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회 12월26일 오금오름공원 답사 사진종합 및 지명안내자료
모임: 1100 오금역 2번구 대합실
참석: 14명 (사진 참조)
오금역 대합실 크리스마스 트리 앞(참석자 전원)
경로:
오금배수지-오름공원-데크경사로업-오름정상-사위전망-송파지역 동네이름 유래약술-휴게소간식-데크경사로다운-맨발걷기장-체육공원-오금공원소망탑-조선전기문신 거창신씨신선경묘역-신선경사위 공조참의 문화류씨류인호묘역-데크난간경사로-폐쇄된 성동구치소 전망-농구장-송파지역6.25참전용사추모비-오금동유래비-개롱역4거리전망-오동나무-개롱골지지공부-숲속도서관-송파도서관전망-테니스장-족구장-성내천야외공연장-성내천산책로-성내6교-장털보설렁탕-4거리-오륜고등학교-송파우체국골목-명동찌개마을(점심)-오금역1번구(귀가)
오금역에 모여
오금오름공원 입구 햇살마루를 거쳐
결빙으로 출입 제한된 하늘정원을 송파구 홍보차원에서 잠깐 실례
롯데월드타워 등 사방의 송파구 주요 지역을 돌아보며 마을유래 설명
휴게쉼터에서 갖가지 간식을 나누고
하늘정원을 내려서 맨발걷기 숲과 소망탑 조선조사대부 묘지등을 돌아
송파지역 6,25전쟁참전 호국유공자 기념비에서 예의를 표해 추모하고
오금공원 유래비와 능선 산책길을 거쳐
마로니에 숲 눈길을 거쳐 테니스장 방향으로 내려서
성내천 야외공연장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배경으로 한 컷 하고
성내천 송파둘레길을 잠시 맛 본후
오금공원 북쪽 언저리로 올라서 처음 들어섰던 오금오름공원 입구 오륜고등학교를 지나
송파우체국 뒷골목 맛거리의 명동찌개마을로 들어서
친구들이 함께 하니 무어라도 맛날 점심을 즐기며 오금공원 답사를 마쳐
♣참고: 오금공원 일대 지명유래 설명자료
♣ 오금오름공원
1987년 건설 송파지역배수지 ‘아리수 오금배수지’(수돗물공급저수지)의 상부를 34년 만에 공개, 기능상실 하부의 옛 구조물 살리는 2017년 조성 햇살마루와 함께 제주 오름 모양의 1만1천 평방미터 공간 하늘정원 조성 2022.9.28. 준공
123층 롯데타워와 올림픽공원 등 송파일대는 물론 남한산성 검단산 아차산 예봉산 천마산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등 산맥과 서울전경, 일출일몰 조망
완만한 경사의 지그재그 데크 산책로와 상부의 의자식탁구비 휴게쉼터 인기
♣ 송파구 동네 이름 유래
잠실동 蠶室洞
조선 초 국립양잠소인 잠실도회(蠶室都會)에서 유래. 옛 사람들의 생활을 엿 볼 수 있는 롯데월드민속박물관과 어린이 직업체험 공간인 키자니아가 있어요.
※잠실이 뽕밭이라는 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요, 서울역사편찬원 자료를 찾아보니 세종 때 양잠기술을 보급하기 위해 설치한 국립양잠소격인 잠실 도회(蠶室都會) 동잠실(東蠶室)이 이곳에 설치되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상전벽해 (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인데, 세상일의 변천이 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잠실이 그 이름에 딱 걸맞는 상황이 되었네요.
삼전동 三田洞
밭이 셋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편안하게 예술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는 예송미술관
※삼전동이 '밭이 셋 있는 마을'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송파구에서 비탈진 고개길이 없는 동네, 삼전동이네요. 서울역사편찬원 자료를 찾아보니 '삼전동 동명은 이곳은 원래 서울 근교 한강 5진의 하나인 삼전도로서 마전포(麻田浦)라고도 하였는데, 삼밭〔麻田〕이 있었으므로 ‘삼’을 한자로 취음(取音)하여 삼전동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마을에 밭이 셋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참고가 됩니다.
