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철: (놀라서) 은행분리?
재훈: (무겁게 고개 끄덕인다) 그런 일을 꾸미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광철: 은행장님과 회장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그것이
은행분리로 이어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그건 고객들에
대한 배신이다..
재훈: (잠시 생각) 알 수가 없어... 무얼 믿고 그런 무모한 계획을
세웠는지...은행장님이 믿고 있는게 뭔지...
광철: 내가 느끼는 은행장님은 구십구프로의 확신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분이다.그 만큼 치밀한 사람이 은행분릴 내세웠을
때는... 확신이 있다는 뜻이다. 그 확신의 근걸 찾아야
하는데...
재훈: 음...
광철과 재훈,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고 있다.
씬2 치성의 집, 서재(밤)
치성, 비서에게 은밀하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치성, 쪽지를 내밀며
(인서트) 희경을 데려갔던 일본인의 경성주소와 이름.
야마자끼 겐죠. (경성, 회현 43-1)
치성: 이 사람이 본토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게.
비서: 호적과를 뒤져보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치성: (고개 끄덕이며) 시간이 없어. 한시라도 빨리...은밀하게
해야하네.
비서: 예.
비서, 쪽지를 다시 한 번 보고, 주머니에 잘 넣는다.
치성, 결의에 찬 표정으로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
씬3 제일비료, 회장실(밤)
용호, 제일비료 직원(6부에서 희경의 면접을 담당했던 실장)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용호: 은행장에게 사람을 하나 붙이게.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도
빼지 말고 다 살펴봐. 누굴 만나는지...뭘 하는지, 하다 못해
어디서 밥을 먹고, 이발을 하는지 까지, 하나도 놓쳐선
안되네.
실장: 예.
용호: 우선은 은행장의 측근이 누구인지 부터 알아내야겠지.
실장: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실장, 인사하고 나간다.
용호, 매서운 눈초리로 생각한다.
용호: ...
씬4 경성은행, 앞(밤)
광철과 재훈, 퇴근하기 위해 걸어나온다.
광철: 징계위원회에 바로 회부해야겠지?
재훈: 서류가 갖춰지는데로. 헌데 이사들이나..주주들의 반발이
어느 정도일지 예상이 안된다.
광철: (고개 끄덕인다) 어차피 은행장님 지지세력과의 일전은 피할
수 없을거다.
재훈: 그래 (미소) 고생했다. 네가 다케시다 신따로를 밝혀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광철: (미소, 재훈의 어깨를 툭 쳐 준다) 들어가라.
재훈: 그래. 너도 푹 쉬고.
광철: 응
재훈, 자동차 쪽으로 걸어간다.
광철, 손 한 번 들어서 인사하고 간다.
씬5 준식의 집, 마당(밤)
광철, 퇴근해서 들어온다.
광철: 희경아-
아무런 소리가 없다.
광철, 평상에 가방을 놓고 윗 옷 벗는다.
광철, 세수대야에 물을 퍼서 손을 씻기 시작한다.
씬6 준식의 집, 희경의 방(밤)
희경, 이부자리를 깔지 않은 채 벼개만 베고 잠들어 있다.
피곤해 초저녁에 잠이 든 듯한 분위기다.
희경, 악몽을 꾸는 듯한 표정이다.
희경, 꿈꾸면서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다.
씬7 희경의 꿈
(어린시절, 희경이 유기 되었을 때의 모습이 역순으로 어지럽게 보여진다)
어린 희경, 경성역 화장실앞에서 일본인에게 묶여 있다.
희경, 줄을 풀고 달아난다.
누군가가 쫓아 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다 큰 희경이가 길을 달려간다.
어두운 골목길 희경이를 쫓아 오는 그림자가 있다.
타닥타닥...골목을 울리는 나막신 소리와 희경이의 거친 호흡만이
여백의 공간에 가득할 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희경, 골목의 끝에 주저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쫓아 오던 사내, 희경의 앞에 선다.
희경, 조심스럽게... 두렵게... 손을 조금 내리고 앞에 선 사내를 본다.
오래전 희경을 데려가려던 그 일본인의 모습이다.
일본인, 희경을 잡아 끈다.
희경: 오빠...
씬8 준식의 집, 마당(밤)
광철, 세수하고 빨랫줄에 걸린 수건을 내려 얼굴을 닦는다.
광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희경의 방에서 희경의 낮은 신음소리와 희미하게 '오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광철, 몸 돌려 희경의 방을 본다.
씬9 준식의 집, 희경의 방(밤)
희경: 오빠!!
희경, 벌떡 일어나 앉는다.
동시에 방문이 열린다. 퇴근한 광철, 문 앞에서 희경을 부른다.
광철: 희경아! 왜 그래?
희경, 눈을 깜빡 거리면서 사방을 둘러본다.
모든 것이 꿈임을 안다.
희경의 눈에 들어오는 광철의 걱정스러운 얼굴.
희경: (광철을 향해 웃어 보이며) 오빠.. 왔구나.
씬10 준식의 집, 마당(밤)
광철과 희경,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희경: 요즘 들어 점점 더 자주 그래.. 해마다 늘 이맘 때면,
그랬지만...올핸 좀 심한 것 같아.
