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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2월10일 토요일 9시 에 경주 대구로타리 에 있는 신라문화원에 도착하니 옆건물 시니어 클럽으로 가란다
거기에 가니 많은사람들이 있었다 조금후에 전병길 원장님의 인사말씀이 끝나고 남산답사 기행 안내를 해설사가 진행을 하였다
인원은 울산22명대구 ,영천,포항,서울, 각지에서 많은 인원이 참석하였다
계림관광버스로 1호차 2호차로 나누어 오릉으로 9시30분경에 출발하여 오릉에 도착하여
하마비 앞에서 해설을 하였다 (대.소.인.원.개.하.마.)높고 낮음을 가리지않고 개나말이나 임금을 제외한 모든이는내려가라는뜻이다
지금 경주여중자리에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게영정을 모신 집경전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없었짐
오릉은 식혜곡이란 골짜기에 있는 경주 내남사거리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언양쪽으로 내려가다 문천을 건너 남서편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는 봉토분으로 4기는 원형이다 1기는 표형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사적제 172호로 행정구역상 경주시 탑정동 67-1번지 를
포함한10필지이고 , 박헉거세왕가 알영부인 그리고 남해 ,유리왕 파사왕 이 함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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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릉 안에는 알영부인 이 태어났다는 알영정이있다
오릉경역내 숭덕전 북편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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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즉위 5년 (bc53)정월 알영정 우물가에 계용이 나타나 오른쪽겨드랑이 갈빗대 밑으로 계집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이를본 노파가 이상히 여겨 거두어 기르고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이름지었다 ,
얼굴모습은 매우 고왔으나 입술이 마치 닭 입부리와 같아서 월성북쪽에 있는냇물에 목욕을 시켜더니 그부리가 떨어쩟다고 한다
그냇물이 지금의 반월성앞에 흐르는 천이라생각한다,
그래서 그내이름을 발천이라한다
오릉을마치고 천관사터로 향하였다
천관사는 김유신이 천관녀를 기리기 위해지은절
사적제340호
김유신은 마흔이 넘어 장가를 들었는데,
그 전에 금성에 상수(볼모)로 와 있을 때, 외로움을 달래느라 천관이란 기생(?)과 사랑에
빠졌지요. 천관은 어쩌다 기생이 되었지만, 가야 사람으로 아비가 대학자였어요.
문무를 겸비한 예쁜 처녀인데, 기구한 운명으로 기생이 되었지만, 처녀였답니다.
유신은 어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어, 절연했지만, 그 괴로움을 달랠길이 없었어요.
하루는 술에 만취되어 애마 백설총 등에 앉아 졸았는데, 천하의 명마 백설총이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천관의 집으로 갔답니다.
정신을 차려 둘러보니 연인의 집이라...
"네 어찌 나의 심사를 이다지도 모른단 말이냐.........?"
심한 자책감에 보검을 뽑아 애마의 목을 쳤지요.
그이후 천관녀는 머리를 깎고 김우신을 위하여 비구니가 되어 기도를드렸음
나중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유신은
나이가 희끝하여 천관녀를 찿으니 천관은 이미 죽고 없었습니다 , 김유신은 천관의 집터에 절을 짓고 애마와 천관을 그리며
'천관사'라하였습니다
천관사터를 뒤로 하고 도당산으로 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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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산은 산업도로로 갈라졋있고 취수장이 들어있는 옛날의 정취는찿아볼수가 없고 온산이 무덤으로 채워젔있었습니다
신라시대의 토성이라는대는 예날 예비군훈련장할때 파놓은 방공호 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생각
도당산에서 내려왔어 김유신 생가터에서 재매정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후에 재매정에 대한해설을 시작하였다1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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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재매정 모습
유신이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데 백제군이 다시 처들어왔다는 소식에
이우물에 물을 떠오라 하여먹고는 물맞은 옛날물맞그대로라고 하고는 전쟁터에 그대로 갔었다는이야기
다음에는 월정교 일정교 로 향하였다
월정교는 원효대사의 전설이깃든이야기
빠진도끼만 있으면 도끼자리로 하늘을 받치는 기둥을 만들리라
이다리에서 널쩌 옷을 다버리었어 말리려 성으로 대려다 놓아음
그래서 태종무열왕이 요석공주에게 장가들어서 설총이라는아들을 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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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월정교
아래는 일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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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교
이다리는 효불효교 혹은 칠성교라 불린다
일곱 아들이 홀로 된 어머니를 위하여 다리를 놓는다는 내용의 설화.
경상북도 경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교량전설(橋梁傳說)로서 효불효교전설(孝不孝橋傳說)·경주칠교전설(慶州七橋傳說)·칠성교전설(七星橋傳說)이라고도 한다.
이 설화는 ≪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 교량조에 수록되어 있고, ≪한국구비문학대계≫ 경주 월성편에 2편이 채록되었는데, 각 편의 내용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효불효교는 경주부 동쪽 6리 되는 곳에 있는데, 신라 시대에 아들 일곱을 둔 홀어머니가 그 아들들이 잠든 틈에 남자를 만나러 다녔다.
그 아들들이 이 사실을 알고 서로 의논하기를 “어머니가 밤에 물을 건너 다니시니 자식의 마음이 편하겠는가.” 하고 이에 돌다리를 놓았다. 어머니는 부끄럽게 여기고 야행(夜行)의 나쁜 버릇을 고쳤는데 당시 사람들이 그 다리 이름을 효불효교라고 불렀다.
구전설화에는 이 다리를 일곱 아들이 놓았다고 해서 ‘칠성교’라고 하기도 하고, 일곱개의 돌을 놓아 만든 다리이기 때문에 ‘칠성교’ 또는 ‘칠교’라고 한다고도 전한다. 또한, 어머니에게는 효성스러운 행위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가 되는 일을 한 것이라 해서 ‘효불효교’라고 한다는 해석도 있다.
일정교를 마지막으로 모든답사를 마치었다
답사를 마치는시간이되었서 조금씩 비가 오기시작하였다
아마도 석별의정이 아쉬움이 남는모양이다
3시로 모든일정을 마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