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3:1~10(190) 나는 일어서리라 2023. 10. 29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 화요일인 10월 31일이 종교개혁일이라서 오늘은 많은 기독교회에서‘종교개혁 기념 주일’로 지키고 있는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부패한 교황제도와 면죄부 판매에 대항하는 95개의 반박문을 내걸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주제는 ‘오직 성경의 권위와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을 강조하며 부패하고 타락한 천주교회를 지적하면서 교회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교회개혁 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루터가 시작하였던 종교개혁은 매순간 순간마다 고비와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로마교황청은 천주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루터의 입을 막고 행동을 제한시키고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면죄부 판매를 통해서 천주교회가 막대한 돈을 축적하고, 금권과 이권에 눈이 먼 당시 부패한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루터의 말과 행동에 수많은 시민들이 지지를 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천주교회에 대한 개혁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에 로마 교황청은 루터를 소환하여 종교개혁의 주장을 철회하도록 압박을 넣기 시작합니다.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말로 회유를 합니다. 그래도 루터가 흔들리지 않자, 루터의 마음을 돌리려고 황금의 장미(Golden Rose)를 보내는 뇌물 정책도 사용합니다. 당시 교황이 내리는 ‘황금의 장미는 교황이 주는 특별한 축복’으로 알고 모든 사람이 받기를 갈망하는 명예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자들이 복음의 제사장이기에 교황권이 신자보다 우월할 수 없으며, 교황에게만 성경 해석권이 있는 것은 잘못이라며 종교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520년 6월 15일 루터에게 파문장(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다)이 발행되었고, 국회를 통해 루터에게 화형을 시켜 죽이도록 압력이 가해집니다.
1521년 4월 17일, 황제 찰스 5세는 루터에게 보름스(Worms)에서 소집된 국회에 출두할 것을 명령합니다. 루터를 아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름스회의에 가면 불에 타 죽을 것이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적극 만류합니다.
이때에 루터가 던진 아주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원수들이 보름스 성당의 기왓장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갈 것이다.” 담대히 보름스 국회로 들어가는데 백여명의 기마병들이 둘러쌓고 위협을 합니다. 이때 루터는 외칩니다. “하나님,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나는 달리 말할 수가 없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Here I stand, I can not help it, God help me, Amen).” 루터는 신앙적 결의를 단단히 하며 어떠한 위협에도 ‘나는 일어서리라’고 외쳤던 진정한 개혁자였습니다.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지금의 힘든 상황과 처지에서도 세상의 압박과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일어서리라’고 선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너무
수중에 몇 푼 되지 않는 돈이라고 돈이 없어서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 가다가 생활고로 세상과 맺은 줄을 스스로 끊는 분들이 등장합니다. 뉴스를 통해서 보면 돌아가신지 몇 달이 되었는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이미 시신이 백골화 되어 몇 달 이후에 발견되는 안타까운 죽음도 있습니다. 라면 하나 사먹을 돈이 없어 굶는 사람들에게 단돈 몇 만원은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이도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잃어 버려서 매사에 힘들게 생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 아예 일어서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한 달 내내 누워만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소망은 내 발로 일어나서 병원 복도라도 거닐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을 힘들게 살아가지 않도록 적당한 재물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내 몸 하나를 건사할 수 있는 건강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일어서서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물질을 누리고 건강을 챙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문제를 위하여 저는 날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을 놓고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일으켜 세우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초대교회가 성령의 역사로 성장해 나갈 때,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있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일으킨 기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조금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라면, 절대로 잊지 못하고 기억하게 되는 기사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두고, ‘단순하게 한평생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가 요행스럽게 베드로를 만나서 걷게 되었다’라고 섣부른 판단을 금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이해할 때에 단순하게 병 고침을 받은 것에서 머물러버린다면, 그야말로 수박 겉핧기 식으로 이해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어가는 놀라운 이 기적의 사건은 ‘죄에 묶여 신음하는 영혼이 예수를 통해 자유와 구원을 얻는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에 진정한 본문의 의미를 찾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나에게 찾아온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헤쳐 나가지 못하는 난관에서 능히 나를 벗어나게 이끌어 주시는 분임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면서 한평생 구걸만 하던 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수중에 떨어지는 돈 통에 떨어지는 은화나 동전이 아닙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나 걷는 것입니다.
8절 다 함께 읽어 보십시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가 어떻게 행동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나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일어서 보지도 못했던 사람이 일어납니다. 단순하게 일어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걷습니다. 일어나 걷는 것만으로도 기적인데, 발과 발목과 하체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서 뛰기도 합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보아도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이름이 있었기에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리를 다쳐서 누워서 요양해 보신 분이나, 또는 다른 질병으로 인해 병상 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리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기브스하거나 침대에 누워 있으면,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이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로 빨리 약화된다는 말입니다. 한 두 달 누어있어도 단번에 근육손실이 일어나는데, 이 사람은 한평생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종아리와 하체 근육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적으로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행동을 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기적인 줄로 믿습니다.
