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구단 쌍방울이 첫 리그 참여(해태의 축이던 군산상고등 전북 선수들 이탈. 조규제등)
기존 월과 금요일 휴일의 5경기에서, 주 6연전으로 바뀐 첫 해.
선동열이 90년 시즌 종료후 한국 프로 야구 사상 국내 선수 연봉 첫 억 대 계약( 1억 5백만원)
(86년 24승6패 6세이브 후 1천 3백에서 87년도 6천으로
(최동원 보다 더 달라는 요구로 극심한 연봉 협상 갈등으로 인한 동계훈련 미비로 87년 두 차례 큰 부상)
5년간 20승 이상 25% 인상, 이하시 삭감 계약.(2세이브는 1승으로 계산)
87년 14승2패 6세이브로 삭감이였지만, 일 년전 연봉 협상으로 팬들에 질타를 받은 구단이 동결. 88년도 6천
88년 16승5패 10세이브. (20승 넘겼지만 전년도 삭감 대상이였지만 삭감 하지 않은점과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20% 안 되는 인상 금액인 7천만원)
89년 21승 3패 8세이브. 선동열은 연봉 일 억 요구. 하지만 구단은 선수단 연봉의 10%인 일억은 안 된다며 9천에 계약
90년 22승6패 4세이브 드디어 1억 5백만원에 연봉 타결.(부자 구단 선수였다면 진작에 최하 1억5천은 넘겼을 것을)
역사상 최강의 전력
투수
선동열이 풀타임 선발로 마지막 활약을 한 해에
91년에 전성기 선발로 풀타임 마지막 활약. 아쉽게도 3년 연속 20승은 실패(19승. 3년 연속 투수 3관왕)
그 뒤를 15승 이상급 투수 이강철에 좌완 신동수 그리고 마당쇠 송유석이 10승투수로
조계현,이광우,문희수,김정수가 선발로 들어가지 못 하고 보조. 최강 투수진(타팀 팬들 '투수가 남아 돈다!' 라며 부러움)
수비
볼 배합과 주자 견제에서 부족했던 장채근이 90년 부상으로 잦은 결장에 신인 정회열에 주전 포수 자리를 내주는 위기.
정회열과 치열한 주전 경쟁 효과로 볼배합과 주자견제에서 크게 향상되며, 91,92년 최고의 완벽한 활약.
주전 되고도 남는 정회열이 백업으로 보조.
기존 내야진에 2년차 홍현우가 백업으로 2,3,유격수를 보조하며 타격에서도 맹타.
외야도 이순철,이호성에 좌익수는 김종모에서 이건열로 세대 교체
타격
89,90부진하던 이순철이 맹타와 도루왕을 차지하고, 90년 부상으로 부진하던 김성한이 홈런 23으로 마지막 전성기활약에
한대화, 이호성(20,20달성)이 활약. 하위타선에서도 박철우와 장채근의 활약과 윤재호도 활약
백인호가 다소 부진. 시즌 후 교통사고와 후유증으로 92년 부터 홍현우가 주전으로.
팀 도루 숫자가 부족한 점이 옥의 티
시즌 내내 2위권과 6경기 이상 벌이며 여유있게 정규시즌 우승(단일 시즌 정규 시즌 첫 번째 우승)
한국시리즈
1차전 선동열이 머리를 짧게 짜르고 전의를 다지며 선발. 하지만 강정길에게 선제 홈런을 맞는등 4실점
6회까지 리드 당하던 해태는 한대화의 홈런등 활발한 타격으로 승리(선동열 승리 투수이지만 포스트 시즌은 여전히 부진)
2차전은 수비 실수 했던 이건열이 역전 쓰리런 홈런과 장채근의 활약으로 승리
3차전은 한국시리즈 3차전의 사나이 문희수와 송진우의 대결
8회까지 투아웃 까지 퍼퍽트를 던지던 송진우가 볼 넷 하나에 그대로 무너진 경기.
4차전 구원으로 나온 선동열이 강석천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는 위기를 겪었지만
장채근의 활약으로 대 역전. 87년 한국시리즈에 이어 두 번재 스트레이트 우승.
정규시즌 운영은 완벽한 김영덕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만 나오면 엇박자 투수 교체
1차전과 4차전 모두 투수 교체 미스 패배. (사람에게 다 주지는 않네요)
신인 지명에서 김응용 감독은 국대 4번 타자 왼손인 김기태 요구. 스카웃터들은 투수 오희주 지명
오희주는 공은 나쁘지 않았지만 투수 총괄 코치인 유남호와 갈등으로 팀을 이탈. 93년 엘지에 5천에 트레이드
(당시 5천이면 지금으로는 3억 이상 하는 금액. 기대는 분명히 한 듯. )
김기태는 92년 홈런 26, 93년 35개의 홈런 94년 홈런 25개로 사상첫 왼손 홈런왕을 하는등
90년대 대표 왼손 거포로 이름 날린 점과는 대비돼.
한일 수퍼 볼 게임이 첫 시행.
1차전 김성한이 괴물 투수 이라부에 홈런을 기록하고
4차전 한국팀 첫 승 경기에서 홈런과 승부 쇄기를 박는 2루타
5차전 부상으로 출전 못 하던 선동열이 5연속 삼진을 잡는 투구로 일본 관중을 놀라게 해.
한국 투수들에 포크 볼 붐을 일으키고, 한국 야구에 많은 자극을 준 대회.
시즌 끝나고 이광우와 박노준의 트레이드. 아마 시절 선동열에 버금 가는 명성을 쌓은 박노준이였지만
92년 선동열 부상(2경기 던지고 그대로 시즌 아웃)에
주 6연전 상황에서 선발진 부상으로 어려움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실패.
김성한, 한대화,노쇠화에 따른 부진과 이호성의 부상으로 투타에서 어려움 겪다 2위로 시즌 마감
92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홍현우의 잇딴 에러가 모두 점수로 연결되고 결승점이 되어 패전.
2,3차전 모두 승리한 것을 감안하면 3대0 스트레이트 승리가 2승3패로 패배.(선동열은 단 한경기도 등판 하지 못 해)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를 4승1패로 잡으며 우승.
92년은 염종석과 정민철의 고졸 에이스 돌풍. 반면 대졸 거액 신인 선수들의 부상과 대조(정민태,지연규등) 되며
고졸 선수들이 각광 받는 계기. 일 년 뒤 해태의 이대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