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일대기

[동지섣달]

나는 코미디언이 꿈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6년이란 세월동안 어머니는 항상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 정문 앞에서 나를 즉시 픽업하셔서 청담동에 있는 학원으로 데려가셨고,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원 앞에서 설령 내가 다른 곳으로 셀까 노심초사하시면 기다리셨다. 나는 6년 동안 매일 단 한 번의 일탈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성공적으로 나를 집, 학교, 학원이라는 울타리를 벋어나지 못하게 하셨고, 덕분에 나의 꿈은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그냥 묻혀 버렸다. 판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판사 사모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는 내가 판사가 되는 것에 집착증을 보이셨고, 우리가 살던 안성에는 좋은 학원이 없다는 이유로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던 해에 최고의 학원들이 몰려있다는 서울 압구정동으로 이사를 왔다.

6년 동안의 긴 세월동안 나는 철저하게 법대 진학만을 위한 삶을 학교, 학원 그리고 집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만 살았다. 그 덕분에 나는 간신히 서울에 있는 어느 한 법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에도 나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대학생활은 다시 무미건조해졌다. 어머니는 나를 다시 사법고시대비과외라는 철장 속에 가두셨다. 그렇게 나는 8년이라는 세월을 철장이 아닌 철장 속에서 내 젊음을 보냈으며, 그 대가로 내가 서른이 되던 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2년6개월의 군복무 기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어머니는 유명하다는 사법고시 과외교사를 데리고 면회 오셔서 1박2일의 외박동안에도 나는 부대 근처 여관에서 사법고시 과외를 받았지만, 그래도 그때 군복무기간은 내가 유일하게 어머니가 쳐놓으신 울타리를 벋어나 나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나의 과거에 대해  말하면 다들 측은한 눈으로 나를 위로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무엇보다 내가 지금 판사라는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어머님 덕뿐이다. 지금도 내가 어려운 재판을 맡게 되면 어머니는 지금은 은퇴하시고, 모 한국 최고의 법률사무소에 고문으로 계시는 홍길동 대법원장을 집으로 모셔와 특별자문을 받도록 해 주신다. 이젠 나는 이런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나에게 해 주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요즘 나는 나만의 비밀이 하나 생겼다. 나는 가족들 모르게 개그맨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어느 날 우연하게 보게 된 개그콘서트라는 프로는 내가 지난 30여 년 동안 잊고 살았던 내 꿈을 다시 기억하게 해 주었다. 이제 40대 중반인 나는 이젠 다시 그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개그맨 아카데미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연습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약간의 개그를 통해 법정의 권위와 분위기를 해치지 않은 정도에서 재판을 조금 부드럽고, 친근하게 진행하면 어떨까? 나는 유독 이혼 재판을 많이 맡는데, 딱딱하고, 틀에 박힌 재판보다, 좀 더 부드럽고, 약간의 유머를 통해 순간적인 감정 때문에 이혼하려는 부부들을 말릴 수 있을 수도 있고, 내 꿈도 조금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이혼소송이 있다. 노부부 한 쌍이 이혼을 하려 한다. 그간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경우는 십중팔구 재산상속 때문에 생긴 갈등이고, 대부분의 경우 아내가 이혼소송을 청구한다. 그런데 이번 건은 남편이 이혼 소송을 청구했다.  평범하지 않는 사연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머니께 내일 재판에 대한 간단히 말씀드렸다. 어머니의 의견은, 아닌 판결은 ‘이혼은 절대 안됨’이였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존중하는 착한 아들이며, 내일 재판의 결과는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모작]

잘 부탁드립니더.
지는 이혼 안 할랍니더.

[그냥나르샤]

어쩐지..... 법정에서 꿈을 실현시키시는군요

[안드로메다]

ㅎㅎㅎㅎ 어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개그학권 다니는 판사...이런 거... 크리에이티브 한 거죠~
엄마와 재판에 대한 상의,,, 이건... 예상 못 한 보너스~
홧팅입니다요~

[힘빼]

어 좋은데요
판사 대사 중에 써먹을 게좀 있을 것 같고... 필이 확 오는데요

[여름베짱이]

머야? 이런 마마보이가 판사야? 재판 쉽지 않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