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이스라엘
터키 이즈미엘공항을 출발한 여객기는 지중해 상공을 날라 이스라엘로 향한다.
유럽문명의 모태가 되는 로마시대에 이 지중해를 앞바다로 생각하여 활동했던 문명의 산실이지만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그 위치를 대서양에 내어주고 이제 세계문화의 중심지는 태평양시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인류역사의 문명은 돌고 돌아가는 모양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비행기는 이스라엘 텔아비브공항에 착륙한다.
유럽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운동으로 맨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했고 나중엔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게 되었던 사연 깊은 항구도시 텔아비브다.
예상했던 대로 이스라엘 입국심사는 여간 까다롭기 그지없다,
소지품을 쏟아놓은 것은 기본이고 혁대를 비롯한 상의까지 벗어 놓고 검열대를 통과하니 두손을 들게 하고 온 몸을 훝어 내린다.
그래도 승객들은 별로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걸 보니 사람들은 환경에 금방 길들여지나 보다.
중동의 화약고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감당 할 수밖에...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와 보니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내 얼굴만 바라보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는데 난들 어찌 알겠는가,
여행사로 국제전화를 해보아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 출입구 쪽에서 젊은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 쪽 으로 오더니 차가 밀려서 늦었다고 사과 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스라엘 대학에서 구약성경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현제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단다.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평야지대를 지나 산지로 올라가는 길인데 우리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샤론평야 지대인지라 드넓은 평야가 나타나고 잘 정리된 농경지에 푸른 밀밭과 과일나무들이 보인다.
지중해성기후로 시시때때로 뿌려대는 빗줄기의 영향으로 풍요로운 땅을 만들어 논 것이다.
예루살렘 도착하여 ‘고려장’ 이라는 한국문화원에 들려서 점심식사를 한식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난 몇 일간 느끼한 양식을 먹다보니 한국음식이 그 얼마나 그리웠던가!
우리들은 오랜만에 맛보게 된 한식 점심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성경에 등장한 여러 현장들은 찾아 다녔는데 마가의 다락방,주기도문교회,베드로눈물교회,게셋마네동산,만국교회,감람산, 십자가의 길, 가야바제사장집등 많기도 하다.
가이드는 시간에 쫓기면서도 평생에 다시 오기 어려운 곳을 오게 되었으니 한곳이라도 더 보여 줄려고 열심히 움직이니 우리들도 발걸음을 제촉하며 따라 다녔다.
지금 우리들이 탐방하고 있는 이 장소들은 이천년이나 된 세월이 흐르면서 부침의 역사를 겪었기 때문에 그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성경에 있었던 사실들을 추정하여 복원하고 그 곳에 기념교회를 세워 우리들처럼 순례를 목적으로 온 신도들을 위해서 그 의미를 묵상하고 체험케 하는 것으로 그 목적을 이룬 것이리라~
예루살렘은 과연 천연요새로써 손색이 없는 곳이다.
힌놈골짜기를 건너 높은 산성을 이뤘기 때문에 다윗성에 솔로몬은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그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보호하신 이 산성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자만하면서 죄악 된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성 최후 비참함을 알았기에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을 선포하면서 그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도 감람산에서 건너편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돌 위에 돌 하나라도 남지 않고 무너지라고 말씀하시면서 통분히 여기시던 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솔로몬 성전이 있던 저 황금색 돔은 이슬람들이 점령하여 자신들이 숭배하는 모스크사원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이 순간에도 무슬림들을 부르는 아잔소리가 온 예루살렘 시가지를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저 솔로몬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서 십자군 전쟁 때 그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며 살육전을 벌렸을까 생각하니 신앙이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힌놈골짜기 건너편 감람산동산 근처엔 수많은 공동묘지가 질서정연하게 있는데 유대인들 사상엔 메시야가 감람산으로 오시기 때문에 그때 가장 먼저 부활하고 싶어 이곳에 묘를 쓰고 있단다.