석촌동 石村洞
돌이 많은 마을로 ‘돌마리’ 라고 불림. 봄부터 가을까지 수변무대 음악회가 열리는 석촌호수
송파식후경 사족 - 석촌동은 한자 그대로 돌마을, 돌마리라는 데에 이견이 없어보이네요. 백제 때의 고분인 적석총을 쌓았던 돌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 돌마리라고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인데요, 현재 그 동네 남아있는 돌무덤의 규모를 보나, 추가로 발굴되고 있는 지역의 넓이로 보나, 앞으로 남아있는 석촌동의 파란만장한 옛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송파동 松坡洞
소나무가 많은 나무언덕 즉, 송파라고 칭함 아담하면서 예쁜 송이공원과 송파공원이 있어요.
※서울역사편찬원의 송파동 자료-송파동의 유래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나루터 이름인 연파곤(淵波昆)이 ‘소파곤’으로 변음되었다가 소파리(疎坡里)로 된 것이 차츰 송파진으로 불려졌다는 설이다. 둘째는 이 마을의 언덕을 중심으로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 소나무 언덕 즉 松坡라고 불려진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셋째는 옛날 이곳에 사는 어부가 매일 한강에 나가 고기잡이를 했는데, 하루는 잔잔한 물 위에서 고깃배를 타고 낮잠을 자던 중 이곳의 소나무가 서 있던 언덕 한 쪽이 패어 떨어지는 바람에 잠이 깨었으므로 그 뒤부터 이곳을 송파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가락동 可樂洞
1925년 대홍수를 피한 주민들이 ‘가히 살만한 땅’이라 부름
엄청난 규모의 농수산물시장인 가락시장이 있어요.
※조선시대의 가락골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예전에 한강이 범람하여 송파동 일대가 침수되자 주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가히 살만한 땅’ 즉 좋은 땅이라고 하여 1914년에 자연마을을 합쳐 可樂里라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풍납동 風納洞
마을에 바람드리성 즉, 서울풍납동 토성이 있어 ‘바람드리’ 또는 ‘풍납리’로 불림한성 백제시대의 풍납토성
※ 풍납동 동명은 이 마을에 바람드리성 즉 풍납리토성(風納里土城)이 있으므로 ‘바람드리’ 또는 ‘풍납리’로 불리게 된 데서 유래되었다. 또 이 마을에 있는 바람드리성을 백제시대에는 ‘사성(蛇城)’이라고 썼는데, 사(蛇)는 ‘배암’으로서 ‘바람’과 음이 유사하고, ‘드리’는 평야를 뜻하는 ‘들’로서 고대에는 취락의 성읍을 뜻했다. 따라서 ‘바람드리’는 사성을 말하는 ‘배암드르’ 혹은 ‘배암드리’의 와전이며, 사성이 말로 전해지며 ‘바람드리’로 되었으며, 한자명으로 풍납으로 표기된 것이라고 한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방이동 芳荑洞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에서 1914년경 마을 학자들이 꽃다울 방(芳), 흰비름이(荑)로 고침. 식도락가의 구미를 당기는 방이맛골. 백제고분
※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있던 마을로서, 이 마을의 지형이 아늑하고 개나리꽃이 많이 피었으므로 방잇골로 불리다가 한자명으로 방이동이라 표기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병자호란 때 청군(淸軍)이 이 마을을 거쳐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려 했으나 마을 청년들이 남・서・북 삼면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의 지형을 이용하여 청군을 물리쳐, 그 뒤부터 청군을 막았다고 하여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자를 써서 방이동( 防夷洞)이라 하였는데 한자 뜻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어 마을 원로들이 중심이 되어 의논 끝에 꽃다울 방(芳), 흰비름 이(荑)자로 고쳐서 방이골 또는 방이동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오륜동 五輪洞
88서울올림픽을 훌륭히 치루어낸 올림픽공원과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가 있어서 오륜동으로 명명도심속 휴식공간인 올림픽공원이 있어요.
