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다가 개구쟁이 소년과 예쁜 피아노교사가
그랜드피아노 앞에 나란히 포즈를 취한 사진광고를 보게 되었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영화제목에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
시사회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렸다.
Horowitz Vladimir(호로비츠 블라디미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지방 출신의 미국 피아노 연주가이다. 토스카니니(Toscanini Art
uro, 이탈리아의 지휘자, 20세기 지휘계 거장)의 딸 반다 (Wanda)
와 결혼을 하여 미국에서 주로 연주활동을 한 그는 연주회 때마다
세계 각국에서 팬들이 모일 정도였다고 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멘토가 되는
그 유명한 호로비츠!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가 상영된
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예전에는 외국 필름을 통한 영화가 더러 있었다.
`홀랜드 오퍼스`, `뮤직오브하트`와 같은 작품속에서도 음악을 통한
인간 사랑의 깊이와 인간 승리를 심도 있게 표현한 영화였다.
우리 정서에 맞는 밀접한 표현을 나타내진 못했지만 언제 다시 봐도
좋은 영화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피교육자를 영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3단계의 스
승이 필요하다.
유아기 때의 부모의 영향, 아동기의 교사의 영향.
그리고 청년기의 전문적 기량을 닦는 일이다.
이는 그 분야의 최고봉이라도 할 수 있는 대학 교수나 전문연주인에게
고된 수업과 교육철학을 배워야 대성할 수 있음이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절대적인 후견인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관람하면서 느낀 점이 바로 우리의 역할임을
다시 한 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피아노학원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세세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
었다면 진부했을 영화내용이 극적인 휴머니즘(humanism)을 시나리
오화했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여 눈물바다를 이루게
했던 것 같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사실 일어나기
매우 힘든 사건을 영화화한 것은 유사한 에피소드 하나쯤은 모두 가
슴에 키우고 사는 피아노 레스너들이 영화속의 제자의 더 높은 기량을
위해 나보다 더 훌륭한 스승을 찾는 일과 떠나보내야 하는 배려는 청
출어람(靑出於濫)을 위함이 아닌가.
지도교사들의 애환 중 하나가 항상 새로운 학생, 즉 검증되지 않은
초보자를 맞아 어느 정도의 실력이 연마되도록 가르쳐서 늘 더 나은
환경으로 떠나보내는 아픔을 가슴으로 쓸어내는 일을 겪는 것이다.
첫 번째 스승은 하얀 도화지에 스케치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기초 공사가 충실한 집이 무너지지 않듯이 피교육자가 영재이든, 보통
아이이든 아니면 둔재이든. 우리의 역할이 성직자 이상의 막중한 책임
이 있다.
자신 한 몸도 가누기 힘든 처지에서 제자의 교육에 정열을 쏟는 영화 속에
피아노교사의 모습에서 우리 곧 나의 자화상을 보았기에 감동받은 영화.
`랩소디`아 `송 오브 노르웨이`가 그렇고 `사운드 오브뮤직`이 그러하듯이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에 음악이 또 하나의 감동을 얹어주는 덤으로 얻는 기쁨.
주인공 소년(경민)이 꿈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피아노교사가 연주해 준
슈만곡 `트로이메라이`. 단 한 사람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옛 스승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바치는 앵콜곡의 선율이, 감성 깊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블라디미르 발렉(Vladdimir Valek) 비휘의 하노버
방송교향악단의 협연곡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의 환상적인 연주장면
을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모습으로 나타난 꼬마 주인공의 성공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제자 사랑임을 피아노 교육에 애환을 갖고 지도하는 모든
교사들은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