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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스크랩 물안개도 만난 강원도 여름이야기1-원주,봉평,평창 오대산 입구
조태완 추천 0 조회 102 14.10.18 11: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평창 오대산 입구 월정사 노인전문요양원 앞 산책로..2011.7.26.화요일 새벽 강원도 땅에서 맡은 여름향기, 그 향기에 취해 더위도 몰랐다. 언제:2011.7.25(월)~7.27(수) 2박3일 어디: 원주(법천사지ㆍ거돈사지)-봉평-평창( 방아다리약수터ㆍ오대산 월정사ㆍ상원사) -강릉(사천진리항ㆍ강릉경포대ㆍ통일공원ㆍ테라로사커피 구정면학산공장) 둘이서.. 강원도 원주 금천사지와 거돈사지를 첫 답사지로 여름 여행이다. 옷가지와 카메라등 꼭 필요한 것만 간단히 챙겨 훌쩍 떠났다. 8시30분 출발이다. 출근시간이어서 올핌픽대로에서 교통혼잡으로 정체되기도 했다. 중부지방은 비소식이 있었지만 강원도쪽엔 비가 내린단 예보는 없었다. 떠나는 날은 날씨가 흐려 있어서 덥지 않아 이동하기에도 좋았다. 여주 휴게소 자율식당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한잔! 뷔페식 식단을 기호대로 골라서 담아 계산하는 휴게소다. 잔반없이 알뜰하게 식사를 아주 맛있게 마쳤다. 법천사지에 도착하니 노오란 호박꽃이 찾아 온 길손을 반긴다. 法泉寺址 幢竿支柱 법천사지 당간지주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절터와 멀리 떨어진 남쪽 민가 주택지에 있다. 높이가 3.9m로 법천사의 규모를 짐작케 해 주는 큰 당간지주이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이 당간지주는 윗부분이 바깥쪽으로 둥굴게 되어 있고, 안쪽으로 깃대를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 놓았다. 두 기둥사이에는 깃대를 밑에서 꽂아두기 위한 지름 66cm,높이 6cm 정도의 받침돌을 8각의 형태로 다듬어 놓아 전체적으로 간결하고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원주 興法寺址를 돌아 섬강 줄기를 따라가면 물은 문막들판을 적셔 興湖里에서 남한강과 하나가 된다. 흥호리는 강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와 강원도가 마주하고 있다. 남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충청도가 시작되는 곳이니 三道의 접경지 즉 삼도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니 '합수머리'라고도 한다. 여기에 있는 法泉寺는 진리(법)가 샘물(천)처럼 솟아난다는 곳인데 절은 없어지고 당간지주와 智光國師玄妙塔碑만 남아있다 법천사는 신라 성덕왕때 창건되어 고려시대 지광국사가 출가하고 열반에 든 절로서 어릴 때 觀雄대사에게 사사받았으며 조선초기에는 유방선이 법천사에 머물면서 유교를 가르쳤는데 이때 배운 제자가 한명회, 서거정,권람등이었다. 법천사지는 지리적으로 남한강가에 위치하여 禪宗의 한 사찰로 영월의 法興寺(興寧寺), 강릉의 堀山寺址와 연결될 수 있겠다. 동시에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오는 頭陀僧과 선비들의 길목이었다. 단지 智光國師玄妙塔(국보 제101호)은 지금 경복궁 고궁박물관 앞뜰에 있는데 일제강점기시대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와 경복궁에 안치하였는데 6.25 전쟁시 폭격을 맞아 파손된 조각 조각을 이어 붙여 복원하였다.국립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할 때 옮기려하였으나 원상태로의 복원이 어려워 경복궁에 그대로 두었다.