광철: 모든게 다 때가 있지. 강이 얼어 붙을 때가 있고..굳은 강이
풀릴 때가 있고.. 자주 그런 꿈들을 꾸는거. 어쩌면 이제
부모님을 만날 시기다 되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
희경: 정말...그런걸까?
광철: (고개 끄덕이고) 신문에 내 볼까?
희경: 응?
광철: 광고를 내보면 어떨까 싶다. 부모님을 찾는다는.
희경: 소용없어. 나이두 정확하지 않구..희경이란 이름이
맞는건지두 모르구... 뭐 하나 정확한게 없잖아.
광철: 널 첨 만났을 때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놓는건데....그땐
생각을 못했구나.
희경: (미소) 오빠 말대루 얼음이 녹을 때가 되면...그때가 되면,
만나지겠지.
광철: ...
희경: 근데 못알아 보면 어쩌지? 거리에서 부모님을 만나두 서루
못 알아보면...
광철: 가족이라건 그런게 아냐. 만나면 바로 알아 볼 수 있는
그런거야. 어느날 문득..낮설지 않은 사람, 그런 느낌의
사람을 만날 수 있을꺼야.
희경: (장난처럼) 흠...그러다 엉뚱한 사람 따라 가면 오빠가
책임질꺼지~
광철: (보면)
희경: (활짝 웃고) 말해봐~ 그럼 오빠가 책임질꺼야~
광철: 그래. 그런 일이 있다면... 세상의 끝까지라도 따라가 널
되찾아 오마.
광철과 희경, 서로를 보고 따뜻하게 웃는다.
씬11 치성의 집, 거실(아침)
치성, 비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서: 가고시마에서 제법 큰 식당을 하고 있답니다.
치성: (고개 끄덕이고) 연락처는?
비서: 여기...
비서, 주머니에서 주소를 꺼내 내민다.
치성, 받아서 본다.
비서: (망설이다) 저... 징계위원회가 소집된다고 합니다.
치성: 안건은 물론 나에 대한 탄핵이겠지?
비서: (민망한) 예.. 출근은 안하십니까?
치성: (차갑게 미소 짓고) 며칠 병가 처리를 해 두게.
비서: 알겠습니다.
비서, 인사하고 나간다.
씬12 치성의 서재
치성, 전화를 들고 전보 내용을 부르고 있다.
치성의 손에 들려있는 주소.
치성: 바로 전보를 띄워주시오.
문 열리고, 주영 들어온다.
치성, '지급으로 부탁하네' 수화기를 놓고 주영을 본다.
주영과 치성, 잠시 서로를 바라본다.
주영: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아버지, 회장님을 상대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거에요? 왜....이러시는 거에요?
치성: 널..지키기 위해서 이러는거다.
주영: (걱정스러운) 아버지.
치성: 회장님께 재훈이와 경성은행이 인생이 전부라면..내게도
그렇다. 너와 경성은행이 전부다. 아버지가 힘을 가져야 너를
지킬 수가 있어.
주영: ...
치성: (자리에서 일어나 주영의 옆으로 온다) 이대로 주저
앉으면..널 지킬 수가 없다. (주영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주영아.
주영: ...
치성: 아버질 믿어라. 이 일만 끝나면 모든게 다 해결된다.
치성, 주영의 손을 잡는다.
주영, 애써 미소 지으며 아버지를 본다.
씬13 일본거리
(자막) 일본 구슈 가고시마현
몇개의 가게들이 모여있는 거리.
그 중, 붉은 등을 매단 겐죠의 음식점이 보인다.
씬14 겐죠의 음식점
희경을 데려갔던 일본인의 가게다.
제법 큰 규모의 음식점.
겐죠, 그의 아내와 함께 주방에 서서 전보를 읽고 있다.
(치성의 소리) 이제 희경이를 돌려 받으러 가겠소.
그 아이를 길러준 댓가는 이미 치뤘으니
그 일에 대한 여타의 일들은 비밀에 붙여주기 바라오.
겐죠: !
씬15 겐죠의 살림집, 안
겐죠, 낡은 트렁크를 뒤지고 있다.
그 옆에 겐죠의 처, 그 모습을 보고있다.
겐죠, 트렁크에서 희경의 사진을 찾아낸다.(치성에게서 받은 사진이다)
아내: 사진만 찾음 뭐해요.. 애가 없는데.
겐죠: (한숨)... 그때가 언젠데..다 지난 일루 이 소동을 벌이나.
아내: 애가 없어졌다구 함..이거 다 내 놓으라구 할까요?
겐죠: 그렇겠지.. 그 앨 키워주는 댓가루 받은 돈이니.
아내: 차라리 이걸 팔구 동경으루 가는건 어떨까요?
겐죠: 하루, 이틀에 팔리는 것도 아니구. 여길 찾아낸
사람들인데...동경으로 간다구 못찾겠나.
아내: 없어졌다구..우리가 버린게 아니라 지발루 도망갔다구
솔직하게 말하구..돈은 천천히 갚겠다구 사정해봐요?
겐죠: ...
아내: (혼자 소리로)십칠년이믄.. 죽은 사람두 다 탈골이 됐을
시간인데.. 이제와서 왜 이렇게 법썩을 떤데요.. 버릴 땐
언제구...찾는 건 또 뭐야..
