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김동원
사람에게 누구나 고향은 자기가 때어나서 자란 곳이자, 부모 형제와 동무들을 첫 대면한 곳이기도 하다. 살면서 느낄 마음속 깊이 각인된 그립고 정든 터전이며, 천지만물의 온갖 이름과 자연 현상이 처음 몸에 배인 출발지이다. 옛 사람은 집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가향(家鄕) 또는 향리(鄕里)를 썼다. 타향에서 부모를 여의었거나 유랑생활에 병고라도 만나면, 왠지 고향산천만 떠올려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여우도 죽을 때는 제 머리를 고향으로 누인다는데,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고향을 떠나면 출향(出鄕)이요, 돌아가면 귀향(歸鄕)이다. 타의에 의하여 잃으면 실향(失鄕)이요, 객지를 떠돌다 도로 내려가면 낙향(落鄕)이다. 예나 지금이나 떠도는 자의 삶은 다 고달픈 타향살이요, 고국을 떠난 자 고향을 잃은 자, 모두 모진 향수(鄕愁)병에 시달린다.
고향은 인간에게 있어 정서적으로 가장 편안한 피신처로 인식된다고 한다. 그것은 고향이 모성의 품안과 동일시되는 심리적 현상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와 문학가, 특히 시인들은 ‘고향․어머니․바다․집․길․자궁․우주’ 등을 표현할 때 상당한 부분에서 유사 이미지가 중첩되며, 표현코자 하는 주제의식이 같은 범주 속에서 작품으로 형상화됨을 목격한다. 고향은 무의식을 체험하는 기억 공간이자 의식을 자각하는 발화점이다. 고향은 안과 밖의 길이 배태된 곳이자, 이승과 저승의 재생과 부활로 가는 ‘씻김’의 성소(聖所) 역할을 한다. 고향은 인간의 첫 들숨과 날숨, 오감 체험과 무한한 우주의 신화적 상상력이 발아된 곳이며, 무엇보다 엄마의 냄새를 처음 맡은 곳이다. 그럼 현대시 속에 고향을 주제로 한 정지용의「향수)」, 백석의「고향(故鄕)」, 전봉건의「뼈저린 꿈에서만」, 이승주의「구계항」, 김현옥의「길, 그리고 집」, 문충성의「이어도」에 나타난 고향 정서를 감상해 보자.
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향수」전문
우리가 만약 그림 속으로 들어갈 때는 바람이어야 한다. 고요히 호흡하는 그림 속 사람과 여타의 오브제들이 자연스레 움직일 때까지 화폭 앞에서 기다리다 들어가는 상상의 바람이어야한다. 저녁노을이 온 가을 들녘에 퍼져 하루의 노동이 끝날 무렵, 대지의 무한한 고마움과 자연의 큰 힘에 이끌려 하루의 무사함에 기도하는 한 농부와 그 곁의 아낙이 가슴에 두 손 모으고 읊조리는 기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저 위대한 농촌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 1875년)의「만종」(1875년 작)이 떠오른다.「만종」을 오랫동안 바라본 이는 다 느끼겠지만, 그 명화가 들려주는 소리를 그대로 받아 적으면 한 편의 명시로 바뀜을 우리는 안다. 이 미학론을 긍정한다면, 명화「만종」의 정경이 1930년 전후의 옛 우리 조선 농촌 들녘과 너무나 흡사함에 놀랄 것이다.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은 조선 농촌을 피폐할 대로 피폐케 했다. 수많은 이들이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타향으로 갈 곳 없이 떠돌던 슬픈 비애의 역사가 그 흔적이다. 만약 이들의 피 엉킨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 줄 이 땅의 예술가가 없었다면 얼마나 민초들의 삶은 불행했을까. 밀레가 암울한 프랑스의 농촌을 화폭에 담아 민중들에게 위안과 평화로 구원을 주었듯, 일제 강점기의 조선 농촌의 애환과 눈물을 씻어내고자 노력한 시인이 정지용이다.
