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뮤지컬
신대륙이 발견되고 유럽에서 견지디 못한 사람들이 이주하여 개척한 미국은 상황이 달랐다. 그들은 당시의 유럽 본토에 비해 식견이 짧았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고도로 세련된 유럽의 예술보다는 쉽고 즐거운 여흥거리를 원하였다. 게다가 유럽 제국들이 앞을 다투어 신대륙에 진출하고 20세기 초에 이민 문호가 개방되면서 미국은 새로운 문화 양식을 찾게 되었다.
미국에 뮤지컬의 씨가 최초로 뿌려진 것은 영국의 식민지 시대인 1751년으로 알려진다. 이때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인 [거지 오페라]가 있었는데, 이보다 훨씬 앞선 1730년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플로라,Flora]라는 발라드 오페라가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발라드 오페라의 공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춘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민스트럴 쇼(Minstre Show-흑인 노래와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오페라를 혼합한 형태의 미국식 악극)]가 유행하였으며 거기서 파생한 보드 빌(Vaude Ville,풍자적인 대중가요를 의미하던 용어, 가벼운 뮤지컬 극), 발레스크(Burlesque, 해학적인 내용을 담은 장막 풍자극)등 순수하게 미국적인 뮤지컬 쇼와 뒤따라 유럽에서 수입된 코믹 오페라, 오페레타 등이 혼합되어 차츰 뮤지컬 코메디 스타일의 형식이 구축되었다.
그 뒤 미국인에 의한 최초의 뮤지컬 작품으로는 남북전쟁 직후인 1866년 뉴욕 브로드웨이의 니그로즈에서 공연된 [검은 옷의 괴조,The Black Crook]가 있다. 원래공연이 예정되었던 극장에 불이 나서 서둘러 극장이 변경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브로드웨이 무대 극장가가 생기게 된 시초가 되었다.
최초의 뮤지컬로 기록된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온 발레단에 의해 황급히 공연된 것으로 음악과 춤을 배합한 일종의 멜로 드라마이며 당시는 뮤지컬[엑스트라 바겐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5년 뒤인 1871년 영국에서 공연되면서 영국 뮤지컬의 싹을 틔었다.이를 계기로 1860년대 들어서 미국 창작 뮤지컬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고 작품의 경향은 유럽의 영향을 받은 코믹 오페라형이 대부분이었다.
1927년 공연된 [쇼보트,Show Boat]는 종래의 뮤지컬과 달리하며 앞으로의 작품들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그 다음으로 이정표적인 작품은 로저스 헤머스타인의 [오클라호마,Oklahoma!](1943)인데 이 작품의 성공으로 미국 뮤지컬은 하나의 예술형식으로 정착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한다.
그 뒤 반세기 동안 미국은 콜 포터, 레너드 번스타인, 어빙 벌린, 조지 거쉬인 등의 작품들로 세계 뮤지컬을 주도하였다. 이런 미국의 뮤지컬들은 전후 런던 무대를 점령하여 미국 뮤지컬의 위력을 세계에 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뮤지컬은 황금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뮤지컬로는 [쇼보트],[오클라호마],[남태평양,South Pacific] (1949)등이 있다.
뮤지컬을 독특한 공연 예술로 완성시킨 1930년대를 뮤지컬 황금기 제 1기라고 본다면 제2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대를 되찾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전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던 인류가 마음을 달래고, 영혼의 쉼터를 마련키 위해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상당한 애정을 기울이게 된다.
그동안 대중적인 뮤지컬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시기부터는 뮤지컬이란 장르가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는 작업들이 많이 이루어 진다. 하나의 버라이어티 쇼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사가, 작곡가, 안무가들이 등장하여 보다 전문적인 양식을 만들어 갔다. 로저스 햄머스타인의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은 인간애를다룬 문학적인 주제와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으로 관객들이 극중의 노래들을 따라 부르게 만들었다.