겐죠, 희경의 낡은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씬16 제일비료, 회장실
용호, 실장에게 보고를 받고 있다.
실장: 호적과에서 야마자끼 겐조라는 일본인의 주소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용호: 미야자끼 겐죠?
실장: 예.
용호: 흠... (기억에 없다) 미야자끼 겐죠...겐죠..
용호, 생각에 잠겨 있다.
씬17 아사히신문, 청주 보급소
현승, 일하고 있다.
문, 열리고 배달소년1, 들어온다.
현승: 춥지?
소년: 예. (귀를 부비며) 떨어져 나갈꺼 같아요.
현승: (난로에 얹힌 주전자에서 따뜻한 물을 따라주며) 마셔라. 애
들 들어오면 밥해서 점심 먹자.
소년: 예. 아! (생각났다) 전신국에 갔었는데요. (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여기요. 소장님한테 급전 와서 받아왔어요.
현승: 전보가?(쪽지를 받아서 펴며)어디.. 본사에서..왔나?
현승, 전보를 펴본다.
현승: !
현승의 손이 떨린다.
(인서트) 치성에게서 온 전문이다.
'유비서님, 희경이의 행방을 알아냈니다. 한치성'
현승, 의자에 걸쳐 놓은 윗옷을 집어 든다.
씬18 원산금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원산금고에 전화가 가설된다.
희경과 준식, 상만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기사(남, 30대) 설치를 끝내고 일어선다.
준식: 전화긴 벌써 들여다 놓구, 이제 연결해 주나, 저제 연결해
주나...조금만 더 늦어두 내 아예..전화길 고물상에 내다 팔까
했어.
기사: 죄송합니다. (수화기 들어보고) 다 됐습니다.
상만: 고맙습니다.
희경: 안녕히 가세요.
기사, '예' 인사하고 나간다.
상만, 수화기를 들려고 하면
준식, 상만의 손을 탁 친다.
상만: 에이... 한 통만 쓸께요.
희경: 저두요. 아버지. 꼭 첫 통화 하고 싶은 데가 있어요~
준식, '음...' 생각하다 손을 내민다.
희경과 상만, 손을 내민다.
비장하게 가위, 바위, 보- 를 하는 세 사람.
상만이 이겼다.
상만: 보세요- 내가 이걸 쓰는 건 운명이라니깐요.
상만, 수화기에 손을 댄다.
준식, 상만의 손을 거둬내면서.
준식: 이눔아, 내 돈으루 단 걸 왜 니가 먼저 침을 발러..
상만: 아저씨! 치사하게...
준식: 밥 한 숟갈에두 아래, 위가 있듯이 개시에두 다 순서가 있는
법이다.
준식, 수화기를 들고 전화한다.
준식: 여보세요. (사이) 교환수 양반. 경성물산 김사장 좀 대주시오.
여긴 원산금고요
준식, 폼 잡고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는 희경.
씬19 준식의 집, 마루
준식과 상인1, 상인2(경성물산 김사장) 앉아 있다.
희경, 소반에 식혜나 수정과 같은 음료를 놓고 일어난다.
준식: (희경에게) 엇그제 시장에 온 사람이 누구라구? 거..뭐시냐
광철이 친구 있잖아.
희경: 아.. 재훈이 오빠요.
상만: 오빤, 뭔 오빠야. 언제쩍 부터 오빠라구..
김사장: 그 젊은 친군 모르겠고. 경성은행 저번 은행장이 왔더군요.
준식: 원산비료 채 간 인간 말이군. 제일비료 회장인가 하는 사람.
희경: 맞아요. 아버지.
김사장: 헌데..그 옆에 있던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미스코시
사장이라구두 그러구뭐..대장대신이라구 하는 사람두
있고..총독님이라는 사람두 있구..
준식: 흠...그런 사람들이 왔다는게 문제가 아니라...왜 왔는지가
문제지. 그냥 마실 삼아 나들이 나 올 만큼 한가한 사람들두
아니구
상인1: 소문대루...진짜 남대문 시장을 밀어서 백화점을 만들라구
그러는거 아닐까요? 시장이 술렁술렁 합니다. 회장님.
준식: 우리 땅에 우리가 터 잡고 장사 하는데... 미스코시 사장
아니라 총독이라구 해두 함부루 그렇게 몰아낼 순 없는거야.
김사장: 뭐... 동대문상가나 진고개는 뺏기구 싶어서 뺏겼겠습니까..
놈들두 뭔 계획이 있겠지요.
준식: 흠... (심각하다)
씬20 원산금고 안
상만, 수화기를 들고 전화통화를 신청하고 있다.
그 모습을 흥미있게 바라보는 희경.
상만: 예. (사이) 경성은행 본점 감사부 부탁합니다.
상만, 수화기를 놓고 기다린다.
희경: 전화 할 때 있다구 그러더니 기껏 오빠한테 하는거야?
상만: 그러는 넌, 어디 딴 데 할 데 있어?
희경: (고개 흔들고) 없어.
상만: 고봐. 임마, 경성 다 뒤져서 전화가 몇대나 있겠냐? 일본인들
빼구.전화루 목소릴 들으면 알아 들 을 수 있을까? 어?
