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작이지만, 이승현 회장의 요청으로 이 글을 동창들에게 공개한다. 게시판인 관계로 사진을 함께 올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틈나면, 멋진 사진을 골라서 나중에 올리도록 하겠다.)
인천국제공항이 개항된 지 여러 해가 되었건만, 해외 구경할 일이 생기지 않아서 몸이 근질근질한 지 제법 지났다. 그런데, 아내가 여름 휴가에 혼자 중국을 다녀오라고 적극 추천한다. 이런 격려와 지원 덕택에,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 혼자서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이 과거 우리의 적성국가였다는 딱딱한 사고방식이 아직도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구식 인물이라서 그리 되었을 테지. 다녀온 곳은 양쯔강 중상류지역의 동정호 이남, 즉 후난(湖南)성에 있는 장자지에(張家界)라는 곳이다. 3박4일동안 보고 들은 여행 경험을 늘 하던 습관대로 글로 남겨 두고자 한다.
오후 1시45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약속장소인 3층 L 카운터로 갔다, 출국 3시간 전에 도착했다. 33명 일행이라 한다. 전화통화로 목소리만 들은 가이드 하나연 씨를 만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행이 있는데, 나는 혼자라서 심심할까봐 약간 걱정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혼자서, 보람있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녀석이 빌려준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형 녹음기라는 첨단 장비를 맘껏 활용해 보자는 결심도 했다. 먼저,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어 공항 대합실 전경을 한 컷 찍었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보세구역 안으로 들어가니 서울고검에서 함께 근무하던 선배검사님 부부를 만났다. 모스크바로 여행하는 것이란다. 다음 여행 때는 나도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해야지...
활주로에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나타났다. 중국 남방항공 소속 소형비행기이다. 트랩에 다가오는 여객기가 80인승인데 미국 국내 여행 때 본 것처럼 조그맣다.
4시간여 비행 끝에 장사(長沙) Changsha 공항에 도착했다. 후끈한 지열에 이곳이 남방지방임을 알 수 있다. 공항은 조그만 시골공항 느낌이었다. 검역과 입국심사를 마치고 대합실에 들어가서 처음 눈에 띈 것은 책 진열장이다.
중국어로 된 책 중에 내 눈에 띈 것은 한국에서도 베스트 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Who moved my cheese)?”라는 책이다. 그 책 옆에 “It's me that moved your cheese!(中國人自己的...)”이라는 책이 함께 있었다. 아마 어느 중국인 작가가 자기들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책자인 모양이다. 우리 큰 형께서 좋아하는 이 책이 중국에서도 꽤 히트 치고 있음을 확인해서 반가웠다.
호남성은 중국에서 인재를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모택동, 호요방, 주룽지 등이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비행기를 국내선으로 갈아 타고 40분을 더 날아갔다. 드디어 장가계에 도착했다. 공항 밖에는 한글로 “환영합니다”라는 간판이 크게 붙어 있다. 현지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는 21세의 젊은 연변출신 교포 4세 총각이다. 이름은 변일남...
시내로 들어가는 데 한글로 ‘발맛사지’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나보다. 일본어 간판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이곳으로 관광을 많이 안오나보다.
첫날 숙박지인 상룡국제대주점(祥龍國際大酒店)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가장 좋은 4성급 호텔이란다. 근데, 주점에서 1박을 하려니 웬지...
9시 넘어서 먹게된 저녁식사는, 빙글 도는 회전식 원탁에 여러 가지 야채 등으로 구성된 중국 정통요리가 올라왔다. 마침 시장한 터이라 맛있게 식사를 하고, 호텔 밖으로 구경을 나갔다.
2. 장가계 시내 거리 8자 산책
호텔 정문을 벗어나 우측 큰 길로 걸었다. 교차로가 나타나자 다시 우측으로 발길을 돌렸다. 각종 과일, 꼬치구이 등 노점좌판이 복잡하게 펼쳐진 시장 골목이다. 다시 우회전하니 인적이 한결 줄어들고, 우체국과 의류전문 매장이 나온다, 지저분한 느낌이 들었지만, 한참 걸어가다가 다시 우회전했다. 노인들이 한적하게 웃통을 벗고 도로를 따라 걷거나 도로에 간이침대를 놓고 누워있다. 다시 교차로에 다다라 행운의 글자 목걸이를 판매하는 부부 노점상을 구경하면서 우회전했다. 그러다보니 네모 모양으로 한바퀴 돌아 호텔 앞에 도착했다.
내친 김에 계속 직진해서 이번에는 도로를 건너 좌회전했다. 곧 술집 등 유흥가가 나타났다, 약간 겁이 났다. 취객이 지나다니고, 종업원들이 밖을 내다보는 표정도 썩 달갑지 않다. 괜히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부지런히 걸었다. 첫 교차로에서 좌회전했다.
1-2분 지나자 도로가에 장가계시 인민법원이라는 간판이 나타났다. 반가웠다. 우선 안전한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놓였다. 대문 안을 슬쩍 들여다 보았더니, 법원 당직 직원들이 런닝셔츠 없이 웃통을 벗은 채 편안히 지키고 있다. 도로에는 마작을 즐기고 있다. 이나라 치안이 안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가니 이번에는 공안분국 건물이 나왔다, 그 앞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포커 놀이를 하고 있다. 공산국가 답지 않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본 모습이니 어쩔 수 없다. 그 옆에는 공산당 위원회 건물이 있었는데, 역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아마 이 기관들이 장가계 지방정부의 핵심 기관들인 모양이다. 아쉽게도 인민검찰원 간판은 발견하지 못했다. 인민법원 안에 함께 있겠지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하면서 다시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했다. 길이 다시 한적해 졌다. 웃통 벗은 젊은이들이 지나다닌다.
