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건축은 두가지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병원을 건축물자체로 인식하여 개개의 병원의 기능, 공간, 환경 설비의 건축적 제요소의 성능을 계획해 나가는 방법과, 또 하나는 병원을 광의의 의료시설체계 중에서 포괄적 의료-건강, 예방, 진료, 사회복귀-의 중심 시설로 인식하여 의료수요의 파악에 의한 진료권의 설정, 시설수준별 적정배치, 시설연계 등을 계획해 나가는 지역의료시설계획의 차원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현대식 대규모병원 건설경험의 축적을 발판으로 많은 병원건축계획의 자료가 정리되어지고 있고, 선진국을 능가하는 최첨단설비의 병원건설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 병원단위의 건축계획의 질은 충실해지고 있다. 그러나 의료의 급속한 발전의 결과가 직접적으로는 수명의 연장으로 나타나, 고령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병원건축은 개개의 병원건축의 계획을 넘어서서 일상생활권에서의 양질의 의료 확보 및 병상수 확보, 응급의료체계와 의료협력관계의 정비, 가정과 사회복귀 시스템의 체계화, 만성기 노인전문병원 및 노인케어시설의 정비, 의료시설과 복지시설과의 연계라는 포괄적 의료복지시설계획의 중심핵으로서 재조명되게 되었다.
--병원건축의 현상과 문제점
우리나라 병원건축계획의 문제점은 미국식교육을 받은 의학기술과, 일본의 영향을 받은 병원관리체계와, 환자를 둘러싼 한국적사회관습과 의식이 복합적으로 접목되어 우리나라 특유의 병원구조를 요구받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대규모 병원건축은 선진국수준을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러있으나 일상생활권의 의료는 대부분 크리닉에 의존하고 있어서 일상생활권의 간호중심의 병상수 확보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대형 중심병원들이 첨단의학에 의한 조기진단과 처치에 대처하는 첨단진료시설로 변모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원환자 간호중심의 대규모 병상수를 필요로 하는 병원으로 되어버리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선진국의 첨단병원들이 가능하면 병상수를 줄이고 중앙진료부분과 외래진료부분을 전문화 첨단화시키고 있는 최근의 경향과 비교하여본다면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또한 의료의 최종목표를 급성기 질환에 대한 진단, 수술, 처치 등에 두고 있어서 의료의 목표를 환자의 사회복귀 및 자립까지로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의료목표의 확장에 따라 MSW(메디컬 소시얼 워크)의 확보, 재활의료의 확충, 만성기병원의 전문화, 의료시설연계가 완성되어 선진국형의 병원건축으로 발전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존의 의료체계의 중심에 있는 많은 병원들이 건설된지 오래되어 의료환경의 노후화에 직면하고 있음으로 진료환경 개선과 첨단 과학의 의료를 수용할 수 있도록 리노베이션시켜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의 하나이다. 최근 의료수요의 증가와 의료서비스 개선의 요구에 따라, 신축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병원건축의 정비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의료관리체계 및 환자 중심의 의료 환경개선, 컴퓨터 과학을 이용한 첨단기술의 도입, 유전공학 및 장기 이식수술 등에 대한 연구 및 투자를 증가시킬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신축대규모 병원의 의료환경 개선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환자중심병원으로서 환자측면에서 쾌적하고 편리한 어미니티시설로서의 계획. •중앙진료부문의 비중의 증대와 컴퓨터과학을 이용한 진단의학의 투자 비율 증가. •외래부에 특성화된 센터화 개념를 둔 전문화 및 복합화의 추구. •전산화와 예약제에 의한 대기시간의 단축과 동선발생의 단순화. •공용공간의 어미니티적 측면에서의 환경개선과 대기공간의 인테리어적 개발. •대규모 중정을 활용한 자연환기와 채광의 극대화. •다인실의 4인실 병실화 및 화장실 설치 필수화. •병동별로 환자전용 식당 및 데이코너 설치와 환경개선. •의료스탭 공간들의 어미니티 개선. •재활의학부의 적극 도입과 환경개선. •조기진단 건강검진 건강증진 등의 예방의학부문의 확충 •미래의학에 대한 연구기능 확충 등을 들 수 있다.