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 고려시대 스님인 지광국사(984~1067)의 사리를 모신 현묘탑(국보제101호)을 세운이후 1085년(고려 선종2)에 스님의 삶과 공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비이다. 비의 앞면에는 속명은 원해린(元海麟),16세(999년)에 스님이되어 승통,왕사,국사의 칭호를 받고 84세에 이곳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기록했고 비의 뒷면에는 1370명의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탑비는 거북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의 몸돌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모습으로 전체 높이는 4.55m이다. 거북의 등에 새겨진'王'자,연꽃잎과 구름속의 용이 조각된 왕관 모양의 머릿돌, 비 몸돌 옆면에 새겨진 섬세하고 화려한 연꽃,구름,용의 문양등을 통하여 당시 조각예술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는 높이가 4.55m이며 고려시대 석비로서의 특징적인 양식을 보이는 걸작품으로 조각 또한 정묘하다. 귀부(龜跌)는 넓은 지대석 위에 놓였고 밑에는 구름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용두화(龍頭化)된 거북머리의 목은 길게 곧추서서 정면을 향하고 목에는 물고기 비늘을 표현했다. 등에는 네모 구획 안에 따로 귀갑문(龜甲紋)을 새겼으며 다시 그 안에 ‘와(瓦)’자를 양각했다. 등의 중앙에는 간결한 복련(覆蓮)의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비신(碑身)을 세웠다. 비신의 바깥 둘레에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을 조각하여 돌린 것이 특징이며 양 측면에 쌍룡을 조각한 것도 특이하다. 이수(螭首)는 모자를 쓴 듯한 형태이며 네 귀에 전각(轉角)이 뚜렷하고 귀꽃이 있다. 螭首 중앙에 상륜부(相輪部)를 두어 보주(寶珠)를 얹었다. 지광국사(智光國師)는 고려 성종 3년(984)에 태어났는데 속가명은 해린(海麟)이다. 목종 2년(999)에 용흥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역대 왕의 우대를 받았으며 삼중대사(三重大師), 승통(僧統)이 된 후 문종 12년(1058)에 국사(國師)가 되었다. 1070년 이곳 법천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居頓寺 圓空國師勝妙塔碑(보물 78호)를 향해 이동.. 居頓寺址 거돈사지 江原道 原州市 富論面 정산리 신라말에 창건한 거돈사는 고려시대에 꽃을피웠다고 전해지나 임진왜란때 소진되어 지금은 약 7000평이나 되는 이절터에 오직 삼층석탑과 圓空國師塔碑만 남아 있다. 거돈사는 원공국사의 열반지이다. 원공국사는 고려초 천태종의 학승으로 법명은 지종이고 전주출신이며 8살에 불교에 심취하여 개경 사나사에 머물고 있던 인도승 삼장밑에서 출가했고 삼장이 인도로 돌아간후 광화사의 경철스님밑에서 수행하고 29살때 여주 고달선원에 머물고 있던 증진스님의 권유로 중국유학길에 올랐다. 먼저 영명사의 연수선사를 찾아갔는데 연수선사가 선문답으로 "온 세상에 법이 두루 퍼져 있거늘 무엇 때문에 수고롭게 바다를 건너 왔느냐" 고 묻자 "이미 사방에 두루 있으니 건너 온들 안될 건 또 뭐있느냐"고 대답하여 心印을 받았다고 한다. 삼층석탑으로 보아 1탑 1가람 배치를 하고 높은 축대위에 중문을 세운자리가 있으며 그 뒤로 삼층석탑,금당터,강당터가 남아있다. 금당터 안에는 2m정도 높이의 화강암으로 만든 佛臺坐가 있다. 현재 용산국립박물관 뜰에 보관된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을 이곳에.. 귀갑문에 '卍'자가 새겨져있다 거돈사지에서 이번엔 우리나라꽃 무궁화의 고운 영접을 받았다. 천년 된 느티나무.. 