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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無生忍
三十三天中에 所有諸天子가
共同一器食호대 所食各不同하니
所食種種食이 不從十方來라
如是所修業으로 自然咸在器니
菩薩亦如是하야 觀察一切法이
悉從因緣起하야 無生故無滅이로다
無滅故無盡이요 無盡故無染이니
於世變異法에 了知無變異하며
無異則無處요 無處則寂滅이니
其心無染着하야 願度諸群生이로다
專念於佛法하야 未嘗有散動하고
而以悲願心으로 方便行於世로다
勤求於十力하야 處世而不住하며
無去亦無來하야 方便善說法이로다
此忍最爲上이라 了法無有盡하야
入於眞法界호대 實亦無所入이로다
菩薩住此忍에 普見諸如來가
同時與授記니 斯名受佛職이로다
了達三世法의 寂滅淸淨相이나
而能化衆生하야 置於善道中이로다
삼십삼천 가운데
있는 모든 하늘 사람들이
다 함께 한 그릇에서 밥을 먹지만
먹는 밥은 제각기 다르도다.
제각기 다른 여러 가지 밥이
시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닦은 업으로
저절로 그릇에 담기느니라.
보살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일체 법을 살펴보건대
모두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나지 않으므로 사라짐이 없도다.
사라지지 않으므로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으므로 물들지 않아
세상의 변하는 법에서
변하여 달라짐이 없음을 알도다.
변하여 달라짐이 없으면 처소가 없고
처소가 없으면 적멸하나니
그 마음 물들지 않아서
모든 중생을 건지기 원하도다.
부처님의 법을 오로지 생각하여
일찍이 산란하지 않고
자비와 서원하는 마음과
방편으로 세상을 다니도다.
열 가지 힘을 부지런히 구하여
세상에 있으나 머물지 않고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이
방편으로 법을 잘 설하도다.
이 인(忍)이 가장 높아서
모든 법이 다함이 없음을 알아
참법계에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들어갈 것이 없도다.
보살들이 이 인에 머물러
모든 여래께서
동시에 수기 주심을 널리 보나니
이것을 부처님 직책을 받는다고 하도다.
삼세의 모든 법이
적멸하여 청정함을 깨달아 알지만
능히 중생들을 교화해서
선량한 길 가운데에 두도다.
*
무생인(無生忍)
*
삼십삼천중(三十三天中)에 : 삼십삼천 가운데
소유제천자(所有諸天子)가 : 소유제천자가
공동일기식(共同一器食)호대 : 공동일기식하되 이것은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식생활과 비슷하다. 한 그릇 밥에 식구가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것이다. 일기식을 같이 먹고 있되 그렇다고 해서
소식각부동(所食各不同)하니 : 똑같은 그릇의 똑같은 밥을 먹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덕화가 어떠하냐, 수행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각부동이라. 먹는 바가 각각 같지 아니하니
*
소식종종식(所食種種食)이 : 먹는 바 가지가지 음식이
부종시방래(不從十方來)라 : 시방으로 좇아온 것도 아님이라.
여시소수업(如是所修業)으로 : 이와 같은 닦은 바 업으로써
자연함재기(自然咸在器)니 : 자연히 다 그 그릇에 있다. 참 묘한 이야기다. 같은 그릇에 밥을 먹는데 다 각자 닦은 업대로 먹는 것이지, 그 밥이 같은 줄 아느냐?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그릇에 같은 밥으로 담겨있는 것같이 되어 있지만 다르다. 이런 신기한 표현은 화엄경이 아니고는 만나기 어려운 이야기다.
‘화엄경 글이 많다’고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란다. 글이 워낙 많으니까 이런 표현을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중생수기득이익(衆生受器得利益)이다. 각자 그릇 따라서 이익을 얻는 것이다.
*
보살역여시(菩薩亦如是)하야 : 보살도 역여시하야
관찰일체법(觀察一切法)이 : 관찰일체법이
실종인연기(悉從因緣起)하야 : 다 인연으로 좇아서 일어나서
무생고무멸(無生故無滅)이로다 : 생이 없는 까닭에 멸함도 없더라. 무생무멸이라. 연기의 공식을 떠올리면 그냥 알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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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멸고무진(無滅故無盡)이요 : 멸이 없으므로 다함도 없음이요
무진고무염(無盡故無染)이니 : 다함이 없는고로 물듦도 없음이니
어세변이법(於世變異法)에 : 세상의 변이하는 법에
요지무변이(了知無變異)하며 : 무변의 도리, 변하지 않는 도리가 있음을 요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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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즉무처(無異則無處)요 :변이함이 없은즉슨 처소가 없음이요
무처즉적멸(無處則寂滅)이니 : 처소가 없은즉슨 적멸이니, 그 바탕, 그 본질은 그렇다.