나도 웃통을 벗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른 티셔츠를 벗고 런닝셔츠까지 벗어서 손에 집어들었다. 밤 10시 넘어서 다니는데는 이게 관광객 티가 덜나서 오히려 안전할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가까이 다가오자 다시 셔츠를 입었다. 행운의 글자 목걸이를 판매하는 노점상있는 곳에 발이 머물렀다. 좌판 앞에 주저 앉았다. 여러 가지 한자가 적혀있는 목걸이 조각을 뒤져보았지만, 중국어 한마디도 못하는 터라 쭈삣거리기만 했다.
주인이 한참 기다리더니 내게 종이를 꺼내 준다. 그래서 나는 “何製”라고 썼다. 내딴에는 무엇으로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한 것이다. 그랬더니, 주인이 주섬주섬 찾더니 “何”자 조각를 찾아주었다. 내가 “何”자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으로 짐작한 것이다. 일종의 미스커뮤니케이션이지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필담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아내,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님 들 이름 글자들을 두루 찾았다.
그런데, 한개당 가격이 얼마인지 미처 묻지를 않았다. 아차 싶었다. 바가지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가격을 어렵사리 묻자 한개당 중국돈 1원이라고 한다.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나는 중국돈과 한국돈, 그리고 미 달러와 환율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몰랐다. 더 부끄러운 것은 출국당시 중국돈 환전을 하나도 해가지 않은 것이다. 달러를 내야겠는데, 문제는 환율을 모른다는 것이다. 7개에 1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주인이 난색을 표한다. 때마침 중국 청소년들이 내 옆에 재미있다는 듯 몰려 앉았다. 영어로 그들에게 “하우 머취, 유에스 달러?”라고 물었다. 주인과 몇마디 주고 받더니 2달러를 내라고 한다. 약간 바가지 쓰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정도면 되겠다 싶었다. 一生平安이라고 적힌 소박한 목걸이 조각에 정성스레 빨간 실을 꿰어주는 부부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중국에서의 쇼핑경험은 이처럼 뜻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필담으로 거래 흥정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호텔로 되돌아오면서, 이곳 장가계가 정겨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여유있는 걸음걸이를 남방의 게으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모처럼 휴식을 취하러 온 내 마음에 들었다. 무모하게 낯선 길을 한밤중에 혼자서 활보하고 다닌 것은 만용(蠻勇)이라는 충고를 나중에 들었지만...
다음날 새벽 5시반에 모닝콜 소리에 일어나, 어제 걸은 시장거리를 다시 걸었다. 호텔 뒤편에 있는 시장이 북적거린다. 각종 채소, 식품, 생활용품들이 풍성하다. 남방 계통의 야채들이 무척 싱싱해 보인다. 사람들도 모두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중국 사람들, 그중에서도 양자강 이남의 내륙 사람들은 게으를 것이라는 것은 내 선입관일 뿐이다. 새벽시장의 모습은 어디에서나 활기차고 생명력이 담겨있어 좋다. 나의 관찰력이 부족하여 그곳에 벌려진 여러 남방 야채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표현하지 못함을 아쉬워할 따름이다.
2003.8.4.(월)
3. 첫 관광지, 보봉호(寶峰湖)
6시에 호텔 뷔페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가이드가 오늘 관광일정이 무척 바쁘다고 강조한다. 합석한 부부가 십자성호를 긋는다. 나도 반포성당 다닌다고 하자, 이런 반가운 우연이 있냐면서, 자기들도 반포성당에 다닌다고 한다. 이안소 베드로, 허정인 카타리나 부부이다. 두분은 레지오 활동을 열심히 하신다고 한다. 이안소 베드로 형제님은 중국 남경 부근에 자동차 전조등 부품 현지공장을 경영하는 분이라 한다. 여행 도중 말벗이 생겨서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첫 목적지인 보봉호(寶峰湖)로 출발했다. 호텔에서 50분가량 버스를 타고 달렸다. 도로 양옆에 이어진 봉우리가 제법 볼만한데 가이드는 이건 별거 아니라고 한다. 보봉호 입구에서
디지털 녹음기를 꺼냈다. 마이크를 가슴에 달고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입구에서 마실 물을 구입했다. 한국돈으로 1,000원에 한병이란다. 상인들이 중국돈 보다 한국돈을 더 좋아하는 것같다. 인공호수로 올라가는 길에는 가마꾼들이 호객을 한다. 할머니들이 한국돈 만원에 탄다. 비싼 감이 있지만, 비탈진 길을 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꼭 다른 것에 비해 싼 편이라는 생각도 든다. 보봉호의 유람선은 일품이었다. 상류로 저어가니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조금 더 가니 호수 기슭에 세워진 쪽배에서 젊은 처녀가 나타난다. 우리 배를 향해 두손을 다소곳이 모아 인사를 한다. 선상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꾀꼬리같은 고음으로 전통 중국노래다. 뜻은 모르지만, 이 호수의 정경과 참 어울리는 노래다.
