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펜트하우스’ 시리즈가 3편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펜트하우스’가 대하드라마도 아닌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고 한 것은 2020년 10월 26일 시작해 거의 1년 가까이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물론 세 편의 시리즈로 방송되어 회차가 연속 이어진 건 아니다. 3편의 경우 느닷없이 주 1회 편성한 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아마도 시청률 빵빵한 드라마로 오래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려는 전략적 편성인 듯하지만, 그게 아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시즌3가 방영되면서 혹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펜트하우스는 SBS의 효자 아이템이다. 하지만 시즌2와 3까지 이어져오면서 과거 인물들이 계속 살아서 돌아오는 과한 설정 등에 시청자들이 피로감을 느낀 듯하다”(스포츠서울, 2021.8.3.)고 말했다.
시청률을 살펴보면 ‘펜트하우스3’가 1, 2편 인기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첫회 19.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를 찍으며 1, 2편 인기를 이어갈 기세였지만, 시청률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흔히 반짝 상승하는 최종회 시청률마저 19.1%로 오히려 1회보다 낮게 나왔을 정도다.
요컨대 최고 시청률이 1편 28.8%, 2편 29.2%인데 비해 3편은 고작 19.5%에 그친 것이다. 최저 시청률 15.5%를 찍은 게 그나마 방송사측으로선 위안거리가 될 수 있다. 1, 2편 인기가 워낙 하늘을 찌를 만큼이어서 그렇지 평균 시청률 17.9%는 1편의 16.4%보다 오히려 앞선 것이라서다. 2편의 22.2%에 비하면 상당히 쪼그라든 인기이긴 하다.
먼저 ‘펜트하우스’는 한국드라마사에 한 이정표를 세운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그동안 ‘막돼먹은 영애씨’ 같은 시리즈가 있었지만, 2개월 간격으로 세 편을 연속 방송한 최초의 드라마여서다. 참고로 2편(13부작)은 1편 (21부작) 종료후 달포만인 2월 19일, 3편은 2편 끝나고 두 달 남짓만인 6월 4일 각각 돌아왔다.
1, 2편을 다룬 글에서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스포티비뉴스(2021.9.11.)에 따르면 “상위 1%만 입주할 수 있는 헤라팰리스, 국내 명문예술고등학교 청아예고를 배경으로 가진 자들의 민낯을 낱낱이 그려냈던 ‘펜트하우스’는 한 번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중독적인 ‘마라맛 전개’로 시즌1부터 뜨거운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다.
그뿐이 아니다. “그 결과 시즌1 첫 방송부터 시즌3 최종회까지 총 48회 동안 ‘주간 전체 미니시리즈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는 독보적인 기록을 작성했고, VOD와 온라인 동영상 조회수, 2049 시청률까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며 신드롬급 인기를 지속, 드라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펜트하우스’다.
그럴망정 처음부터 막장 논란과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더니 3편 또한 최종회 시작 전 자막을 통해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은 현실의 비극적인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참사 영상을 드라마 속 폭탄 테러 장면 뉴스의 자료화면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시청자 사과다.
로건리 쌍둥이 형인 알렉스(박은석)가 굵은 레게머리와 과한 타투, 금 장신구 등을 착용한 채 흑인 보디가드를 대동해 등장한 것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도 있었다. 국내외에서 알렉스 캐릭터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및 흑인 문화를 조롱하고 차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진 것이다.
또 하나 이전 금토드라마에서 난데없이 ‘금요드라마’로 둔갑한 것과 별도로 특기할 것이 있다. 한 회를 1~3부로 쪼갠 편법의 중간광고가 5회(7월 2일) 방송부터 사라진 점이다. 7월 1일부터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가 허용되면서 생긴 변화다. ‘펜트하우스’뿐 아니라 지상파 3사의 모든 프로그램이 짜증과 함께 헷갈리던 회차 구분이 비로소 정상화된 것이라 할까.
그렇다면 ‘펜트하우스3’는 어떤가? 1, 2편에서 이미 말한 내용들을 중언부언(重言復言)하지 않기 위해 결론부터 말하면 한 마디로 좀 아니지 싶다. 수감된 주단태(엄기준)ㆍ천서진(김소연) 등이 풀려나와 심수련(이지아)에게 반격을 가하는 악행이 시즌 3의 주요 내용이다. 도대체 그들 악행의 끝이 어디일지, 있기나 한 것인지 오싹 소름이 끼칠 정도다.