어떤 스님은 법문할 때마다 아바타 아바타 하는 소리를 많이 한다. 말하자면 선문에 ‘간취붕두(看取棚頭)에 농괴뢰(弄傀儡)하라 추견(抽牽)이 전차리두인(全借裏頭人)이니라’ 라는 말이 있다. 인형극을 하는데 있어서 인형은 뒤에서 인형 묶은 줄을 조종하는 것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인형을 조종하는 본래의 사람은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인형은 아바타라는 것이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은 거기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다. 잠들어 있는 사람이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이다.
여러분도 아바타라는 영화를 다 봤을 것이다.
변이함이 없는 법에 무변이의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요지하며, 변이가 없는 것은 처소가 없음이요, 처소가 없음은 적멸함이니
기심무염착(其心無染着)하야 : 그 마음이 염착이 없어서
원도제군생(願度諸群生)이로다 : 모든 중생들 제도하기를 원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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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념어불법(專念於佛法)하야 : 불법만을 오로지 생각해서
미상유산동(未嘗有散動)하고 : 일찍부터 산동하게 부산하게 이 생각 저 생각,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것이 우리 중생들의 산동이다. 흩어질 산(散)자 동요할 동(動)자다.
일찍이 산동함이 없고, 불법공부하는 사람, 전념어불법 하는 사람은 사실은 세상에 바보가 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도 얼마든지 그 보상을 받는다. 천 배 만 배 더 받을 수가 있다.
‘이러다가 세상 뒤쳐지면 안되는데’ 그런 염려들을 하고, 우리도 어릴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오로지 불법 한 구덩이만 파도 거기에 다 해결책이 있다. 그래서
이이비원심(而以悲願心)으로 : 자비와 원의 마음으로써
방편행어세(方便行於世)로다 : 방편으로써 세상에 행함이로다.
성철스님은 정화 때 상당히 비난을 많이 받은 스님이다. ‘나와서 정화 운동 같이 하자’고 도반들이 그렇게 요청했는데도 안나왔다. 안 나오고 오로지 당신은 그때 한참 젊을 때 공부할 때인데 영리하신 분이니까 ‘정화문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나가서 시간 다 빼앗겨 버리면 내 이 젊음의 황금 같은 시간을 다 흘려보내고 그런 걸 하다보면 그런 데 업이 되어 버려서, 그것이 업이 되어서 공부가 손에 안잡힌다. 내가 지금 정신이 상당한 차원에까지 들어가 있는데 이것이 다 흐트러져 버리고 미끄러져 버린다. 내 정신의 차원이 여기까지 올라오기가 상당히 힘이 들었는데 세상일에 무슨 법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그런 데 메이기 시작하면 이것은 도로 다 흐트러져 버리고 그야말로 산동이 되어 버리고, 그래서 내 공부는 물 건너간다’ 이렇게 해서 그렇게 비난을 많이 들으면서도 끝까지 안나왔다. 그 점에 대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
내가 해인사 선방에 있을 때 성철스님이 그때 한참 소참법문 때니까 설명을 하다가 콩가루 집안이니 뭐니 이런 소리를 했다. 그때 사형사제인 스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이야기 나온 김에 다하는데 이 성철스님은 보조 스님을 비판하는 스님이잖은가. 그런데 그 자리에 송광사 스님이 한 분 있었다. 성철스님이 보조 스님을 한참 비판하자 그 송광사 스님이 일어나서 ‘그러면 우리 조계종이 전부 콩가루 집안이네요?’ 하니까 ‘아 그렇지 콩가루 집안이지’ 분위기 따라서 그런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평소에 그런 마음이 없어도 분위기와 이야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아 콩가루 집안이지’ 이렇게 성철스님이 말을 했다.
그러니까 정화에 할복까지 하면서 몸을 투신 했던 스님이 그 밑에 앉아 있다가 ‘뭐라고? 콩가루 집안이라고? ’ 하면서 벌떡 일어나서 들고 있던 염주를 확 챘다. 염주가 날리자 성철 스님이 딱 이렇게 손을 세워 막았지만 그 손에 염주가 맞아 돌아가니까 얼굴을 딱 때리는 것이다. 그런 자리를 내가 다 봤다. 아주 역사적인 장면인데 그런 것을 다 봤다.
현실에 나아가서 하는 것도 옳은 일이고 현실은 나 몰라라 하고 오로지 공부만 해서 결국 더 빛을 본 사람은 성철스님인데 그것도 옳은 일이다. 한편으로는 성철스님도 틀린 일이다.
또 출가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그까짓거 나몰라 라고 하고 공부해야 옳지 거기에 휘말리는 것도 틀린 일이다.
둘 다 틀렸다고 보면 둘 다 틀린 일이고 옳다고 보면 다 옳은 일이다. 그것이 ‘쌍차쌍조(雙遮雙照)’ ‘차조동시(遮照同時)’ 중도의 원리다. 결국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현실도 중도와 그렇게 연관이 된다.
