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학 등 기초역량 강화 위해 ‘교육과정 재구조화’ 필요- 과총·기과협 ‘수학·과학교육과정 개정 정책 포럼

[이윤배]

과총·기과협 ‘수학·과학교육과정 개정 정책 포럼’ 개최

과학기술공학 계열의 인력 공백 문제 해결과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수학·과학 등 기초과학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월 17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이우일, 이하 과총)은 대한화학회, 대한수학회, 한국물리학회,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지구과학학회연합회로 구성된 기초과학학회협의체와 함께 ‘지능형 정보사회를 선도하는 인재 양성을 위한 수학·과학교육과정 개정 방안’을 주제로 ‘수학·과학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정책 포럼’을 개최했다.

우리나라 수학 수업시간, OECD 평균보다 적어

첫 발제는 김화경 상명대 수학교육과 교수가 ‘수학 내용 재구조화 버퍼링’을 주제로 발표 했다. 김 교수는 “객관적 자료 부족으로 PISA2018 설문에 따른 간접 확인만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고등학교 주별 수학 수업시간 평균은 185.7분으로, OECD 평균인 238.8분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릇이 커야 필수 영양소를 골고루 담을 수 있는데 수업시간이 적으면 필수적인 수학 지식을 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현재 ‘피타고라스 정리’를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 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과 급수를 이용하지 않는 정적분의 정의 방식에 대한 계산이 고등학교 교과 내용에 필요하다는 것 등이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며 김 교수는 “이에 대한 현장 의견들을 모아서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수학 교육과정 내용 재구조화와 관련해서는 고등학교 선택과목 예시를 두 개로 제안했다. 하나는 현행 교육과정과 거의 유사하다. 1학년 8단위를 수학Ⅰ과 수학Ⅱ로 바꿨고, 고등학교 졸업 직후 취업 학생들을 위한 ‘직업수학’과 예체능·인문계 학생들을 위한 ‘인문수학’을 배치했다. 다른 하나는 기존 컴퓨터 사이언스를 위한 수학을 모아 ‘정보수학’이라는 과목으로 독립시켜 알고리즘 단원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앞서 제안한 두 방안은 확정된 것이 아니며 계속 수정·보완하고 있는 중”이라며 “행렬과 벡터 추가를 계속 생각 중인데, 이를 위해 제외할 과목은 모든 학생들이 배우지 않아도 될 과목으로 정하는 등, 스마트한 학습 부담 경감 방안을 모색해 최종적으로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잦은 개정에 피로감 누적… “현장 상황 고려해야”

두 번째로는 홍창섭 경희여고 교사가 ‘현장과 함께하는 수학 교육과정 제안’을 발표했다. 홍 교사는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내용의 이동과 삭제가 이뤄져 헷갈리고 학년마다 다른 교육과정과 대입 정책으로 간혹 내용의 결손이 생기기도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가 포장만 바뀌는 교육과정 개정 때문이라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역량 기반의 교육과정’이라고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홍 교사는 “현장에서는 개정에 대한 것을 교육과정 문서보다는 교과서로 확인하는데, 실제 교과에는 ‘역량 기반의 교육과정’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학교 교육과정이 대입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보통 학교에서는 수능 과목을 필수로 선택하고 있어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없는 구조다. 또 2022 수능 기준으로 정시 확대와 맞물려서 <확률과 통계>를 수강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게다가 교사 입장에서는 실용 수학, 경제 수학, 인공지능 수학 등 새로운 과목 지도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홍 교사는 “새로운 과목 교과서와 교재, 교수·학습 자료의 양과 질이 모두 떨어지고 있어 교육과정을 준수하며 지도하기가 어렵고 교사 수급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홍 교사는 “잦은 개정으로 현장에서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어 이를 고려한 작은 변화가 요구된다”며 “개정 교육과정이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운영될 수 있을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고민해줬으면 좋겠고, 교과서 개발도 교육과정 개정과 동시에 연구를 진행해 주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학생들이 최소한의 기본적 과학 역량 갖춰야”

세 번째로 정대홍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가 ‘고교학점제 체제에서 과학계의 바람과 선택’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공부 부담을 덜어주고 학생들에게 교과목 선택권을 주려 했지만, 대학 입학시험에 유리한 교과목 선택으로 이어져 전공 준비만 결손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래과학교육표준 연구에 따르면 고등학교 과학의 역할이 모든 학생을 위한 교양 수준의 과학, 이공계열 분야로 진학할 학생들이 꼭 배워야 할 기본 과학, 이공계열로 진학할 학생들이 진로 분야와 관련해 필요한 심화된 과학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어느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할까.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실질적인 과학 학습 기회 확대 방안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물리학을 예로 들면, 물리Ⅰ과 물리Ⅱ로 구분해 놓은 결과 일부만 학습하는 경우가 생긴다. 학생들이 꼭 들어야 할 내용을 단일 과목으로 묶어서 만들고, 1학년 2학기부터 3개 학기 동안 물리학·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중 선택 학습하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이공계 기초를 탄탄히 해야 할 교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과서의 내용과 양 역시 이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이라 제안했다.

