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룻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9:5.6). 이렇게 여호와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생명의 주인이시며, 또한 생명을 죽이는 자에 대한 심판자가 되심을 천명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 피를 흘리는 행위가 대단히 무겁게 처벌됩니다.
다음 말씀을 보면 이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 (출21:3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것이요…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것이며" (레 24:17-20), 이 두 구절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생명을 해한 자는 그가 사람이든지, 혹은 짐승일지라도 살려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사람의 생명과 관련해서는 성경이 대단히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짐승이 사람을 죽이는 사례를 기록해 둔다든지, 또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을 경우에 대해서까지도 지나치리 만큼 세밀한 규정을 기록해 놓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생명이 귀한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것 역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과 동일한 죄악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살이란 그 대상이 타인에게 자신으로 바뀌었다는 점만 다를 뿐, 살인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본문에서 사울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살인 행위를 한 것입니다. 아무리 범죄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울은 바로 이러한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인 자기 자신을 죽여 버린 죄를 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너무나 괴롭고 어려운 일을 당하여 자살의 충동을 느껴 본 적이 없으십니까? 아마도 한번쯤 그러한 충동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충동은 때때로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에게조차 자살에의 충동은 찾아와서 달콤하게 속삭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 죽기만 하면 지금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우리의 귓가에 속삭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자살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해 버리는 극악한 죄악이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를 신뢰하지 않는 불신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값 주고 산 바 되어 하나님의 소유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어찌 잠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이러한 죄악과 불신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 처하여 그 고통을 이기기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든든한 보호자요, 자애로우신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가 가진 고통의 짐을 맡겨드립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고통은 맥을 추지 못할 것이며, 그 눈을 하나님께 고정한 자에게 자살을 속삭이는 사단의 유혹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