나는 일찍이 절집안에 있어서 다른 작은 절에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큰스님들의 그런 행적 같은 것들도 많이 체험하는 소득이 있었다. 그런 데에 대해서 더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은 나중에 사석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방편행어세로다. 방편으로 세상에 행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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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구어십력(勤求於十力)하야 : 십력은 부처님이다. 부처님을 부지런히 구해서
처세이부주(處世而不住)하며 : 세상에 처하되 세상에 머물지 말며 처세이부주라. 이것이 또 중도다. 세상의 우리가 세상을 떠나서 어떻게 살겠는가, 이 몸뚱이 가지고 있는 한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것이 처세다. 그렇다고 세상에 주하면 안된다. 처세이부주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눌러붙어 앉아 있으면 공부는 언제 하겠는가.
이것은 여러분들이 전부 다 당면한 일들이다.
처세이부주하며 근구어십력하야, 처세이부주하며 십력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아무튼
무거역무래(無去亦無來)하야 : 감도 없고 또한 옴도 없어서
방편선설법(方便善說法)이로다 : 방편으로 잘 설법하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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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최위상(此忍最爲上)이라 : 이 인이야말로 최고가는 경지다. 십인이 다 최위상이다. 제일인이 높고 제이인이 낮고 그런 것이 아니다. 존재의 실상을 이런 시각에서 보고 저런 각도에서 보고, 이렇게 표현해 보고 저렇게 표현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가면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려고 하는 노력이 이 십인품이다. 이 십인품이 아주 기가 막히다. 화엄경은 잘 연구해 보면 한품 한품이 충분한 하나의 경전으로서 성립이 된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편찬을 했다. 또 결집을 한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 차인최위상이라.
요법무유진(了法無有盡)하야 : 법을 다함 없이 알아서, 환하게 끝없이 알아서, 다함이 없이 알아서
입어진법계(入於眞法界)호대 : 진법계에 들어가되
실역무소입(實亦無所入)이로다 : 실역무소입이로다. 그 실제에도 또한 들어가는 바가 없더라. 진법계가 실제의 경지다. 그런 데 들어가는 바가 없다.
들어가되 들어가는 바가 없고, 들어가는 바 없이 들어간다.
세속적인 논리에서 보면 말도 아닌 소리다. 말도 아닌 소리라야 불교가 설명이 된다. 말 같은 소리로서는 불교가 설명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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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주차인(菩薩住此忍)에 : 보살이 이 인에 머무름에
보견제여래(普見諸如來)가 : 모든 여래가
동시여수기(同時與授記)니 : 동시에 수기를 주나니
사명수불직(斯名受佛職)이로다 : 사명수불직이다. 좋은 경지다. 이것의 이름이 부처의 직위를 받는다. 부처의 소임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부처 소임을 받으면 됐지 우리 공부하는 사람들은 무슨 주지직 무슨 총무원장 직책 또 아니면 종정직 그런 것은 우습게 봐야 된다.
불직을 받는데 수불직인데 사명 수불직이라고 했지 않은가?
‘참 화엄경 과연 화엄경이로다. 훌륭하여라 화엄경이여.’
동시여수기니 동시에 수기를 주나니, 여래가 동시에 수기를 줌을 널리 보나니 이것의 이름이 수불직이다. 부처의 직책을 받는 것이다. 여기 별을 한 여남은 개 쳐야 될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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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달삼세법(了達三世法)의 : 삼세법의
적멸청정상(寂滅淸淨相)이나 : 적멸해서 청정한 상을 요달하나
이능화중생(而能化衆生)하야 : 그러나 능히 중생을 교화해서
청정한 텅 빈, 적멸하고 텅 빈 모습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능히 중생을 교화해서
치어선도중(置於善道中)이로다 : 선도중에 갖다 두어라.
모든 중생이 전부 보살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80억 인구를 보살화 하고자 하는 것이 불교다. 대승불교에서 보면 특히 화엄불교에서 보면 전부 보살사관학교다. 불교는 전부 보살사관학교이고 보살을 만들자고 하는 사관생도 길러내는 곳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 보살사관생도 길러내는 곳, 보살사관 생도 길러내는 교육 그런 뜻이다.
4. 如幻忍
世間種種法이 一切皆如幻하니
若能如是知하면 其心無所動이로다
諸業從心生일새 故說心如幻이니
若離此分別하면 普滅諸有趣로다
譬如工幻師가 普現諸色像하야
徒令衆貪樂이나 畢竟無所得인달하야
世間亦如是하야 一切皆如幻이라
無性亦無生이나 示現有種種이로다
度脫諸衆生하야 令知法如幻이나
衆生不異幻이니 了幻無衆生이로다
衆生及國土와 三世所有法이
如是悉無餘하야 一切皆如幻이로다
幻作男女形과 及象馬牛羊과
屋宅池泉類와 園林華果等이나
幻物無知覺이며 亦無有住處하야
畢竟寂滅相이라 但隨分別現이니
菩薩能如是하야 普見諸世間에
有無一切法하고 了達悉如幻이로다
衆生及國土가 種種業所造라
入於如幻際하야 於彼無所着이로다
세간의 가지가지 법이
일체가 모두 환술과 같으니
만일 이와 같이 안다면
그 마음 동하지 않으리라.
모든 업은 마음에서 생긴다.