송파식후경 사족 - 오륜동 동명은 이곳에서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것을 기념하고 올림픽선수촌아파트가 들어서 인구가 증가하자, 방이동 일부를 나누어 오륜동을 설치한 데서 유래되었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오금동 梧琴洞
오동나무가 많고 가야금을 만드는 사람이 살았다하여 불림
아이들이 다중지능 체험, 공연도 볼 수 있는 송파어린이 문화회관이 있어요.
※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있던 마을로서,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았고 가야금 만드는 사람이 살았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또 현재 오금동주민센터 동쪽에 지금은 깎아져 내려 평지가 되어 사거리가 된 흰 흙이 나온 백토고개가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다가 이 마을 뒤 백토고개에서 잠시 쉬는데 무릎 안쪽의 오금이 아프므로 측근의 신하에게 “아이구 내 오금이야!” 라고 한탄하였으므로 그 뒤부터 오금골 또는 오금리라 불렀다고 한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마천동 馬川洞
이 지역에 있는 마산(馬山=천마산: 한남정맥 끝자락)에서 유래됨
소박한 인심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마천시장이 있어요.
※ 마천동 동명은 이 지역에 있는 마산(馬山)의 이름을 따서 마산리(馬川里)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일설에는 조선시대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마산을 지나다가 백마를 얻어 말에게 물을 먹인 백마물이란 곳이 있는데, 아무리 가뭄이 와도 물이 계속 나와 마천(馬泉)이라 하였으며 후에 마천(馬川)으로 변한 데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거여동 巨餘洞
거암(巨岩)이란 사람이 살아서 거암리라고 하던 것이 점차 거여동이 됨
수영장, 스쿼시장, 골프연습장이 있는 송파체육문화회관
※거여동 동명은 이곳에 거암(巨岩)이란 사람이 살았다하여 거암리라고 하던 것이 변하여 ‘김이’, ‘겜리’라 하였는데, 1914년 이곳에 있던 잔버드리・개롱리・뒷말 등 자연마을을 합쳐 거여리(巨餘里)라 지명을 정한 데서 유래되었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이설: 송파나루 상인들 놀던 여각(餘閣) 거리란 뜻도
문정동 文井洞
마을에 많이 사는 문씨 (文氏)성을 따서 ‘문정’이라고 부름
젊음과 패션의 거리인 로데오거리
※ 문정동 동명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몽진하다가 이곳에 쉬면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매우 좋아서 이 마을에 많이 사는 문씨(文氏) 성을 따서 문정(文井)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장지동 長旨洞
마을의 생김새가 길고 마을에 잔 버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
식물과 야생동물이 자라는 하천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송파둘레길
※ 장지동 동명은 마을 형세가 긴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마을에 잔버들이 많았기 때문에 ‘잔버드리’라 하던 것을 한자명으로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서울역사편찬원 자료.
[출처] 서울 송파구 잠실, 가락동, 마천동, 풍납동 등 동명 유래|작성자 마하맨
♣ 오금동[梧琴洞]: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동
유래 : 오동나무가 많았고 가야금 만드는 사람이 살았던 데서 유래됨.
인조가 이곳에서 무릎 안쪽의 오금이 아프다고 한탄한 데서 유래됨.
송파구 오금동에 있던 마을로서, 이곳에 오동나무가 많았고 가야금 만드는 사람이 살았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또 현재 오금동사무소 동쪽에 지금은 깎아져 내려 평지가 되어 사거리가 된 흰 흙이 나온 백토고개가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다가 이 마을 뒤 백토고개에서 잠시 쉬는데 무릎 안쪽의 오금이 아프므로 측근의 신하에게 “아이구 내 오금이야!” 라고 한탄하였으므로 그 뒤부터 오금골 또는 오금리라 불렀다고 한다.
♣오금공원 해발200m
♣백토고개
또 현재 오금동사무소 동쪽에 지금은 깎아져 내려 평지가 되어 사거리가 된 흰 흙이 나온 백토고개가 있었는데
♣80년 넘은 옛 고개주막 자리 장털보 설렁탕
♣ 신선경과 류인호 묘역[慎先庚- 柳仁濠 墓域]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금동 오금공원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묘역.