어떠냐? 알아 들을 수 있을꺼 같아?
희경: 글쎄...해봤어야 알지. 암튼 신기하다. 이렇게 쬐그만 걸루
서루 안보구두 말하구.
상만: (전화기를 톡톡- 치면서) 그러게.
씬21 경성은행, 감사부
광철과 재훈, 서류를 만들고 있다.
한 옆에서, 타이핑하는 동준.
동준, 타이핑한 서류를 꺼내 '여기요. 선생님' 광철에게 내민다.
광철, 서류를 훑어보고.
광철: 징계위원회에 올릴 서류는 다 끝났는데...
재훈: 응.
광철: 은행장님쪽에서 아무 반응이 없다는게 왠지 불안하다.
재훈: (본다)
광철: 지금쯤 뭔가 반응이 있어야 정상인데....
재훈: 이미..포기하시고 결과를 기다리고 계시는 건지도 모르지.
광철: 그렇다면 은행분리 이야긴 안 꺼내셨겠지.
재훈: 그래. 알아, 다만 내 바램이 그렇다는 뜻이야. 이대로...파문이
가라앉기를 바라는거지.
광철: (고개 끄덕인다)
(소리) 전화벨 울린다.
동준, 수화기 든다.
동준: 감사부닙니다. (사이) 예. 잠시만요.
동준, 광철에게 수화기 내밀며
동준: 선생님. 선생님 친구 조상만씨라는데요.
광철: (놀라며)그래?
씬22 원산금고 안
상만, 의기양양하게 폼 잡고 전화 받는다.
상만: 어떠냐? 내 목소리 안 이상하냐?
희경: (수화기 근처에다 대고) 오빠! 내 목소리 들려?
상만: (사이, 희경일 보고) 어. 들린다는데.
희경: 나 줌 바꿔줘.
희경, 상만의 옷자락을 잡고 흔든다.
상만: 아. 쫌 만 있어봐. 야. 광철아(사이) 이왕 전화 한 김에 내가
노래라두 한 곡 쫙- 뽑아 볼까?
준식, 들어온다.
준식: 이 녀석들이 그게 니들 장난감인줄 알어!
희경과 상만, 찔끔해서 바라본다.
희경: (베시시) 아버지..
준식: 얼른 안 끊어! 콱- 그냥 네 녀석들 봉급에서 요금을 다 제해
버릴라.
씬23 경성은행, 감사부
광철, 원산금고의 소리들이 다 들린다.
광철: 하하(웃고) 상만아.. 얼른 끊어라. (사이) 아. 참. 나 며칠 못
들어갈 것 같다.(사이) 그래. 아저씨한테 그렇게 말씀 드려줘.
(사이) 어 그래. 알았다.
광철, 수화기를 놓는다.
재훈: 전활 놓은 모양이구나?
광철: 응. (싱긋 웃으며) 한 며칠 이리로 전화 꽤나 올 것 같은데.
재훈: (미소, 조심스럽게) 네 동생은 잘 있니?
광철: 그럼 잘 있지.
씬24 용호의 집, 서재(밤)
용호, 고민에 휩싸여 있다.
책상 위에 종이가 한 장 놓여 있다, 용호, 종이 위에 미야자끼 겐죠?
라고 쓴다.
용호: 대체 무슨 위협이 된다는 거지..이 사람이.
용호, 혼자 곰곰히 생각한다.
(인서트) 이키마루호에서 만났던 진태를 떠 올린다.
용호: (고개 젓는다) 아냐.. 자신이 다칠 일을 만들 사람은 아냐..
용호, 미야자끼 겐조라는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생각한다.
(인서트) 어린 희경의 모습이 퍼뜩 떠오른다.
용호, 치성에게 희경을 일본으로 보내라고 지시하던 장면.
용호: !
씬25 치성의 집, 서재(밤)
치성과 이사1,2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사1: 희경양을 데려온다고 해서 저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치성: 수렴청정이라는 거 아나?
이사1,2: (보면)
치성: 왕이 어리면, 누군가 섭정을 하게 되지. 일본에서 식당집
딸로 자란 희경이가 은행에 대해서 뭘 알겠나?
이사2: 그럼 은행장님이 후견인이 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치성: (고개 끄덕이고) 희경인 자신의 위칠 복원해 준, 내게 모든걸
의탁하게 되있네. 희경일 내세워, 아직도 돌아가신
은행장님을 잊지 못하는 이사들을 내 편으로 끌어 들이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끝나는 걸세.
이사1, 2 치성을 바라보는데.
(소리) 똑똑... 노크소리.
문 열리고, 주영 들어온다.
주영: 아버지.. 회장님 오셨어요.
치성과 이사1,2 놀란다.
씬26 치성의 집, 거실(밤)
용호, 서 있다.
이사1,2 쭈빗거리며 인사한다.
그 옆에 주영과 치성, 서 있다.
이사1: 회장님...
이사2: (고개 숙이고)
용호: ...(싸늘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이사1,2 치성에게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인사하고 허둥지둥 나간다.
용호: (그들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치성: (주영을 보고) 넌 잠시 밖에 나가 있거라.
주영: 예?