그래서 마음은 환술 같다고 하나니
만약 이러한 분별을 떠나 버리면
여러 가지 삶의 갈래 없어지느니라.
비유하자면 마치 환술을 하는 사람이
가지가지 모양을 만들어 내어
한갓 대중들을 즐겁게 하지만
필경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 세상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것이 환술인 것이니
성품도 없고 나는 것도 없지만
가지가지 모습을 빚어내는 것이니라.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환술과 같은 법 알게 하지만
중생도 환술과 다를 것 없나니
환술인 줄 알면 중생도 없도다.
중생이나 국토나
삼세의 모든 법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가 환술 같도다.
환술을 부려서 남자와 여자와
코끼리와 말과 소와 양과
집과 못과 샘물과
숲과 동산과 꽃을 만들지만
환물로 된 것들이라 지각이 없고
또한 있는 장소도 없어서
필경에는 적멸한 모습이니
다만 분별을 따라 나타날 뿐이로다.
보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두루 보지만
있고 없는 모든 법이
환술과 같은 줄 알도다.
중생과 국토가
가지가지 업으로 생긴 것이라
환술과 같은 경계에 들어가서
거기에 집착할 것 없도다.
*
여환인(如幻忍)
*
환술과 같은 인이다. 표현은 다 다르지만 뜻은 십인이 다 같다.
*
세간종종법(世間種種法)이 : 세간 종종법이
일체개여환(一切皆如幻)하니 : 다 환과 같으니, 세상에 그 어떤 법도 환과 같지 아니한 것이 없다.
약능여시지(若能如是知)하면 :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면
기심무소동(其心無所動)이로다 : 그 마음이 움직이는 바가 없음이로다.
*
제업종심생(諸業從心生)일새 : 모든 우리가 짓는 업은 마음으로부터 생긴 것일새
고설심여환(故說心如幻)이니 : 그러므로 마음이 환과 같다고 말함이니, 마음이 좀 제대로 고정되어 있으면 좋겠는데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미워했다가 좋아했다가 싫다 좋다 울고 웃고 끊임없이 변화를 일으킨다.
약이차분별(若離此分別)하면 : 만약에 이러한 분별을 떠날 것 같으면
보멸제유취(普滅諸有趣)로다 : 모든 존재의 갈래들을 전부 다 소멸한다. 내 마음에서부터 텅 비어 사라져 버린다.
*
비여공환사(譬如工幻師)가 : 비유컨대 환술을 하는 사람이
보현제색상(普現諸色像)하야 : 여러 가지 색상을 나타내어서
도령중탐락(徒令衆貪樂)이나 : 여러 대중들로 하여금 탐락하게 한다. ‘아 좋아한다. 신기하다’ 하는 것이다. 옛날 마술하는 사람들은 차원이 상당했나 보다.
필경무소득(畢竟無所得)인달하야 : 그렇지만 그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내가 어딘가에 가서 홀로그램을 봤다. 그것을 두어 번 봤는데 신기했다. 처음에는 자기들이 찍어 놓은 것만 보이더니 나중에는 내가 거기에 보이는 것이다. 내가 하는 대로 홀로그램에 다 나타난다. 그래서 좋아하고 희희낙락하고 거기서 장난도 친다. 그런데 필경무소득이다. 필경에는 얻을 바가 없듯이, 잡을 바가 없듯이
세간역여시(世間亦如是)하야 : 세간도 역여시 하야
일체개여환(一切皆如幻)이라 : 일체가 다 환과 같은 것이다.
무성역무생(無性亦無生)이나 : 기본적으로 불교 공부하고 불교에 좀 맛을 느끼고 취미를 느끼려면 ‘세상법은 환과 같다’고 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크게 깊이까지는 못들어간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래도 느끼고 살아야 한다. 무성역무생이나 불변하는 성품도 없고 또한 그러니까 생하는 것도 없으나
시현유종종(示現有種種)이로다 : 가지가지가 있음을 나타내 보이도다.
*
도탈제중생(度脫諸衆生)하야 : 모든 중생을 도탈해서
영지법여환(令知法如幻)이나 : 법이 환과 같음을 알게하나
중생불이환(衆生不異幻)이니 : 중생도 환과 다르지 아니하다. 중생들을 잘 가르쳐서 일체법이 전부 환과 같음을 알게 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 중생도 또한 환이라. 불이환이다. 환과 다르지 않다.
요환무중생(了幻無衆生)이로다 : 환인 줄 알 것 같으면 중생이 없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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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급국토(衆生及國土)와 : 중생과 국토와
삼세소유법(三世所有法)이 : 삼세소유법이
여시실무여(如是悉無餘)하야 : 이와같이 다 남음이 없어서
일체개여환(一切皆如幻)이로다 : 일체개여환이다. 일체개여환 소리가 여러 번 나온다. 첫구절부터 일체개여환 일체개여환 종종법이 일체개여환 줄기차게 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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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작남녀형(幻作男女形)과 : 환으로 남녀의 모습과
급상마우양(及象馬牛羊)과 : 그리고 코끼리 말 소 양
옥택지천류(屋宅池泉類)와 : 집 못 개울 물 그러한 종류
원림화과등(園林華果等)이나 : 원림 꽃 과일 그런 등을 환으로 만들기는 하지만
*
환물무지각(幻物無知覺)이며 : 환으로 만든 사물은 지각이 없으며
역무유주처(亦無有住處)하야 : 또한 주처도 없다. 환으로 만들었으니까, 우리의 착각으로 있는 것 같이 보일 뿐이다.