가이드가 우리 일행에게도 노래를 시킨다. 이한소 베드로 형제께서 먼저 지명되었다. 호숫가에 어울리는 가곡을 불렀다. 다음번에는 젊은 여자분이 소양강 처녀를 구성지게 불렀다. 뜻밖에 그 다음은 내가 지명되었다. 선구자를 불렀다. 웬지 그 노래가 이곳 분위기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낙타같이 생긴 봉우리를 지나서 선착장으로 회항했다. 이번에는 반대편 기슭에 잘생긴 총각이 나타난다. 역시 멋지게 중국 민요 한곡을 뽑는다. 박수를 한껏 쳐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본 바위 하나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선녀의 얼굴 옆모습 같은 바위인데, 내 눈에는 꼭 관세음 보살님의 부드러운 모습으로 보여졌다.
배에서 내려 출구로 내려오는데 일방통행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입구의 인공폭포 앞에서 토가족(土家族; 호남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민속춤이 벌어져 있다. 빨간색, 초록색 등 색상이 꽤 화려하다. 이곳에서 조그만 둥근 돌(건신환)을 두쌍 구입하고, 이안소 형제님 부부와 함께 사진 몇컷을 찍고서 보봉호를 떠났다.
4. 무릉원(武陵園),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원유산
여기가 무릉원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원유산이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곳으로 여겨오던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 아닌가. 입구에서 출입객의 지문을 대조하는 철저한 검색시스템을 통과했다.
웬 어린 여자아이가 귀찮게 따라붙는다. 쉬지 않고 찡얼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구걸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 조그만 새 모양의 호르라기를 팔려는 것이다. 한개에 천원이란다.
천자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탑승했다. 협곡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는 버스가 터널을 통과한다. 버스 안에서는 장가계의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는 비디오가 방영된다. 중국어로 나오는데, 한국어 비디오도 있다고 한다.
천자산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다. 왁자지껄 대열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산봉우리로 올라가려는 관광객이 무척 많구나... 덕택에 짬을 내어 사진을 몇컷 찍었다.
천자산 꼭대기에 올라왔다. 올라오는 동안 한마디로 절경이었다. 와와소리가 절로 나왔다. 디지털 카메라를 연신 눌러댔지만, 카메라 안에 제대로 담길 장면이 아니다. 하늘 천, 아들 자, 이름 그대로 웅장하다. 굽이굽이... 동양 산수화에서 보았던 둥그런 봉우리들이 상상화가 아니라 중국에 실제 존재하는 산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지만, 바로 이곳에 그런 봉우리들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자동차로 옮겨서 하룡공원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관광객과 상점으로 왁자지껄하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하룡(賀龍)이라는 장군을 기념하는 공원이라 한다. 이곳의 좌우에는 어필봉과 선녀산화라는 두 멋진 봉우리가 있고, 천자각이라는 전망대가 있다. 천자산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 하겠다.
먼저, 어필봉(御筆峰)을 보았다. 임금 어, 붓 필자를 이름으로 붙인 이유가 절로 실감 난다. 여러 바위 봉우리들이 붓처럼 가늘게 솟아올라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날카로운 지성을 느끼게 해주는 봉우리다. 중국 전통의상을 갖추어 입고 우산을 든 처녀가 애교를 부리면서 사진을 함께 찍자고 덤벼든다. 한컷에 2,000원이란다. 너무 비싸다. 옆에 사람이 1,000원으로 깎았다. 덕택에 나도 1,000원 절약했다. 하지만,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너무 쉽게 돈을 번다. 보봉호의 가마꾼이 받는 1만원과는 비교가 안된다.
맞은편으로 가니 선녀산화(仙女散花)라는 봉우리가 있다. 마치 선녀가 꽃을 던지는 모습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어필봉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전설이라도 있을텐데, 나중에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이곳은 중국 상점과 잡상인들의 극성이 유난히 심하다. 이처럼 관광 소득에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니 중국이 앞으로 무척 발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원가계(袁家界), 중국판 그랜드 캐년
출발전에 원가계의 명성에 대해서 들었다. 장가계 여행 코스 중에 원가계를 빼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 코스는 안간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꼭 원가계가 코스안에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예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룡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산길을 따라 덜컹덜컹 거리며 빠른 속도로 질주해서 50분 가량 걸려 원가게에 도착했다.
와!!! 이래서 원가계를 꼭 보아야 하는 거구나. 천하 제일경이구나. 여기가! 일행들의 감탄 소리가 좌우에서 터져 나온다. 나도 덩달아 여러번 와!와! 소리를 내어본다. 디지털 녹음기에 감탄의 목소리를 담아두려고... 모두들 사진들 찍느라고 바빠진다. 깊이 패어진 계곡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게곡 밑에서 솟아오른 각양각색의 기암절벽들이 별천지를 보여준다. 이 절경을 나름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 척박한 시심(詩心)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어마어마한 모습을 그저 야! 어유! 등 외마디로 밖에는 표현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에 이르렀다. 깊은 계곡 속에서 솟아오른 두 봉우리가 다리로 이어진 듯한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하늘 아래에서 가장 높은 다리라는 뜻으로 “천하제일교”라는 이름을 갖게 된 모양이다. 인공 다리가 아니다...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 다리이다... 원가계에서 제일 수려한 경치라 한다.