메시야가 이천년전에 이 땅에 오셔서 구속사역을 완성 했건만 그들의 영안이 가리워져 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자들이 또 무슨 메시야를 기다린단 말인가!
우리들은 십자가의 길을 체험하기 위해서 골고다의 길로 나섰다.
금주가 고난주이기에 금번 성지순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가야바대제사장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현장을 답사하고 언덕길을 내려가서 다시 골고다 길 을 찬송을 부르면서 걸어갔다.
이 골고다의 길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녔던 길이기에 바닥에 깔아놓았던 돌이 반질반질하게 닳았는데 변덕스런 예루살렘 날씨가 빗줄기를 뿌렸다 그쳤다 하기를 반복하여 비에 젖은길이 미끄러워 조심해서 걸어 가야만 했다.
주님께서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걸었던 그 역사적인 현장을 이렇게 직접 방문하여 체험하게 되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이냐!
좌,우에 늘어선 기념품을 판 상가들도 나와 같은 순례자의 마음을 읽었기에 상술에 능한 아랍인들이 예수님을 팔아서 돈을 벌고 있겠지만 그래도 순례자인 우리들은 의미 깊은 행사다.
우리일행은 가이드 인도에 따라 찬송을 부르면서 줄지어 걸어가면서 예수님께서 그 형벌의 십자가를 지시고 이 길을 가시면서 얼마나 힘들고 지쳤으면 자꾸 넘어 지셨을까!
하는 수 없었던 로마군병은 구레네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던 이 길을 따라 정상에 도착하여 보니 현대식 건축물로 가득 메워져 있어 해골이란 별명에 맞는 언덕을 생각하고 온 순례자가 있다면 실망도 할 것 같다.
이곳에서 우리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메달려 고통 당시면서 엘리엘리 나마사박다니 외치면서 운명하셨던 것이다.
우리들은 감격의 눈물을 뿌리면서 이제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골고다 산장을 내려왔다.
오늘밤 우리들이 묵어할 곳은 베들레헴에 있는 호텔이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약7킬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구약시대부터 떡집이란 별명을 지닌 곳이 말해 주듯이 넓은 들이 있고 풍요로운 곳인데 성탄절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이다.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 기념 교회에서는 그리스정교회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아주 경건해 보인다.
우리들은 예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안에 들어가지 않고 대신 근처에 있는 다른 동굴 기념장소로 들어가서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 나신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성경에 마굿간이라 했으니 말이 있던 곳으로 알고 있었더니 이곳 문화로 보건데 실은 양의 우리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는 가이드 선교사님 설명이 맞을 것 같다.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이곳에서는 말을 기르지 않고 양을 목축 했다는 것이다.
영광스런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이 역사적인 사건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그저 눈물로써 감사할 뿐이다.
탄생교회를 지나 들 밖에 양 치던 목자들의 들판에 갔다.
탄생교회에서 약 4km 떨어진 곳으로 추정된데 그곳은 완만한 경사를 이룬 구릉으로 듬성듬성 바위가 있고 넓은 들판엔 파릇파릇 새 풀이 자라나 있었는데 양 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이 아주 평화로워 보인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떼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들은 항상 시간에 쫓기에 다음 행선지를 향해서 서둘러 출발해야만 했다.
사해를 가기 위해 베들레헴시내 쪽으로 들어오니 어제는 밤인지라 잘 보지 못했던 분리장벽이 시가지 한편을 가르면서 길게 둘러쳐져 있다.
저 장벽은 팔레스타인들의 거주지인지라 그들을 장벽 안에 가두고 출입문을 통해서 검열을 받고서야 왕래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어느 날 객이 주인집에 들어와서 거대한 담장을 쌓고 앞으로 출입을 할려면 내 허락을 받아야만 된다고 지키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아랍인 입장에서는 얼마나 통분할 일이겠는가!
분리장벽은 약4~5m 높이 견고한 콘크리트 벽으로 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동네 형태를 따라서 길고도 구부러진 그야말로 흉물스런 이 중동지역 갈등의 현 주소를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주님께서 오셨는데 우리시대의 사람들은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분쟁과 갈등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차는 예루살렘 외곽을 벗어나 여리고 쪽으로 내려간다.
