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기차역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기차역은 당연히 서울역이다. 한국의 모든 기차는 서울역으로 갈 때 올라간다고 말한다. 고도가 높은 태백산맥에 있는 작은 기차역에서 고도가 훨씬 낮은 서울역으로 기차가 내려갈 때도 올라간다고 말한다. 각 기차역이 갖고있는 고유한 기능은 크던 작던 모두 동일하다. 모든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크고 작은 기차역의 모순적 차별성이 나를 슬프게 한다. 마치 우리의 삶의 슬픈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 모든 개인은 동일한 가치를 존중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외피적인 것들로 인해 마치 인간들에게도 서울역처럼 큰 인간이 있고, 태백산맥의 작은 기차역처럼 작은 인간이 있다는 그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물론 사람마다 능력과 인품이 다르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도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올라가고 내려간다는 그 비논리성을 나는 증오한다.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은 내려가는 것이며 이는 가장 자연스런 일이다. 자연현상을 거슬러 물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가.
이러한 현실적 논리를 인정할 때, 나의 기차역은 어디쯤일까. 한때 나도 서울역 정도는 아니었어도 그래도 소도시의 작은 기차역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아니 그것보다는 좀더 큰, KTX가 멈춰서는 기차역은 아닐지라도 새마을호 정도의 기차가 멈추는 정도의 기차역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이미 사회적 쓸모를 더 이상 발휘할 수 없는 나는, 지금은 강원도 태백산맥에 있는 어느 간이역 내지는 폐기된 기차역으로 전락했음이 분명하다. 폐기된 기차역에는 기차가 없다. 기차가 없는 기차역.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는 기차역은 쓸쓸하다. 더욱이 그 폐기된 기차역이 한때는 아주 붐비던 기차역이었다면 더욱 쓸쓸하고, 황량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것이다.
기차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또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린다. 처음 서울역에서 부산행 기차를 탔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부산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대전역에서 내리고 또 어떤 사람은 대구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종착역인 부산까지 간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전이나 대구에서 새로이 기차에 올라탄다.
우리의 삶이 이와 같지 않은가. 내 삶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이 타고 있던 기차에 올라탔다.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우연이었고 운명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60년 넘게 함께 기차를 타고 왔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버지가 내 삶의 기차에서 내렸고,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내렸다. 그리고 내 아내와 아이들이 내 삶의 기차에 올라왔다. 어렸을 적 동무들이 내 기차에 올라왔고,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부딪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삶의 기차에 올라왔다. 내 삶의 기차에 올라탄 사람 중에는 내 좌석 옆에 앉아서 나에게 좋은 대화를 하고 함께 웃고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고 나를 키워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내릴 때마다 슬프고, 그들이 나와 함께 끝까지 동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 옆에서 술주정을 하거나 고함을 지르며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런 사람들은 빨리 다른 칸으로 옮겨 가거나 기차에서 내렸으면 하고 바라곤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저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다. 수많은 군상들이 나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다가 내리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올라타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람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가. 내 옆좌석에는 어떤 사람이 앉아있는가.
내가 경북 경산에 있는 하양이라는 작은 읍에 있는 특공부대에서 근무할 때 주말마다 서울역과 하양역을 기차로 왕복했다. 하양을 갈 때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서 내린 다음 다시 포항가는 기차로 갈아타서 하양역에서 내렸다.
우리 모두의 기차는 서울의 동북에 있는 화랑대역이라는 작지만 거대한 역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끝까지 갔고, 또 어떤 이는 5 년만에 어느 기차역에서 다른 기차로 갈아탔다. 나 역시 30여년을 화랑대역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가다가 뒤늦게 정부부처의 기차로 갈아타게 되었다.
주말마다 표를 끊을 때는 대구역가는 기차표를 끊고 또 하양역가는 기차표를 따로 끊은 것이 아니다. 일괄적으로 한 기차표를 가지고 대구까지 가고 대구역에서 다시 포항가는 기차로 갈아탔다. 그 표를 가지고 갈아탈 때마다 나는 현대문명의 정교함과 위대함을 깨닫곤 했다. 그 기차표에는 대구에서 내린 다음, 다시 포항가는 기차로 갈아타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한 포항가는 기차시간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얼마나 정교하고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가. 전국의 수많은 열차시간을 이렇게 서로 교묘하게 연결한다는 것이!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해방 후 처음 우리나라가 기차를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의 수작업으로 운행시간을 조정했을 당시에는 기차끼리 서로 충돌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고 하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대구역에서 포항가는 기차를 타러 이동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우리의 삶도 이처럼 잘 연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생각은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수많은 신호등을 만나게 되는데 신호등을 만날 때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신호등이 순조롭게 바뀔 때 우리는 쾌감을 느낀다. 운이 좋은 경우이다. 그러나 운이 나쁠 때도 있다. 신호등을 만날 때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신호등이 파란색이었다가 갑자기 빨간색으로 바뀐다. 우리는 내가 하양을 갈 때처럼 우리의 삶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조로이 연결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때로는 잘 연결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부득이하게 멈춰서지않으면 안 될 때도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언젠가 아내와 백두대간 관광열차를 타고 강원도 분천역에서 미동역, 양원역을 거처 철암역까지 간 적이 있다. 