그동안 뮤지컬의 음악이 그저 극 속에서나 머무는 것이었다면 이 작품을시작으로 뮤지컬의 노래들이 대중에게 파고들기 시작하였고 시대와 현실 그리고 삶의 이상을 노래하게 하였다. 이 시기에 현대 뮤지컬의 형식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가시와 건달들,Guys & Dolls](1950), [왕과 나,King & I](1951), [피터팬,Peter pan](1954),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1956), [시카고,Chicago](1957),[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57) 등이 있다.
이어 1960, 70년대는 뮤지컬의 역사에 중요한 전화점을 가져다 준 시기였다. 이때역시 시대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뮤지컬의 낙천적인 면이 사라지고 사회적 문제들이 사실적으로 반영된 진지한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문학성과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선호하고 즐거움을 주는 것보다 호소력이 강한 작품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비틀즈나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되는 전자사운드는 또 다른 변화를 주기에 충분하였다. [헬로우 돌리, Hello, Dolly!](1964),[지붕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1965),[헤어,Hair](1967),[코러스 라인,A Chorus Line](1975)등이 그것이다.
뉴욕, 브로드웨이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말 그대로 '큰길'이다. 패션과 상업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크지만 브로드웨이를 브로드웨이답게 만드는 것은 단연 극장과 뮤지컬들이다.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42번가에 세워진 빅토리아 극장이 그 시초이다. 현재 타임 스퀘어를 중심으로 흩어져있는 크고 작은 극장은 40여개이고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은 그 10배가 넘는다. 극장 천국인 셈이다.
이 극장들이 모두 매시즌마다 막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항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의 편수는 대략 200편 정도이다. 숫자상으로만 보아도 엄청나다. 이렇듯 작품 수만 가지고도 브로드웨이가 세계 연극의 중심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가장 대중적인 뮤지컬을 비롯하여 상업극,실험극,총제측,춤극 등이 공연된다.
1년 내내 성수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봄 시즌에는 매년 6월에 있는 토니상을 노려 야심에 찬 신작들이 쏟아진다. 이에 비해 여름은 토니상을 휩쓴 공연과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작품들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시기이다.
각종 브로드웨이 공연 중에서 가장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장르는 화려한 춤과 노래가가 어우러진 뮤지컬이다. 그만큼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의 '얼굴마담'으로 가장 인기가 높으며 여행객들에게는 관광 코스의 하나가 되었다. 그 뒤를 코미디와 드라마가 따르고 있다.
보통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입장료는 좋은 자리에서 관람하려면 60~70달러 정도의 입장료는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 단기간 체류하는 사람이 원하는 시간에 제 가격으로 인기 뮤지컬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히트 뮤지컬은 보통 서너 달, 많게는 6개월 이상 예약이 밀려 있다. 이처럼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한 번 흥행에 성공하면 제작자는 돈방석에 올라 않으며 배우들도 스타로서의 삶을 한껏 누리게 된다.
브로드웨이 쇼라고 부른 뮤지컬의 흥행작은 고작 몇 편 정도에 불과하다. 1900년대 들어 가장 화제를 끌고 있는 작품은 고전이 되어 버린 [캐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 유령] 등 모두 런던으로부터 건너온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들에 대한 광고 역시 세계적이다. 웬만한 호텔 로비와 주요 건물에는 홍보물 책자와 더불어 좌석 예약을 받고 있으며, 시내 버스는 물론 건물 외벽에 대형 전광판 광고물이 맨해튼의 밤거리를 밝힌다.
브로드웨이 무대를 벗어나 예술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들을 보려면 오프 브로드웨이를 찾으면 된다.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대사가 없는 행위 연극, 즉 넌 버벌 퍼포먼스(Non Verbal Performance)이다. 공사판 현장의 이야기를 다룬 [탭덕스], 탭댄스의 진수를 선보인 [스텀프]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사물들을 이용한 [튜브스]등이 오프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히트작들이다.
흔히 브로드웨이는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상업적인 뮤지컬로 대표되는 브로드웨이, 예술성과 흥행성을 갖춘 작품들이 무대에 오르는 오프 브로드웨이, 예술성만을 추구하는 실험극들이 주로 오르는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가 그것이다.
꿈의 무대로 불리는 브로드웨이, 최근 미국의 경계 불황으로 대작 뮤지컬의 제작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설도 나돌도 있으나 여전히 세계적인 작품이 항상 공연되고 있는 곳이다.