미혼대(迷魂臺)에 이르렀다. 계곡이 한결 넓은 곳에 여러 봉우리들이 어울리게 솟아서 경치가 삼삼했다. 너무 아름다워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는 뜻에서 미혼대인가? 많이 걸어서 힘든 다리를 잠시 쉬었다. 상인이 장가계 CD를 사라고 한다. 한 장에 1,000원이라 한다. 한 장을 구입했더니, 이번에는 원가계 장면이 따로 담긴 것이라고 한 장 더 사라고 한다. 그래서 2,000원을 또 썼다. 이슬비에 옷젖는다고 한국돈을 조금씩 다 써간다. 하지만, 국내에 가면 장가계, 원가계 경치를 다시 어떻게 감상할 수 있겠는가? 좋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가방에 담았다.
백두대간을 종주했다는 부부... 이곳 원가계에서 한결 돋보였다. 경쾌한 걸음으로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신나는 표정과 제스쳐로 연신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정겹다. 값비싸 보이는 망원렌즈로 부인을 주인공 삼아 카메라에 절경을 담아내는 산사나이의 진지함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원가계는 정말로 중국판 그랜드 캐년이라 할만하다. 미국의 광활한 그랜드 캐년보다 이곳 원가계의 아기자기한 계곡 경치가 훨씬 동양적이고, 관광꺼리가 된다는 생각도 든다.
6. 산아래로 내려가는 길
계곡의 정상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00미터를 수직으로 내려간다. 유리창을 통해서 반대편 계곡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계곡 아랫동네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 이름은 베이롱(白龍) 엘리베이터...
첨단 기술로 제작된 이 엘리베이터가 중국의 오지에 설치되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여태까지는 산 위에서 감상했는데, 이제는 계곡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관광으로 바뀌었다.
아래에 도착하니, 바위에 세계제일제(世界第一梯)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밑에서 올려다 보는 엘리베이터는 그 자체가 경이스럽다. 우리가 저걸 타고 내려왔구나...
이제 일행은 시간에 쪼들렸다. 아침부터 강행군을 했지만, 아직도 두 코스나 남았다. 그중 먼저 찾은 곳이 금편계곡이다. 금편계곡은 7.5킬로미터에 이르는 계곡이지만, 입구에서 약간 걸어가보는 정도로 맛보는 것으로 하겠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그렇겠지... 하루종일 얼마나 걸었는데, 어떻게 또 20리길을 걸어갔다가 오나... 가이드가 다왔다고 멈춘 곳에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있고, 옆으로는 계곡 개울물이 소리내며 흐르고 있다.
4인용 회전 그네가 있다. 토가족이 즐기는 민속 그네인가보다. 용기를 내어 타보았다. 한번 타는데 2,000원이란다. 뒤로 돌아서 180도 위아래로 회전하는 그네인데, 스릴 만점이다. 내가 타고 내리니, 뒤에 손님들이 연달아 달라붙는다. 사람들은 누구 한 사람이 나서면 쉽게 따라나서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장사꾼들이 마수꺼리, 즉 첫 손님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보다.
마지막 코스인 십리화랑(十里畵廊)에 도착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10리길을 들어간다고 한다. 입구에 둥근 돌이 여러개 있다. 그중에 붉은 빛이 도는 돌이 마음에 들었다. 2만원을 달라고 한다. 흥정 끝에 만원에 구입했다. 근데, 물건을 구입한 다음 가이드한테 이 돌이 진짜냐고 물었더니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쯪... 중국사람과 흥정해 본 경험이 일천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자 허겁지겁 달려든 탓에... 글쎄, 진짜 돌인지, 가짜인지는 천천히 가려보자...
십리화랑은 십리를 들어가는 계곡의 양옆으로 미술작품 같이 생긴 멋쟁이 바위들이 펼쳐져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리라. 모노레일 종점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삼매봉(세자매봉)의 모습은 유달리 아름다웠다. 영락없이 다소곳한 세 자매가 사이좋게 서있는 모습이다.
짧은 시간동안에 많은 코스를 다녔다. 그래서인지 십리화랑 계곡은 절경인데도, 이제 좀 신바람이 덜 나고 약간 피곤했다. 버스에 올라, 저녁 투숙할 호텔로 왔다. 장가계 시내가 아니라 무릉원 풍경지구 내에 위치한 3성급 호텔이다. 규모는 좀 작지만 시설이 대체로 청결했다. 저녁 식사 후에 단체로 발맛사지를 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 번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을 위해서 발마사지를 아껴두었다. 창밖에서 폭죽 소리가 들린다. 웬 일인가 하고 내다보니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무슨 축하할 일이 있나보다 짐작하며 잠이 들었다.
2003.8.5.(화)
7. 세계최대의 황룡동굴
오늘 코스는 비교적 간단하다. 오전에 황룡동굴을 구경하고, 북한 상품 판매점에 쇼핑차 들렀다가. 점심을 먹고 장사 행 기차를 타면 되는 것이다.