지용의「향수(鄕愁)」를 천 번쯤 암송해 보면, 이 시인이 얼마나 서럽고 외로운 조선 농촌의 애환을 절절히 가슴 속 흡수했는지 놀랍다. 당시 망국의 참혹함에 온몸을 던져 투쟁한 분들이 독립투사라면, 시「향수」는 민족적 슬픔과 한(恨)을 치유해 내려는 한 시인의 차마 꿈에도 못 잊을 고향에 대한 사랑의 몸부림이다.「향수」는 1927년『조선지광』65호에 발표됐다. 20대 초반에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고향인 충북 옥천을 다니러 가서 쓴 시이다. 청각적 심상과 공감각적 시상이 향토적 정감 어린 시어와 함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넓은 벌 동쪽 끝에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마을이 있고, 멀리서 음매 음매 울음 우는 황소가 보이고, 아버지와 어린 누이가 사철 발 벗은 어린 아내와 함께 이삭을 줍던 곳, 그곳이 바로 지용의 고향 정경이다.「향수」는 1930년대 작곡가 채동선에 의해 처음 작곡되었다. 그러나 1950년 시인의 납북과 관련되어 금지곡으로 묶였다가 1988년 봄 해금되면서 변훈에 의해 가곡으로 재탄생된다. 셋째 곡은 김희갑에 의해 가요 곡으로 만들어졌는데, 성악가 박인수(서울대 음대 교수)와 가수 이동원이 89년 10월 3일 호암아트홀에서 듀엣으로 열창해, 단번에 국민 시노래가 되었다. 이 음반은 아세아레코드사에서 제작되었고「향수」는 첫 타이틀곡이 된다. 지용은 1902년 5월 15일(음력)에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영면한다. 12살 어린 나이에 꼬마 신랑이 되었지만, 어린 두 자식을 먼저 저승에 앞세운 비운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는 개인의 비극적 설움을 딛고 근대 한국 서정시의 초석을 놓았으며, 하마터면 민족의 비극사에 끼어 생애가 묻힐 뻔한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②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디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북관(北關) : ‘함경도’의 다른 이름.
― 백석,「고향(故鄕)」전문
백석의「고향(故鄕)」은 1938년『삼천리문학』2호에 실린 작품이다. 이 시는 화자가 타향인 북관(함경도)을 떠돌다가 병이 들어 “어느 아침 의원”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우선, 2행에서 주목되는 어절은 “뵈이었다”이다. ‘보였다’의 시적 허용인 ‘뵈이었다’는 그 시적 뉘앙스가 부드러워 독자의 마음을 한결 느긋하게 품어준다. 시어 선택에서 흐름소리인 모음 'ㄹ’이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면, 콧소리인 ‘ㄴ, ㅁ, ㅇ’은 다사로우면서 아늑한 느낌을 자아낸다. 3행의 ‘~같은’ 직유의 사용과 시각적 이미지 역시 화자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데 아주 적확하다. 즉, 의원은 부처 같은 얼굴을 하고 “관공(關公)”(삼국지 관우)의 수염을 길게 드리운 신선처럼 인자한 분으로 묘사되어 곁에서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던 의원은 화자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그런데 백석은 이 시행에서 종결형 처리를 ‘묻는다’라고 쓰지 않고 ‘한다’라는 기찬 시어 선택을 했다. 이때부터 의원과 화자는 고향을 매개로 육친지정의 따스한 혈육처럼 시상이 급진전된다. 이 시는 드물게 ‘아버지’를 중심에 놓고 쓴 서정시이다. 화자의 고질적 향수병이 잘 드러난 시「고향(故鄕)」에서, 나는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이 대목에 이르면, 백석이 왜 위대한 시인인지 온 가슴으로 와락 느낀다. 그것은 화자의 언술을 통해 드러나듯, 의원과 아버지를 동일시한 육친의 정리(情理)가 서사적 문답 형식으로 절절한 그리움과 감동으로 뼈 속 까지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③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맹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큰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 세로 파 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아 이십 육 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 전봉건,「뼈저린 꿈에서만」전문
전봉건의 시「뼈저린 꿈에서만」을 읽고 있으면, 왜 저 멕시코의 위대한 여류 화가 ‘칼로’의 비극적 그림「나의 탄생」이 떠오를까. "다리를 벌리고 침대에 누운 산모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궁에서 처절하게 머리를 내미는 아이"를 그린 그 그림은, 그녀의 비참했던 생애를 압축한다. 인간의 생물학적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이다. 태를 통해 자신의 피와 뼈, 살과 생명인 숨결로 어미는 배냇 속 아기를 키운다. 그 귀한 자궁을 통해 왜 그런 절규를 칼로는 부르짖었을까. 그것은 근대인들의 극단적 인간성 소외와 상실에 대한 자화상이자 고발이며, "가부장적 제국 문화로부터 상처 입은 여성의 영혼이 이미지화된 그림"임을 손철규는『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에서 적었다. 즉, 칼로의 이 그림은 모성만이 인간 극한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음을, 화폭 가득 찬 여성의 음부를 통해 적나라하게 제시했다면, 전봉건의「뼈저린 꿈에서만」은 한국전쟁의 비극이 한 인간의 영혼에 얼마나 참혹한 눈물과 상처와 굴곡의 설움을 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역작이다.