수령이 10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몸둘레가 약 7m 이며 무당의 굿이나 미신적인 제사를 지내자 말라는 경고문이 있었다. 느티나무와 높은 거돈사지 축대, 거돈사지 축대가 마치 성벽처럼 보인다 원주 문화재 답사를 마치고, 봉평 이효석의 메밀꽃 피는 마을로 내 달린다. 봉평 메밀막국수집으로 소문 난 현대막국수집에서 점심식사부터 해결 예전에도 들려 점심을 해결했던 곳인데 약간의 리모델링 된것 같은데 좀 헷갈려 조금 헤매다 결국 물어서 찾게 되었다. 실내엔 유명 인기인들의 사진과 싸인을 비롯해 많은 관광객이 다녀간 흔적들로 벽면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메밀국수 1인 6천냥..2인 1만2천냥으로 꿀맛식사였다. 막국수전문.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384-8 현대막국수 단체예약문의 033)335-0314 HP 010-6373-0314 커피 한잔까지 점심식사 마무리.. 이효석의 메밀꽃 피는 마을로 들어 선다. 주차장 입구에 마련된 당나귀 우리에 당나귀 두마리.. 당나귀는 고대 이집트의 가장 오래 된 가축의 하나로서, BC 4000년경 누비야 지방에서 가축화된 이래 선사시대에 서(西)아시아와 기타 지역에 전파되었는데, 그 용도는 주로 사람이 타거나 짐을 나르는 데에 쓰였다고 한다. 관광객이 풀을 듣어 주니 잘 받아 먹는다. 이효석 선생의 생가 터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생가 터의 건물은 이효석 선생 출생 당시의 모습을 잃은 상태이며, 현재 개인 소유지로 부지확보가 어려워, 지역 원로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부득이 이곳에 생가를 복원하게 되었다. 2009.8 평창군수 복원 된 이효석 생가 앞에서.. 푸른집과 그 앞 메밀꽃밭에서.. 가산 이효석 선생이 1936년 부터 1940년까지 살았던 평양시 창전리 48번지를 재현한 집앞 메밀꽃밭에서도 인사드립니다. 당시 이집은 삼십평이 넘는 뜰에 나무와 화초가 가득했고, 붉은 벽돌로 담쟁이가 올라가 집 전체를 푸르게 치장하기도 해서 "푸른집" 이라고 불렸다고 전합니다. 이 집에서 이효석 선생은 두 아들을 낳았고 축음기로 음악을 듣거나 피아노 연주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며 1940년 아내와 차남을 잃고 평양시 기림리로 이사했다 합니다. 이효석 선생은 이집에서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 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쓰며 자신의 문학세계를 완성 해 갔으며, 2007년 평창군에서 이효석 선생의 향취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이 곳에 재현했다고 한다고 합니다. *현장글 옮김 복원된 이효석의 초가 생가를 옆에서 담은 모습.. 둘러보고 내려 가는중이다. 고개를 좌측으로 돌리니 메일꽃 너머로 복원해 놓은 이효석 생가가 보인다. 해바라기 암술에 벌이 찾아 들었다. 이곳에선 샛노란 둥근얼굴의 해바라기가 잘 가라며 이번엔 배웅이다. 오나가나 꽃들의 영접과 배웅을 받아 꽃기운까지 안게 된 여행길이다. 손톱에 꽃물 들이던 봉숭아꽃을 만난다. 가까이.. 생가터에 장식으로 꾸며놓은 물레방아를 마지막으로 둘러 보고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물레방앗간으로 이동이다. 물레방앗간..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사랑을 나누던 곳 풀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레방앗간으로 들어가질 않았나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봉평 물레방앗간 옆 돌에 새겨진 글귀 옮김 후면에서 바라 본 물레방아 전면에서 이번엔 포즈를... 가산공원에도 잠시 둘러본다. 거울놀이도 즐기며.. 하루 해가 저물어 간다. 