특히 철암역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우리의 삶이 이와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철암역은 한때는 전국에서 가장 번성했던 기차역이었던 적이 있었다. 바로 80년대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는 강릉역 역무원이 28명이었을 때 철암역의 역무원이 300명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에 이 철암역에는 넘쳐나는 사람들과 석탄으로 가득 메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철암역 부근의 마을과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탄산업의 몰락과 함께 철암역 역시 화려했던 추억을 뒤로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멈춰버린 쓸쓸한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한때 휘황찬란했던 젊은 날의 우리의 모습도 이제는 퇴기처럼 물러앉은 간이역 혹은 폐기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요즘 다시 폐기역이 되살아나고 있다. 석탄산업과 같은 1차산업이 퇴조하고 관광산업과 같은 3차 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다시 폐기역을 활기있게 만들고 있다. 철암역 역시 광부들이 아닌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 삶의 시발역인 화랑대역 역시 지금은 폐기역이 되었지만 부근에 불빛정원을 만들어놓아 밤이면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 관광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내가 문학단체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문인들과 춘천 부근의 김유정 문학촌으로 문학기행을 간 적이 있었다. 경춘선을 타고 가다 보면 김유정역이 나오는데 이는 10여 년 전에 새로 만든 역사이고 예전의 역사는 부근에 폐기역이 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 폐기역은 기차역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역시 김유정 문학촌과 함께 지금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간이역 내지는 폐기역으로 전락했던 내 기차역에도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부와 이익만을 좆아 내 삶의 기차역을 메웠던 사람들, 목적지를 가지고 기차를 타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제 내 기차역에서 타지 않는다. 이제는 여유와 낭만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기차역을 서성거린다. 붓글씨를 쓰는 사람들의 묵향이 내 삶의 기차역을 향기롭게 한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활을 쏘는 사람들이 내 삶의 기차역앞 광장에 서있다. 나는 지금 수년 전에 중도하차했던 글쓰기의 기차역 앞에 다시 서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기차를 타려고 한다. 안개 가득한 새벽녁의 기차역은 그 희미한 불빛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 어둠을 헤치고 그들과 함께 기차를 타려고 한다. 2022. 2. 19
첫댓글 우리는 왕복이 없는 열차를 타고 목적지를 모르면서 달려가고 있지요. 나도 가끔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란 생각을 종종 합니다. 목적지를모른다는 것은 인간의 숙명인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오늘 이 열차간에서 나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살고 있지요. 나도 그중 하나가 글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득 떠오르는 주제가 있으면 집필하여 두루 공유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향을 지나던 중앙선열차하면 그냥 향수와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달리는 열차간에서 느낀 생각을 종종 정리하여 카페에 올려주세요. 원초적 향수를 블러일으키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주 심금을 울리는 글입니다. 인생을 기차와 기차역에 비유한 상징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삶의 궤적이라 생가도네요~ 계속 좋은 글을 생산하시길 바라고, 응원합니다!
간이역, 폐기역에 다시 새로운 손님으로 붐비니 얼마나 좋습니까.
곧 먼동이 트면 안개 가득한 새벽녁의 기차역이 훤히 밝아오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평역에서>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 기다림과 만남, 헤어짐이 있는 곳,...수많은 사연과 애환이 인파로 몰러왔다가 철길을 따라, 대합실 밖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곳...
기차역의 풍경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너무도 많이 변해버렸지요. 기다림과 헤어짐의 시간도 오고감의 속도는 빨라만지고...
백강께서 그런 오늘날 기차역 풍경의 모습을 너무도 잘 묘사해 주셨네요. 덕분에 <사평역에서>와 같은 시골 간이역의 정경도 추억해 보고 그런 옛 정경의 기차역은 이제 모두가 사라져버린 안타까움을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백강이 좋은 글을 주셨군요. 기차역을 통해 인생살이를 이리 적절히 표현해 주시니 깊은 내공이 보입니다. 내 인생을 돌아 보건대, 부모 아니 더 위 조상으로부터 받은 팔자에다 내 태어난 이후 부모의 상황속에서 나의 운과 노력으로 내 인생의 모습과 장래가 엮이고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백강의 글을 읽으며 나의 기차역과 기차속의 나를 다시 되돌아 보았습니다.
드디어 백강께서 승차하셨군요. 우리 기차역은 어느 종류의 역일까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한때 화랑대라는 힘있는 역에서 출발해 반세기간 이런저런 역을 경유 또는 정착하다가 새롭게 불씨를 붙인 역에서 해후한 승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각자 나름대로 전설을 가진 손님들이기에 어느 여가수의 데뷔때 했던 말처럼 '찐하게 우려낸 곰탕 국물' 같은 구수함이 배어 있을 것입니다. 간이역도 좋구요.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소박하고 아담하고 조용한 그런 역....
백강께서 기차역과 우리들 삶을 잘 비유해 주셨네요.
서울역ᆞ간이역ᆞ폐기역 모두 외적
가치는 다르더라도 내적 고유 가치는
다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인맥에는 지연ᆞ혈연ᆞ학연등으로
맺은 재래식 인맥이 있는가하면
재래식 인맥+ 지고의 가치+ 동호회
로 맺은 인맥에는 서울역 이상의 가치를 부여함은 어떨까 생각됩니다.
많은것을 생각케하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백강친구의 글이 철학적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글이라 심오한 느낌을 주네요.퇴직 후에 제가 13년여 겪었던 쓸슬함과 황향함,허무함을
그대로 표현해 주셨네요.곽재구의 그 시도 생각나게 해주구요.졍호승 시인은 아픔과 고통의 강을 뛰어넘어 드넓은 바다에 이르는 물의
흐름을 얘기해 주었지요.아버지의 내림과 어머니의 내림을 다 격고,새로운 가족들을 맞이하게 됨은 윤회사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양역과철암역은 처음 들어보는 역이라 새로움을 주고요.우리는 이제까지 수많은 인생역을 오르내리면서 만나고 헤어지곤 하였지요.
지금 전화걸어 술한잔 대접하면서 지내온 인생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선.후배와 친구,가족이 내 인생의 종창역에서 같이 탑승한
소중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훌륭한 소재의 글 뒤늦게 잘 읽었어요.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