1928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출생한 전봉건은 6·25 전쟁으로 월남한 후 1988년 사망할 때까지 일평생 어머니와 북쪽 고향을 그리워한 이산(離散)의 고통을 짐 진 비극의 시인이었다. 수작「뼈저린 꿈에서만」은 시어의 마디마디 사이로 어머니에 대한 그립고 사무친 시인의 피맺힌 한(恨)이 핏물처럼 번진다. "그리라 하면 / 그리겠습니다. / ……/ 고향의 것이라면 /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이 간곡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절로 읽는 이의 가슴을 메이게 한다. 분단을 노래한 시작품이 수도 없이 많지만, 특히 빼어난 서정과 시인의 내면으로부터 떨려오는 체험의 목소리로「뼈저린 꿈에서만」에 견줄 현대시가 몇 편 될까.
"마당 끝 큰 홰나무 아래로 /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도 절절하다. 정답고 따스운 모자지정(母子之情)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어머니의 품은 언제나 따스한 땅으로 비유된다. 큰 바다 해(海) 속에 어미 모(母)가 그냥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 건너 먼 프랑스에서도 '어머니' 하고 부를 땐 mere(메르) 라 한다고 한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뜻의 메르가 '바다'라는 mer(메르)를 품고 있는 걸 보면, 동·서양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외경과 사랑이 언어에서도 일맥상통함을 알겠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만은 /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 그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 가로 세로 파놓은 어머님 이마의 / 어둡고 아픈 주름살." 이 시행에 다다르면, 시인의 울부짖는 통곡 소리가 절로 들린다. 죽음 직전 가장 많이 찾는 이름이 어머니라고 한다. 모성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첫 출발이자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할 천륜의 꽃자리이다. 효자 시인 전봉건이 저승에서나마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좋아할 생각을 하니, 오늘 그의「뼈저린 꿈에서만」을 읽은 것만으로도 후학으로서는 참으로 기쁘다.
④
(내 아버지처럼 나도 어부의 자식이었다. 바다와 아버지는 두려움이었다. 열다섯 봄이 밀려올 때 바다와 아버지를 피해 뭍으로 도망쳤지만, 뭍에서조차 내 배는 격랑에 흔들리고 떠밀려 더 심하게 배멀미를 했다. 꿈속에서 자주 바다가 그리웠다.)
그날의 귀잠 속으로
새벽이 귀항(歸港)하고 있다
눈 감겨도
어등(漁燈)의 불빛을 덮고 잠든 물결
깨워야 하리라
눈 감으면 흰 배는
물 위로 뜨고 아직 탄력 있는 등은
물바닥으로 가라앉으리
만삭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위해
오늘도 아침 식사는
눈부신 물비늘에 버무린 싱싱한 햇살 한 그릇
고깃배들이
눈 감겨도 고통스럽게 눈을 뜨고
출항의 기적 울리며
지느러미 움직이고 있다
― 이승주,「구계항」전문
*구계항 : 김동원 시인의 고향으로, 경북 영덕군 남정면 구계리의 작은 항구.
