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낚시만큼 남성적이며 호방한 레저도 드물다.
바다위로 한발 내딛는 순간 고단한 현실과 유리되어
혼자만의 무한공간으로 이동한다.
흔적을 갖지않고 소유하지 않는
바다의 순결함에 매료당하는 사이,
현세의 욕망과 번민은 스치듯 달아난다.
낚시 동호회 회원인 남편과 가족동반 배낚시를 가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멀미약을 정성스럽게 붙여주는 남편의 흥분된 모습-
배낚시에 무지한 나도 들뜨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번 낚시가 무척이나 기대되는 모양이다.
아이들 점퍼며 갈아입힐 옷 그리고 햇빛을 가릴
챙있는 모자를 꾸리다보니 어느덧 자정이 되었다.
선잠이 들었고 잠을 깬 시간이 새벽 3시였다.
조금만 더 눈을 붙일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함이 밀려온다.
아이들을 깨워 "자동차 안에서 더 자거라."
다독거리며 네식구는 어둠속으로 스며들었다.
칠흙같은 야밤에 떠나는 여행.
야반도주의 기분이 이랬을까.
대낮같은 도심의 휘황한 불빛을 뚫고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캄캄한 어둠이다.
바쁜듯 질주하는 자동차 불빛들만이 도로를 비추어 줄뿐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산과 들이 어둠에 먹히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새벽 어스름 속에 잠긴 5시30분의
인천 연안부두 선착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바다 배낚시 전문> 이란 간판이 걸린 상점에서
낚시 도구와 물건들을 옮기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부두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우리는 '화성3 호'에 승선. 바다 한가운데로 던져졌다.
짙은 회색빛 바다 위에서 내 가슴은 물결과 함께 요동치고 있다.
낚시회 회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았다.
내가 자리한 배의 뒷부분은 소음이 대단해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어둠속 성난 바다의 울부짖음과 찢어지는 듯한 모타소리,
동트기 전의 바다는 위험하고 불안하다.
회원들은 생미끼인 미꾸라지를 나누기 시작한다.
파고높은 물결속에 하나. 둘 마음을 드리우고 시간이 간다.
낚시배 하면 나무로 만든 작은배를 생각했던 내게 '화성호'는 제법 훌륭했다.
해풍에 그을은 검은 낯빛의 선장과 작은 주방에서 식사를 전담하는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주방 한켠에서는 잘 손질된 꽃게와 탕에 들어갈 생선들이 싱싱하게 빛나고 있다.
지난밤 불면의 피로가 무력하게 만드는지 식당 옆에 자리한 조그만 방도 아늑해 보인다.
아침 일곱시가 가까워지자
차츰 바다를 덮었던 회색의 베일이 걷히기 시작했다.
먹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엔 순백의 부드러운 양떼들이 달리고 있다.
남편은 태양이 구름 뒷편에 숨어있어 낚시 하기엔 안성 마춤 이라 했다.
언뜻언뜻 보이는 조각난 쪽빛 하늘이 신기하리만치 동해바다를 꼭 닮았다.
바다에는 여섯척의 배가 섬처럼 떠있었다.
모두가 오늘 하루의 배낚시를 위해 새벽에 달려온 낚싯배이리라.
낚시를 하기 위해 정지 했을때의 바다는 차분한 청회색이다.
추운 겨울날 뛰놀다 곱은 아이의 손을 연상시킨다.
파도는 잔잔하다. 뜨겁게 달구어지다 식어가는 도토리묵의 표면처럼
한꺼풀의 막이 씌어진듯 잔잔한 물결 무늬만이 가득하다.
"이 바다가 말이죠, 보기에는 조용해 보여도 물살의 힘이
엄청 납니다. 이곳에 휩쓸리면 인천 연안부두까지 그냥 떠밀려 갑니다."
회원 중 한 사람이 바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들의 귀가 그를 향해 열려있다.
그러나 나른한 피로에 휴식을 원하는 나에게
바다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듯 감미롭기만 하다.
지하 선실로 내려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정원 38명> 이라 명시된 선실은 비교적 넓었고
스폰지요와 얇은 이불, 바다낚시에 대한 잡지가 놓여있다.
스르르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웅웅웅 나는, 거대한 문어의 빨판 같은 바닷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기침이 나오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처음 들어설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지하 선실의 곰팡이 냄새에,
등 뒤로 느껴지는 눅눅함까지 더해져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선실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하늘은 맑게 개어 있고 바람도 시원했다.