착각이다. 마술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동강나는 것을 막 보여준다. 사람이 동강나는 것은 전부 눈속임이다. 마술하는 사람들이 보이듯이 몸뚱이가 저기도 가 있고 여기도 가 있으면 어쩌란 말인가. 실제로 그랬다면 야단이 났을 것 아닌가. 전부 그것이 눈속임이고 착각이다.
거기에 몇 사람이 같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 사람도 들어있고, 저 사람도 들어있고, 그래서 쪼그리고 앉아서 자기 모습을 일부분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밑에만 보이는 사람이 있고, 위에만 보이는 사람이 있다. 거기에 딱 맞춰서 연출하는 사람을 그 안에 집어넣어서 사람을 속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도 그런 모습을 다 보이기는 하지만 환물무지각이라고 하였다. 여기는 그런 차원하고는 다르다. 환물은 지각이 없으며 또한 주처도 없다.
필경적멸상(畢竟寂滅相)이라 : 필경에는 적멸상이라.
단수분별현(但隨分別現)이니 : 다만 분별을 따라서 나타남이니
*
보살능여시(菩薩能如是)하야 : 보살은 능히 이와 같아서
보견제세간(普見諸世間)에 : 모든 세간의
유무일체법(有無一切法)하고 : 있는 것 없는 것 유형 무형 이런 일체법을 전부 널리 보고서는
요달실여환(了達悉如幻)이로다 : 다 환과 같은 줄을 요달하도다.
*
중생급국토(衆生及國土)가 : 중생급국토가
종종업소조(種種業所造)라 : 가지가지 업으로 지은 바라.
입어여환제(入於如幻際)하야 : 환과 같은 경계에 들어가서
어피무소착(於彼無所着)이로다 : 저기에 집착하는 바가 없음이로다.
5. 如焰忍
如是得善巧하야 寂滅無戲論이라
住於無礙地하야 普現大威力이로다
勇猛諸佛子가 隨順入妙法하야
善觀一切想이 纏網於世間이로다
衆想如陽焰하야 令衆生倒解어든
菩薩善知想하야 捨離一切倒로다
衆生各別異하야 形類非一種이나
了達皆是想이라 一切無眞實이로다
十方諸衆生이 皆爲想所覆니
若捨顚倒見이면 則滅世間想이로다
世間如陽焰하야 以想有差別이니
知世住於想이면 遠離三顚倒로다
譬如熱時焰을 世見謂爲水나
水實無所有라 智者不應求인달하야
衆生亦復然하야 世趣皆無有니
如焰住於想하면 無礙心境界로다
若離於諸想하고 亦離諸戲論하면
愚癡着想者로 悉令得解脫이로다
遠離憍慢心하며 除滅世間想하고
住盡無盡處가 是菩薩方便이로다
이와 같이 교묘함을 얻으면
적멸의 경지라 희론(戲論)이 없어
걸림 없는 자리에 머물러
큰 위엄의 힘을 두루 나타내리라.
용맹한 모든 불자들
묘한 법에 따라 들어가
온갖 생각이
세간에 얽매인 줄 잘 관찰하도다.
모든 망상들이 아지랑이와 같아서
중생들에게 뒤바뀐 소견 내게 하나니
보살은 망상인 줄 분명히 알아
모든 뒤바뀐 생각 멀리 떠나도다.
중생들 제각기 달라
형상이 한 가지가 아니니
모두 다 망상인 줄 알면
일체가 진실한 것 없도다.
시방의 모든 중생들이
모두 다 허망한 생각에 덮였으니
만약 뒤바뀐 소견을 버리면
곧 세간의 망상이 사라지리라.
세간은 아지랑이와 같은데
생각 때문에 차별이 있나니
세상이 망상에 머문 줄 알면
세 가지 전도[三顚倒]를 멀리 여의리라.
비유하면 더운 날 아지랑이를
세상이 물인 줄 알지만
그 물은 실제로는 물이 아니니
지혜 있는 이는 구하지 않듯이
중생도 또한 그와 같아서
세상의 길[世趣]이 다 있지 않으니
아지랑이가 생각에 머문 것과 같이
걸림이 없는 마음의 경계로다.
만약 모든 생각을 떠나고
또한 모든 실없는 말[戲論]까지 여의면
어리석어서 생각에 집착한 이
모두 해탈을 얻게 하리라.
교만한 마음 멀리 여의고
세간이란 생각 소멸하여
다함과 다함없는 데 머물면
이것이 보살의 방편이로다.