치성: (용호 들으라는 듯 비꼬며) 내일이 징계위원회 소집일이
아니냐? 재훈군 밤샘 하느라 바쁠텐데...식사라도 챙겨
주는게 약혼녀의 도리겠지.
용호, 치성을 분노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씬27 치성의 집, 거실(밤)
용호와 치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용호: 자네 뜻대로 될 것 같은가? 그 앨 데려온다구 자네가
경성은행을 차지 할 수 있다고 믿나?
치성: 여전히 희경이는 경성은행의 최대주주입니다. 희경이의
주식.. 제 주식..저를 따라는 이사들...돌아가신 은행장님을
따르는 이사들. 그 모두의 주식을 모으면 우리 경성주의
육십프로가 넘습니다.
용호: (보면)
치성: 아.. 제일비료도 있군요. 그간, 회장님께서 애써 가꾸신
제일비료도 희경이의 자산이고 보면 그것도 희경이게게
돌려주셔야 하겠군요.
용호: (타이르듯) 왜 이러는건가...? 자네와 나.. 사십년을
동거동락해 온 사이네. 때로 혈육보다 더 지극한 사이였던
우리가...이렇게 해야겠는가?
치성: ...
용호: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게.
치성: 저는.. 이제껏 회장님의 그림자 인생이었을 뿐입니다.
좋습니다. 그건, 또 제 선택이었으니. 하지만, 이 나이에
이제와서 재훈이의 그림자로 물러 서고 싶진 않군요.
용호: ...
씬28 준식의 집, 부엌(저녁)
김이 오른 솥이 열려있다.
솥안에 채반이 걸쳐져 있고, 채반 위에 면보자기가 깔려있다.
솥 가닥 먹음직스러운 진빵이 쪄져 있다.
희경, 모락모락~ 김 오르는 진빵을 꺼내, 다른 채반에 담는다.
상만: 으.. 뜨거, 으..뜨거. (양손으로 진빵을 옮겨 가면서, 찐빵을
먹는다)맛있는데~ 희경아, 너 있지. 나중에 할꺼 없음 찐빵
장사해두 되겠다.
희경: 원산금곤 어떡하구?
상만: 것두 하구 것두 하면 다 좋지.
희경: (웃는다)
상만, 찐빵을 하나 더 집는다.
희경: 고만 줌 먹어. 오빠 한테 가져갈꺼란 말이야.
상만: 먹는거 갖구 너, 사람 고문하는 거 아냐. 치이싸한..녀석.
희경: (접시에 따로 담고) 이건, 나중에 아버지 오심 동치미랑 같이
드려.
희경, 한김 나간 작은 채반에 찐빵에 마른 면보를 덮고, 보자기로 싼다.
상만: (놀리는) 환약두 몇개 갖구가라. 광철이 그거 다 먹으면
틀림없이 배탈 날꺼니까. 아예 찌는 김에 더 쪄서,
경성은행에 다 돌리지 그러냐?
희경: 오빠!
상만: 에이구...빵만 찌면 뭐하나. 진도가 팍팍- 나가야지.
희경: 응?
상만: 그렇잖어. 목숨 걸구 중국까지 가서 끌구 왔음 몬가 진도가
파-ㄱ(팍)! 줌 나가야 될 꺼 아냐. 하여간 뜨뜨미지근..
막걸리에 맹물 탄 건 마냥. 보는게 다 답답하다.
희경: (쑥스러워서) 오빤... 그냥....간식 줌 갖다 주구 온다는데...왜
그래.
희경, 보자기로 싼 채반을 들고 일어난다.
씬29 경성은행 앞(밤)
희경, 자전거를 타고 온다.
희경, 경성은행 앞에 자전거 세우고, 자신의 옷차림을 다시 한 번 매만진다.
희경, 자전거 뒤에 실은 채반을 꺼내서 경성은행으로 들어간다.
씬30 경성은행, 감사부(밤)
광철, 타이핑을 하고 있다.
재훈, 경비실에서 온 전화를 받고 있다.
재훈: 아. 예. (사이) 알겠습니다.
재훈, 수화기를 놓는다.
재훈: 상만이라는 친구가 온 모양이다.
광철: (장부에 따라, 주판을 놓고, 기입하고 있다) 그래? 그 녀석이
다 저녁에 왠 일이지. (일어서려 하면)
재훈: 마저 해라. 내가 나가께. 계산하다 일어서면 전부 다 다시
맞춰야 하잖아.
재훈, 문쪽으로 간다.
씬31 경성은행, 안(밤)
어두운 조명.
한쪽에 경비 전화기 놓인 일종의 부스(경비석)에 앉아있고.
희경, 채반을 들고 한쪽에 서 있다.
재훈, 계단을 내려온다.
재훈, 희경과 눈이 마주친다.
재훈: 어!
재훈 반가워서 빠르게 계단을 내려온다.
재훈: 상만이라는 친구가 온 줄 알았는데..여긴 왠 일이에요?
희경: 그냥요.
재훈: 흠... 이게 무슨 냄새죠?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희경: (채반을 내밀며) 저녁 배달 왔어요~
씬32 경성은행, 감사부(밤)
희경, 채반을 푼다.