내게 있어 고향 바다는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다. 뼈저리게 사랑했던 한 소녀가 무너진 흰 눈이 되어 수평선 위로 흔적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을 보았을 때 ― 그 바다가 죽음이었다면, 그 여름 미친 듯 쏟아지던 수천 만 개의 빗방울과 수평선이 끌어안고 황홀해하던 그 바다는, 부활 그 자체였다. 이승주의「구계항」을 읽고 있으면, 어찌 그렇게도 내 삶의 슬픔과 외로움의 밑바닥을 직관의 시안으로 잘 훑었는지 으슬으슬하다. 역시 좋은 시는 촉수가 예민하다. 사물의 경계와 경계 사이에서 시의 꽃은 핀다. 시어 하나를 빠뜨리면 금방이라도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 시이다. 시작(詩作)의 중요한 기제 중 하나가 ‘퍼뜩’과 ‘직관’이다. 퍼뜩 속에는 삼라만상의 직관이 집약된 순간이다. 2012년 4월 24일 단 한 번 나와 함께 고향을 방문한 후에 쓴 이승주의「구계항」은, 김동원의 자화상이 시 행간 속에 밀려오고 쓸려가는 파도처럼 파문진다.
구계항은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와 태백산맥에서 한번 호흡을 고른 후, 강구항을 거쳐 곧장 뻗어내려 온 곳에 위치한 해안선이 아름다운 작은 항구이다. 가파른 산세들은 무작정 바다로 뛰어내리는 급한 성미다. 마을사람들은 농사보다는 바다를 삶의 일터로 삼는다. 생선 장사와 미역, 김 등의 생산으로 생계를 연명한다. 늘 동해는 거칠고 도전적이며 거침없이 행동하는 남자의 세계다. 범람하는 해일 앞에 오로지 생사의 진검 승부를 벌려야 하는 현실적 결단 자가 동해의 어부이다.
이승주의 시구처럼, 나는 “꿈속에서 자주 바다가” 그리웠다. 한 겨울 장갑 낀 손이 얼어붙어도 자식을 위해 바다로 나가야만 했던 내 아버지는 어부였다. 잡은 고기는 강구항이나 구계 어판장에서 상인들에게 팔려 대처로 나간다. 아버지는 고된 하루 일을 마치면 노을 무렵 자전거를 타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바다가 보이는 동구 밖 입구에 서서 4살 난 나는 아버지가 사오는 알사탕을 흥건히 침이 고인 채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은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 분은 이승에 나를 남겨두고 홀연히 알사탕을 사러 저승으로 자전거를 타고 떠나갔다.
지천명인 지금도 나는 진정한 의미의 생사를 모르는 철부지이지만, 그때 역시도 죽음이 알사탕과 같다고만 생각했다. 선친이 돌아가신 날은 몇 날 며칠 장대비가 퍼붓던 늦여름이었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문상객을 맞은 나는, 마냥 신이 났다. 모처럼 우리 집 마당에 동네 어른들로 넘쳐난 것을 본 나는, 무슨 잔치 날 같은 생각을 했다. 서른의 어머니께서는 죽은 아버지 관(棺)을 붙잡고 호곡(號哭)을 하시고, 그 설움의 깊이를 알길 없는 난, 맞지 않는 상복을 입고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어머니마저 불귀의 객이 된 지금, 그날 어린 아들의 철없음을 다 보았을 그 청상인 어미의 흉중을 짐작하니, 내 가슴은 무너진 산 같다.
아버지를 산에 묻고 돌아온 그 다음날에도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동구 밖에서 전처럼 자전거를 타고 아비가 알사탕을 사서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억을 잡고 옹송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그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그날의 귀잠 속으로 / 새벽이 귀항(歸港)” 해도, 결코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옆집의 아버지 친구 분을 만날 때마다, “우리 아버지는 언제와요?”라고 묻곤 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그분은 나에게 바다를 가리키며 “네 아버지는 이다음 돈 많이 벌어 저 바다로 걸어온단다” 라고 일러주었다.