좀전의 끕끕했던 기분은 씻은듯 사라졌고 나는 온몸으로 바닷내음을 맡았다.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 그것은 확실한 바다의 상쾌한 공기임에 틀림 없었다.
배가 멈췄다. "수심 30m . 여기서 낚시 하십시오." 하는 선장의 목소리에
회원들 일제히 릴을 당겼다가 멈추고 다시 당기고 놓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지깅낚시이다.
주로 수심 30m 에서 100m 사이에서 이루어 지는데 지깅으로 낚을 수 있는
어종은 다양하단다. 바다에서 낚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어종을 잡을 수 있는데
주로 바닥층에 서식하는 우럭. 광어. 뽈낙 등등을 잡는다 했다.
미꾸라지를 미끼로 우럭을 잡으려는 강태공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잔잔한 물결소리와 낚싯줄 떨어지는 소리 드르르륵....
납으로 된 추가 바닥에 닿는 느낌에 전율 하며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반복한다.
"잡았다."
남편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손바닥만한 우럭 한마리. 살아서 파닥파닥 뛰는 생명을 보니 신기했다.
바다가 품고 있는 자유로운 세계에서 헤엄치며 뛰어놀았을 생명에 한순간 경이로움을 느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월척의 소리들-
캬~ 하고 토해내는 우럭들의 바닷물 토하는 소리가 가슴을 찌르는듯 하다.
진정한 낚시란 '고기를 낚는다'는 것으로
잡은 후 다시 놓아주는 것 이라는데
속세의 인간인 우리는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닌 먹기 위해 잡는다.
싱싱한 꽃게탕으로 시장기를 면하고 나니 '화성3호'에 다시 활기가 찾아왔다.
난간에 서니 바닷속으로 빨려들 듯 아득하다. 낚싯배의 생동감도 잠시 고요한 적막.
"낚싯대 접으세요. 다른곳으로 출발 합니다."
곳곳에서 우럭을 낚는 소리와 쓸모 없는 불가사리를 잡고
실망하는 소리로 긴장이 팽팽할 즈음이다.
미끈미끈한 붕장어가 낚싯줄을 친친 감고 올라온다.
세월을 낚는 듯 남편의 얼굴에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낚시인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돌아가야 할 시간- 하늘은 눈이 부시게 맑은 스카이 블루다.
팔뚝만한 우럭을 간간히 획득한 강태공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덕적도. 자월도. 작은 등대섬.
바위섬들로 이루어진 작은섬을 뒤로하고 5시에 끝마무리를 했다.
회원들은 선장의 돌아간다는 소리를 시작으로
아쉬운 듯 낚싯대를 정리하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회원들의 입가에 홀가분한 듯 아쉬운 미소가 번져 나오고 있다.
육지에 오르니 바다에서의 열한 시간이 신기루인 양
산과 들, 상점이며 인가의 모든 사물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
바늘이 없는 낚싯대로 낚시를 했다는 태공망.
강태공은 강가에서 세월을 낚았고,
나는 야반도주 하듯 치르어낸 바다낚시에서
꿈틀대는 생의 파란 꿈을 낚았다.
첫댓글 바다낚시... 얼마 전에 남녘의 거제 앞바다 '소매물도'부근에서 몇 마리 못잡은 기억이 새롭워집니다.좋은 추억을 담으셨네요. *^^*
정아님~~ 바다낚시를 통해 낚은 파란꿈~~ 지금도 여전하시죠? 결혼을 하여..........낚시대를 닦으며 아끼는 남편에게 그렇게 그게 재밌는거냐고 물었던적 있습니다. 보여주겠다며 낚시대를 메고 데리고 간곳이 한강이었습니다. 기다림을 배우고 왔던것 같아요. ^^ 18년전 일이라..ㅋㅋㅋ 항상 꿈을 향해 발돋음하는 모습 좋아보입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생동감 넘치는 바다낚시 이야기를 잔잔하게 엮어가는 그댄 각각의 사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듯 하오..호기심어린 관찰력도 상당하구요...^^..감동안고 갑니다..^^
생의 파란 꿈, 그 꿈이 뭐였을까. 우럭이었을까 고등어였을까...... 정아의 파란 꿈에 같이 젖어본다.
역시 붓의 터치가 부드럽고도 매끈하게 잘 넘어 가네요. 저런 붓이라면 온 몸을 내맡겨도 좋을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글이 짧고 생동감이 있어서 매력적입니다. 이야기도 쉽게 쓰여져 있어서 더욱 호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