황룡동굴 앞 주차장에 내리자. 어린 소년이 달려든다. 어린아이가 울면서 호르라기 팔려고 매달린다. 다섯 개 천원... 하며 읍소를 한다. 무릉원 입구에서도 이미 당한 일이지만, 여기에서는 가격이 5분의 1로 떨어져 있다. 근데, 나는 하룡공원에서 이미 천원에 다섯 개를 구입했는 걸 어떻게 하겠니... 소년아 미안하다.
황룡동굴 입구에 입장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입구에 행복문과 장수문이 있다. 우리는 행복문으로 들어가서 나올 때는 장수문으로 나온다 한다. 입구로 들어가자 동굴이 갑자기 커졌다. 커다란 석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사람 손으로 만든 것같다. 탑을 향해 앉아서 기도하는 것처럼...
영월 고씨동굴에 들어갔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옆에 분이 영월 고씨동굴이 더 멋있는 것같다고 말씀한다. 옛날에 줄배를 타고 들어가던 추억이 또 떠올랐다. 동굴안이 무척 시끄럽다. 사람들 떠드는 목소리와 마이크 소리가 동굴안 광장을 울리고 있다. 재잘재잘...
점점 석순과 종유석이 무성해진다. 마치 밀림같이 많이 솟아 있다. 우리 나라의 동굴과 점점 다른 거대한 규모를 과시한다. 눈아래 들어오는 석순이 대단히 가늘고 길다. 높이 19.2미터 일년에 10센티 씩 자라고 있는 대표적인 석순이라 한다. 이 석순의 허리가 무척 날씬하다. 밑에서 올려다 보니까 더 키가 커 보인다. 다양한 모양의 석순이 정말 많이도 있다. 석순 백화점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두툼한 놈, 키큰 놈, 작은 놈, 또 남근(男根)처럼 생긴 놈 등등... 그 중에서,윗부분은 불룩한데 중간 허리부분이 잘룩한 놈은 불안해 보였다.
자연의 신비이다. 조물주의 위력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저멀리 덩치 큰 모나리자 얼굴처럼 생긴 바위 석순이 보인다. 근데, 천정에 구멍이 뚤려서 머리 정수리 부분으로 빗물처럼 떨어지고 있다. 이 바위 머리부분에 빗물이 닿으면서 석회질이 쌓여 석순의 키가 커지게 되나보다.
모나리자처럼 생겼다고 하던 것이 가까이 가서 보니 어머니 얼굴같아 보이기도 한다. 좀더 정면으로 가니 입 모양이 악어 입같이 생겼다. 빨간 조명이 비춰진 입 자리에 12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이 바위는 바로 이 동굴의 가장 중심이 되는 “용왕보좌(龍王寶座)”라 한다. 높이는 14미터... 용왕보자의 정면 모습은 어찌보면 엄지손가락 손톱모양이나, 상어의 입처럼 보인다.
동굴안에 배가 다닌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동굴이구나. 예전에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타본 적 있는 신밧드의 모험 생각이 떠오른다. 배를 타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한국정보법학회에 대한 생각이 머릿 속에 떠오른다. 그동안 방치했던 제이피크닉 인터넷 홈페이지를 멋지게 가꾸자는 구상도 떠오른다.
유람선을 타고 10분가량 갔다. 기름으로 연료사용하는데, 아무래도 폐쇄적인 동굴내인 관계로 환경오염이 염려되었다. 어느 일행은 앞으로 유람선은 노를 저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안소 형제님은 밧데리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겠다고 한다. 두 방법 모두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다.
8. 장사 행 열차 7시간
장가계 역에 도착했다. 어느새 장가계 관광이 끝난 것이다. 이제 기차를 타고 중국 대륙을 달린다. 장사까지는 7시간쯤 걸린다고 한다. 국내에서 여행사가 제공한 일정표에는 4시간 기차를 탄다고 적혀 있었는데...
지루할 것을 미리 단단히 각오하고 탑승했다. 좌석을 잡고 보니, A조 손님과 함께 마주 앉게 되었다. 할머니 한 분과 부부 일행이다. 부산에 사는 부부가 장모님을 모시고 관광여행을 온 것이란다. 열차안에 판매상이 다니는데 할머니가 리츠 생열매와 연밥을 샀다, 옆자리의 이안소 베드로 형제님은 방울 토마토를 샀다. 나는 장가계 역 앞에서 샀던 복숭아를 내어 놓았다. 기차 안에서 풍성한 과일 파티가 벌어진 것이다. 줄기가 그대로 달린 누런 색깔의 리츠 생열매의 껍질을 벗기니 싱싱한 알맹이가 드러난다. 씨앗이 검은 게 꽤 크다.
연꽃 위에 박혀 있는 연밥이 싱싱해 보인다. 그중 한개를 떼내어 껍질을 벗겨 보니 허연 밤과 같은 모습이다. 그 안에 있는 뿌리를 떼어 낸 다음 먹어야 한다고 한다. 신선한 생 열매 맛이다. 이런 열매는 처음 맛본다. 일행 모두 맛있게 먹었으며, 다양한 화제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백두대간 종주했다는 부부의 남편이 모자를 벗어 들고 다가온다. 먹을 것을 얻으러 온 것이다. 복숭아를 내어 주었다. 우리 일행도 복숭아를 껍질을 까서 먹었다. 맛이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모두들 맛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장가계 역에서 기차에 타기 전에 광주리에 담은 아주머니 한테서 2,000원어치를 에누리해서 산 것인데... 보람이 있다.