다음일정은 평창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탐방이다. 서둘러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진부로 빠져 나온다. 봉평과 오대산은 아이들 어릴적에 여러번 다녀간 곳이다. 오랫만에 둘러보니 특히나 봉평은 많이 바뀌어 예전 모습이 별로 없었다. 오대산 월정사 쪽 숙박시설로는 호텔을 빼곤 숙박시설이 마땅치 않아 예전엔 방아다리 약수터 쪽 팬션을 주로 이용해 왔다. 그 쪽엔 펜션들이 여러군데 있었다. 이번에도 그곳으로 정하려다 월정사 입구까지 한번 가보자 해서 온곳인데 안성맞춤 좋은 콘도식 민박숙소가 있었다. 취사가능한 숙소와 그렇지 않은 두 종류 숙소가 있었다. 하룻밤을 너무 잘 보낸 둥지로 큰 부담없는 추천하고 싶은 곳으로 정보를 니눈다. 공간은 여유롭게도 두칸이다. 우측 문앞엔 까만 신이 가지런히..내 신발도 보인다. 좌측엔 앞에 평상까지 있는 방 둘..취사도 가능이다. 바로 앞에 월정사 노인전문요양원이 있고 그 아래가 넓은 계곡이다. 계곡따라 기인 숲 산책길도 있고 그 계곡은 물안개가 피어나면서 즐겨 머물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탁트인 시원한 곳에 둥지를 틀고 여행봇짐을 숙소에 정리한 뒤 쥔님의 안내로 숙소앞 아래 계곡으로 내려 간다. 좌회전은 숲길 직진은 물가 쉼터다. 저녁 물안개가 놀러 나왔다. 서울에서 귀빈이 오셨다고 반기려 나왔나 보다. 그 안개에 홀려 저녁식사도 않고 준비해 간 간식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그 자리서 어둠이 내릴때까지 하모연주도 하며 물안개와 놀았다. 밤이 서서히 고개를 쳐든다. 민박동네에도 어둠은 여지없이 내렸다. 황색불빛이 다정한 친구가 되어 준다. 공기좋고 산수좋은 거리를 황색불빛에 의지해 호젓한 거리의 밤을 즐기다 내일의 행복을 꿈꾸며 깊은 잠속으로 빠진다. 2011.7.26.화요일..둘쨋날 아침을 맞는다. 눈을 뜨니 실비가 내린다. 아스팔트 땅에 빗물도 고여 있고 나뭇잎들도 촉촉히 젖어 있는 걸 보니 밤새 비가 제법 내린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혼자 나간다. 잠깐 둘러 볼 생각으로 나갔는데, 세상에나~ 엊저녁엔 한곳에만 자리잡고 있어 이렇게 멋진 산책길을 몰라 봤다. 특히나 빗물 흠뻑 받아먹은 초록세상에서 천국같은 산책길을 만나다니...... 자연속에서 횡재한거나 진배 없는 산책길이다. 새벽산책길을 이곳에 옮겨다 놓는다. 하룻밤을 보낸 기와집 둥지가 새벽 안개속에서 흐릿하게 보인다. 초록풀들과 나무들이 촉촉히 젖어 있어 호흡이 편안했다. 산책중인 마주친 여인들과 인사도 나누는 즐거운 산책길이다. 벼가 자라는 논이 아니구요, 파밭입니다. 기다릴 것 같아 홈으로 갔다가 다시 같이 산책을 하며 사진도 담았다. 동산리 경로당도 자리하고 있었다. 오대산콘도형 산장민박(033)332-6589 HP:011-378-7222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27-3 오대산 월정사 입구) 우연히 알게 되어 하루밤을 묵게 된 숙소다. 右에서 첫방이다. 이곳에 머물지 않았다면 물안개 피어나는 계곡과 소나무숲 오솔길을 어찌 알았을까? 아름다운 시적 풍경에 반해 그 풍경들을 도배하게 되었다. 인생여정에서 잠시 머리도 식힐겸 쉼표를 찍고 싶을때 다시 찾아 와 쉬었다 가리라! 오대산입구에서 꿈꾸 듯 한 시간들을 보내고...... 두고 떠나기 못내 아쉬어 뒤를 자꾸 돌아 보며 둘쨋날의 첫 일정인 방아다리약수터로 핸들을 돌린다. 혹여 "월정사노인요양원"에 대한 정보를 아시려면 한글명으로 인터넷 검색해서 홈을 방문하면 이모저모 자세히 볼 수 있더군요. 1편은 여기서 마치고 2편은 방아다리 약수터와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촬영및제작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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