*
여염인(如焰忍)
*
아지랑이 염(焰)자다. 아지랑이 같은 진리성.
*
여시득선교(如是得善巧)하야 : 이와 같이 선교를 얻어서
적멸무희론(寂滅無戲論)이라 : 적멸해서 희론이 없음이라
주어무애지(住於無礙地)하야 : 걸림 없는 땅에 머물러서
보현대위력(普現大威力)이로다 : 대위력을 널리 나타냄이로다.
*
용맹제불자(勇猛諸佛子)가 : 용맹한 제불자가
수순입묘법(隨順入妙法)하야 : 수순해서 묘법에 들어가서, 용맹한 불자라야 묘법에 들어간다. 그래서
선관일체상(善觀一切想)이 : 일체 생각이
전망어세간(纏網於世間)이로다 : 세간에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고 그물 얽히듯이 얽히고 있음을 선관 잘 관찰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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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여양염(衆想如陽焰)하야 : 온갖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아지랑이와 같다. 아지랑이가 저기 있는 것 같지만 좇아가보면 있는 것이 아니잖은가. 물이 흐르는 것 같이 보이고 그래서
영중생도해(令衆生倒解)어든 : 중생으로 하여금 잘못 알고, 전도망상하게 한다. 잘못 알게 하거든
보살선지상(菩薩善知想)하야 : 보살이 온갖 아지랑이와 같은 중생들의 생각을 잘 알아서
사리일체도(捨離一切倒)로다 : 일체 전도망상을 다 사리한다. 떠나게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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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각별리(衆生各別異)하야 : 중생이 각각 달라서
형류비일종(形類非一種)이나 : 형류가 한 가지가 아니다. 이 방에 스님들이 한 백 명이 있다 하더라도 다 얼굴이 각양각색이다. 일종이 아니라 각각 다르다.
요달개시상(了達皆是想)이라 : 요달개시상이다. 다 이것이 생각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요달함이라.
일체무진실(一切無眞實)이로다 : 일체무진실이다. 개시상이나 일체가 다 진실이 없음을 요달하도다. 진실이 아니다. 전부 환영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실재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또 어떤 차원에서 보면 아지랑이를 보는 것과 같고 꿈에서 보는 것과 같다.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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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제중생(十方諸衆生)이 : 시방의 모든 중생들이
개위상소부(皆爲想所覆)니 : 전부 생각에 덮인 바다. 사실은 전부 생각놀음이다. 기신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이것을 기신론하고 배대를 하면 너무 잘 맞아서 떨어질 것이다.
약사전도견(若捨顚倒見)이면 : 만약에 전도된 견해를 버릴 것 같으면
즉멸세간상(則滅世間想)이로다 : 곧 세간상을 소멸하게 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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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여양염(世間如陽焰)하야 : 세간은 아지랑이와 같아서
이상유차별(以想有差別)이니 : 상(想) 생각으로써 차별이 있음이니, 사실은 그 생각이 문제다.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판단하고 저렇게 판단하고, 우리가 정치를 두고 생각하는 것이나, 사람을 두고 생각하는 것이나, 날씨를 두고 생각하는 것이나 전부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또 그 생각이 믿을만하냐 하면 절대 믿을만하지가 않다. 그 사람 그날의 상태에 따라서 또 그 사람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진다. 하나도 믿을 것이 못된다. 상이 상으로써 차별이 있으나
지세주어상(知世住於想)이면 : 세상이 상에 머무는 줄을 알 것 같으면, 생각에 머물렀다고 하는 것을 알 것 같으면
원리삼전도(遠離三顚倒)로다 : 삼전도를 멀리하도다. 상전도 견전도 심전도, 생각 상(想)자 볼 견(見)자 마음 심(心)자 세 가지 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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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열시염(譬如熱時焰)을 : 비유하자면 뜨거운 날
세견위위수(世見謂爲水)나 : 세상사람들이 보고 습기가 이렇게 올라오고 아지랑이가 필 것 같으면 그것이 물이 흘러가는 것 같이 보인다. 아지랑이라는 것이 그렇다. 물이 흘러가는 것 같이 보인다.
수실무소유(水實無所有)라 : 물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사람이 착각할 뿐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응당히 그것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막같은 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이 물이 막 흘러가는 것 같아서 상당한 개울물이 많이 흐르는 것 같은데 그것을 보고 거기 짐승들이라든지 또 말이나 염소나 이런 것들이 착각을 해서 물을 먹으려고 좇아가면 또 저만치 멀리 있고 또 저만치 좇아가면 또 저만치 가 있고, 그래서 결국은 목이 말라서 사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지자불응구(智者不應求)인달하야 :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물로 구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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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역부연(衆生亦復然)하야 : 중생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세취개무유(世趣皆無有)니 : 세상 갈래라고 하는 것이 다 있는 것이 아니다.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사람 따라서 온갖 차별을 한다. 그런 것이 다 있는 것이 아니다.