좌석 오른 편에 A조 가이드가 앉았다. 씩씩하게 생긴 청년인데, 무척 부지런하다. 짐정리도 솔선해서 하는 모습이 중국생활을 무척 잘하는 것같다. 돈 잘벌겠다고 덕담을 했다.
드디어 밤 9시경 장사역에 도착했다. 역앞 광장의 모습은 무척 번화했다. 공항과는 딴판이다. 주로 열차로 다니는 대륙의 중심도시라서 그런가 보다. 서울역 광장보다 넓고 정면과 좌우로 널찍한 도로가 펼쳐진 모습이 시원스러웠다. 가이드 보조를 자처한 백두산 종주 부부가 외치는 “팬비(팬더투어 B조의 약칭)”소리를 들으면서 상쾌한 발걸음을 떼었다.
호남성의 수도에서 대표적인 호텔인 화열대주점(華悅大酒店)에 도착했다. 호텔 입구에 "한국전세기귀빈을 환영합니다"라는 붉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서툰 필체로 그림 그리듯한 것이지만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인 투숙객은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한중 관계가 중국 내륙지방까지 확산되어가는 증거라 하겠다.
2003.8.6.(수)
9. 악록서원
벌써 귀국하는 날이다. 호텔 2층에 위치한 넓고 깨끗한 뷔페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다음, 곧바로 버스에 탑승했다. 그런데, 곧이어 문제가 생겼다. 가이드가 정진섭씨를 찾는다. 디지털 카메라를 호텔 방에 놓고 나오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아차, 그렇구나. 어제 밤에 충전하려고 꺼내 놓았다가 그대로 두고 온 것이다. 호텔방 청소를 꽤 일찍 했나보다. 벌써 그것을 발견하고 우리 버스에 핸드폰 연락을 해주다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오전 관광지를 구경한 다음, 공항으로 직행하기 전에 호텔로 들러서 카메라를 찾아서 가기로 했다. 중국의 호텔 서비스가 이처럼 신속, 친절한지 감탄하게 만든다.
버스는 장사 시내에 있는 유서깊은 악록서원(嶽록書院)으로 갔다. 이곳은 중국 4대 서원 중의 하나로 천년학부(千年學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호남성 최고 명문대학인 호남대학 캠퍼스 내에 있다. 유구한 역사가 담겨있으리라 짐작되지만, 내 마음이 뒤숭숭하고, 가이드 조차 이곳이 초행이라서 제대로 설명듣지는 못했다. 눈에 띄는 것은 대문으로 들어가면서 대문에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해묵은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파들이 추구한 이 금언(金言)을 중국땅에서 발견하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학달성천(學達性天)이라는 현판이 나온다. 무슨 뜻인지 대충 알겠는데, 음미할수록 이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배움을 지향하며 살아온 사람 아닌가. 체구 작고, 운동도 못하며, 말 솜씨나 너그러움도 모자라, 책읽는 공부 한가지로 오늘까지 살아온 나로서는 배움을 이루어서 하늘의 성품을 닮는다는 글귀는 커다란 포부로서 지향해 볼 길이라 할 수 있겠다. 모처럼 좌우명으로 삼을만한 글을 발견한 셈이다.
계속 걸어서 이 서원의 본관에 들어서니, 눈에 띄는 것은 충효염절(忠孝廉節)이라는 잘써진 현판이다. 글쎄, 충효염절의 참된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려면 엄청난 공덕이 필요할 터이다. 다만, 개인적인 소회를 적어본다. 요즘 같이 가치관이 혼란스런 상황에서는 충효염절의 기풍을 진작시키는 것이 꼭 필요하다. 다만, 충(忠)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라와 사회에 충성을 다해겠다는 마음만은 뚜렷하지만, 어떤 행동이 구체적으로 충(忠)을 올바로 실천하는 것인지 혼란을 느끼는 것이 솔직한 나의 정신적 단계가 아닌가 싶다. 효(孝)에 관해서는, 이제 그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다. 생활 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한걸음씩 개선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허나,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지내온 지난 세월들이 아깝다는 생각도 아울러 든다. 렴(廉)과 절(節)이라는 덕목은, 건방진 생각일는지 모르지만, 글쎄... 제법 잘 실천해 온 것 아닌가 하는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별 걱정이 안든다. 지난 20여년의 공직 생활을 통해서 나름대로 갈고 닦아온 대로 실천해 나가면 그게 바른 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다만, 때론 의욕이 지나쳐 절제심을 읽을 때가 있다는 흠을 내 자신 잘 알고 있기는 하다.
공자님 동상이 정원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자님 동상을 본 일이 없는데,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 땅에서 동양의 성현을 발견하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 모택동의 시를 발견한 것도 구경꺼리였다. 주희, 왕사언 등 유학자들의 시와 함께 악록서원을 예찬하는 모택동의 시를 함께 게시하고 있다. 모택동은 문화혁명당시 공자와 유학을 박해한 주역으로 생각했는데, 이 악록서원 안에서는 평화로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이처럼 주마간산 격으로 악록서원을 구경한 다음, 호텔로 되돌아와 디지털 카메라를 찾아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장사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처음 이곳에 당도했을 때의 모습이 그대로이다. 활주로에 나서니 낯익은 중국 남방항공 소속 소형 비행기의 모습이 보인다. 예쁜 스튜어디스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4시간여 비행 만에 인천공항으로 되돌아왔다. 깨끗한 공항! 예전에 김포공항에 내릴 때 웬지 촌스럽던 티를 찾을 수 없다.