여호수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을 건너 맨 처음 무너뜨렸던 곳,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등장한 장소, 불과 몇 십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예루살렘 쪽 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민둥산에 잡초와 건조한 흙, 모래가 보이더니 좀 더 내려가니 아예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척박한 유대광야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던 곳이 바로 이런 유대광야가 아니었을까!
국토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밖에 안 된 좁은 지역에서 어떻게 이런 극명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까!
차는 사해 해변도로를 달려 맛사다 유적지로 향한다.
사해! 죽음의 바다, 보통 바다의 염도 6배 이상의 염도가 있기에 모든 생물이 살아갈 수 없어 죽음의 바다라고 하지만 사해의 물은 시퍼렇게 살아있고 맑아 보이며 해변엔 은빛모래가 햇볕에 반짝인 아름다운 광경이다.
길옆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험악한 바위가 위태하게 보인데도 안전망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데 지금까지 무너져 사고가 난 적은 없었다니 이곳이 얼마나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지역인지 알 만하다.
우리의 목적지인 맛사다에 도착했다.
맛사다란 유대열성당원이 저항했던 곳이요 헤롯대왕의 별장이 있었던 곳이다.
벌써 많은 관광객이 붐빈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산허리를 말띠고개처럼 이리저리 구불구불 한 길을 걸어서 올라간 사람과 내려온 사람들이 보인다.
맛사다란 곳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높은데 약400m 정도의 바위로 된 천연요새였다.
정상에 올라가기 전 영상실에서 7분짜리 영화를 보았는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영화가 한국말로 상영되고 영어로 자막이 나온 것이다.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지이기 때문에 세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 곳인데 우리나라 말로 영화가 나온다는 것에 새삼 대한민국 국제적 위상을 실감나게 느껴 볼 수 있어 뿌듯하다.
우리일행은 케블카로 정상까지 갔는데 예상 밖으로 정상이 훨씬 넓어 놀라웠는데 정상엔 방어벽으로 성벽이 둘러있고 건축물의 잔해인 옛 헤롯왕 궁전이 복원되어 있었다.
이 위험하고 험악한 고지위에 어떻게 궁전을 지을 생각을 했고 이곳에 냉탕, 온탕을 만들어 사치와 향락으로 즐길 생각을 했을까!
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타락한 인간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지면 이토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피를 흘리게 한 재앙을 낳게 하는 것이다.
헤롯궁전을 지나자 유대열심당원들의 저항지로 갔는데 그들이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피신해 살았던 기간은 3년이고 로마군에 저항한 기간은 3개월이란다.
주후70년 로마 티투스장군은 독립을 원하는 유대나라를 반란으로 여겨 진압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후 끝까지 저항한 그들을 쫓아 이곳까지 왔던 것이다.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군사력과 토목기술을 가지고 있던 로마군은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깨뜨리기 위해서 뒤편 구릉지위에 거대한 토성을 쌓고 그곳에 공성퇴 무기를 끌고 와서 대포를 쏘아 성벽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뒷날 로마군이 올라와서 보니 모든 사람들이 자결하여 시신만 뒹굴고 있었다니 그들의 저항정신 앞에 숙연해진다.
맛사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주변은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겹겹으로 쌓인 바위산이요 저 멀리 사해건너 요단의 산지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산성을 내려와서 사해로 향했다.
바다보다 394m나 더 낮아서 고여 든 물을 밖으로 흘러 보내지 못하고 수증기만 증발하기 때문에 염도가 높아져 모든 생물의 살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살아 있는 바다였다 .