--변화할 수 없는 병원건축의 원점
병원건축은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에 속하는 하나라고 말해지고 있다.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의학 및 의료기술에 대응해 가면서 성장‧변화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미래의학이 변화하여간다고 해도 병원건축에서 변화할 수 없는 중요한 속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능의 양면성이다. 병원건축은 의료종사자와 환자라는 상반된 입장의 클라이언트가 존재하고 있다. 전자는 기능성과 성능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쪽이고, 후자는 거주성과 간호의 따뜻함을 간접적으로 요구하는 쪽으로, 양쪽 모든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면, 수술이라는 비정한 진료행위가 있는가 하면, 환자의 괴로움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애정도 필요하다. 장기이식의 경우 제공하는 차가운 측이 있는가 하면 제공을 받는 따뜻함을 구하는 측이 있어서, 양자 사이에 미묘한 조화를 필요로 한다. 거기에는 죽음과 회생이라는 극단적인 인간생명의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을 정확한 이해와 뛰어난 창조력의 발휘에 의해 공간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 병원건축의 원점이 된다.
둘째, 의료기기의 발달과 병원건축의 융통성이다. 진단‧치료를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기기 및 기계가 등장한다. 이것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의 병원건축은 이러한 것들의 주문에 대응한 공간적‧설비적인 배려를 요구받게 된다. 기계의 진보와 변화는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컴퓨터의 도입과 더불어 병원 업무가 자동화된 인텔리젼트병원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더욱더 진행되어 건축 그 자체가 진료기기의 일부로 취급되어버려지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예를 들면, 고에너지 방사선조사실, 백혈병치료의 무균병실 등이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종래의 병실의 공간개념과는 다른 공간이다. 의료상 필요에 의해 반드시 만들어져야 되겠지만, 이러한 특별한 공간이 건축의 유연성, 융통성을 없애는 결과를 낳게되어 병원건축의 디자인을 구속하게 된다.
셋째, 병원의 수요는 그 시대의 척도이다. 시대에 따라 위생문제, 경제상황, 사회의 제 조건이 변모하고, 그에 따라 질병구조 및 요구내용도 크게 변화하여 왔다. 따라서 병원계획도 그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위생조건의 개선과 항생제 등의 발달로 결핵환자가 거의 없어짐에 따라 결핵요양소가 그 필요성을 상실하고 있다. 한편, 노인인구의 증가는 성인병증가를 유발하고, 따라서 뇌출혈후유증환자에 대한 재활전문병원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교통사고 후유증환자를 위한 사회복귀 의료시스템도 개발할 필요가 생겼다. 또한 문명사회의 발달로 정신병, 스트레스환자가 늘고 있어 이러한 요구를 병원계획에 반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요구의 변화를 예측하여야하고, 문명발달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그 예측의 길이는 길어져야 하는 것이다.
넷째, 병원은 다기능시설로서 소공간의 집합체이다. 기능이 세분화됨에 따라 목적이 특별하게 다른 소공간으로 분리되면서도, 또한 그 기능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환자 프라이버시의 확보, 수술실 등의 청결관리, 감염증환자의 격리, 방사선방호 등의 실내성능이 다른 소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나, 동시에 어떤 환자가 앞의 소공간을 이동하면서 이용함으로 소공간들이 서로 분절되면서도 복합체의 성격을 띤 복잡한 공간구성을 갖고 있다.
다섯째, 이용시간대가 서로 다른 부문끼리의 집합체이다. 병동부문처럼 24시간동안 활동을 계속하는 장소가 있는가하면, 주간 8시간밖에 움직이지 않는 외래진료부문이 있다. 또 응급부와 분만부처럼 이용시간대가 불특정하면서도 상시 대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곳도 있다. 따라서 명확한 이용시간대별 Zoning을 고려치 않으면 이러한 면에서 관리상, 설비면의 계통 등에 불합리한 점이 생기기 마련이므로 사용시간대별 병원기능의 정확한 Zoning이 필요하다.