인상깊었던 일행
모두 처음 만난 분들이지만, 짧은 4일간, 가까이 접하면서 도움을 주신 분, 인상깊었던 분들을 정리해 두고 싶다.
이안소 베드로, 허정인 가타리나 부부
두 분은 반포성당의 신자이시다. 부부 모두 레지오 활동을 하신다고 한다. 장가계 도착 다음날 아침 뷔페식당에서 성호 긋는 것을 보고,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져 여행 내내 함께 다니게 되었다. 덕택에 여행이 힘들지 않게 이어졌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 심심할 것으로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즐거웠다. 특히 7시간의 긴 기차여행 때 즐거운 대화는 오래오래 간직될 추억이다. 그처럼 재미있게 오래 대화를 나눈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안소 베드로 부부는 귀국후에 반포성당에서 만났다. 실로 소중한 인연이라 하겠다.
A조 일행 부부와 장모
기차여행 때, A조 일행과 마주 앉게 되었다. 함께 자리한 분은 부부와 장모 3분이었다. 이 부부도 천주교 신자로서 부산 해운대에 거주한다고 한다. 불란서, 스페인에 여러해 거주했었고, 아들이 지금도 파리 15구 꽁방숑(Convention)에서 유학생활 중이라고 한다. 리츠 열매와 길쭉한 방울 토마토, 연꽃의 방울밥, 그리고 복숭아로 이어지는 과일 파티 속에 나눈 화제가 어찌나 풍부, 다양했던지... 즐거웠다.
이런 풍성한 대화에는 건너편 좌석에 앉았던 A조 현지 가이드도 한몫 했다. 듬직한 체구, 걸걸한 중국말 솜씨가 좌중을 즐겁게 했다.
태백대간 종주 부부
다른 일행과 달리 등산 복장과 커다란 배낭, 대형 망원 카메라로 완전 무장한 부부이다. 이 부부는 동해시에 사는데, 산에서 만나 결혼했다 한다. 백두대간을 지리산에서 출발해서 설악산 북쪽 고성까지 종주했다고 한다. 일행들과 친숙해지자, 자칭 부반장이 되어 깃발들고 '팬비' 외치며 인솔자 역할을 대행해 주었다. 부부가 서로 사진촬영해 주는 모습이 무척 정겨웠다. 이 추억을 평생 소중히 간직하고 백년해로하기를 빈다. (이 부부의 사진을 실으려고 찾아보았더니, 막상 마땅한 컷이 없다. 인천 공항에서 접수대를 향해서 찍은 사진을 나중에 보니 바로 이 부부의 모습이 멀리 담겨 있어서 갈음하여 올린다.)
즉석강의 교육자
버스 안, 장가계 역앞, 악록서원... 어디든지 틈이 나면 앞에 나와서 강의해주신 교육자가 계셨다. 솔직히 패키지 여행이라서 그분 성함과 직책,전공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이 강조한 민족정신의 뜻을 느끼겠다. 만주족이 사라진 데 비해서 우리 민족은 유구히 이어지고 있다는 자랑... 악록서원에서 본, 우리나라 유학의 우수성을 설파하는 애국심과 정성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동행 일행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밖의 일행 여러분
이번 여행은 패키지 투어이므로 내가 별달리 준비한 것도 없이 편하게 다녀왔다.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여행에 나선 것이라, 외로운 마음이 있었지만, 일행들이 식당에서나, 버스 안, 관광지 등 어디에서 항상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이번 여행이 그 어떤 여행 못지않게 즐거웠다. 옆의 사진은 장가계 시내의 북한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제품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다.
NG와 버그 (부끄러운 찌꺼기)
중국돈 1푼도 안쓴 여행
출국전에 미처 중국돈 환전을 안해서 인민폐를 한푼도 못가지고 출국했다. 현지에서 조금이라도 환전해 볼까 했는데, 막상 은행을 찾지 못했다. 해외여행의 ABC도 못갖춘 셈이다. 그 대신에 남의 나라에서 한국돈 1,000원짜리는 실컷 썼다. 물, 호르라기, 과자, 부채 등등.. 웬만한 물건이 1,000원, 또는 1,000원에 몇 개라는 식으로 판매된다.
그런데, 역시 그 나라에서는 현지 화폐를 사용해야 제대로 경험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여행할 때 선물은 항상 걱정거리이다. 이번에는 워낙 돈을 안쓰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큰 물건은 엄두가 안났다. 하지만, 잘잘한 것중에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면 옛 습관대로 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래서, 둥그런 돌멩이를 몇 개 샀는데, 막상 1만원을 주고 산 큰 여의주가 별 가치가 없는 것 같다. 조그만 돌맹이도 내 의도에 덜 차는 물건이다. 충동구매의 폐습을 이제는 버려야겠다.
장가계 마지막날 황룡동굴 입구에 있는 잡화상점에 들러보니, 마음에 드는 물건들이 많은데, 가격이 다른 관광지보다 저렴하고, 이제는 중국 상인들의 바가지 작전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는데, 돈을 거의 다써서 구매력이 없어졌다.