한편 뉴욕 브로드웨이의 시상 제도로는 유명한 '토니상'이 있다. 뮤지컬을 제작하거나 출연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상을 받고 싶어한다. 때로는 수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도 있지만 이 상의 권위는 대단하다. 세계 뮤지컬사를 빛낸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 상을 수상하였고 뮤지컬스타들 역시 이 상과 인연이 깊다. 토니상에는 작품상, 주연남우상, 주연여우상, 조연남우상, 조연여우상, 연출상.각본상, 작사.작곡상, 안무상, 의상상, 장치상, 조명상, 리바이벌상 등의 부문이 있다.
최초의 토니상 작품상 수상작은 1949년의 [키스 미 케이트]이며 토니상 최다 수상 작품은 지난 1964년에 공연된 [헬로우 돌리!]로 당시 총 11개 부문 가운데 10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남태평양](1950), [아가씨와 건달들](1951), [왕과 나](1952), [마이페어 레이디](1957), [사운드 오브 뮤직](1960), [노력하지 않고 출세하는 법](1962), [지붕 위의 바이올린](1965), [라만차의 사나이(돈 키호테)](1966), [카바레](1967), [코러스 라인](1976), [애니](1977), [에비타](1980), [42번가](1981), [레 미제라블](1987), [오페라 유령](1988)등 우리에게 낯익은 작품들이 이 상 을 수상하였다.
1997년에는 한국 출신의 가수인 최주희가 [왕과 나]에 출연, 호연을 펼치면서'토니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브로드웨이의 성과에 힘입어 서울에서 공연된[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마리아 역으로 나와 열연하였다.
뮤지컬 제작사로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리얼리 유스풀 그룹(RUG)과 함께 카메론 매킨토시, 다저스가 히트작 3대 메이커로 통한다. 매킨토시는 [미스 사이공]과 [레 미제라블]을 제작하였다. 그는 극장 소유주와 노조에 대하여 강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극장 소유주와 노조에게 뮤지컬은 정작 제작들이 만드는데 왜 이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저스는 프로듀서 6명이 결성한 파트너쉽 회사 18년 전 의기투합한 마이클 데이비드, 에드 스트롱, 셔먼 워너 등이 브로드웨이 1501번지 건물 19층에 사무실을 두고 공동 작업을 한다. 다저스의 대표작은 [아가씨와 건달들]의 리바이벌 공연. 1992년 4월 공연을 시작, 1년만에 제작비 6억 5천 달러를 뽑아내고 큰 수익을 올렸다. 1993년 무대에 올린 록 오페라를 각색한 작품인 [토미]도 19개월만에 투자 원금을 회수하였다. 1985년엔 [빅 리버]로 토니상을 휩쓸었고, [비밀의 화원], [숲속으로]도 모두 2년 넘는 장기 공연에 성공하였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뮤지컬 극장은 모두 28개로 셔버트, 네덜랜더, 쥬잼신 등 3대 흥행사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 뮤지컬 프로듀서들은이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공연장 확보와 공연 수익을 가름하는 대여료를 낮추려고 로비도 벌린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회사는 러시아 출신이 만든 셔버트로 28개 공연장중 17개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빅4 뮤지컬로 불리우는 [캐츠], [오페라의 유령],[미스 사이공], [레 미제라블] 등이 모두 셔버트 소유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흥행이 확실하지 않은 작품은 아예 공연장 섭외도 할 수 없다. 맨하튼 44가에 있는 셔버트 극장 위층이 본사 사무실인데 버나드 제콥과 제럴드 숀펠트가 공동 경영주다. 브로드웨이 비즈니스의 대부로 불리는 이들은 고집불통에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예술계에 몸담고 있지만 철저한 '장사꾼' 기질이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젊은 제작자들로부터 브로드웨이의 마피아라는 원성도 듣는다.
아무튼 브로드웨이는 돈방석에 올라앉아 스타로서 인기를 누리며 살아가는 배우들이 있으나 생맥주로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 배우들도 공존하는 곳이며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천의 얼굴을 하고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