그날부터 나는 남몰래 언덕에 앉아 바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혹여 아비가 수평선 너머로 붉게 떠오르는 해를 타고 물 위를 걸어 나올 것만 같은 환시에 시달렸다. “뭍에서조차 내 배는 격랑에 흔들리고 떠밀려 더 심하게 배멀미를” 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눈 감겨도 / 어등(漁燈)의 불빛을 덮고 잠든 물결”을 깨워야했다. 여름 새벽 우연히 동네 형과 소몰이를 하러 봉황산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았던, 소년시절 그 황홀한 일출의 바다는 그대로가 장엄한 화엄의 세계였다. 그 아침 분홍 핏빛의 바닷물 속에 잠기어 꿈틀거리던 햇덩이는, 훗날 불길처럼 뜨겁던 첫사랑의 알몸 같았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리고 그 아침 산꼭대기 위에서 “아버지, 아버지” 하고 목 놓아 외쳤던 그 소년이 시인이 될 줄 고향 산인들 하늘인들 어찌 알았겠는가. 그 후 나는 “열다섯 봄이 밀려올 때 바다와” 죽은 “아버지를 피해 뭍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삼십 오년이 지나 시인이 되어 고향 구계항 등대에 다시 앉아보았다. 해마다 선산에 들르긴 했지만, 항구의 등대에 앉아 그렇게 오랫동안 해안선을 낀 마을과 아버지가 묻힌 산과 그 어린 날 알사탕을 목을 빼 기다렸던 언덕을 사무치게 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영혼의 상처는 깊이 숨겨져 있는 법이다. 인간 내면세계는 절벽이어서 여차하면 천길 벼랑으로 떨어진다.「구계항」은 시적 화자의 숨소리, 눈길, 시선, 삶의 풍경들이 행간 속에 촘촘히 박혀 있다. 좋은 시일수록 언어를 생다지로 우겨 넣지 않는다. 잘 곰삭은 시어에서 발효향이 나듯, 온갖 풍상을 견딘 시어들이 시 속 제 자리에 차고 앉아 긴 여운과 울림이 된다. 언어의 뼈다귀를 푹 고아서 우러나온 국물로 진국의 시를 이승주의「구계항」은 건져 올렸다. 나는 그날 비로소 유년 시절, 저 수평선 밑 그 계단 아래 잃어버린 아버지의 죽음과 내 가슴 속 어찌할 수 없는 한 소녀의 죽음 흔적을, 그 고향 앞바다에 온전히 묻었다.
⑤
길 속에 집이 있었네
나, 라는 집
당신, 이라는 집
세상, 이라는 집
나,라는집에서두문불출하며곰팡이로피어있었거나
당신,이라는집앞을라일락향기처럼서성이던시절도있
었네이제세상,이라는집앞에서초인종을누르네
(길이,
무허가건물같은집들을들락거리며
일생의스토리를각색했네)
집을 떠나 길은 집으로 가네
태초의 자궁에서 풀어져 나올 때부터
길은 집으로 가고 있었네
몇 억겁의 윤회, 업처럼 들쳐업고
몸어둠에서 마음빛으로, 길의 어머니
그 피안의 환한 집으로 가고 가네, 길은
― 김현옥,「길, 그리고 집」전문
세상 밖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낯익은 골목길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설 땐, 왠지 환한 미소로 반겨줄 어머니가 서 계실 것만 같다. 반면 집 밖으로 뛰쳐나가 제 살 길을 찾아 나설 땐 원인 모를 불안함과 막막함이 검은 구름으로 몰려온다. 천 년 전 페르시아 나이샤푸르의 위대한 시인 오마르 카이얌은 불후의 4행 시집『루바이야트』에서 인간이 걷는 길을 철저한 '허무의 길'로 보았다.