물론 강마리(신은경)의 “대한민국 법이 이렇게 물러터져도 되는 거야”(2회) 같은 씹기는 수련의 “다시는 법 같은 것 믿지마”와 함께 제법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또 8회 오디션 시상식에서 로나가 서진을 안으며 “좀 웃으세요”하는 등 여러 대목에선 은근히 통쾌하면서도 후련한 대리만족을 느낄 시청자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3편에서 새로 등장한 백준기(온주완)와 유동필(박호산)이 악의 축에 합류한 건 다소 실망스럽다. 특히 전체 14부작 드라마 5회에서 주요 등장인물인 오윤희(유진)가 수련이나 로건리처럼 살아 돌아옴 없이 완전히 죽는 건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아니 어떻게 전개하려고 하지’ 하는 생각이 스쳐가서다. 오히려 살아돌아 오지 않는 게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실망스러운 건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전개가 느슨해진 점이다. 왜 2회나 연장했는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가장 실망스러운 건 결말이다. “다시는 법 같은 것 믿지마”(2회)에서 보듯 직접 복수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수련의 자살과 로건리의 골수암 재발로 인한 죽음은 시청자 기대에 대한 배신이다. 그나마 로건리의 죽음은 제대로 묘사되지도 않았다.
수련은 하윤철(윤종훈) 임종에서 이제껏 없었던 회의에 잠긴다. 자신의 복수로 인해 윤희와 윤철 등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다. 황당할망정 단태를 권총으로 쏴죽인 살인범이니 응당 수련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다고 스스로 죽는 속죄는 너무 안이한 결말이다. 온갖 악행을 저지른 범인일지라도 죽는 것처럼 허망한 결말은 없다.
시리즈 마지막 편답게 많은 사실이 밝혀지는데, 압권은 주석경(한지현)이 수련의 친딸이라는 사실이다. 단태 버금가는 나쁜 짓을 해댄 석경이기에 우리가 어떤 부모이고 어른이어야 하는지 생각케 해준다. 서진이 살인자임을 법정 증언한 하은별(최예빈)이나 죽었다 살아난 배로나(김현수)를 통해서도 마찬가지 깨달음을 일깨운다.
다만, 석경이 수련의 친딸로 밝혀졌는데도 1편의 민설아(조수민)처럼 학생 레슨에 음식점 알바까지 하는 인생으로 나오는 건 좀 의아하다. 개과천선한 새 삶을 보여주려는 의도인지 몰라도 수련의 상속자로서의 개연성 있는 모습이 아니어서다. 개연성 없는 전개가 어디 이것뿐일까만, 너무 작위적 보여주기가 거슬린다.
아쉬움도 있다. 5회에서 단태의 차량 공격에 돌 던져 유리창을 깨는 등 적극적 저항이 없는 게 그렇다. 7회에서 단태는 코트까지 걸치고 있는데, 같은 장면에서 수련은 반소매 블라우스 차림인 것도 마찬가지다. 은별의 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텐데, 낭떠러지 현장으로 직방 출동한 경찰 역시 아니지 싶다.
그보다 더 아쉬운 건 이미 죽은 수련과 로건리의 영혼 등장이다. 막장의 끝판왕 소릴 듣던 드라마인데, 갑자기 영혼의 만남이 등장하고 그걸로 대단원의 마무리로 삼으니 이런 허망함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 지점에서 그렇듯 사람을 많이 죽여야 했는지 하는 아쉬움도 있다. 기껏 살아돌아온 수련이나 로건리도 그렇지만, 윤철의 죽음이 특히 그렇다.
가히 악인열전이라 할만하지만, 왕중왕은 단연 단태다. 서진과 막상막하 쌍벽을 이루지만, 단태는 수련의 총에 맞아 죽기 전까지도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라며 강변한다. 반면 서진은 “제 딸에게 짐이 되지 않겠습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살한다. 악행은 막상막하지만, 최후가 다르다. 서진의 경우 단태처럼 응징되는 게 아닌 자진(自盡)이라 그렇다.
2편에서도 말했듯 시리즈 3편까지 다 보고 남는 가장 큰 문제는 그들 악행의 근본적 이유에 자식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서진과 윤희가 역대급인데, 이는 명백히 세상의 모든 부모에 대한 모독이다. 자식을 위해 못할 게 없는 부모이긴 하지만, 서진이나 윤희처럼 그렇진 않다. 그래선 안된다.
오죽했으면 은별이 엄마 서진에게 “나 때문 더 이상 죄짓지 마”라며 절규할까. 그러기 전 주석훈(김영대)이 단태의 밀항을 수련에게 알리거나 은별의 경찰 신고에 이은 법정 증언 등 자식들은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 단죄에 동참한다. 정의 차원에서 올바른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것 역시 천륜(天倫)을 어긴 것이다. 허구의 드라마라고 이래도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