광철과 재훈, 보면 채반에 가득 담겨 있는 찐빵.
재훈: 야아.... 이거 최고의 저녁인데요.
희경: (만져보며) 오는 동안 쫌 식었다. 솥에서 금방 꺼냈을 때
먹어야 맛있는데.따끈할 때.
광철: 어디보자. 맛을 봐야지.
광철과 재훈, 찐빵을 하나씩 들고 먹는다.
희경, 품평을 기대하는 눈으로 두 사람을 본다.
재훈: 맛있는데요.
희경: 정말요?
재훈: 저기 모퉁이에요. 찐빵 잘 하는데가 있거든요, 풍림당이라구.
거기꺼 보다 맛있어요.
광철: (먹으면서) 녀석... 과장하기는. 설탕은 안 넣냐?
희경: 넣긴 넣는데. 너무 비싸..설탕이 요샌 금값이다. 모.
광철: 원래 솜씬 없는 놈이 연장 탓 하는 법이지~
희경: (눈 흘기며) 오빤 먹지마! 재훈 오빠가 다 드세요.
재훈: 예. 이거 횡재 했는데요.
광철, 주전자와 그릇이 놓였던 쟁반을 가르킨다.
희경, 주전자랑 컵, 내려놓고 면보로 훔친 다음 찐빵을 담는다.
희경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훈.
(소리) 똑똑... 노트소리.
재훈: 아저씨가 미리 알구 올라오신 모양인데요.
문, 열리고 주영 들어온다.
주영의 손에 먹을게 담긴 봉투가 들려있다.
주영: 재훈씨.
재훈: 어. 주영아.
주영: 아직 여기 계실 것 같아서요. 저녁전이죠? (하다 보면,
채반에 가득한 찐빵)
재훈: 먹고 있는 중이다.
광철과 희경, 일어나서 '안녕하세요?' 주영에게 인사한다.
주영: 비범하신 재훈씨 친구분이군요. 병원에선 제대루 인살
못했어요. 제게 재훈씰 돌려 보내 주셔서 감사해요.(광철에게
손 내밀고 악수를 청한다)
광철: 아.. 예. (손 내밀어 악수한다)
주영: (희경을 보고, 재훈에게) 누구...?
재훈: 응. 광철이 동생이야.
희경; 안녕하세요?
주영: 아... 불 같은 사랑의 주인공? 우리 재훈씨가 부러워하던
열정의 주인공이로군요.
희경: 예..? (무슨 소린가 싶다)
주영: 꺌꺌- (웃고) 목숨 걸고 심양으로 오빠를 찾아 가셨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잘 들었어요.
희경: 예... (수줍은)
주영, 자신이 사 온 음식들을 풀기 시작한다.
희경, 쟁반에 담긴 찐빵과 주전자를 들고 나간다.
씬33 복도(밤)
희경, 계단에서 올라온다. (경비아저씨에게 찐빵을 갖다주고 온 것)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탁자에 커다란 주전자가 놓여있다.
작은 주전자에 물 따르는 희경.
씬34 감사부(밤)
상 위에, 주영이가 풀어 놓은 화려한 음식들.
희경, 컵에 물 따라서 사람들 앞에 놓아준다.
희경: 오빠.. 난, 그만 갈께.
광철: 왜? 좀 있다 가, 내가 데려다 줄께.
주영: 그래요. 우리 이야기두 하고, 같이 놀다 가요. 나..댁한테
관심이 아주 많거든요. 댁..이라고 하는건 이상하다. 이름이
뭐에요? 그러고보니 이름두 소개 안했군요, 우리.
희경: 희경이에요.
재훈: ! (컵을 떨어 트린다)
광철, 희경, 주영, 의아하게 재훈을 본다.
재훈: 이름...이 뭐라구요?
희경: 희경이요.
주영: 왜 그래요?
재훈: 다시..한..번 만 말해줘요..내가 잘 못 들었나...
광철과 주영, 희경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재훈을 본다.
희경: (이상하다) 희... 경...이에요.. 희경이.
광철: 재훈아?
재훈: 광철아. 너 알지? 내가 말했지? 내 인생을 걸고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광철: 응. 네 동생.
재훈: 그래. 내 동생이자...돌아가신 김병익은행장님의 딸이다. 그
아이 이름이 희경이다.
주영: 아...
광철: !
희경: !
희경과 광철,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씬35 치성의 집, 거실쪽 현관(밤)
현승, 다급하게 들어온다.
맞이하는 용호와 치성.
현승: (용호에게 인사하고, 급하게) 희경이는 어딨습니까? 우리
희경이가 있다는데가 대체 어딥니까?
치성: 일단 저리로 가서 앉으시지요.
치성, 현승을 안쪽 거실로 안내한다.
용호, 그 모습을 기가 막힌 듯 바라본다.
씬36 감사부실(밤)
재훈, 조금 안정이 됐다.
희경과 광철, 주영 그런 재훈을 본다.
재훈: 전 그 애 이름만 들어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군요... (희경을
보며) 희경씨한테 아버님이 계시다는 것 아는데도...
희경: ...
재훈: 당황하셨죠? 미안해요.