보라, 허물어진 세월의 여인숙에
밤과 낮이 엇갈리며 출입하는
대대로 누리는 술탄의 영화
정한 시간 끝이 나면 사라지리라 (시·17)
황금 싸라기를 아껴 쓴 사람이나
물 쓰듯 바람에 날려 보낸 사람이나
황금의 대지로 화신할 수 없는 몸
죽어 묻히면 그 아무도 파보지 않으리 (시·15)
물질세계, 정신세계 거론하던 성현들
바보스런 예언가로 밀려났으니
그 오만한 발언들은 버림을 받고
그 입 속에 흙먼지 가득 하다네 (시·26)
오, 지옥의 위협이여, 천국의 기약이여!
한 가지는 확실하오, 인생은 덧없는 것
이 한 가지 분명하고, 나머지는 거짓 일세
제 아무리 고운 꽃도 지고 나면 그만이니 (시·63)
20세기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끝까지 물고 놓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이 세계와 분리되지 않고 분리될 수도 없는 존재임을 실존의 극단에서 찾으려고 했다. 하이데거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숙명적인 비합리와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 했으며, 까뮈는 그리스 신화 속 '시쉬포스'처럼 결코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오마르 카이얌은 그 모든 실존적 가치를 철저한 허무 속에 담아 단숨에 4행시로 녹여버렸다. 그는, 인간의 생이란 '세월의 여인숙'에 잠시 들러 살다가 제각각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으로 인식했다. 공연히 부귀영화다 철학이다 탐욕이다 신의 계시다 그런 허상에 매달려 귀한 현재 삶을 1분 1초라도 허비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내일 하늘이 무너져도 오늘을 즐겨라.'고 외친 그는, 마치 중국의 시선 이백처럼 술이나 한잔 불콰하니 취해 그 고운 달과 어여쁜 처녀들을 끼고 세상 근심 걱정 다 묻어버리자고 외친다.
참으로 인류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 나름의 희한한 눈으로 자신의 '길'과 '집'을 짓다가 그 '길' 위에서 한 줌 티끌로 사라져갔다. 한국 현대시사 속에도 '길'과 '집'을 주제로 자신의 존재 흔적을 부단히 찾아 헤맨 수많은 시인들이 존재한다. 그 중 김현옥의「길, 그리고 집」을 주목하는 것은, 시를 통해 ‘집’ ‘길’ ‘자궁’ ‘어머니’를 한 줄에 꿰어 인간이 궁극에 맞닥뜨리는 ‘죽음’을 불교의 윤회적 시각으로 본 특이성 때문이다. 보통 시 속의 '길'은 시적 화자의 내면적 성찰의 매개체이거나 인생길을 의미한다.
시「길, 그리고 집」의 시상 전개 방식은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시법을 따른다. 먼저 1연 첫 행에 시인은 '길 속에 집이 있었네'라고 전제한다. 이때의 '길'은 '나, 당신, 세상'으로 확장되어가는 삶과 세속으로 통하는 길이다. 이 길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다 밟고 간 생활인의 길이자 일상의 길이다. 화자 역시 이 '길' 앞에 서성대며 부단히 자신의 존재를 찾는다. 그러나 이내 이 '길'이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님을 깨닫는다. 2연은 매우 의미 있는 발상을 보여준다. 자아 탐색기를 시인은 숙성이 필요한 “곰팡이”로 표현했다. 2연은 시행 전체가 띄어쓰기 없이 통으로 붙었으며, 화자는 그만큼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고뇌기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다. 그 옛날 사랑에 몸부림친 청춘의 사랑앓이 병도 현재 시적 화자에겐 더 이상 유혹의 족쇄가 아니다. 3연은 오마르 카이얌이 보았던 '허무의 길'과 궤를 같이 한다. “길이, / … / 일생의스토리를각색했네”. 왜 '길'이 시적 화자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을까. 사실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진창길임을 시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토리'로 보았다. 그 어떤 철인이 나와도 시인이 보기엔 답이 없는 오리무중의 세계가 바로 세상이란 진흙탕이다. 마지막 4연에서 시인은 '집을 떠나 길은 집으로 가네'라고 진술한다. 비로소 속세를 벗어나 지금껏 그렇게 찾아 헤맸던 탈속의 경지에 이른다. 즉, 이 시는 “길의 어머니 그 피안의 환안 집”에 이르기 위해 ‘길’과 ‘집’ 사이에서 방황하며 성찰한 구도 시의 일종이다. 1962년 영덕에서 출생한 김현옥은 94년『영남일보』, 97년『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했다.「길, 그리고 집」이 수록된 그녀의 첫 시집 제목은『언더그라운드』(만인사, 2008)이다.