덧붙여서 정 교수는 “공부할 내용을 줄인다고 해서 학생들의 노력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한 훈련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라며 “좋은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과학을 배우고 대학에 진학하길 희망한다. 또한 대부분의 학생이 최소한의 기본적인 과학 역량을 갖추고 고등학교를 마치기를 바란다”고 미래 과학교육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과학 수업 시수 확보 방안 고민해야”

끝으로 남경식 잠신고 교사가 ‘고등학교 교육과정 기반 과학과 수업 시수 고찰’을 주제로 발표했다.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은 적성과 진로에 맞는 학생 맞춤형 선택 교육과정으로 되어 있다. 즉 학생들이 고정된 계열이나 과정 없이 개인별 교육과정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3학년 2학기의 경우는 대입 준비 등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남 교사는 “제대로 가르치려면 지금의 과학과 수업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서 과학과 수업 시수 축소 논의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남 교사는 물리학 수업의 경우를 예로 들며 “작년까지는 기초교과(군)와 탐구교과(군)의 과목에 대해 학생들의 과목별 세부능력과 특기사항을 기록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올해는 거의 모든 과목에서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학생 참여형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수업 시수가 모자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남 교사는 2025년 전면 시행될 고교학점제와 관련된 과학 수업에 대해 “현재 시범 운영 중인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서 다양한 형태로 배울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며 “하지만 물리학 실험의 경우 역학부터 현대 물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어 시간이 부족한 문제 등 교과과정 상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항상 과학 시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단위 학교에서는 과학 수업 시수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다면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해서 학기 단위로 내용을 모두 끝낼 수 있는 수준의 교육과정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교학점제, 학생선택권-진로-입시 연동 필요”

발제 후에는 오병근 한양대 수학교육과 교수와 정용욱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김현정 공주대 화학교육과 교수, 심규철 공주대 생물교육과 교수, 황청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지정토론을 진행했다.

오병근 교수는 “대한민국 수학 교육의 문제는 사회적 문제”라며 “초등학교부터 학교장 추천을 받기 위해 줄 세우기식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경쟁 구도 속에서는 학습 내용을 줄여도 학생들의 학습 부담은 그대로 유지된다. 학습량 경감 등의 이유로 분량과 수준을 낮추는 것은 현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기는커녕 학생들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오는 등 부작용만 양산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수학 교육 정상화가 필요하다며 오 교수는 “기존에 삭제되었던 행렬, 공간벡터, 부등식의 영역, 일차변환, 복소수 등의 내용을 수학이 필요한 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모두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문제를 틀리지 않기 위해 시간을 소모하기 보다는, 필요한 내용을 습득하는 데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용욱 교수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으나 그 결과는 결손된 전공 준비뿐이다. 학생들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대한 용이하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전공계열과 관련된 과학 과목을 충분히 이수하지 않은 채로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라며 “단순히 진로별 권장 이수 과목 안내를 제공하는 소극적인 진로 지도만으로는 대학과 고등학교의 간극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진로와의 연동 없는 학생 선택권 부여는 학생의 학습 양상을 왜곡하고, 교육 결손을 가져왔다. 이것은 학교와 학생, 대학 등 교육의 개별 구성원들에게만 맡겨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입시라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정부 차원의 결단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교학점제가 학생 선택권과 진로 교육, 입시와의 연동을 이끌어 내는 기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학생들 흥미 돋울 수 있는 다양한 과목 개발해야”

김현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꽤 많은 학생들이 기초학습량 미달 수준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충분히 교육하고 학습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는 교과서 1쪽 분량으로 안내되는 탐구를 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탐구 설계에 대한 성취도가 낮게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의 탐구활동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인데, 이것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워크북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김현정 교수는 “학생들을 같은 선택권 안에 모아놓고 상대적으로 성적이 잘나오는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하는 상황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서 대중을 위한 과학, 진로 선택을 위한 과학 등 다양한 과목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이라는 고전적인 구분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흥미를 돋울 수 있는 다양한 과목 개발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심규철 교수는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다고 꼭 배워야 하는 과목일지, 흥미가 없고 학습 의향이 부족한데도 가르쳐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수학을 예로 들면, 꼭 필요한 과목이지만 학생들은 어려워하고 흥미가 없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렵지만 필요하다는 인식을 높이고 성취감을 갖게 하는 인재 양성 방안이 요구된다. 선택과목 수준을 세분화하여 기초과목군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지능정보사회 선도 인재 양성을 위한 미래형 교육과정을 개발하려면 단순히 학습자 선호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보다는 충실한 교육 실천을 위한 장치와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학계에서도 진로 연계 안내와 교과 내용 활동 등 관련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황청연 교수는 “지구과학은 대입 수험생들의 70% 이상이 선택하고 있는 과목이지만, 실제 그것이 흥미로 연결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지구과학 전문 인력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지구과학계도 고민이 크다”고 밝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제기와 해결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황 교수의 지적이다. 더불어 앞으로는 빅데이터와 AI를 이용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황 교수는 “국내·외 지구과학 관련 관측 자료들이 많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고등학교 수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만들고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교육한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인재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순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