희경: (한 발 앞으로 다가간다) 아니에요. 나.. 아버지의 친딸이
아니에요.재훈 오빠.. 나... 어려서 버려졌어요. 제가
누군지..누구의 딸인지...아무것도 몰라요.
재훈: !
희경: 그냥.. 내 이름이 희경이라는거..내내 쭉 희경이로 불려졌다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는게 없어요..
재훈: 설마...
희경: 말해주세요! 그 희경이라는 사람..그 희경이란 사람이 대체
누군지!
재훈, 희경이를 바라본다.
재훈: 우리 희경이는 그러니까..여섯살이었습니다.
(소리) 때르릉-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분위기를 흐트러트린다.
모두들 전화를 바라본다.
광철, 전화를 받는다.
광철: 감사붑니다. (놀라서) 유비서님.
재훈, 유비서라는 말에 광철을 바라본다.
광철: 잠시만 기다리십시요. (재훈에게 수화기를 내민다)
재훈: 예. 저, 재훈입니다.
씬37 치성의 집, 거실(밤)
현승, 재훈과 전화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용호와 치성.
현승: 그래! 희경이를 찾았네! (사이) 은행장님이 이미 확인까지
마치셨다네. 가고시마야. (사이) 짐작대로..역시 일본으로
간거야.
용호, 치성을 노려본다.
치성, 여유있게 미소 짓는다.
씬38 경성은행, 감사부(밤)
재훈, 전화를 하고 있다.
재훈: 예. 아저씨, 금방 가겠습니다!
재훈, 수화기 놓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광철과 희경, 주영.
주영: 무슨 일이에요?
재훈: (흥분 상태가 앞, 뒷말이 뒤죽박죽 두서가 없다) 희경이를
찾았어! 일본에 있었어.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은 했었는데.
희경이를 빨리 데리러 가야 해.
희경: ... (실망하는)
재훈: 광철아, 나 먼저 나가봐야겠다. 나중에 상황 봐서 다시
전화할께.
광철: 응...
주영이 풀어 놓은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있다.
희경, 고개를 숙이고 있다.
광철, 그런 희경이의 모습을 안스럽게 바라본다.
광철: 희경아.
희경: 어! 초밥에 머리카락 있다!
광철: 응?
희경: 거짓말이야~ 오빠가 너무 심각하잖아~
광철: 이 녀석이!
희경: 얼른 먹자. 무지 고급음식 같은데. 이거 다 먹어야지,
아깝잖아.
희경, 젓가락을 광철에게 주고, 자신도 젓가락을 든다.
희경: (손도 안댄 초밥 도시락 하나를 가르키며) 이건 아버지랑
상만 오빠 갖다줘두 되겠지?
광철: ... (애써 밝은 희경이가 마음 아프다)
희경: 아무렇지두 않아. (광철을 보고 미소) 정말이야.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꺼라면, 십칠년 동안 그렇게 꽁꽁 숨어 있겠어?
광철: ...
희경: 괜찮아.. 정말이야. 괜찮아요... (초밥을 하나 집어서 먹는다)
맛.........있...다.(목이 멘다)
광철: 울고 싶음..울어.. 괜찮아.. 괜찮아. 희경아.
희경: ...
광철: 세상에 수많은 희경이가 있다고 해두...넌..내게 단 하나 뿐인
희경이다.
희경: 오빠..
희경, 광철의 품에서 목 놓아 운다.
광철, 그런 희경이를 꼭 안아준다.
씬41 경성은행, 앞 길(밤)
광철, 희경이의 자전거를 운전한다.
자전거 앞에 도시락봉투가 매달려 있다.
희경, 양손으로 광철의 허리를 꼭 안고 그 등에 얼굴을 묻는다.
씬42 원산금고 앞(밤)
준식과 상만, 원산금고와 원산물산 문을 닫고 있다.
광철의 자전거 멈추고, 희경 뛰어 내린다.
준식: 야 밤에 처녀 애가 어딜 쏘다녀!
희경: ...
상만: 내가 너 아저씨 한테 혼날 줄 알았다.
준식: 담부턴, 밤에 나갈 일 있음 상만이랑 같이 가라. 알았어?
희경: ...
희경, 준식의 허리를 안는다.
희경: 아버지...
준식: 이 녀석아. 이런다구 내가 너, 밤 마실 허락할 줄 알어.
어림없다.
희경: 아버지...저한텐..아버지가..정말 아버지에요.. 아버지
밖에...없어요..
준식, 무슨 일인가 싶어 희경이를 본다.
그 모습을 가엾게 바라보는 광철.
씬43 치성의 집, 거실(밤)
재훈과 주영, 들어온다.
현승: 왔나?
재훈: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찾았습니까?
치성: 희경일 찾은 건 다 회장님 덕분이네.
용호: (치성을 본다)
치성: 유비서님하고..자네한테 실망을 줄까봐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오랫동안 회장님의 지시로 희경이를 찾아왔네.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은행장님의 유언을 받들지 못해
늘..마음 아파 하셨지.
용호: ...
재훈: (용호를 보고) 전 아버님이 희경일 잊고 계셨다 생각했어요.
용호: 그럴리가..있겠니..
현승: (용호를 보고) 그간 은행장님을 오해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용호: ..