이곳 사해엔 미네랄이 살아있어 각종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을 생산해 내고 머드로는 화장품을 생산하여 세계적인 인기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준비해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사해로 입수했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사람 몸이 물 위에 둥둥 떠 있다는 이 신기한 체험을 어찌 하지않으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서 물위에 누어있는 사람, 물장난 치는 사람, 헤험치고 있는사람, 또는 머드를 물속에서 집어 올려 온 몸에 문질러 대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우리들도 물에 들어가서 설명들은 대로 발을 들어 올리고 가만히 들어 누우니 신기하게도 몸이 둥둥 뜬다.
우리들의 상식이란 경험한 것 밖에 알지 못하니 이런 상식을 뒤집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사해체험을 끝내고 우리들은 여리고성으로 행했다.
여리고성은 오늘밤 우리들이 묵어갈 곳인데 우리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랐던 삭개오를 부르시면서 오늘밤 네 집에서 묵어가리라 한 그 성이다.
삭개오가 올랐던 뽕나무는 고목이 되어 있었는데 우리 성경에는 뽕나무로 번역되어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돌감람나무이며 현장에 있는 것은 한참 후에 심겨진 나무인 것 같다.
여리고 도시는 유대광야 허허로운 사막 벌판인데 어떻게 이런 곳에 고대로부터 커다란 성벽을 쌓고 도시를 세워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생각했더니 이곳은 사막이지만 샘물이 솟아난 오아시스 지역인 것이다.
샘물은 땅속에서 펑펑 솟아나서 꽤나 큰 도랑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었는데 참으로 자연의 신비다. 여호수와가 무너뜨렸던 것과 같은 성벽 잔해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2중으로 쌓은 흙벽돌 규모가 대단하다.
여리고에서 1박하고 이른 아침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길 건너편에 LG전자 광고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이스라엘 사막도시에도 한국 현대차, LG전자 제품 인기는 최고란다.
해외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더니 참으로 자랑스럽다 .
오늘도 하루 일정이 시작이 되었다.
같이 온 일행가운데 현지음식이 맞지 않아서 국내에서 준비해온 컵라면과 고추장 햇반 등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동안 강행군에 피로가 쌓이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몹시 힘들어 하고 있어 오늘 일정도 잘 소화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
이스라엘 나라가 오이처럼 길쭉한데 지금 우리는 남쪽 요단지역에서 북쪽 갈릴리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리고성에서 예루살렘 쪽으로 올라가다 유대광야에서 전망대에 올라보니 이제 어둠의 실루엣을 벗고 겹겹이 쌓인 모래 언덕을 비추는 아침햇살은 장관이다.
근처엔 양을 치는 베두인족의 텐트가 있고 몇 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을 판매하고 당나귀로 전망대까지 태워주며 몇 푼의 돈을 벌고 있는 베두인이 어쩐지 딱해 보인다.
아이들은 지금 학교에 갈 나이인데 이곳에서 살면 교육은 어떻게 될까 마음이 무겁다.
차는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지중해에 접해 있는 항구도시 가이사라로 향한다.
로마의 일인자 가이사라를 기념하여 세운 항구도시인데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려진 도시로 남았다.
바닷가로 내려가니 모래사장위에 잘 닦여진 전차경기장 트랙이 있는데 한때는 전차선수들이 질풍노도와 같이 전차를 몰고 치열한 선두다툼을 했을 것이고 관중들은 환호를 보내며 열광했을 것인데 이젠 거대한 성벽의 잔해들과 차오르는 치맛자락이 바람에 부풀리듯 솟구치는 파도는 바람살을 내 품으며 숨결을 토해내고 있다.
인간의 영욕의 역사를 뒤로 하고 우리들은 다음 행선지 갈멜산으로 향했다.
지중해를 멀리 바라보는 갈멜산은 샤론평야 지대에 있는 곳인데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엘리야 선지자 영적 전투 현장이다.
유대광야 황량한 지역을 돌아 다녔던 우리들은 정상에서 내려다 본 광경이 장관이다.
선한목자 되신 우리주님께서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예수님 복음사역 대부분이 갈릴리 지역인데 갈릴리 지역은 정말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이다.
