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할 때다 / 정희연
몇 년 전, 동창회 카톡이 뜨겁게 울려 댔다. 친구들은 오십 중반이다. 이제 절반 살았고 앞으로 남을 반을 지금처럼 건강하게 보내자며 서로 응원하는 글이 눈에 띈다. 의학의 발달로 앞으로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그 시기를 미뤄야 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까지도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는데 또 그만큼이 남았다. 새롭게 다시 판을 짜 본다.
국가 또는 공공 단체의 업무를 보는 사람이라면 다른 직업군 종사자보다 공적인 일이 대부분이므로, 업무 처리에서 양심과 공공성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더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한다. 광주 상무 지구는 1990년 이후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상무동, 유촌동 일대에 조성된 대규모 계획도시다. 호남 최대 도시인 광주광역시의 새로운 행정 업무 문화 중심지로 광주광역시 도시 개발 공사에서 시행했다. 내가 공사에 참여한 곳은 시청 앞 도로와 상업용지 구역이다. 지금은 지하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공동구(전선, 수도관, 가스관, 전화, 통신 케이블 따위를 함께 수용하는 지하 터널)가 매설되어 되고 시청 앞 상업 부지 중앙 녹지대 밑에는 주차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도로, 하천 보다 택지 공사가 더 복잡하다. 주거와 공공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들고, 전기나 수도, 가스, 통신, 하수관을 설치하여 주민이 사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해야한다. 또한 주차장 · 공원 · 학교 · 체육 시설물 등 여러 가지 공공 설비를 확충하고 문화 공간도 있어야 한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공사 예정 공정표'를 만든다. 진행되는 상황을 효율적으로 파악하려고 세부 사항을 기록하여 작성하는 문서다. 좌측 아래로는 공정 내용과 금액 나열하고 우측으로는 년, 월, 일별로 기간을 막대그래프로 공사 예정일 또는 목표일을 잡고 그 밑에 인력 장비 자재 공사비의 투입량을 기록한다. 그러면서 다음 사항을 확인한다. 첫째, 전체 공사 기간과 세부 공정의 일정을 계획한다. 둘째, 공사에 필요한 인력 장비 경비 등을 공종별로 투입 시기를 결정한다. 셋째, 다른 공종과의 간섭을 피하고 중요 공정이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넷째, 일정 기간에 일이 집중되지 않도록 분산한다. 마지막으로 비고란을 만들어 작업할 때의 특이 사항, 잠재적 문제점을 기록한다.
공사 금액을 백분율로 표시하고 누적해 도식화한 것을 사선식 공정표라 하며 바나나 곡선이라 부른다. 바차트로 만들어진 예정 공정표 위에 바나나 곡선을 혼합해서 표기하면 마무리 되고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준이 된다. 공사가 시작될 때면 사무실을 짓고 진입로를 만들고 각종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끝날 무렵에는 뒷정리와 시설물 인수인계 등으로 작업속도가 느리다. 케이비에스(KBS)방송국 부지 옆에 구름다리(육교)를 만드는데 3개월 후면 착수해야 한다. 작업에 관계되는 업체에 공정 회의 알림 공문을 보낸다.
글쓰기 공정표를 들여다본다. 내가 글쓰기와 함께할 시간은 30년쯤으로 보인다. 이제 삼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시간은 많은 셈이다. 멋있게 쓰려고, 아는 척 하려고, 예쁘게 꾸미려다 보니 글의 주제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 방향을 잃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어떻게 할까 주저하며 눈치를 보고 뒤로 물러서는 것보다. 스스로를 믿고 확신을 담아 실천으로 옮기면 좋은 결과가 나왔었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어두운 밤 불을 밝히고 몰입하면서 예정 공정표를 만들고 그것을 매일 확인하고 다음을 준비하면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내 공정표를 다시 살펴야겠다. 글을 잘 쓰려면 백 번은 고쳐 써야 한다는데 고작 두세 번 대충 살피고 자축의 술을 마셨다. 지금은 멋지거나 예쁘지 않아도 된다. 독자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사실을 근거로 구체적이면서, 지나치게 꾸미지 않는 등 기본에 충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