⑥
이어 이어 이어도 사나
이어도가 어디에 사나 수평선 넘어
꿈길을 가자 이승길과 저승길 사이
아침 햇덩이 이마에 떠올리고
저녁 햇덩이 품안에 품어
노을길에 돛단배 한 척
이어 이어 이어도 가자
한라산을 등에 지고 제주
바다와 마주 서 보라
수평선은 하늘하늘
눈썹 밑으로 잠기어 들고
새 하늘 동터 올 내일을 열라, 이글대는
수평선이어, 이글대는 가슴을 열라
수평선 넘어 꿈길을 열라, 썰물나건 돛단배 한 척
이어 사나 이어도 사나
별빛 밝혀 노저어 가자
별빛 속으로 배저어 가자
― 문충성,「이어도」전문
문충성의「이어도」는 고향 설화를 바탕으로 민요의 형식을 빌려 어떻게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우주로 까지, 그 시상의 율동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지 보여준 명작이다. 이 시는 장단이 있는가 하면 고저가 있고, 압축이 있는가 하면 여백이 있어, 독자로 하여금 제주 앞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붉은 햇덩이에 올라 앉아 노을을 지나 밤하늘별을 주으러 가고만 싶게 한다. 시「이어도」는 제주도에 미친 시인이 아니면, 그 바다 속 무릉도원 같은 황홀경을 표현 할 수 없는 멋진 반복의 시구로 가득하다. "이어 이어 이어도 사나 / 이어도가 어디에 사나 수평선 넘어 / 꿈길을 가자 이승길과 저승길 사이 / 아침 햇덩이 이마에 떠올리고 / 저녁 햇덩이 품안에 품어 / 노을길에 돛단배 한 척 / 이어 이어 이어도 가자" 마치「이어도」는 수 억 만년 바닷물이 이끄는 대로 밀렸다 잠겼다 그렇게 삶을 이어왔을 제주의 어부와 해녀들의 가슴 한켠에 오롯이 남은 심회이자, 달빛에 흔들리는 봄 유채꽃밭의 서정의 리듬이요, 바다를 보며 불덩어리 활화산이 되었다가 싸늘히 식어간 휴화산이 되었다가, 수 천 만 번 거듭하며 수평선 따라 잠기고 솟구친 둘레 섬들을 거느리고 살았을 제주도가 숨겨 논 애첩 같기만 하다.
「이어도」는 1938년 제주에서 출생하여 1977년『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한 문충성의 대표작이다. 1900년 자욱한 안개 속 바닷길을 잃고 헤매던, 좌초 직전의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에 의해 처음 발견된 환상의 섬 이어도. 제주 뱃사람들이 어쩌다 물이 줄면 거짓말처럼 떠올랐다 가라앉는 것을 신기루처럼 보았다는 그 옛날 전설의 섬 이어도. 문충성은 민요의 가락과 아스라한 제주 해녀의 눈초리에서 영감을 받은 듯, 저 절묘한 시행 "수평선은 하늘하늘 / 눈썹 밑으로 잠기어 들고"를 얻었다. 이 시구는 마지막 행에서 보인 죽은 사후에 바닷물을 건너 "볓빛 속으로 배 저어 가자"는 부활 의식을 바탕으로 한 우주로의 시상 연결로 시원스레 확장되어 시적 해방구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이어도는 약 1만 1000년 전 빙하기에는 제주도와 이어진 한 몸이었다고 한다.
첫댓글 모처럼 단배식을 가졌습니다. 다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굽혔습니다. 상대를 공경한다는 뜻이죠.
弟子 入則孝하고 出則 悌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하며 行有餘力이거든 則以學文하라 했습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과 김길영회장님 후불씨 등 문우님들의 모습 가슴 저리게 보고 갑니다 모두 모두 행복하세요