여염주어상(如焰住於想)하면 : 아지랑이와 생각에 머무는 것과 같이
무애심경계(無礙心境界)로다 : 걸림없는 마음의 경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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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리어제상(若離於諸想)하고 : 만약 모든 상을 떠나고
역리제희론(亦離諸戲論)하면 : 또한 모든 희론도 떠나면
우치착상자(愚癡着想者)로 : 우치해서 생각에 집착한 사람으로서
실령득해탈(悉令得解脫)이로다 : 다 하여금 해탈을 얻게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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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교만심(遠離憍慢心)하며 : 교만심을 멀리 떠나며
제멸세간상(除滅世間想)하고 : 세간의 생각을 다 제해서 멸하고
주진무진처(住盡無盡處)가 : 진과 무진의 처에 머무는 것이
시보살방편(是菩薩方便)이로다 : 보살 방편이로다. 진처 무진처, 진에도 머물고 무진에도 머무는 것 그것이 보살의 방편이로다.
6. 如夢忍
菩薩了世法의 一切皆如夢하야
非處非無處라 體性恒寂滅이로다
諸法無分別이라 如夢不異心하니
三世諸世間이 一切悉如是로다
夢體無生滅이며 亦無有方所라
三界悉如是니 見者心解脫이로다
夢不在世間이며 不在非世間이니
此二不分別하면 得入於忍地로다
譬如夢中見 種種諸異相인달하야
世間亦如是하야 與夢無差別이로다
住於夢定者는 了世皆如夢하야
非同非是異며 非一非種種이로다
衆生諸刹業과 雜染及淸淨을
如是悉了知 與夢皆平等이로다
菩薩所行行과 及以諸大願이
明了皆如夢하야 與世亦無別이로다
了世皆空寂이나 不壞於世法이
譬如夢所見 長短等諸色이니
是名如夢忍이라 因此了世法하면
疾成無礙智하야 廣度諸群生이로다
보살이 세상의 모든 법을
꿈과 같은 줄 알아
처소도 아니고 처소가 없지도 않아
자체 성품이 항상 고요하도다.
모든 법 분별이 없어
꿈과 같으며 마음과 다르지 않아
삼세의 모든 세간도
일체가 다 이와 같도다.
꿈 자체는 생멸이 없으며
또한 처소도 없어
삼계(三界)도 이와 같나니
그렇게 보는 이의 마음 해탈이로다.
꿈은 세간에 있지도 않고
세간 아닌 데도 있지 않아
이 두 가지 분별하지 않으면
꿈과 같은 인(忍)에 들어가리라.
비유하면 마치 꿈속에서
갖가지 다른 모양을 보듯이
세간도 또한 그와 같아서
꿈이나 다를 것이 없도다.
꿈 삼매에 머무른 이는
세상이 다 꿈인 줄 알아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고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로다.
중생과 모든 세계와 업이
더럽기도 하고 청정하기도 하니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알면
꿈과 같아서 평등하리라.
보살의 닦는 행이나
여러 가지 큰 서원들이
분명히 꿈과 같으며
세간과 또한 다를 것이 없도다.
세상이 다 공적한 줄 알지만
세상의 법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마치 꿈속에서
길고 짧은 온갖 형색을 보는 것과 같도다.
이것이 이름이 꿈과 같은 인이라
이렇게 세상 법을 알면
걸림 없는 지혜를 빨리 이루어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리라.
*
여몽인(如夢忍)
*
꿈과 같은 진리성이다.
*
보살요세법(菩薩了世法)의 : 보살이 세상법은
일체개여몽(一切皆如夢)하야 : 일체가 다 꿈과 같은 줄을 알아서
비처비무처(非處非無處)라 : 처도 아니고 무처도 아니다.
체성항적멸(體性恒寂滅)이로다 : 체성이 항상 적멸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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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무분별(諸法無分別)이라 : 제법 무분별이라
여몽불이심(如夢不異心)하니 : 꿈과 같아서 마음이 아님이니. 제법은 전부 분별이 없는데 전부 꿈으로 그렇게 안다는 것이다.
삼세제세간(三世諸世間)이 :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세상사가
일체실여시(一切悉如是)로다 : 전부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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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체무생멸(夢體無生滅)이며 : 꿈의 실체가 생멸이 없으며, 늘 꿈꾸지만 꿈의 실체가 생멸이 없다.
역무유방소(亦無有方所)라 : 또한 방소도 없음이라.
삼계실여시(三界悉如是)니 : 삼계가 다 이와 같으니
견자심해탈(見者心解脫)이로다 :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마음에 해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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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불재세간(夢不在世間)이며 : 꿈은 세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부재비세간(不在非世間)이니 : 세간 아닌 데 있는 것도 아님이니
차이불분별(此二不分別)하면 : 차이가 분별할 것이 아니면
득입어인지(得入於忍地)로다 : 진리의 경지에 득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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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몽중견(譬如夢中見) : 비유컨대 꿈에서
종종제이상(種種諸異相)인달하야 : 종종제이상을 보듯이, 꿈에 별별 것을 다 본다. 현실과 똑같이 본다. 과거급제를 하기도 하고 거지도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이광수의 ‘조신의 꿈’ 이야기를 잘 안다. 일생을 살기도 하고, 고생고생 살기도 하고, 때로는 달콤한 순간도 있었지만 결론은 처참하지 않은가? 정말 처참한 일생을 그렇게 살게 된다. 그 아이가 키울 때는 예뻤고, 죽을 때는 슬펐고 하는 온갖 고초를 다 겪고 나서 나중에 꿈을 깨니까 그야말로 덧없는 잠깐의 꿈이더라 하는 이야기다.
