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뿐이라는 것? 이 어리석은 은유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당연히 비극이 예정되어 있다. 둘이라는 숫자는 불안하다. 일단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은 첫 선택에 대한 체념을 강요당하거나 기껏 잘해봤자 덜 나쁜 것을 선택한 정도가 되어버린다.
셋 정도면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일이 잘 안 될 때를 대비할 수가 있다. 가능성이 셋이면 그 일의 무게도 셋으로 나누어 가지게 된다. 진지한 환상에서도 벗어나게 되며, 산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체중을 양다리에 나눠 싣고 아랫배로도 좀 덜어왔으므로 몸가짐이 가뿐하고 균형잡기가 쉽다.
혹 넘어지더라도 덜 다칠 게 틀림없다. 실제로도 내게는 언제나 세번째 선택이란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속도에 대해 남자들은 놀라곤 한다. 나는 작별이 왔다는 것을 통보받은 순간 그것을 납득한다. 왜?라는 질문이 없다. 그 중에는 내가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았다며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 자신도 마음의 상처를 자청한 채 헤어지게 된 남자도 있었다. 그때마다 오해를 풀어줘야겠다는 생각도 안 해본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순정의 아이러니를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애인이 그 하나뿐이라면 집착으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상실감이나 또 그에 대비하려는 불안으로 마음이 흔들리겠지만 그런 때 애인이 셋이기 때문에 다음날 있을 다른 남자와의 만남 쪽으로 생각을 돌림으로써 그 기대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찾고 상대에게 다시 다정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순정의 역학을 말이다. 만날 남자가 둘 더 있기 때문에 내가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 역학이 이별의 순간을 견디게 해주는 거라고 말하면 그는 자기의 오해에 더욱 확신을 품을 것이 뻔하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귀찮은 분산을 해가면서까지 애인을 만드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삶의 치명적 진실을 말해줄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지금 막 내 머릿속에 셋에 대한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하찮고 사소하다는 뜻의 트리비알. 그 어원에도 셋이라는 숫자가 들어 있다. 트리비알은 세 갈래 길이란 말인데 누구든지 모일 수 있는 흔해빠진 장소이기 때문에 하찮고 사소하다는 뜻이 된다.
첫댓글 가족 친구 애인 이렇게 골고루 사랑하고 사랑받고 시간 쓰고 해도 건강한 연애 가능함. 균형이 중요한듯
ㅋㅋㅋㅋ상대 남자도 여자애인이 셋정도있는걸 쿨하게 인정한다면 ㄱㅊ
너무 좋아하는 책
이거대로라면 바람도 불륜도 인정한다는거잖아
어떻게 셋씩이나..........바뻐.......
공감해 사랑과 안정의 다이내믹이라는 점에서
내 남친이 나말고 딴여자 둘 사귀는거 인정할 배포가 되어야...가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