거창신씨묘역 : 서울 송파구 오금동.
지정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서울유형문화재 제78호
지정일: 1991년 12월 24일
크기:1,695㎡
1991년 12월 24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되었다. 송파구 오금동 오금공원 안에 약 100m 거리를 두고 있는 거창신씨묘역과 문화유씨묘역이다. 각각 서울유형문화제 제78호와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던 것을 2008년 10월, 하나로 합치고 '신선경과 류인호 묘역'으로 병칭을 변경했다.
거창신씨묘역은 신선경(慎先庚)과 정부인 한씨의 무덤으로 약 500년 전에 안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분묘 2기, 묘비 1개, 상석 1개, 문무관석 2개로 구성된 쌍분묘이다. 신선경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56년(세조 원년) 사헌부 장령(掌令)을 거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묘 자체도 웅대하지만 비석의 갓은 연화무늬로 장식되어 있어 묘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류씨묘역은 신선경의 사위인 공조참의 류인호(柳仁濠)와 숙부인 거창신씨의 합장묘, 그의 아들 문원군 류복룡(柳伏龍)과 부인 평강 채씨의 쌍분묘, 류복룡의 아들 문양공 류희림(柳希霖: 1520~1601) 3대의 무덤이다.
그런데 류인호의 부부합장묘는 거창신씨묘역 내에 자리잡고 있다. 류인호의 부인이 거창신씨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묘비와 상석, 망주석 1쌍이 있다. 류복룡과 그의 부인 묘에는 비석,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신도비가 배치되어 있다. 류희림의 묘는 제일 위에 있는데 상석, 다람쥐 형상이 조각된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이 배치되어 있다.
류희림은 1561년(명종 16) 식년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항복, 류성룡 등과 함께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는 데 공을 세워 호성공신 3등에 봉하여졌다. 류복룡은 증가선대부 이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贈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역임했다.
♣성동구치소
1977년 개소 2017년 6월26일 문정동으로 이전
♣‘개롱골 장군거리’
병자호란 때, 임경업 장군이 이곳에서 조그만 통속에 있는 갑옷을 발견하고 그 갑옷을 입고 인근 마산에서 나온 말을 타고 출전했다는 일화를 모티브로 하여 2011년 조성되었다. 9월 2일(금)『개롱골 장군거리축제』를 개최한다고 18일 밝혔다. 장지근린공원 장사약수 장사바위
♣ 개롱리
송파구 오금동 · 거여동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오금 거여 장지 문정 가락),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장군이 이곳에서 농을 열고 갑옷을 꺼내 입었다는 전설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장군은 병자호란 때(1636) 개롱리에서 갑옷을 입고 투구봉에서 투구를 쓰고 마산에서 용마를 타고 출전하였다고 전해진다. 개롱리는 현재 오금동 · 거여동 · 장지동 · 문정동 · 가락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개롱리에는 임경업장군의 증조의 묘가 있는데, 임장군의 조부가 암용〔자룡(雌龍)〕의 변신인 여자의 도움을 받아서 이 자리에 묘를 쓰고 임경업장군을 낳았다고 한다. 이 묘터를 매화락지형(梅花落地形)이라고 하였다. → 오금동 [법정동]
[네이버 지식백과] 개롱리 [開籠里] (서울지명사전, 2009. 2. 13., 서울역사편찬원)
♣ 성내천 [城內川]
서울특별시 송파구의 마천동·오금동·풍납동을 관통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하천
길이 9.85km, 유역면적 34.11㎢이다. 청량산에서 발원하여 송파구 마천동·오금동·풍납동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1970~80년대에 하천 제방과 바닥을 콘크리트로 조성한 결과, 유량이 부족하여 1년 내내 메마른 건천이 되었다가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통해 2005년 6월 복원되었다.
한강물과 지하철 용출수를 유입시키고, 수질정화능력이 뛰어난 수생식물 4만 7,000여 본을 심고, 인공 섬을 조성함으로써 어류·조류·곤충이 서식하는 하천으로 탈바꿈됐다. 자전거도로·물놀이장·분수대·징검다리·수변데크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