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캠프 게시판에 글 올릴 권한이 없다고 해서 이곳에 올립니다)
온라인에서 용감한 저는 사실은 낯가림이 심한 사람입니다. 낯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는 건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요. 그래서 작년 어학캠프는 망서리다 결국 포기했었습니다.
올 어학캠프를 갔단 온 지금 심정은 뿌듯함 그 자체입니다. 가기를 너무 잘 했구나. 얻은 정신적 수확이 얼마인지 가늠도 되지 않을 정도랍니다. 멋진 교수님들과 튜터 선생님들을 직접 뵙고 강의도 듣고, 좋은 친구도 사귀고, 안개비 내리는 충주호반을 굽어 보며 아침 산책도 하고... 안개구름이 피어 오르던 산자락이 어찌나 멋지던지 지금껏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자리 잡으려고 화장실 갈 틈도 없이 교실을 옮겨 다니며 꼭 출석수업 받는 기분이라고 투덜댔지만 정말은 그저 즐겁기만 했답니다. 통합강의에서의 박 성주 교수님과 김영구 교수님, 구경숙 강사님의 강의도 너무 좋았고, 망설이다 용감하게 들어선 중급반 강의는 제 중국어의 살이 되고 피가 되었습니다.
귀에 익은 동봉창 교수님의 자상하신 강의, 명쾌하면서도 유머가 넘치시던 오문의 교수님의 문법 강의, 잠시도 한 눈을 팔수 없게 만들던 김혜림 교수님의 톡톡 튀는 강의, 그리고 한밭대학의 중국인 교수님 강의. (프로그램을 못 본 관계로 이 교수님의 성함을 모르겠습니다)
한밭대학 중국인 교수님 강의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강의도 유익하고 재밌었지만 (이 교수님의 강의는 거의 연극 수준이더군요. ㅎㅎ) 다른 대학 원어민 교수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행운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우리는 동 교수님 외에는 원어민 교수님을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동 교수님 강의가 조금씩 들리는 게 단지 익숙하기 때문인지 궁금했는데 한밭대 교수님의 강의도 그만큼은 들려서 너무 기뻤어요. 귀가 무딘 저는 듣기가 거의 스트레스 수준이었는데 희망의 싹을 본 하루였답니다. (다른 대학 원어민 교수님까지 초청하신 걸 보고 교수님들과 학생회 임원진 여러분께서 어학캠프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셨나, 감동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든 강의가 끝난 후 빈 강의실에서 오붓하게 만났던 김성태 선생님과 여러 튜터 선생님들, 만나뵙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렇게 수준 높은 자리인줄 모르고 철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도 너무도 따뜻하게 좋은 말씀들 많이 해주셨지요. 그때 들은 말씀 오래 가슴에 간직하겠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많이 만난 것도 저에게는 기쁜 일이었습니다. 저는 8013호(호수가 맞나?)에서 묵었는데 우리 방은 인원이 11명이나 되었어요. 처음엔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게 더 좋은 일이더군요. 그만큼 많은 친구를 전국적으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나이만큼이나 지역도 다양해 서울, 춘천, 구미, 과천, 양평, 하남... 저는 하남에 사는데 하남 사는 친구도 있었어요. 인연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일이...
방송대 학우라는 것만으로 우리들은 나이를 거뜬히 초월할 수가 있었지요. 서로 자기 소개에, 나이 맞추기 게임에, 밤 깊은 줄 몰랐는데 처음 보는 처지에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잠자리에 누운 다음에도 끊임없이 속닥속닥... 덕분에 다음날 수업은 아주 조금 흐리멍텅. (아주 조금입니다)
그 날 밤 그 방안의 풍경이 눈에 삼삼하네요. 그 중 한 친구와 지금 글을 쓰는 도중 쪽지 대화를 나눴어요. 그 전에는 카페에 들어 와도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캠프효과가 바로 나타나네요. ㅎㅎ (13호에서 동침했던 친구들, 반가웠고, 건강하고, 또 만나요~)
가격이 저렴한 관계로 식사는 굉장히 소박했지만 그것도 직접 하지 않고 남의 손에 얻어 먹으니 너무 좋더군요. 식사 때가 되도 반찬 걱정을 하나, 그냥 줄만 서 있으면 식판에 담아서 주죠, 설거지도 안 해도 되죠. 해방이란 건 바로 이런 걸 말 하는구나 싶었지요. 그것만으로도 어학캠프는 충분한 의미가 있는 거겠죠. ㅎㅎ
중국어 공부할 때 듣기보다 제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 건 바로 말하기에요. 저는 스터디도 안 나가고 혼자서 하다 보니 혼자 중얼거리는 거 외엔 도대체 중국어를 말 할 기회가 없는 거에요. 요번 캠프에 참가한 것도 사실은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은근히 바래서였지요.
운 좋게도 김혜림 교수님 강의 때 기회가 왔었어요. 강의 막판에 몇 사람에게 중국어로 물으시곤 대답하게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제게 천금 같은 기회가 온 거에요. 근데 오면 뭐 해요. 다른 사람에게 하시는 질문은 그래도 어느 정도 들렸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니 갑자기 머리 속이 하얗게 표백이 되는 거에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그런 영화 제목만 둥둥... 한 두 마디 용케 알아 들어도 이번엔 또 입이 안 떨어지는 겁니다. 어물거리다 속절없이 그 기회를 보내 버리고 나니 창피하고, 내가 한심하고... 외국어는 절대 혼자 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걸 절감했지요.
말이 나온 김에 제 소망을 살짝 말씀 드려도 될까요? 요번에는 초급과 중급, 두 반으로만 나눴잖아요. 내년 캠프에서는 소모임 수업도 프로그램에 넣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수준에 따라 인원을 열 명 정도로 해서 교수님과 튜터 선생님, 중국어 잘 하시는 선배님들이 한 반씩 맡으셔서 발음 지도를 해주시는 거에요. 고급반은 중국어로만 말하기, 뭐 그런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인원이 너무 많아 그만큼 선생님들과 임원진들의 일이 많아지겠지요? 학생회를 위해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바라는 것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처음 참가한 캠프가 너무 좋아 글이 길어졌습니다. 결론은 너무 유익하고 즐거웠다는 그 두 마디입니다. 내년에도 꼭 참가하고 싶어요, 별 일 없으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댓글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