재훈: 가고시마라고 했지요? 당장 희경이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현승: 배표는 알아 봐뒀네. 내일 오후에 떠나는 배가 있더군.
재훈: 예.
치성: 나도 함께 가지. 우리..경성은행에 가장 경사스러운
일인데..아직은 은행장인 내가 함께 가야 도리일 것 같군.
용호, 앞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흥분에
들뜬 재훈과 현승을 차례로 본다.
용호: (치성에게) 잠시.. 나 좀 보세.
치성: 예.
두 사람, 자리에서 일어난다.
씬44 치성의 집, 서재(밤)
용호와 치성, 선 자세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용호: 자네와 난 사돈이 될 사이야! 주영이와 재훈이가 혼살
치르게 되면, 자네 역시 경성은행의 반을 나눠 갖는건데.
굳이 왜 이런 일을 만드는가 말야!
치성: (잠시 생각) 삼년전....화진고무 이회장의 따님과 재훈군의
혼사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회장님은 저와
우리 주영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저울질을
하셨습니다.
용호: ...(보면)
치성: 저와 이회장. 우리 주영이와 이회장의 딸. 어느쪽이 회장님께
더 이익인지를 계산하신거겠죠. 그때 이미 저는 회장님께
신뢰를 잃었습니다.
용호: 그걸 여지껏 마음에 담아 뒀단 말인가? 결국 주영이를
택하지 않았나?
치성: 언제든 회장님은 또다시 우리 주영이와 누군가를 놓고
저울질 할 일이 생기시면 이익이 큰 쪽을 택 하시겠지요.
삼년째 결혼을 미룬 이유없이 그 때문이 아닙니까?
용호: 억지를 부리는군. 재훈이가 동경에 머무느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나!
치성: 그럴까요..? 동경에 있는 동안 삼양물산 박회장과 혼담이
오간 것은 또 무엇이지요? 저는 회장님도...재훈군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경성은행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혼맥이
있다면..언제라도 우리 부녀를 버릴 수 있는 분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에 목을 매다는 것보다는 힘을 기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다 회장님께 배운 판단이였습니다.
용호: 허....
용호, 답답한 시선으로 치성을 본다.
치성: 희경일 데리러 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씬45 재훈의 승용차 안(밤)
재훈, 운전하고 있고 옆자리에 현승, 앉아 있다.
치성, 뒷좌석에 앉아 생각에 잠긴 모습.
씬46 경성은행, 이층 복도(아침)
광철, 복도 계시판에 붙어 있는 공고문을 읽고 있다.
(인서트) 공고문
'금일 예정 되었던 징계위원회 소집은 은행내부 사정으로
잠시 연기 되었음을 알립니다. 징계위원회 소집은 추후 재통고하겠습니다'
광철: ...
씬47 경성은행, 감사부
광철, 은행장과 이사1,2에 대한 징계위원회 회부용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자산규모와 실사 내역, 테링광산 건에 관한 서류들이다.
(소리) 따르릉- 전화벨 울린다.
동준, 수화기를 들고.
동준: 예. 감사부닙니다. (사이) 이부장님.
광철, 동준을 본다.
광철: (전화기쪽으로 걸어가서, 수화기를 건네 받는다) 재훈이냐?
씬48 부산의 여객 사무실
관부연락선 사무실이다.
관부연락선의 배표시각등이 계시되어 있다.
(시간고지나 요금고지는 1부, 상황을 참조하십시요)
그중, 한 테이블 앞에서 재훈, 전화를 하고 있다.
재훈: 아무래도 징계위원회 건은 가고시마에 갔다와서 논의해야 할
것 같다.
씬49 경성은행, 감사부
광철, 재훈과 통화하고 있다.
광철: 그래.(사이) 가고시마에 있다는 희경이가....김병익은행장님의
딸..희경이가 확실한거냐?
씬50 부산의 여객 사무실
재훈, 광철과 통화하고 있다.
재훈: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맞는 것 같다. (사이) 광철아. (잠시
망설이는) 희경씨...말야..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좋겠다. 네가
잘 하겠지만... (사이) 그래, (사이) 갔다 와서 보자.
재훈,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재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여직원에게 '잘 썼습니다'
인사하고 전화비를 건넨다.
씬51 찻 집
재훈과 현승, 앉아 차를 마시면서 승선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재훈, 생각에 잠긴 얼굴로 희경이를 생각하고 있다.
(인서트) 희경이의 모습.
희경이의 실망한 표정과 희경, 미소 지으며 "축하해요~
진짜 희경일 찾게 되셔서."하던 장면.
현승: 우리 희경일 만나면, 첫 인사를 뭐라고 해야할까....
재훈: (생각에서 깨어나 현승을 본다)
현승: 날 알아봐 줄까?
재훈: 시간이 걸리겠지요,서로를 알아 보는데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현승: (고개 끄덕이고) 막상 희경이를 찾았다고 생각하니 말야.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는군.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의식도
못한 채...갑작스레 골인지점에 들어선 것 같은.
재훈: ...
현승: 자네두 그렇게 보이는군. 허탈해 보이는게...
재훈: 또 다른 희경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현승: 응?
재훈: 아주...고운 아가씨인데..제가 마음에 상처를 준게
아닌가..해서요.
현승: 동명이인이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