여섯째, 기동성부족의 환자수용과 안전성의 확보이다. 병원은 기동성 없는 수많은 환자를 수용하고 있으므로 특별한 고려를 필요로 한다. 각종의 재해에 대하여 안전하여야만 하는 특수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자살을 기도하는 환자에 대해 배려해야 되는 면도 있어, 이동 및 보호의 안전 등, 안전성에 대한 제약이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으며, 병원내 감염 등도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제약을 충실히 해결하다보면 공간적 풍부함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낳게 됨으로 충분히 안전성을 확보하는 반면에 창의력으로 매력적인 공간을 구성하려는 노력도 필요하게 된다.
일곱째, 인공환경의 고도화이다. 인공환경의 달성으로 자연의존의 환경조건으로부터 해방되어 근대적인 파빌리온형의 구성으로부터 기능을 우선으로 한 자유로운 평면형으로 발전을 가능케 하였다. 반면, 고도의 설비 유지비부담은 병원의 재정을 압박하여 중장비를 갖춘 병원의 체질이 오히려 약화되었다. 따라서 그것을 절약하는 방법으로 인건비의 절감, 소등‧설비정지등이 강요되어 병원환경을 나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적절한 설비투자의 결정이 필요하다.
여덟째, 정보시스템과 환자의 생명과의 관계이다. 최근의 의학은 한명의 환자에 대하여 가능한 모든 정보를 종합한 결과를 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많은 환자에 대하여 다양한 직종의, 다수의 의료종사자가 상호 협력하면서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환자의 생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최근에는 병원자동화 경향 속에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라는 양면의 시스템으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진료내용의 향상 및 운영의 효율화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병원의 건축계획면에서도 계획의 초기단계부터 어디까지의 시스템을 채택할까를 검토하여야 되며 이러한 시스템의 채택에 따라 건축의 형태가 크게 변화한다.
아홉째, 간호의 중요성은 장래에 크게 두개의 방향에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고도의 간호를 마지막까지 추구하는 방향 (Intensive Care)과 다른 하나는 종합적, 포괄적인 간호의 방향 (Total Care)이다. 기계적이고 적극적으로 환자를 치유시키는 방향과 나이팅게일과 같이 환자가 스스로 치유되어가는 것을 돕는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병원건축을 다루는 경우에도 이러한 두 개의 태도가 있다. 하나는 새로운 첨단적인 의료기술 혹은 공학기술을 적용하여 고도의 의료적‧건축적 성능을 추구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의 입원생활을 중시한 병동, 병실의 구성 및 급식, 하우스키핑, 거주성의 확보 등을 추구하는 방향이다.
--미래의료와 병원건축의 변화예측
미래 사회는 컴퓨터과학의 발달, 유전공학과 의학의 접목, 장기이식수술의 발달 등첨단기술을 다루게 되어 지금의 진단의학에서만 적용되는 첨단과학들이 처치, 수술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중앙진료부가 근본적으로 해체되어 예를 들면, 유전공학부문, 장기 냉동보관부문 등의 전혀 새로운 병원의 부문구성으로 재편성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병원건축은 현재 분류되고 있는 병동부문, 외래진료부문, 중앙진료부문, 관리부문, 서비스부문 등의 5개부문의 구성이 소극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고 빅뱅과 같은 대변혁을 거쳐 새로운 진료기계로서의 부문들로 재편성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생명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더욱 주장하게 될 것이며, 병원건축에 대한 사회적 가치는 고도로 민감한 첨단기술을 통한 의학으로 치료받게 되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의료는 환자를 전체로 다루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며, 병이 환자에게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면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윤리적 측면에서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미래의학의 발전은 새로운 형태의 의료관리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고 병원건축은 그러한 변혁을 수용하는 그릇으로 재편성될 것이다. 극단적인 첨단기계로서의 병원인 동시에 따뜻한 인간거주를 요구하는 어미니티의 그릇으로 그 양면성을 갖게될 것이다. 병원건축계획의 목표는 새로운 미래의 의료행태를 수용할 수 있는 <시공간 구조의 제안>이 되어야하며, 그것을 형성하는 다양한 병원공간의 물리적 어휘를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목표는 앞으로 경험하게 될 급격한 발전과 의료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 갈 수 있는 성장과 변화를 창출하는 것이 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