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를 다 합쳐서 아름다운 '미인' 3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1.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2. 일본 '오노노 코마치'
3. 중국에 '왕소군'
시대마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서 '미인'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이렇게 이름을 남길 정도라면, 단순히 얼굴만 이쁘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얼굴 외에 더 많은 매력이 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야심찬 정치가이고, 카이사르(가이사) 시대 역사에
큰 임팩트를 남긴 여걸이다.
어쩌면 얼굴의 외모보다는 시선을 뗄 수 없는 '이벤트' 능력이 탁월했다..
왕소군, 그리고 '오노노 코마치'도 얼굴 사진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미모가 아름다웠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오노노 코마치, 왕소군에 대한 '고시(한시)'들이 많이 남아있다.
(아래 모습: 왕소군 모습 상상화)
조선 효종 시절에 청나라에게 끌려간 '의안공주'와 가장 비슷한 사연을
가진 '왕소군' ~!
그녀의 특별한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현재는 가난한 나라 '몽골'을 여행할 때에 차량 운전 기사와
대화를 나눴는데, '몽골'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과거 아시아 내륙을 두번이나 통일 시켰다는 것..
칭기스칸이 세운 원나라, 그리고 더 과거에 흉노족이 통일 시켰으니
그런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몽골이 지금은 가난한 나라지만, 과거 역사를 놓고 보자면,
확실히 한국보다는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한나라 유방이 중국을 통일(BC206년)시켰지만,
이후 흉노족의 침입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전쟁도 하고 회유도 했는데, 가장 돈이 적게 들어가면서
효과가 좋은 것이 친교를 통한 회유책이었다.
그래서 한나라 황제들은 흉노족 귀족들과 장군들에게 당근이나 미끼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BC38년..
전국에서 '후궁'을 모집한다는 조서를 보고 전국 각지에서
후궁/궁녀를 지원한 여인이 수천명에 달했다.
제대로 관리하기 위하여 (카메라가 없던 그 시절에) 초상화 그리는
화공이 직접 궁녀 얼굴을 그래서 관리했다.
이쁘면 승진할 수 있고, 못생겼으면 평생 궁녀 신세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니 화공에게 뒷돈을 주고 이쁘게 그려 달라고 했다.
'왕소군'은 가난했기에 화공에게 돈을 줄 수도 없었고,
얼굴에 자신이 있었으니, 그렇게 청탁할 마음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화공이 고의적으로 못 생기게 초상화를 그렸다.
결국 '왕소군'은 후궁이 될 수 없었고, 계속 궁녀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세월이 5년 흘러..BC33년 ~!
남흉노족 '호한야'라고 있는 '선우(호칭)'이 한나라 '원제'를 알현하기
위해서 '장안'으로 왔다.
대부분이 유목민족이었던 흉노족은 모피, 고기 등 조공을 들고 왔다.
친선 외교를 위해서 호한야는 황제의 여식과 결혼하기를 원했는데,
연회에서 궁녀로 있었던 '왕소군'의 외모를 보고 깜짝 놀라서,
딸 대신 '왕소군'을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나라 황제 입장에서도 딸을 보내는 것이 불편했으니 그렇게
허락을 하고, '왕소군'을 보니 매우 아름다웠다.
(중국 드라마속에 왕소군과 호한야 선우)
그제서야 화공 초상화에 비리가 드러났고, 화공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왕소군은 흉노족 '선우'의 아내가 되었고,
그녀는 선우 사이에 아들도 낳았다.
당시 선진국이었던 한나라의 문화를 (목축만 했던) 흉노족에게
전파하는 역할까지 한 왕소군은 흉노족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왕소군이 가난한 시절 '길쌈'하는 기술, 농사 짓는 방법 등도 알고 있다보니
흉노족들에게 신기술을 전하는데 유용했을 것이다.
그녀로 인하여 60년 이상 흉노족의 침입도 없었다.
하지만 호한야가 2년만에 사망을 했다.
왕소군은 한나라로 귀환을 요청했으나,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지
거절되었다.
호한야 선우의 본부인이 낳은 아들(복주루)이 '선우'가 되었고,
그가 왕소군을 취하여 딸 2명을 낳았다.
(쉽게 말하자면 촌수로는 아들뻘 관계.
왕소군이 얼마나 미인이면 대를 이어서 왕과 결혼할 수 있을까?)
'왕소군'은 죽어서 내몽골 '후어하오터 도시'에서 9km 남쪽에 있다.
'청총'이라는 곳에 무덤이 있고, 그 입구에 있는 동상 모습이다.
(좌측:호한야선우 우측:왕소군)
2천여년이 흐른 지금 구체적인 사연을 알 수가 없다.
하여간 '왕소군'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비파를 연주하며 슬픈 노래를 하면
날아가던 새가 떨어져서 죽었다고 한다.
(슬퍼서 죽은 것이 아니라.. 하도 아름다워서 새가 멍하니 보다가
날개짓을 하지 못해서 추락사 한 것)
한국 문화에도 많이 알려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이 시의 어원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에 대해서 쓴 시의
일부를 따온 것이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의미...
(왕소군이 없는 한나라는 지극히 슬프다는 의미를 표현)
어느날 아들에게 물었다.
다소 극단적인 경우인데, 다음 중에서 어떤 삶을 원하니??
첫째. 아주 잘 생겼는데, 머리가 안 좋은 인생.
둘째, 아주 못 생겼는데, 반대로 머리가 아주 좋은 인생..
아들은 머리가 안 좋아도 잘 생기기를 바랬다.
요즘 이십대 청년들이 외모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래서 그런지.. 서울 거리에 나가보면 못 생긴 사람이 없다.
얼굴이 화려하고 인상이 좋으면 확실히 경쟁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은 거의 공평하다.
잘 생긴 사람치고 출세한 사람이 많지 않다.
잘 생긴 사람치고 팔자가 좋은 사람이 흔하지 않다.
지구(세상)는 '대체적으로' 못생긴 사람이 지배한다.
위에 '왕소군'도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그것 때문에
그녀 팔자(八字)가 사나웠을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얼굴(외모)에 만족하고 감사할 일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