갈릴리호수를 성경에서는 디베라호수 또는 바다로 표기하고 있는데 호수주변 산 정산에 디베라 도시가 있어 디베라호수라 했고 로마의 두 번째 황제인 티베리우스가 세웠기에 기념 하여 디베라 라고 한단다 .
갈릴리 지역엔 마을이 산위에 형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갈릴리호수가 해발 약 -200m로 낮은 곳에 있기에 상대적으로 주변에 있는 마을들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에 산위에 동네가 감추지 못한다는 예수님 비유의 말씀이 제대로 이해가 간다.
이 갈릴리호수는 저 북쪽 헬몬산에서 눈이 녹아 각 지류가 가이사라빌립보에서 합류하여 상류 요단강에서 갈릴리로 흘러든다.
상류요단강이 흘러드는 갈릴리 호수는 명경알 처럼 맑지 않고 흐려 보였다.
그 옛날 베드로를 비롯한 요한의 형제들이 이곳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을 때 우리 주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그들을 불러 제자로 삼으셨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주변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셨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실 때 주변 지형을 아주 잘 활용하셨던 같다.
로마가 원형경기장을 만들어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연설과 공연을 하면서 효과적인 언어를 전달 했는데 그 착상을 이곳 갈릴리 지형에서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들은 호수 유람선에서 선상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그냥 예배만 드릴 것이 아니고 고난주간이기에 성찬식을 겸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석양이 붉게 갈릴리 호수위를 물들이고 있는 황혼에 배는 호수 중간쯤 가다 멈춘다.
준비해간 빵과 포도주로 연세가 가장 많으신 김목사님 주도로 성찬식을 갖고 서로가 그리스도의 한 지체임을 확인하면서 힘찬 찬송과 함께 하나 되는 사랑의 교제를 나눴다.
내일은 가이사라빌립보를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여정은 끝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아들 이시니다. 라고 했던 베드로를 칭찬했던 가이사라빌립보는 우리 여행코스에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가이드의 권고로 그곳을 투어하기로 했다.
가이사라빌립보는 헬몬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 갈릴리 북쪽에 자리잡은 곳이다.
차는 갈릴리호수를 뒤로하고 북쪽 헬몬산자락 밑에 있는 ‘시리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저 멀리 하얀눈에 쌓여 있는 헬몬산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오늘 날씨가 쾌청하여 잘 보인단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무리의 기러기떼가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하고 날아가고 길 좌,우에 있는 포도농장에는 스프링쿨러를 설치하여 과학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의 근면함을 엿볼 수 가 있다.
우리들은 ‘시리다,에서 와서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았는데 주차장에서 계곡 쪽으로 걸어가자 쿵쾅거리며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에 와서 이런 폭포를 구경하게 될 줄이야!
이 물이 흘러 요단강 상류가 되어 갈릴리호수에 흘러들고 호수에서 다시 하류 요단강으로 해서 사해까지 가는 것이다.
가이사라빌립보 연덕위엔 노란 유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길가에 요염한 붉은 꽃 한송이가 있어 카메라에 담았더니 에델바이스란다.
그토록 많이 들어 왔던 에델바이스를 이곳에서 보게 된 것이다.
다시 차로 조금 더 이동하니 이 요단강과 갈릴리 사해의 모든 물의 근원이 되는 샘물이 솟아난 곳으로 갔는데 땅속에서 생수가 펑펑 솟아난데 그 양이 대단하여 큰 도랑을 이뤄 방금 전에 보았던 폭포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그 배에서 생수가 솟아나리라고 했던 그 생수가 이런 것이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말씀하실 때 주변에 흔히 접하기 쉬운 것들은 사용하여 비유로 설명하셨는데 이곳에 와서 보아야만 그 뜻을 쉽고 빠르게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니
이번 성지순례의 의미는 대단히 깊다.
우리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순례를 마치고 다음여행지인 요르단을 가기 위해서 타바 국경으로 향했다.
내 생애 언제 이곳을 다시 보게 될 지 아마도 힘들 것인데
이스라엘이여~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