복음성가 ‘나는 일어서리라’를 다함께 부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일어서리라’는 고백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1.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의 장애를 가졌던 이 사람은 이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성전 입구에서 자리를 깔고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을 들어가다가 이 사람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이미 성전을 여러 번 출입하였기에 이 사람이 성전 입구에 머물면서 구걸을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에게 성령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머물러 세웁니다. 보통의 여느 날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야 주시려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람에게 “우리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행동합니다.
5절, “그가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여기의 ‘바라보거늘’이란 단어는 “주의 깊게 보다”라는 의미입니다. 지나가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자신에게 쳐다보라고 말을 하니, 구걸하는 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주려고 쳐다보라고 말한 것인가?’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문장의 모습입니다.
아마도 이 앉은뱅이가 주목하고 바라보는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돈주머니를 열어서 두둑한 돈을 건네주는 것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런 모습을 상상하고 매우 주의 깊게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지는 동전에만 눈이 머물고, 사람들의 돈 주머니만 쳐다 보았다면, 이 사람은 평생 앉은뱅이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을 줄 것인지 기대감으로 쳐다 보았지만, 이 앉은뱅이는 베드로가 건네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인 결과,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던 것입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자처럼 은혜의 깊은 곳에 이르지 못하고 성전의 문가를 맴도는 영적 장애인이 되어서 곤란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머물고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분들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이 앉은뱅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교회에 와서 주목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나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 뛰어갈 수 있습니다. 절망과 나락 속에서 한숨 쉬면서 머물고 있던 자리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돈으로 할 수 없습니다. 열정으로 안 됩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화살을 돌린다고 해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내가 일어 설 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도록 합시다.
미국의 로스앤젤러스(LA)인근에 미국최대의 휴양지인 팜 스프링스(Palm Springs)라는 곳이 있습니다. 미국의 부호들과 전세계 부자들이 와서 휴양하고 노후에 살기 좋은 장소로 손꼽히고 있는데, 이 도시에 대해 얽혀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부부가 사업에 실패하여 재산을 다 날려 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재산을 정리해 보니 2만불(약 2천만원)도 안 되는 돈만 남았습니다. 신앙이 좋은 부부는 십일조를 떼어 교회에 바친 다음 마을을 떠나 다른 장소로 이주하려고 주일예배에 참석합니다.
마침 주일 설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어나게 만든 어린 소년의 헌신에 대한 설교 였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인 오병이어를 바친 소년의 헌신에 감동을 받은 부부는 1/10만 들리기로 하였다가 전 재산의 절반을 다녔던 교회에 헌금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남아 있는 돈을 가지고 다른 도시 외곽에 있는 작은 집을 구해 농사를 시작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농사는 잘 되었고, 조금 조금씩 돈을 모아 인근 땅을 더 구입하여 농사 규모를 늘려 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땅을 파고 있는데 물줄기가 솟아 올라옵니다.
솟은 물줄기는 온천수였고, 버려진 줄로 알았던 황폐한 땅은 온천수가 쏟아져 나오는 온천지대였습니다. 부부는 온천 개발업자에게 땅을 팔고 엄청난 부를 가지게 됩니다. 이 온천지대가 바로 오늘날 L.A 근교에 있는 팜 스프링스(Palm Springs)라고 부르는 휴양지라고 합니다.
부부는 남은 것이 적어 미래가 불투명하였지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모두 하나님께 드렸던 믿음으로 일어서는 기적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헌신하는 믿음에는 놀라운 기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으로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기독교 교육학자였던 주선애 교수(1924-2022)의 ‘주님과 한 평생’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교육에 기초를 놓은 주선애 교수는 1924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2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면서 딸을 공부시킵니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한글을 배워 성경을 읽으셨고, 예수 이름을 부르며 딸이 좋은 기독교 교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그렇게 주선애 교수는 공부를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주선애교수는 살아 생전에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기도하였던 어머니의 기도’라는 말을 자주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능력과 권위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세상 그 무엇과도 견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줄로 믿습니다.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지요. 베드로는‘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하면서 앉은뱅이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바로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에 힘이 들어가면서 걷고 뛰고 찬양하는 놀라운 기적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글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간단하게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 성경의 의미를 살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일어나 걸으라”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말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세상의 군왕들과 영웅들의 이름을 백날 천날 제 아무리 외치고 불러 보았자 다 헛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외치면 사탄 마귀가 물러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면 세상의 절망과 공포도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믿는 기적인 줄로 믿습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말합니다. ‘너가 바라보고 있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나는 은과 금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예수님을 내가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를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기적이 발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쪼달리지 않고 궁핍한 모습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 은과 금으로 통칭되는 물질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돈 걱정하면서 없이 살아가는 인생보다는 돈에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이 보기에도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를 힘들게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과 금이 내가 바라보는 인생의 목적이 되고 전부가 되어서는 매우 곤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먼저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먼저 일때에 내가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은 더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만 바라보던 앉은뱅이에게 예수님의 이름이 먼저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또한 은관 금도 소중하지만, 그것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더 행복한 10월과 11월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