종을 두웅 치는데 종소리를 따라서 꿈속으로 싹 들어간다. 그래 수십년의 일생을 다 살고 나서 꿈을 깼는데 그 종소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더라. 종소리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다음 종성을 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이 또 칠 수가 있었다. 참 멋진 이야기다.
우리 현실도 어쩌면 그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세간역여시(世間亦如是)하야 : 세간도 또한 그와 같아서
여몽무차별(與夢無差別)이로다 : 꿈으로 더불어 차별이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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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몽정자(住於夢定者)는 : 꿈이라고 하는 성정 꿈이라고 하는 정에 머문 사람은
요세개여몽(了世皆如夢)하야 : 세상이 다 꿈과 같은 줄을 알아서, 몽정자(夢定者)는 우리가 처음 보는 특별한 낱말이다. 몽정 꿈이라고 하는 성정에 머문 사람이다.
세상이 다 꿈과 같은 줄을 안다. 세상이 다 꿈과 같은 줄을 아는 사람은 꿈의 성정에 최소한도 들어 있는 사람이고 그것을 터득한 사람이다.
비동비시이(非同非是異)며 :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비일비종종(非一非種種)이로다 : 하나도 아니고 또 가지가지도 아님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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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제찰업(衆生諸刹業)과 : 중생의 모든 세상과 업이
잡염급청정(雜染及淸淨)을 : 뒤섞이고 물들고 청정한 것을
여시실요지(如是悉了知) : 여시실요지
여몽개평등(與夢皆平等)이로다 : 꿈으로 더불어 다 평등함을 알겠도다. 중생과 중생에 딸린 세상 중생에 딸린 업, 좋은 업 나쁜 업 청정한 업 물든 업 이것이 전부 여몽개평등이라. 꿈으로 더불어 평등하다.
꿈에서 아주 횡재를 했다. 그런데 꿈을 깨고 나니까 횡재했던 것도 사라지고 산천초목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좋은 것은 좀 남아 있었으면 좋겠는데 안 좋은 것만 사라지고 없으면 좋겠는데,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똑같이 평등하게 그만 사라지고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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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소행행(菩薩所行行)과 : 보살의 행한 바 행과
급이제대원(及以諸大願)이 : 그리고 큰 원력이
명료개여몽(明了皆如夢)하야 : 명료하게 다 꿈과 같아서
여세역무별(與世亦無別)이로다 : 세상으로 더불어 다름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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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개공적(了世皆空寂)이나 : 세상이 다 공적함을 요달하나
불괴어세법(不壞於世法)이 : 세상법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다. 세상법은 그대로 있다. 공부가 굉장히 깊으면 어떤 수행자는 세상이 공적한 줄을 수용하기까지도 한다. 그렇게 수용하더라도 세상법은 그대로 있다.
세법은 불괴어세법이다.
비여몽소견(譬如夢所見) : 그것이 비유컨대 꿈속에서
장단등제색(長短等諸色)이니 : 길고 짧고 하는 등의 모든 사물들을 보는 것과 같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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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명여몽인(是名如夢忍)이라 : 이것이 꿈과 같은 인이라.
인차요세법(因此了世法)하면 : 이 꿈의 이치를 통해서 세상법을 요달할 것 같으면
질성무애지(疾成無礙智)하야 : 빨리 걸림없는 지혜를 이루어서
광도제군생(廣度諸群生)이로다 :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
술몽쇄언이라고 하는 월창거사가 쓴 아주 명문이 있다. 거기에는 불교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전부 불교의 이치가 나온다. 여기 십인품의 이치하고 똑같은 내용들을 보통사람들이 꿈 꿀 때 꿈속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하나하나 들어서 월창거사가 술몽쇄언이라고 하는 책에 썼다.
관응스님은 유식을 하시는 분인데 그 책을 좋아해서 유식의 이치하고 꿈하고, 우리가 꿈꿀 때 나타나는 현상, 그러면서 또 꿈이 허망하다고 하는 이치, 이런 것들과 배대를 잘 시켜서 평생 술몽쇄언과 유식을 섞어서 불교를 설명했다. 관응스님은 아주 뛰어난 분이다. 나도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술몽쇄언도 여러 권 사서 읽었다. 번역하는 사람이 각각 조금씩 다른데 꿈 하나 가지고 불교이치를 설명해도 충분히 설명을 한다. 물론 화엄경의 안목에서 보면 보살정신이 들어있지는 않기 때문에 완벽한 불교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상당한 안목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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