주차장 부근 노점에서 아기용 털실신발을 사고 싶었다. 마지막 1,000원을 꺼내 살까말까 망서렸다. 잔돈을 탁 털어내기 부담스러워 체념하고 떠나려는데, 아줌마가 버스앞까지 달라붙어서 매달린다. 덩달아 사내꼬마도 호르라기가 다섯 개 천원이라고 울면서 매달린다. 산에서 이미 산 것이니, 도리없이 뿌리치고 버스에 올랐다. 울상이던 사내꼬마가 창문을 통해서 꾸짖는 표정으로 떠나지 않는다. 사지도 않을 물건을 함부로 흥정하면 안되겠다. 내가 얹짢은 것보다, 그들에게 불필요한 기대를 갖게 하여, 상심을 끼친 점이 더 반성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번 여행은, 선물을 구입하는 요령이나 정성, 돈을 안배해서 쓰는 지혜... 이런 것들이 부족했다. 여행의 재미 중에 중요한 부분을 놓친 셈이다. 더 배우자. 고치자.
맺음 말
이번 중국 여행은 내게 새로운 개안(開眼)이라고 할 수 있다. 학달성천(學達性天), 악록서원에서 발견한 글귀이다. 내 나름대로 “배움을 이루어 하늘의 성품을 닮자”는 뜻으로 해석해 보았다. 그런 희망과 결심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아울러, 장가계 여행을 함께 한 팬더투어 B팀(팬비!!!) 일행 여러분과, 편하고 친절하게 일행을 안내해준 가이드 하나연씨, 현지 가이드 변일남씨에게도 감사와 박수를 드린다.
또, 좁은 견문으로 전혀 알지 못하던 장가계라는 천연의 관광명소를 여행지로 추천해 준 정현태 선배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도 감사드릴 사람은 바로 아내 銀卿이다. 자신은 고3 수험생 뒷바라지에 전념하면서, 남편의 속마음까지 읽어서 배려해준 깊은 사랑을 소중히 간직할 것을 다짐한다.
첫댓글우와~~ 아침부터 장문의 글 잘 읽었다. 체험이나 느낌등 이런 생생한 글을 보면 느낌 팍 온다.여행기를 마치 보고서 형식으로 꼼꼼하게 상세히 기록한걸로 미루어 검사란 직업의 한 부분이 언뜻 이해도 되네~ 덕분에 중국 구경 공짜로 잘했다. 자주 글 좀 올려주라.맺음말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압권이다^^ 헌데 태백대간?
첫댓글 우와~~ 아침부터 장문의 글 잘 읽었다. 체험이나 느낌등 이런 생생한 글을 보면 느낌 팍 온다.여행기를 마치 보고서 형식으로 꼼꼼하게 상세히 기록한걸로 미루어 검사란 직업의 한 부분이 언뜻 이해도 되네~ 덕분에 중국 구경 공짜로 잘했다. 자주 글 좀 올려주라.맺음말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압권이다^^ 헌데 태백대간?
바쁜 와중에 카페를 위해 귀중한 글을 올려준 진섭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며, 진섭이의 글이 더 현장감있게 동창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내 임의로 "장가계"사진을 올렸다네... 다시금 고마우이~~~
그누가 너의글을 졸작이라 하겠는가 너무 흥미롭고 같이 여행한 기분이다~~~~이기분 자주 느끼게 해다오.....
이 글 쓰는데 도대체 몇 시간이나 걸렸냐? 글 잘읽고 느낀 점이 많다..
그동안 글많이 안올리더니 한꺼번에 올렸네...좋은 경험의 여행이었구나 또한 이렇게 친구들과 함께공유할수있는 글로 남기니 얼마나 좋은가... 고맙다.
여행을 하면서도 이렇게 꼼꼼하게 기록을 남겨두는 습성을 보니 직업은 못 속이나 보다. 하지만 담부터는 꼭 같이 여행 하도록 해라. 앞으로 같이 여행다녀봐야 얼마나 다니겠다고. 그리고 난 애들보다 부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수고했다.
아침에 대단한 기행문을 접하니 중국 산악 내륙 지역을 직접 다녀온 기분이다. 여행시 꼼꼼히 기록을 하는 습관이 직업과 무관하지 않겠구나. 잘 읽었다 고맙네 진섭아 學達性天 해라...
검사님!이거 피해자 가해자 조서 꾸미는 실력은 아니겠지요^^.정말 잘 읽었어.고등학교 때 자네의 한시가 생각나네.한시 한수 부탁 합니다^^정말 잘읽었어 나두 시간 나면 한번 가바야 겠다^^
역쉬 진섭이는 글솜씨가 다르네. 학달성천 이미한거 같네그려... 장가계 가볼만한 곳이라 예기는 들었지만 자네글 읽어보니 갔다온거나 다름없네 ..그리고 나도 한번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구먼...정말 잘 읽었다...
얼마 전에 중국 상해에서 사업을 하는 대학 동창을 만났는데 중국여행을 못했다니까 팔불출이 여기 또 있네 하더구먼. 진섭이 덕분에 중국여행 잘했네. 정말 현장감 있고... 열하일기가 이보다 나을까...?
진섭아 잘 읽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기행문을 참 좋아하지. 내가 직접 여행하는것 같아서 말이야. 나중의 여행에 참고 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